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0호]최동훈, <타짜>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0월 13일

영화에 원작이 있는 경우, 비슷한 캐릭터와 줄거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매체가 완전히 다름에도 부당하게 비교를 당하기 마련이다. 원작을 이미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보는 영화 또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허영만 선생과 그 팬들에게 대단히 실례될지 모르겠지만, 원작을 보지 않고서 접한 영화 <타짜>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졌기에 굳이 아쉬움 때문에 원작을 찾게 만들지는 않더라. 이후에 본 원작 [타짜]는, 솔직히 말해 – 그리고 당연할 수 있지만 – 지루했다. 원작을 보면서 느낀 것은, 영화 <타짜>의 각색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리고 최동훈이 얼마나 훌륭한 감독인지이다.

내레이터로서 정마담을 전면 배치하고, 아귀 및 짝귀와 고니의 인연을 더욱 단단하게 얽은 영화 <타짜>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원작을 영화라는 매체에 알맞게 성공적으로 스토리를 압축하고 캐릭터를 통폐합하며 촘촘하게 밀도를 더한다. 원작에서 내레이션으로 서술된 부분을 단 한 컷의 그림으로 설명하면서, 원작에 없던 내레이션은 충분히 영화적으로 삽입돼 들어간다. 게다가 원작의 5, 60년대 배경이 IMF 직전인 90년대 중반으로 바뀐 것은 탁월하고 영리하다. 젊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현대적 감각을 주면서도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으며, 하루에 몇 천만원씩 도박에 꼴아박는 호구의 존재가 설득력있게 제시된다. 나라 전체가 ‘한탕’을 간절히 바라며 흥청망청하면서도 희망보다는 절망과 불안감이 깔린 채 침몰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는 위기의 그 시대 분위기가 영화의 스토리와 정확히 맞아떨어 들어간다.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이후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아버지상’을 획득한 백윤식은 이 영화에서도 예의 정신적 지주로서, 이미 도인의 경지에 이른 ‘아버지’이자 ‘멘토’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니를 받아들이고 트레이닝시키는 장면은 영락없이 루크 스카이워커를 훈련시키는 요다, 혹은 영웅신화의 멘토이자 현자의 모습이다. 우아하고 품위 넘치며 올곧은. 원작과 달리 그는 ‘딴 돈의 반만 가져가는’ 관행을 처음부터 원칙으로 내세우며 고니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배 위에서의 절대승부에서 고니가 ‘난 딴 돈의 반만 가져가!’라 내뱉는 것은 곧 평경장의 원수를 갚는 것뿐 아니라 그의 원칙을 계승함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적자의 정통성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그저 욕심많은 촌뜨기 아줌마였던 정마담은 김혜수에 의해 완벽하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훨씬 도도하고 우아하며, 훨씬 명민하고 위험한 그녀는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 <범죄의 재구성>에서 한 단계 진화한 팜므파탈을 보여준다. 주목받기 좋아하며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고수하지만 절대로 천박해 보이지 않는 그녀, 여자조차 반하게 만드는 그녀, 영화 초반에 주인공을 객관화시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고니에 대한 내레이션을 도맡은 그녀는 말투와 몸짓, 심지어 누드에서조차 압도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타는 돈 앞에서 패닉이 되었다가 급기야 고니에게 총질을 하는, ‘무너질 대로 무너지는’ 정마담의 씬은 고니가 열차에 매달려있는 장면과 함께 클래이맥스라 할 만한데, 아무래도 ‘폭발’이 약한 느낌이다.

조승우는… 더 할 말이 있을까? 가늘고 곱상하긴 해도 성깔있게 생긴 얼굴과 굵은 목소리에서 애초에 임권택이 거친 “싸나이” 캐릭터를 맡긴 바 있고, 이 영화에서도 악과 깡과 빠른 머리회전을 자랑하는 고니, 한편으로 여려 보이나 그것이 오히려 독한 칼날로 전화하곤 하는 고니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유해진의 고광렬도 아주 좋다. 아이고참, 뿔테안경에 “양복쟁이” 고광렬이 어찌나 그리 잘 어울리는지. 이밖에 짝귀, 아귀도 아주 좋다.

아우, 이 장면에서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각색자 최동훈’이다. 영화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감독들도 종종 원작의 아우라에 눌려 줄거리를 쫓아가기에만도 허덕대거나, 어쩔 수 없는 ‘구멍’들을 노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아쉬움에 원작을 찾아읽게 만든다. (심지어 피터 잭슨도 그랬다.) 하지만 최동훈의 각색엔 그런 게 없다. 고니가 도박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부터 (원작과 달리) 외국으로 튀어 잘 살아가고 있는 에필로그까지, 마치 원작을 통째로 씹어먹어 잘 소화시킨 뒤 같은 재료로 형태도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요리를 내놓은 느낌? 캐릭터도 줄거리도 원작에 충실하다고 느껴지지만, 원작과 꼼꼼이 비교해보면 사실 많은 부분이 바뀌거나 새로 창조되어 최동훈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분명 살아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은 원작의 원래 재료와 기분좋은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 원작에서의 도포 두른 고광렬과 영화에서의 양복쟁이 고광렬, 자기 과시욕이 보이는 평경장과 도인에 다다른 평경장은 완전히 다르면서도 같다. 원작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힘으로 덮치는 고니, 다소 순박하지만 말주변은 딱히 좋아보이지 않는 고니와 영화에서 능글거리고 주먹과 작두질 이전에 적절한 템포와 박자의 ‘말발’을 자랑하는 고니 역시 완전히 다르면서도 같다. 정마담의 캐릭터와 평경장의 죽음이 완전히 새로 쓰여지면서, 영화는 원작보다 더한 긴장과 스릴을 덧입는다. 영화적 반전 장치로서 훌륭한 이 설정은 이 영화에서 자랑할 만한 ‘열차 대롱대롱, 돈 화라락’ 씬과 연결되면서 “인생무상”의 정조까지 획득한다. 그럼에도 서투른 스토리텔러들이 집어넣기 좋아하는 고루한 권선징악의 설교를 피해가며 해피엔딩으로 맺기까지. 아아아아 씨발 너무 좋다.

‘감독 최동훈’의 능력은 ‘각색 최동훈’의 능력을 한껏 돋보이게 해준다. 그는 훌륭한 각색자이자 감독이다. 연출의 전체적인 톤도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연기 연출 역시 뛰어나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적인 화면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솜씨가 아주 훌륭하다. (데뷔작으로서는 훌륭하긴 했지만) <범죄의 재구성> 때 뭔가 아슬아슬하게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몇 단계는 한번에 진화해버린 듯. (최동훈에겐 ‘서퍼모어 컴플렉스’란 말이 아예 해당사항 없음, 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예의 그 ‘교본’ 같은 구성, 그리고 영화 곳곳에 퍼져있던 에너지가 마침내 한곳으로 응집돼 강력하게 폭발하는 게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는 애초에 원작의 굵은 뼈대를 그대로 가져가기 위한 욕심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혜수가 총질씬에서 에너지가 좀 부족했으며, ‘열차 대롱대롱’씬에서 인생무상의 비애와 허무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기에는 조승우가 (그 나이 또래에선 매우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젊다는 느낌, 그리고 감독 역시, 그 정서를 보다 깊이있게 전달하기엔 아직은 젊구나, 하는 느낌. <타짜> 속편 얘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한 15년 후쯤에 최동훈 감독이 다시, 속편을 찍었으면 한다. 아마도 그때엔, 최동훈 식의 탄탄한 스토리 구조가 조금은 느슨해진 대신 그 깊이가 확보될 거 같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이반 라이트먼” –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8월 31일

찌질아, 찌질아, 왜 사니? 쯧쯧 -_-;

지대 찌질남의 공식 저질 찌질 기록기
수퍼 히어로물은 기본적으로 남자들의 성장담이다. 특별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힘과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갈등과 시련의 시기를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게 되고 마침내 (어쩌면 또다른 자신이기도 할) 악과 대면하여 싸우고 공동체를 구해낸다.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름다운 여성과의 사랑, 혹은 그 여성 그 자체이다. “샘 레이미” 감독이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러한 밑바탕의 구조는, 인간=남자(Man!)의 공식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자연스러운 소산물이었다. 이 성장담은 소녀들이 감정이입을 하려면 기표의 외관을 훨씬 더 탈색시켜야 하는 의도적 노력이 뒤따른다. 이러한 성장담에 대해 보통 여성관객은 관찰자이고 제3자이다.

이제, 자아실현 따위의 고상한 이유가 아닌, 생계를 위해서 임노동을 하는 게 당연한 한편 사회적으로도 주체적인 자리에 서서 남자들과 경쟁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역할모델, 혹은 자신들의 고난과 고통과 슬픔을 대신 표현해낼 은유의 대리자를 새로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90년대 <쉬즈올댓>을 필두로 헐리웃에서 쏟아져 나온 틴에이지 소녀물은 적극적이고 잠재력이 높은 새로운 시장 – 대중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표상을 확립하고 발견하며, 적극적이고 꽤 파워풀한 소비자계층으로 떠오른 소녀층 – 을 발견하고 집중공략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임시 성과물이었다. 이제, 이 소녀들은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 숱한 연애를 경험하고 직업여성(그 직업이 꼭 고소득의 전문직은 아니더라도)으로서 생계전선에서 분투한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 중, 성인여성이 아닌 ‘소녀성’을 간직한 영화들(이 영화들을 ‘소녀영화’라 부르기로 하자)의 계보가 90년대에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했던 반면 2000년대 들어 2, 30대 직장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G걸의 캐릭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G걸은 뉴욕의 각종 사건사고들을 해결하는 수퍼히어로지만 G걸의 일상인 캐릭터인 제니 존슨(“우마 써먼”)은 성인의 외모와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성장이 멈춘 어린 소녀다. 우연히 새로운 힘을 갖게 되고 그 힘에 도취된 채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를 한없이 미뤄온. 영화 초반 맷 선더스(“루크 윌슨”)와의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여기서 유발되는 웃음들은, G걸의 누가봐도 완벽한 성인 여성이라는 외적 조건과 성장이 멈춘 채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는 내적상태의 모순과 괴리에서 나온다. 고져스한 외모를 갖고 있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툰, 중, 고등학교 때의 왕따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녀는 진지한 관계를 갖고 그 관계를 차분히 진행해 나가는 데에 더없이 서투르다.

또 한편으로, 남성들의 시선에 철저히 포획당했던 원더우먼을 제외하고는 줄곧 남성들이 차지해온 ‘주인공’ 수퍼히어로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는 예컨대 배트맨을 보조하는 배트걸이나, 주인공처럼 다뤄지긴 해도 실제로는 “미스터 판타스틱의 여자친구”인 인비저블 걸(『판타스틱 포』)과 다르다. 패셔너블한 의상을 입은 G걸의 활약을 묘사하는 방식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매우 경쾌하고 발랄하며 꽤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수퍼히어로물을 상당히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당당한 매력을 지닌 그녀의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 앞에서 예컨대 수퍼맨은 한없이 촌스럽고 배트맨은 덧없는 후까시를 겹겹이 둘러입은 듯 보이며 스파이더맨은 궁상맞게 느껴질 정도다.

매일 사람들을 구하며 사람들의 연호를 받지만 자신이 도움을 받은 적은 없으며 언제나 외로웠던 제니 존슨 – G걸이 연애에 빠져 허부적대는 모습 그 자체는 사랑스럽다. 그 상대가 그녀를 감당할 능력도 주제도 못 되는 수준 이하의 찌질남이라는 사실 자체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과 관점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My Super Ex-Girlfriend”이라는 원제의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결국 G걸이 아니라 G걸을 찬 맷 선더스라는 것이고, G걸은 역시나 맷 선더스의 시점에서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다루어진다는 것. 그렇기에 그녀가 아무리 수퍼히어로라 한들, 그녀의 서툰 인간관계는 ‘또라이’로 딱 잘라 비하되며, 결국 맷 선더스가 “그 대단한 여자를 따먹은 게 바로 나”라는 찌질맞은 훈장을 자랑하는 게 이 영화의 정체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이 그저 천하의 G걸을 따먹었다고 자랑스럽게 낄낄대면서 다른 여자에게 진정한 사랑 운운해대는 이 찌질한 남자가 심지어 ‘평범한 소심인 남자’로 포장되는 과정은 정말, 역겹다. 이 영화, 거기다 모든 남자들의 은밀한 판타지 – 잘난 두 여자가 나 한 사람을 두고 싸워줬으면 – 를 꽤나 뻔뻔한데다 저질스럽게 보여주는데, 어이가 없어서 기절할 지경. 덕분에 해너(애너 패리스)라는 캐릭터까지 바보 멍청이가 돼버리지 않는가.

애초에 이 영화는 G걸이라는 어마어마한 잠재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놓고도 그 캐릭터를 깎아내리기에 바쁜 이 영화, 결국은 G걸이라는 ‘캐릭터’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채 그저 그런 여자의 사랑을 받는 걸 평생의 자랑으로 내놓는 찌질한 남자의 찌질한 행동짓거리를 늘어놓으면서 G걸을 바보만들기에 바쁘다. 만약 이 영화가 끝까지 밀어부치는 G걸의 통쾌한 복수담이었다면, 혹은 수퍼히어로서의 성장담 – 그것이 꼭 여타의 수퍼히어로물처럼 진지하고 폼잡는 방식으로 구현될 필요도 없다,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스스로 자기존엄성을 되찾는 것은 그저 찌질남을 차고 괜찮은 다른 남자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유가 될 것이다 – 을 다뤘다면, 다수의 여성 관객들과 일부 남성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컬트영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금발이 너무해>가 성공적으로 해낸 것처럼. 하지만 여성비하적 전제를 가진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는 여성의 어떤 미숙함을 낄낄대며 극단적으로 과장해 비하하기 바쁘다. 인터넷에서 마치 그런 여성에 대해 ‘그래봤자 걔도 별 거 아니다, 내가 따먹은 애다”라고 소문을 내며 그녀를 깎아내리고 낄낄대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찌질댐. 이 영화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긴, “이반 라이트만”이 노린 것은 어쩌면 오늘날 인터넷에 거대다수로 자리잡고 있는 이 찌질세력들의 절대 지지를 받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s1. 그러나 “우마 써먼”은 여전히 눈부시다. 『킬빌』의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듯한 “우마 써먼”의 최근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에서의 우마 써먼이 지독하게 아깝다고는 해도 정작 “우마 써먼” 본인에겐 손해보는 부분은 없을 듯 하다.

ps2. 꽃 들고 온 맷에게 제니의 표정이 금방 바뀌는 걸 보고, 제니의 애정결핍 때문에 J.는 참 짠하고 슬펐다 한다. 난 미사일을 처리하고 온 그녀가 맷과 해너를 보고 짓는 표정이 슬펐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우익청년 윤성호> – 그의 독립영화들

산업인력관리공단
2005년 11월 14일

영상자료원에서 주관하는 ‘해피투게더 독립영화’를 관람하러 갔다.

“윤성호” 감독은 2001년 <삼천포 가는 길>이라는 독립영화를 디지털 비디오로 시작하여,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 <산만한 제국>,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우익 청년 윤성호>, 그의 첫 35mm 필름 독립영화 <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까지 한 큐에 감동을 이끌어내는, 천재성을 의심케 만들 정도의 ‘힘’으로 이야기를 토해낸다.

산만한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시종일관 시선을 놓치지 못하게 숨겨두거나 대놓고 고자질 해둔 ‘꺼리’들은 구성을 갈아엎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가장 명료하면서도 인상깊고 내 ‘입맛’에 들어맞는 <우익청년 윤성호>를 보게되면 그 해학은 점입가경을 달린다. 서강대 전 총장인 ‘빠콩’아저씨의 이너뷰 장면을 잘라내

‘노동신문을 매일 봅니다’

라는 한마디에 ‘빠콩’을 ‘빨갱이’로 만들어버리는 솜씨야 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늘 보아오던 함수의 ‘역’관계가 성립하는.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아우성들 속에서 명쾌하게 깨닫는 구라의 향연이 얼마나 어처구니의 상실이요, 아이러니의 연속인지 되묻는다


제작 작품 중 4편의 상영을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에 그의 ‘산만한’ 언변을 들을 기회도 있었다. 천재성에 기인해서인지 ‘토해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 두서없이 정렬되진 않았지만 그의 영화처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료하게 던져냈다. 독립영화를 통해 자신이 달성하고 싶은 이야기, 35mm 필름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고 밥벌이가 되든 안되는 영화에 몰입하고자 하는 의식, 독립영화감독 선배들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안될지 불투명한 시장. 다시금 내비치는 용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명쾌한 의지가 돋보이는 목소리에서, 20대 후반의 젊은 감독이 뿜어내는 열기는 분명 뛰어난 무엇인가가 느껴질 수 밖에 없으리라.

그의 영화를 보고난 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다.

“마이클 무어”가 공화당을 지지한다는 아이를 붙잡고 ‘임신 중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이는 폭력이나 그 외의 ‘항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임신되었을 경우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마이클은 그 아이에게

“그렇다면 너는 민주당 지지자여야지, 공화당은 임신중절 무조건 반대야”

라며 논리적인 반박을 통해 공화당을 까대는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헌데 “윤성호” 감독의 영화들은 우리나라의 자칭 ‘우익’, 본실 ‘극우’ 세력들을 조롱하고, 까대는 모습은 들어있지만 ‘논리적인 반박’부분은 없다.

이는 내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한데, 더 이상 논리적인 반박이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후에는 ‘노력’하지 않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합리적인 선택인지 적절한 타협인지, 아니면 더 나은 생산성을 향해 진일보하는 모습인지 스스로의 고찰도 꽤나 여러갈래로 나온다.

마찬가지로, “윤성호” 감독은 조롱의 아이러니 속에서 ‘깨닫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ABC부터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도 있듯이, 양주동 박사의 얘기처럼 백번 읽으면 뜻이 통한다고, 질리도록 보다보면 보는 사람이 스스로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말이다.


어쨋든 상영회가 끝나고 호프집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자신의 지향하는 바를 시나브로 퍼뜨리는 그의 모습은 그가 누차 강조한, ‘조금씩 넓혀나가는’ 탄탄한 걸음의 행보로 보여 즐거웠다.

<우익청년 윤성호>가 진정한 ‘우익’으로 인정받을 그날을 기리며.
화이팅.

산업인력관리공단 감사2부 부장
함장(http://harmj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