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특집] 영진공 을유(乙酉) Best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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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6일

병술년 새해가 밝았다. 에 … 뭐 선수들 끼리 너스레 떨 건 없고, 남들 다 하는 거 우리도 함 해보자.

을유년 개봉 영화 중에서 부문별 Best를 골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는 바이니 부담없이 즐기시고 의견도 달고 해 주시라.

* 영진공 을유(乙酉) Best 재미: 『쿵푸 허슬』

“주성치”는 재미있다. “주성치” 영화는 당연히 재미있다. 어깨에 꼽힌 칼날을 반사경으로 쓰는 센스에 뒤집어지고, 오리처럼 늘어진 입술을 휘두름에 환장한다. 어처구니 없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패러디에 실소하고, 뜬금없는 ‘여래신장’과 펼쳐지는 ‘구양신공’, ‘일양지’에 폭소를 금치 못한다.
구차한 의리에 미학을 담고, 소수 성애자의 박대에 일침을 가하며, 사탕조각 부스러기에도 순수를 지향하는 그 너저분한 알량함은 그저 포복절도와 파안대소의 물리적 반응 외에도 뇌속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화학적 분비를 깨우치며 쉽게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생의 비굴함도 불편하지 않으며, “양소룡”에게 ‘여래신장’을 가르쳐 주려는 태도를 통해 나눔의 이치를 통한 ‘득도’를 꾀한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로맨스던가. 그는 이 알량한 세상에 한 줄기 부처의 광명처럼 내려와 우리에게 진정한 즐거움이란 그저 조낸 웃겨대는 것일 뿐이라고 한 줄기 연꽃과 함께 말했다. 쿵푸를 가르쳐 준다는 것. ‘일’을 공유한다는 것.
소수 성애자도 쿵푸를 하고, 아줌마도 쿵푸를 하고, 이제 과거의 실력으로 더 이상 ‘쿵푸’를 할 수 없는 야수에게도 ‘쿵푸 재교육’의 복지문화를 선사하는 우리의 “주성치”.
아, 그가 그리는 세상은 너무나도 행복한 세상이라 죠낸 감동이다. 스바, 눈물나지 않을 수 없다.

* 영진공 을유(乙酉) Best 신파: 『밀리언 달러 베이비』

본 우원, 신파에 상당히 약하다.
얼마나 약하냐 하면…
사람들이 보면서 졸았다는 『태풍』을 보면서도 한 3번쯤 울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며(관련 포스트), 심지어 『실미도』 앞에서도 눈물 콧물로 마스크팩을 했던 사람이다. 영화만도 아니다. 아직도 미츠루 아다치의 [H1]에서 죽은 동생 꽃목걸이를 쓰레기 취급했던 형이 뒤늦게 사실을 알고 자청해서 한방 맞는 장면에서 안구에 습기가 차고,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벌떡 일어나 ‘정말로 사랑합니다!’ 하는 장면만 보면 눈물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아 참, 황미나의 <레드문>은 거의 통곡하면서 봤다…(그 이후로 다시는 그 사람 만화 안 본다. 아우… 그땐 정말 속까지 쓰리더라…)

이런 이유로 웬만하면 신파를 피하려 한다.
한번 열리기 시작한 눈물샘이 잘 닫히지 않거든.
게다가 신파 자체가 상당히 전형적인데 그런 뻔한 공식을 알면서도 번번히 당하는 나 자신을 보면 자존감이 상당히 떨어지거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피한다만, 내 신파량(주: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을 주량이라 하듯, 눈물이 터질 때까지 감당할 수 있는 신파적 상황의 수준을 신파량이라 정한다) 을 잘 모르는 터라 뜻하지 않게 신파에 당하곤 한다.

근데 말이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신파도 여러 가지다. 특히 어떤 신파는 보면 볼수록 점점 그 타격이 약해지는 반면,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지면서 아예 그 장면이 되기 전부터 흐늘흐늘하게 만드는 신파도 있다.

물론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명백하게 후자에 속한다.

본 우원, 이 영화를 학회 참석하러 캐나다 가는 비행기에서 봤다. 안 세어봤지만 갈 때 올 때 합해서 한 6번쯤은 틀어줬을 거다. 그나마 우리나라 항공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판으로 봐야 했다. (영어도 못하면서 학회 발표는 어떻게 하냐고? 다 방법이 있다. 외우면 되지…)
여튼 그렇게 그 6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본 우원 이 영화를 끝까지 보는데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다. 보다가 재빨리 다른 채널에서 하는 『Mr.히치 :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같은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진정 시켜야 했으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라. 본 우원만 비행기 탄 거 아니다. 10년 아래 예쁜 후배도 옆에 있었다. 그 후배는 본 우원을 존경한다(고 말한다)는데 영화 보면서 질질 짜면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는가….

미스터 히치, 고마워~~

영화로 돌아가 보자.
글타. 이 영화는 정말 전형적인 신파다.

인생의 막장에서 외로이 늙어 가는 트레이너 앞에 나타난,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붙잡으려는 늙은 초보. 완강히 거부하던 관계가 일단 맺어진 다음,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임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하지만 결국 뜻하지 않은 이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절대로 다시 만날 수 없을 그 자식보다 더 소중한 파트너에게 주인공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그 파트너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만나서

공유하고

어느새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을 정도로 징한 얘기다.

사실 이렇게 노골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관객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 입장에서야 “앞으로 벌어질 일이 뻔히 보이는 이런 이야기를 뭐하러 봐? 재미도 없쟎아!” 하면서 스크린 앞을 떠나면 끝이란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영화. 그렇게 뻔한 신파임을 알면서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증상은 아무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라는 배우의 존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이스트우드....

그의 연기는 정말 연기 같지가 않다. 그저 영화 속의 프랭키 그 자체다.
이 할아버지가 숨찬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대사를 내뱉을 때마다 관객들은 실제로 그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음을 느낀다. 그의 표정과 그 허한 자세에서 이미 외로움이 절절하게 배어 나오고, 그 무뚝뚝한 말투 속에서 타협하지 못하는 꼬장꼬장함이 그냥 드러난다. 그가 예배당에서 고개를 숙이고 신에게 기도인지 항의인지를 하는 뒷모습만 봐도 그 기분이 어떨지 실감이 나고 친구를 떠나보낸 뒤 쓸쓸히 병원을 나서는 뒷모습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선물이 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실제로 젊은 시절 화려하고 거칠게 살아온 마초 배우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노숙함 속에 잔잔하게 숙성된 나이 70이 넘은 노인이다. 그 원로가 나이는 좀 있지만 열의와 재능을 가진 “힐러리 스웽크”와 마주하고 대사를 교환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귀한 구경거리다. 그러니 그 둘을 멍하니 보다가 어느새 신파의 쓰나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지 않겠나. 이런 경험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지…

예전에 『용서받지 못할 자』에 대해서 쓰면서도 한 말이지만,

정말 그처럼 늙을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
이미 늦은 거 같다만…

추신: 본 우원은 아직도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다.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 영진공 을유(乙酉) Best 연출: “로버트 로드리게즈”, 『Sin City』

『씬 시티』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분명 그 어느 영화보다도 뛰어났으며, 감동에 가까웠다. “제시카 알바”의 고혹을 느끼게 만드는 몸매가 아니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연기와 화면구성, 소품, 색감 등은 충분히 즐거움을 선사했다. TV 코메디 시리즈로 등장한 “브루스 윌리스”가 환갑의 나이에도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는가 싶더니 그저 맥없는 늙은이에 불과한 것을 만방에 퍼뜨렸고, 『헌티드』에서 칼부림 좀 하던 “베네치오 델 토로”는 총만 믿고 까불대는 양아치가 잘 어울렸다. 그 뿐이던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미키 루크”는 망가진 것 따위와는 상관없이 화려한 초 특급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 멋진 마초맨으로 날아올라 적을 무찌른다. 아, “미키 루크”. 당신 이런 적 없었잖아? “클라이브 오웬”의 그 깊은 눈동자엔 여자가 아니라 남정네도 가심이 동할 게다. 마초 영화로 욕 먹어도, “데본 아오키”의 묘한 눈빛과 “제시카 알바”의 허리 돌림만 기억에 남아도. 그토록 ‘멋드러지게’ 잘 어울리는 배역들은 “엘리야 우드”의 반사된 백색 안경 모습처럼 섬뜩하지 아니하던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폭력 미학보다, 그 연출 솜씨에 기겁했다.

* 영진공 을유(乙酉) Best 연기: “리암 니슨”, 『킨제이 보고서』

사실 “리암 니슨”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쉰들러 리스트』 때부터 일 것이다. 그리고『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그가 연기한 콰이곤 진 역할은 제다이라는 캐릭터를 한 층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품격’을 더했다고나 할까? 또한 그가 『마이클 콜린스』에서 보여준 열연을 칭송하기에는 실제 북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으며 그가 뱉어내는 적절한 톤의 대사와 표정들은 전기적 인물의 성찰을 재시각화 하는 작업이 거쳐졌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오죽하면 1997년에 나온 “해리슨 포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북아일랜드 해방군과 아이리쉬 어메리칸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데블스 오운』을 다시 보면서 “해리슨 포드” 대신에 “리암 니슨”이 연기했더라면 하고 상상해 볼 정도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전기적 인물’을 소화해 내는 데는 최상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나보다.
『킨제이 보고서』에서 알프레드 킨지(이미 선데이 서울 시절부터 킨지 박사님은 킨제이로 불리셨다)역할을 맡은 그는 여러 평을 통해 ‘킨제이 박사의 부활’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호평을 얻은 바 있으며, 특히 첫 부부학 강의로 들어서면서 강렬한 오프닝을 날리는 장면이나 진지한 토론의 눈빛에서는 “과연 ‘배우’라는 직업이 무엇을 소화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청중에게 외면 받으면서 느끼는 아찔한 현기증에 이어 새로운 활력을 찾아나가는 그의 표정들은 우리에게 ‘킨지 박사’라는 인물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실의 나열을 넘어서 그의 있을 법한 고뇌와 시련의 시간들을 새로이 소화해낸 제 3의 시각으로, 현재의 우리를 다시금 밖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또 다른 창의 구실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만큼 “리암 니슨”의 연기는 훌륭했다.

영진공 을유(乙酉) Best 기획팀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Napoleon Dynam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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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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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ed by Jared Hess
미국 평단에서 호평받았고 DVD 판매량도 상당하다는 소문을 줏어들어서 챙겨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로얄 테넌바움』이 떠올랐습니다. 『로얄 테넌바움』은 실패한 천재들의 이야기고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은 말하자면 바보들의 이야기지만, 캐릭터들이 다들 정상성을 살짝 벗어나있고, 지나치게 자신의 세계에 몰두한데다가 성격적 결함과 사회적 스킬이 부족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 ‘아웃사이더’들이죠.

아웃사이더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는 30대 반백수의 감정은 복잡합니다. 그런 영화들이 말하고 싶은 게 뭘까요? 『스쿨 오브 락』같은 영화에서 아웃사이더들은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지조있는 인간으로 묘사되기도 하죠. 실패자들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사회질서에 순응해서 밥벌이라도 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들 아웃사이더들의 일탈적인 행동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뭔 소용있나요? 그런 영화봤다고 영화속 주인공처럼 지 꼴리는대로 살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런 영화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름대로의 성공’도 영 찝찝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진실은 통한다, 혹은 너 꼴리는대로 살아도 입에 풀칠할 방법은 있다, 그런 헛된 희망을 얘기하려는 걸까요? 차라리 『빅 대디』처럼 사회질서에 순응하고 성실한 인간으로 살라고 충고하는 게 더 정직한 결말 아닐까요?

이 영화의 주인공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와 그의 주변 인물들도 하나같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쳐박혀 삽니다. 나폴레옹은 줄곧 기사와 마녀(?)같은 것들을 낙서해대지만 ‘페드로’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의 그림세계를 인정해주지 않죠. 서른 두 살 먹은 나폴레옹의 형은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와 채팅을 합니다. 그들의 할머니는 손자들에 대해선 관심끄고 샌드듄으로 오토바이같은 것을 타러다니구요. 뭘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삼촌은 이십여년전 고교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의 환희에 젖어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자족하면서 살고 있고 자신의 삶이 타인과 다르다는 점에 대해 조바심내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학교에서 종종 ‘따’를 당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짜증만 낼뿐 이내 잊어버리지요. 어이없는 건 이들이 뜻하지 않은 성공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무런 성실함도 보여주지 않고 그저 꼴리는대로 살았을 뿐인데도요. 나폴레옹은 우연히 얻게 된 비디오 테입으로 댄스연습을 했는데 그 어설픈 춤이 ‘페드로’를 학생회장으로 당선시킵니다. 사랑(?)도 이루구요. 나폴레옹의 형은 ‘전신사진’도 보지 않고 몇 년 째 채팅만 했을 뿐이라고 걱정하지만, 채팅 상대였던 그녀는 쭉빵걸이었고 그녀와 함께 환골탈태 변신하여 다른 도시로 떠납니다. 나폴레옹의 친구인 멕시코 출신 이민자 ‘페드로’는 어영부영 학생회장에 당선되구요. 돈을 마련하려고 반쯤 사기행각을 벌이던 삼촌은 된통 혼쭐이나고나선 다시 예전처럼 미식축구공을 던지며 노는 생활로 돌아옵니다. 아웃사이더로서의 순수성을 되찾게 되는거죠.

이게 뭔가요? 저 아웃사이더들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그들의 뜻하지 않은 성공은 통쾌한 맛도 있지만, 이 영화를 기만적이거나 한심하게 만듭니다. 『덤 앤 더머』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 영화도 바보들의 우연한 성공을 다룬 공허한 영화입니다. 현실감이 너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웃기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웃기기만 할 따름이라는거죠. 사실 웃음의 전략도 『덤 앤 더머』와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고정된 카메라가 느린 편집으로 잡아내는 장면들 속에서 그들은 엉뚱한 행동과 바보같은 몸짓으로 관객을 웃깁니다. 아웃사이더로서의 비정상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정상성에서 벗어나거나 – 가령 나폴레옹이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이 심각하게 못 그려진 그림이라거나 – 자신만의 세계에 심각하게 몰두하는 – Deb이 사진촬영의 뒷배경을 연출하면서 보이는 심각함 – 장면들은 무척 웃기지만, 그건 정상인이라면 하지 않을 별난 행동을 그들이 천역덕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비정상성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은 일견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장면이 주는 웃음의 본질은 ‘괴상한 사람의 괴상한 행동’에 어이없어하는 실소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는 무척 재미있지만, 동시에 무척 공허한 코미디입니다. 화려한 수상경력과 호평에 기죽을 거 없습니다. 『덤 앤 더머』라니까요.

p.s. 이 영화의 배경은 아이다호의 어느 작은 도시입니다. 영화 중반쯤에 핸드폰이 등장하기 전까진 이 영화가 8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고 착각했어요. 미국에도 저렇게 낙후한 도시가 있는가요? 전 미국 같은 데 가 본 적이 없어서…

과거사진상규명위 발굴1팀장
꼭도(http://cocteau.pe.kr)

『스탠 바이 미』: 그 시절은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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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1일


함께 거주하는 이가 며칠 전 친구에게 책과 DVD등을 잔뜩 빌려 왔다. 책은 이미 다 본 거여서 재독을 하고 (예전엔 몰랐는데 요시모토 바나나의 「도마뱀」이 꽤 재미있었다. 흠.) DVD를 살펴보는데… 아니. 이 푸르딩딩한 배경의 화면은 『스탠 바이 미』가 아닌가. 초롱초롱 땡글땡글한 리버의 모습. 호옥.

오랜만에 즐겁게 감상했다.


스펙타클 감동 대 서사시 로드무비!!! 는 물론 아니다.
전 인구가 기껏해봐야 1281명 밖에 안되는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소년들은 3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는 시체를 찾아 별 것 아닌 마음으로 즐겁게 캠핑처럼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다. 하룻밤의 짧은 여행이니깐..

네 명 중 주인공이나 화자는 정석처럼 그 중 좀 비실하고 좀 공부 잘하고 좀 섬세하고 결정적으로 앞으로 작가가 될 싹수를 가진 놈이다. 포스터 맨 왼쪽의 고디.
이 영화를 입이 닳도록 사람들이 부르짖게 된 원인의 제공자는 그 옆의 똘똘하게 생긴 빡빡머리. 이름은 크리스. 실명은 무려 그 유명한 “리버 피닉스”. 세번재는 스킵.
네번째 똥똥한 애가 보이는가? 한 때 우리나라 하이틴 영화에 정석처럼 끼어 있던 뚱뚱한 아이처럼 소심하고 먹는 것만 밝히고 엄청나게 겁많은 스트레오 타입의 뚱뚱한 저 아이. 저 아이… 저 아이…… 이름은 번.
실명은……….”제리 오코넬”. 그렇다!!!!!!! 그가 『슈퍼 소년 앤드류』다!!!!!!! 외화 시리즈의 그 앤드류. 스프레이로 하늘을 날고 좀 열심히 뛰면 시계가 녹아버려서 달리기 시간을 잴 수 없는 바로 그 앤드류. 맞다. 오~ 앤드류는 나를 두 번 놀래켰는데 한 번은 『스탠 바이 미』요. 또 한 번은 나중에 『스크림』이던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 던가 거기에서 여주인공 남자친구로 잠깐 나와서 나를 놀래켰다. 느끼해졌더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등장하자마자 죽었던가 어쨌던가 ;; 그 충격은 흡사 누구보다 잘 클 것이라 기대했던 『의뢰인』과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예비 쌔끈남 “브래드 렌프로”가 『판타스틱 소녀백서』에 심하게 좌절된 모습으로 뜬금없이 나타나 야밤에 아무 생각 없이 티비보고 있던 나를 기함시켰을 때의 충격보다는 덜하지만(앤드류를 좋아하진 않았었기 때문에) 여튼 대충 넘어가자.

주인공 고디의 고뇌의 원인이신 돌아가신 전 쿼터백 잘난 형님이 회상씬으로 두 장면 나오시는데… 아니, 저 ‘난 선량하고 쌔끈한 형님이야.’의 오오라를 마구 뿌리시는 젊은 남정네는 마이 라븅 존 쿠삭?????? 헉;
게다가 “키퍼 서덜랜드”가 무려 젊은 양아치로 나온다. 맨날 나이 먹은 양아치로만 나오던 이 아저씨… 더 젊을 때도 양아치로 나왔었군.

이리하여 등장 인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몹시나 즐거운 영화였지만 영화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고디는 죽은 잘난 형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고 죽은 형만을 그리는 아버지 때문에 고뇌하고 크리스는 자신은 몹시 잘나서 리더 역할을 하지만 양아치인 아버지와 형 때문에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이미 내놓은 양아치 취급을 받는 것을, 자신의 길도 양아치 밖에 없음을 괴로워한다. 번은 가장 평범하고, 뿔테 안경을 쓴 테디는 용감한 군인(이었다고 자신은 말하는)이었던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힘들어한다. 네 명은 길을 떠나는데 중간에 테디를 자극시킨 고물상 아저씨 때문에 테디가 자신을 확 터트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기찻길 때문에 뛰기도 하고 거머리를 붙인 채 늪을 건너기도 한다. 밤에 불침번을 돌아가면서 서는데 크리스가 불침번을 서는데 옆에 있던 고디는 크리스의 도벽에 관한 진실을 듣고 크리스는 아무도 자신에게 훔쳤느냐고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린다. 들썩이는 어깨가 좀 웃겼는데 이 장면이 리버가 아무리 해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는 그 장면 같다. 어흑. 고디는 진짜 시체를 보고나서 자신이 죽었어야 된다고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다사다난한 이틀을 보내고 돌아온 이들은 각자 헤어진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내보이고 서로 어색하게나마 다독여준다.

“돌아오면서 우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린 밤새 걸어서 일요일 새벽에 캐슬락에 도착했다. 단지 이틀동안 나갔다 왔는데, 마을이 달라진 것 같았다. 전보다 작게 느껴졌다.”

번은 가장 평범하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해서 네 명의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테디는 군인이 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전전하게 된다는 나레이션이 들린다.
고디와 크리스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리스는 ‘난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지’ 라고 말하고 고디는 그런 크리스에게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말한다.
크리스는 결국 그곳을 떠나서 변호사가 되지만 지난 주 싸움을 말리다가 절명하게 된다. 이런 제길. 맨날 영화에서 죽으니까 진짜로 빨리 죽은 거 아니야.

“12살 적 그 애들같은 친구가 내겐 다시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 친구가 있을까?”

라고 영화의 마지막은 말한다. 알 수 있나~ 알 수 있는 건 하나. 그 시절이 돌아올 수는 없다는 것. 즐거운 시절이었다면 행운이었다는 것. 그런 시절이 인생에 있었다는 게.

고디 역의 배우가 참 괜찮드만. 별로 좋게 크진 못했지만.
리버의 배바지가 빛났다. 이 때 “리버 피닉스”를 보면 나는 어째선지 “이재응”군이 떠오르는데…. 둘이 땡글한 게 좀 닮지 않았나? 성인이 된 모습은 심하게 다르게 나가겠지만.

그리고 고디와 크리스….
관계 요상한 기운 흐른다. 아니, 진짜라니깐. ‘니 아버지가 널 챙길 수 없다면 내가 그렇게 하겠어!’ 라면서 친구의 재능을 키우겠다고 난리치는 12살이 그렇게 흔한가? 트라우마는 둘이 있을 때만 서로 보인다. 네 명이 여행하는 데 어째서! 게다가 둘이 진지한 분위기가 되면 테디는 조용히 번을 데리고 다른 데로 사라진다 -_-; 어이 어디가?
나중에 고디는 크리스는 십년 넘게나 못봤다고 쓰는데, 나는 그 순간 고디의 대머리화 되어가는 머리를 보았다.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미소년과 안미중년의 차이를 극복 못했다는 게 아니라니깐. 어이; 믿어줘;


이건 단지 참고 자료 -_-;

과거사진상규명위 게릴라
wendytime(wendytime.egloos.com)

『천국의 문』(Heaven’s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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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5일

필름포럼에서 열린 <70년대 미국영화 특선> 중 한 편으로 보았습니다. 『스트로 독』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는데, 벌써 끝나버렸군요.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제작사를 파산위기로 몰아간) ‘재난’영화이자, 소위 ‘저주받은 걸작’의 대표적인 예처럼 말하여지는 영화죠. 글쎄요… 그렇게 홀랑 망해버릴 만큼 엉망인 영화는 아니지만, 꼬라지를 보라죠, 안 망하게 생겼나. 게다가 이런 영화에 무관심했던 당시 대중들의 천박한 취향을 한탄할만큼 어마어마한 걸작도 아닌 거 같구요.

영화는 배경은 1890년대 와이오밍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토지를 구매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던 이민자들과 거대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거대 농장의 농장주들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농장주는 자신의 가축을 훔쳤다는 등의 사소한 죄질의 이민자 150여명을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으로부터 얻어내고 50여명의 용병을 고용해 이주민 마을을 습격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네요. Ella Watson(“이자벨 위뻬르” 분)와 Nathan D. Champion(“크리스토퍼 워큰” 분)도 실존인물이라고 하구요.

“마이클 치미노”가 무엇을 노리고 이 영화를 만들었나 하는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입니다. 웨스턴이란 장르를 탈신화하면서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미국식 정의의 야만성과 부도덕성 같은 것도 비판하려는 거겠지요. 이런 식의 접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퍽 흥미롭게 읽힙니다. 자기 소를 훔쳐갔다고 사람에게 총을 쏘아대는 농장주 계급, 더 나가, 자본논리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오늘날도 변함없거니와, 이 영화에서 그러한 것처럼, 그런 비인간적인 논리가 정의라느니 법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강제되고 있잖아요. 심지어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도 말이죠.

웨스턴 장르와 미국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들려주고 있지만, 역시 문제는 이 빌어먹을 상영시간이겠지요. 219분(어제 본 건 오리지널 컷이었어요.)이라니, 다른 영화 2편의 길이는 족히 되잖아요. 제가 본 가장 긴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로 222분이었고,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도 201분이었습니다. 수십만의 병사가 칼부림하는 영화도 아니고, 고작(?) 2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총질해대는 영화인데도 3시간 40분이라니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그 3시간 40분을 뭔가로 충실히 채워놓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가령 영화 도입부 30분 정도 계속되는 하버드대 졸업식 씬은, 고작 ‘세상은 질서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니까 급작스런 변화는 필요없다’는 반어적인 연설을 위해 할당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지요. 나름의 스펙터클함도 있지만, 마지막 전쟁씬만으로도 일반적인 영화 전체 러닝타임의 반 정도는 될 길이구요. 보고 있으면 ‘편집 좀!’이라는 말을 내뱉고 싶어 답답해질 지경이에요.

그렇다고 이 영화가 초지일관 자아도취에 시간낭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등장하는 이주민들의 댄스 장면이라든가, 엘라와 James Averill(“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분)의 한가로운 피크닉 장면 같은 것들은 평화로운 마을, 다가오는 위험 같은 설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좀 더 빠른 템포로 진행될 수도 있었겠지만, 4시간 육박 영화니까, 라는 식으로 느긋한 자세로 본다면 꽤 서정적인 장면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살육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이주민들의 절망과 절규를 잡아낸 그 긴 씨퀀스는 『천국의 문』 의 긴 상영시간 덕분에 더 정서적 파급력을 갖는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작비가 4천만 달러 정도 들었다던데(이 영화는 198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과연 그 정도 들었겠구나, 싶은 장면들이 종종 나옵니다. 제임스가 마을에 되돌아 왔을 때 맞닥뜨리는 이주민의 행렬과 소란스런 역마을의 방대한 세트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엘라 역이 “이자벨 위뻬르”라고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나 오종의 『8 여인들』에 나온 여배우지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우시지만, 홀랑 벗고 깡총깡총 뛰어다니시는 27살의 위뻬르 여사는 무척 귀여우신데다가 졸라게 섹시하십니다. 지금의 삐쩍고른 체형과는 달리 상당한 글래머라 보는 내내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워큰”의 카리스마는 80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더군요. 벽지랍시고 신문지를 발라놓고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무척 귀여웠습니다만… 주인공 중 한 명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유명한 컨트리 가수기도 하죠. 저는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나 『가르시아』(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같은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엔 『블레이드』 시리즈에서 “웨슬리 스나입스”의 조력자 할아버지로 출연했었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연기한 제임스 역은 처음엔 “존 웨인”이 물랑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 재수없는 마쵸가 안하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 “제프 브리지스”도 조역으로 나오구요. 그리고… “미키 루크”가 아주 작은 비중의 배역으로 출연합니다. 이 영화 찍을 당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을 거에요. 『보디 히트』나 『럼블 피쉬』 찍기 전이었거든요. 뽀얀 피부에 촉촉한 눈망울의 24살 적 미키 루크를 보고 있자니 無常함에 가슴이 아려오는군요.

“이자벨 위뻬르”, 화는 나지만 전혀 미워할 수도 없는, 곤란하게 매력적인 캐릭터 엘라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제임스와 챔피온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할 뿐만 아니라, 창녀로서도 열심히 일하고 계시죠. 제임스가 엘라가 챔피온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내자, I never cheated on you. I always made Nate(챔피온) pay.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 저걸 그냥 확…

이주민 마을의 댄스 파티나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건물의 벽에 ‘Heaven’s Gate’라고 적혀있더군요. 그래서 제목이 Heaven’s Gate일까요…?

과거사진상규명위 발굴1팀장
꼭도(http://cocteau.pe.kr)

이제는 말해도 된다: 『 Major League』

2004년 10월 26일
과거사 청산위원회

1. 취지: 과거는 그 미추(美醜)에 따라 과도하게 미화되거나 묵살되어서는 아니 되며 현재의 시점에서 객관화 가능한 잣대를 통해 엄격히 평가하여 잘한 것과 잘못된 것을 가리고 교훈을 남겨 이를 희망찬 미래를 건설하는 토대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영화진흥공화국”의 과거사에 대한 기본정신에 입각하여 설립 된 본 “과거사 청산위원회”는 계속되는 활동을 통해 우리 공화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과거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조사기관: 제 1 조사분과(위원장: 이규훈)

3. 제 1 차 조사대상: 영화 『Major League』 (1989)


4. 조사배경
미국의 프로야구 리그(MLB)에는 New York Yankees라는 팀이 있다. 이 팀을 대하는 MLB 팬의 태도는 딱 두 가지다. 열광하거나, 증오하거나. 열광하는 입장에서는 New York Yankees가 승리를 위해서는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며 경기에 들어가서는 화려한 플레이를 통해 언제나 이기는 야구를 펼친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지만, 반면에 증오하는 입장에서는 그 구단이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또한 승리를 돈으로 사려고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구단은 실력 있는 선수를 일단 엄청난 액수의 돈으로 사들여서 당장의 승리를 위해 투입하고 대부분 원하는 바를 이루긴 하지만, 좋은 재능의 신인을 발굴하고 꾸준히 키워 미래를 기대하기 보다는 다른 구단에서 검증을 거쳐 전성기를 맞아 Free Agent의 자격으로 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을 커다란 액수의 돈과 우승 가능성으로 밀어 붙여 싹 쓸어 간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 “과거사 청산위원회”에서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지만 그 운영방식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 구단의 사례에 착안하여, 영화시장에도 이처럼 내용과 완성도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는 우선 잘 나가는 배우들을 동원하여 흥행성적을 높이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 치중하는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가능성 있는 (그리고 값도 싼 …^^) 배우들을 기용하여 당해 영화도 살리고 배우의 재능도 길러 미래의 스타로 키워내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기특한 영화도 있음을 상기시키고 그러한 사례를 전파하여 향후 영화생산 및 소비에 있어서 우수한 Case Model로 삼고자 하는 바이다.

5. 조사대상에 대한 약술(略述)

가.감독: “David S. Ward”

나.개봉연도: 1989년

다.Genre: 전형적인 Hollywood 스포츠 코미디 영화

라.Plot: 리그에서 꼴찌를 시켜 보다 더 큰 시장이 있는 곳으로 본거지를 옮기려는 구단주의 음모에 따라 지지리 실력도 없고 몸도 부실한 선수들로만 구성되는 프로야구팀 Cleveland Indians의 업치락 뒤치락 성공기

6. 조사대상의 교훈 및 성공 사례

가.교훈: 크게 히트 친 원작소설을 사들이거나 몸 값 비싼 배우들을 기용하지 않더라도, 이야기 소재에 대한 애정 어린 연출로 각 장면을 만들어내고 적재적소에 중견급 및 신인배우들을 기용, 적절히 배치한다면 얼마든지 영화로서의 성공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둘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줌.

나. 성공 사례
1) 영화 팬 및 야구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스포츠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각종 스포츠 및 영화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Best Sports Movies” 순위 상위권에 항상 거론 됨 (예: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ESPN, “The 25 Best Sports Movies”) http://sports.espn.go.com/espn/espn25/story?page=listranker/bestmoviesresult
2) 가능성 있는 신인급 연기자를 대거 기용하여, 추후 정상급 연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가) “Wesley Snipes”의 사례
아래 사진에서 뒷줄 맨 오른 쪽의 선수가 보이는가.
그의 이름은 Willie Mays Hayes. 실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중견수 Willie Mays의 이름과 비슷하고 포지션도 같은 중견수 이지만 야구 실력에 있어서 닮은 거라곤 빠른 발뿐. 타격, 수비, 주루플레이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이 친구. 그래서인지 속편인 『Major League 2』 (1994) 에서는 아예 기용되지 조차 않는다. (참고로 뒷줄 맨 왼쪽의 선수는 두 번째 사례로 소개할 지명타자 “Pedro Cerrano” 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사생활이 문란하여 이후 두 번에 걸쳐 공공연하게 불륜을 저지르는데 …
그 첫 번째는 『Jungle Fever』 (1991, 감독: “Spike Lee”)에서 자기의 비서(“Annabella Sciorra” 분)와 일을 저지르더니, 6년 후에는 『One Night Stand』 (1997, 감독: Mike Figgis)에서는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웬 여자(“Nastassja Kinski” 분)와 하룻밤 불장난을 벌이고야 만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흡혈귀로 변신하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못해서 흡혈귀 세계에서 조차 왕따를 당하게 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이 친구는 『Blade』 (1998, 감독: “David S. Goyer”) 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가 먼저 인간 세계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예 흡혈귀 사냥꾼으로 직업을 바꿔 앙갚음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도는 아직도 계속되어 현재 3편까지 제작 중에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래 보였는지 어쨌는지 미국의 정보부서에서 이 친구를 자주 고용하곤 했는데, 『Murder at 1600』 (1997)에서는 경찰로, 『U.S. Marshals』 (1998)에는 특수부대원으로 쓰더니 『The Art of War』 (2000, 감독: “Christian Duguay”) 를 통해 마침내 UN 대표부에서 까지 이 친구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나) “Dennis Haysbert”의 사례
아래의 사진을 보자.

불 같은 강속구의 Rick “Wild Thing” Vaughn (“Charlie Sheen” 분)과 한때 잘 나갔지만 퇴물이 되고야 만 포수 Jake Taylor (“Tom Berenger” 분) 사이에 있는 인물. 아니, “Rene Russo” 말고. 그래 조금 검게 나온 선수 말이다.

쿠바 출신의 부두교도인 Pedro Cerrano. 힘만 디립따 좋지 변화구에는 손도 못 대는 알 사람은 다 아는 공갈포의 대명사. 게다가 살아있는 닭을 Voodoo 신에게 바쳐야 타격이 잘 된다는 우직(?)하기 이를 데가 없는 지명타자이다. 하지만 이 친구 뜻하지 않은 상황에 터뜨리는 결정적 한 방이 있어서 그런지 『Major League 2』 (1994) 와 『Major League 3: Back to the Minors』 (1998) 에 연속적으로 기용이 된다.

그런데 이 친구,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는지 어쨌는지, 아니면 정보기관에서 활약하는 전 동료 Willie Mays Hayes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야구는 뒷전인 채 『Absolute Power』 (1997), 『The Thirteenth Floor』 (1999), 『Random Hearts』 (1999) 등에서 연이어 정보요원 및 형사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야구 이외의 직업에서도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한 이 친구, 잠시 농구계 쪽도 기웃거려 보지만 결국에는 낙향하여 고향의 전원 속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살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그렇게 고향에 자리를 잡고 자상하고 인간미 넘치는 정원사 Raymond로 살아가지만, 그러한 생활도 잠시, 지가 무슨 변강쇠나 떡쇠도 아니고 그만 옆집 마님(?)과의 플라토니꾸한 러브가 동네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고향을 등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의 이런 순애보는 『Far From Heaven』 (2002, 감독: “Raymond Deagan”)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 영화는 인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건을 겪으면서 이 친구는 순수한 사랑마저도 허락 하지 못하는 암담한 사회현실을 온 몸으로 직접 부딪혀 타파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졌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 어쨌든 얼마 후 이 친구는 그야말로 엄청난 변신과 출세를 이뤄내고야 마는데 …

현재도 진행 중인 TV 시리즈『24』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David Palmer로 거듭 났을 뿐만 아니라 전에 없이 위기에 처한 미국 사회를 구해내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 하고 있는 중이다.


변변찮은 야구단에서 직구 전용 지명타자로 시작하여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고, 우연히 찾아 온 사랑마저 아픈 상처와 세상에 대한 한탄으로 얼룩지고야 말았던 이 친구. 하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이 다시 일어나 마침내는 대통령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된 이 친구. 그의 이름은 “Dennis Haysbert”.

다) “Rene Russo”의 사례
“Dennis Haysbert”를 소개하기 위해 제시한 사진 속에는 그녀의 모습도 눈에 띈다. 17 세 때부터 패션모델을 시작하여 그야말로 초슈퍼울트라급 모델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그녀는 나이가 30이 넘자 홀연히 모델계를 떠나더니만 어느 날 돌연 『Major League』에 합류를 결심하게 된다.


허나 첫 출발에서 그녀는 한때 날렸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멕시칸리그를 전전하는 퇴물포수 Jake Taylor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고, 그 사내와 결코 순탄하지 않은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이러한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인지 그녀는 이후로도 운동선수들과의 만남을 계속하게 되는데, 『Freejack』(1992, 감독: “Geoff Murphy”) 에서는 자동차 레이서와 사랑에 빠지고 『Tin Cup』 (1996, 감독: “Ron Shelton”)에서는 역시 물이 확 간 퇴물 골퍼를 만나 정분이 나고야 마는 기구한 인연을 이어가고야 만다.


이러한 운동선수들의 만남이 계속되는 것에 진저리가 났는지 그녀는 『Ransom』 (1996, 감독: Ron Howard)에서 전직 형사 출신일지도 모르는 백만장자 (“Mel Gibson” 분)와 결혼을 하지만 행복한 생활도 잠시, 부패한 경찰의 음모에 의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때의 경험이 너무나 충격이었는지, 그녀는 마침내 스스로 그러한 부조리를 개혁해 보겠다는 원대한 포부 하에 “경찰개혁”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Lethal Weapon 3』 (1992), 『Lethal Weapon 4』 (1998, 감독: “Richard Donner”)에서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치고야 만다.


하지만 그러한 현장 생활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책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마스터 키튼”. 이 책을 통해 보험 수사관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된 그녀.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고야 마는 그녀인지라 즉시 새로운 직업의 세계로 뛰어들고야 마는데 ……

그렇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그녀는 마침내 『The Thomas Crown Affair』 (1999, 감독: “John McTiernan”)를 통해 모네의 회화작품 도난사건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 받는 지위에 까지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에서도 또 사랑에 눈이 멀게 되고 기어이 그 도난범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저지르고야 만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이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는 그녀의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

그 소문 속에서도 그녀는 첫 사랑의 기억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했는지, 『Two for the Money』 (2005 예정, 감독: “D. J. Caruso”)에서 역시 전직 미식축구 선수와 인연을 만들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7. 결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비싸디 비싼 배우, 사람을 깜딱 놀라게 만드는 반전, 화려하다 못해 눈알이 다 아파지려고 하는 그래픽, 있는 것 없는 것 다 쏟아 부어서 만들어내는 스뻮따끄르한 장면들 만이 성공하는 영화의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의 조사대상인 『Major League』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전술한 요소 중 어느 것 하나와도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가치, 즉 재미와 감동을 관객에게 훌륭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의 상업적 성공도 거두는 사례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 분명 영화는 Entertainment의 주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Entertainment를 구성하는 여타의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문화로서 기능하여야 한다. 영화가 문화일 때 그 안에는 문화 생산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야 하고 관객을 단순히 돈다발이 아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일한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스며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영화가 그러한 요소들을 획득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내용과 형식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를 필요는 없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어떤 극적 장치를 통해 관객과 대화할 것인지, 어떤 등장인물이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여 그 기준으로 풀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코미디든, 엽기공포물이든, 슬랩스틱이든 간에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훌륭히 문화영역에서 영화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상업적 보상도 있게 될 것이다.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쭉쭉빵빵 남 녀 배우, 할리우드표와 구분이 안 가는 액션장면,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홍보전략 등은 영화를 상품으로 팔기 위한 요소들이 될 수 있을지언정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고려사항과 조건이 될 수는 없으며, 판매전략 이전에 우선 영화가 가지는 가치에 대한 고려와 관객을 대화대상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하면서 제 1차 과거사 청산위원회 조사보고를 마친다. 끝.

과거사 청산위원회 위원장
이규훈(kyuhoonl@bc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