“캡틴”을 보내면서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 소식을 듣고선, ‘졸필’이나마 주절거리고 싶어지고 그런 사소한 노력이나마 고인을 추모하는 일련의 행동일까 하여 몇 자 적어봅니다.

 

9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대학을 갔던 내게, 90년은 ‘전교조 교사 해직 사태’만 선명히 기억에 남는 한해입니다. 3학년이야 ‘입시’땜에 말할것도 없고, 1학년때는 ‘물정’ 모르는 신입생이라 치면 고교시절 어느 면으로든 가장 좋았던 해는 2학년.

 

학교에서 ‘전교조 사태’로 해직 당한 3분의 선생님 중 한분을 담임으로 뒀던 우리 반은 그래서 행복했고 … 그랬던 만큼 그분의 빈자리로 인해 남은 2학년 생활이 우울했던 그런 반이었더랍니다.

 

늘 뻔한 잔소리로 때우기 마련인 조례시간을 꼭 필요한 전달사항만 간단히 전하고, ‘5분 스피치(Speech)라는 걸 저희들로 하여금 순서대로 준비하여 발표하게 함으로써 자유로운 주제로 자기 생각과 의견을 남 앞에서 발표해 보고, 또한 그에 대한 또다른 견해나 의문을 제시하게 하는 이른바 “발표 및 토론학습’을 처음 경험하게 해 주셨던 분이었답니다.

 

그 밖에도 어느 볕좋은 토요일 오후 (우리때는 토욜 오후에도 4교시 수업 끝나고 자율학습이란 걸 하고 저녁쯤 하교했었어요 … 생각하니까 새삼 승질 나네 ㅆㅂ!!),

 

자습하던 우리를 바닷가로 다 끌고 나가서 함께 공을 차고 둘러 앉아서 장기 자랑도 하면서 한마디로 ‘즐거운 토욜 오후’를 선물해 주셨던 멋진 분이셨죠. 오로지 ‘대학진학’을 위한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던 그 시절, 일등도 꼴등도 없는 … 대가리도 찌질이도 없는 … 어깨동무라는 그 피상적인 단어를 실제로 느끼게 해준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날 장기자랑 제 순서때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했던 급우의 목발을 소품 삼아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기타처럼 두드리며 껑충거리면서 못하는 노래를 커버하여 반친구들 뿐만 아니라 그때 해변에 있던 일반 관광객들에게 일제히 박수를 받았던 저의 즉흥적인 퍼포먼스에 관해서도 깨알같이 자랑해 봅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학급문고’. 대부분 집에서 굴러다니는 책들을 가져다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반마다 있었던 ‘학급문고’. 그러나 저희 반에는 ‘걸리버 여행기’나 ‘몽테 크리스토 백작’ 대신에 루이제 린저의 ‘북한 여행기’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그리고 ‘노동의 역사’ 같은 그때 당시엔 고등학생이 읽기엔 위험하고 불온한 서적으로 오인받을 만한 이른바 ‘사상서적’, 정확히 말해 ‘사회 과학 서적’들이 가득찬, 아버님이 목수셨던 반친구의 협찬을 받아 특수제작된 자물쇠 달린 ‘금고형 학급문고’가 교실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답니다.

 

당시 저희 학교에선 세분의 선생님, 두분의 국어 선생님과 한분의 영어 선생님이 ‘해직’을 당하셨습니다. 그 때 학급문고 도서관리 담당을 하고 있던 저는 교무실 학생과에 끌려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진실’이 담겨있던 그 책들이 교무실 한켠에 널부러져 있고, 여기 저기서 수근거리며 저를 쳐다보던 다른 교사들의 그 눈빛 그리고 그 경멸의 눈빛들을 대표로 한마디로 정리해 주듯이 내뱉던 학생과장.

 

“애덜을 빨갱이를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만 이 셰끼”

 

그리고 그 책 중 한권으로 제 뒤통수를 두어대 사정없이 후려쳐 주시는 ‘무식함’은 절대 생략하지 않았던 그 학생과장.

그리고 퇴학이니 정학이니 절 협박하면서 강제로 쓰게 했던 ‘각서’인지 ‘진술서’인지 그 정체모를 필사본(?). 그 글씨도 드럽게 못쓰던 그 학생과장이 연필로 초안을 잡아준 종이에 제가 볼펜으로 덮어쓴, 여러분이 뻔히 예상 가능한 내용들.

 

 

 

 

 

“담임 교사의 강요에 의해 불온서적인지 모르고 도서관리를 맡았고 … 그 교사의 불순한 교육의도에 대해 증언할 수 있다”는 등의 더 이상 글로 옮기고 싶지도 않은 …

편모슬하에서 거의 유복자나 다름없는 외아들로 자란 제게 이런 일로 어머니 맘을 아프게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그 어리던 저는 처음으로 현실과의 괴리라는 걸 경험했고, ‘굴복’이라는 처절하고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죠.

몇자 끄적이려던 것이 장황해졌습니다만, 암튼 당시 저랑 비슷한 경험을 했을 … 이른바 ‘우리 선생님’을 빼앗긴 경험들.

 

불의의 사고나 병가 내지 임신등으로 인한 정식 휴가가 아닌 ‘해직’이라는 이유로 두 명의 담임이 있었던 학년이 있는 일부의 우리 세대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는 각자의 경험의 크기에 따라 다를지라도, 많은 의미와 생각들을 가져다준 영화였음에 틀림없습니다.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그 영화를 보면서 흘렸던 그 뜨거운 눈물 … 아직 살아계신 울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까진 다시 흘릴 수 있을까 싶은 눈물이었던 저에겐 이 영화만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영화는 만날 수가 없을겁니다.

저에게 ‘로빈 윌리암스’는 그 힘없던 시절, 지켜주지 못해서 안타깝고 미안하기만 한 그 선생님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이 거짓말처럼 그대로 투영된 ‘캡틴’으로 다가와 앞으로도 그 모습으로만 기억될 배우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그 마음을 하소연 할 데가 없어 이렇게,

 “학창 시절 전교조 해직교사를 담임으로 둔 경험때문에 나름 감동깊게 본 영화의 주연배우의 죽음을 애도하는 …”

이 두 줄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글을 이렇게 긴 지면을 할애하여 적어 봅니다.

 

 

“Thank you, captain, thank you.”

 

 

 

영진공 마사오친구막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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