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대왕”, 죽음을 부르는 사회의 자화상

 

 

 

 

동급생에게 집단폭행 당한, 인천의 한 중학생 정신과 치료 2013.06.17

인천의 한 중학생이 학교에서 동급생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3일 인천청라중학교 1학년 강모(13)군이 체육시간에 남의 옷을 밟았다는 이유로 운동장에서 동급생 5명에게 집단폭행 당했다. 강 군은 땅에 떨어진 옷을 실수로 밟은 점을 사과했지만 이들은 다음날 더 많은 학생들을 교실로 데려와 강 군을 때리는 등 모두 20여차례에 걸쳐 폭행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가해 학생들은 여학생들까지 데려와 강 군이 맞는 모습을 구경하도록 하는가 하면 음식쓰레기를 강제로 입에 넣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0대 5명이 여중생 집단폭행…경찰 조사 2013.05.16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또래 여중생을 집단 폭행한 혐의로 16살 전 모 군과 16살 김 모 양 등 10대 5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습니다.  전 군 등은 지난 11일 오후 6시쯤 의정부동의 한 골목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중학교 2학년 14살 김모양을 집단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행인이 112에 신고한 것을 눈치채고 달아났다가 출동한 경찰관들의 수색 끝에 붙잡혔습니다. 조사 결과 이들 중 일부는 이틀 전인 9일에도 포천의 한 다리 밑에서 김 양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김 양을 강제추행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는 주장이 학교 자체조사에서 제기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입니다. 김 양은 코뼈 등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작년부터 올해까지 제 머릿 속을 지배하는 단어는 <전체주의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지메의 구조”라는 책을 보면서 깜짝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전체주의 사회화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구조를 <중간 집단 전체주의 사회>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전쟁과 같은 특수한  때 일반적 시민법이 통하지 않는 소규모 집단에게 자치를 하도록 내버려두면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하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영화로는 “파리 대왕”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시민법이 통하지 않는 자치적 사회의 특징은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없는 환경>이 제일 큰 문제라고 하더군요. 마치 우리나라의 학교나 군대처럼 말이죠.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억지로 친근해질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보스-추종자-평민-노예 그룹으로 나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왕따를 괴롭히는 “그들만의 축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내부의 법이나 규칙도 외부와 달라서 학교는 학교법이 군대는 군법이 일반 헌법이나 시민법보다 우위에 있게 됩니다. 금 “정봉주의 전국구” 듣다가 경악한 게 군대 내의 사법체계에서는 사단장이 판결까지도 바꿀 수 있답니다.

 

 

 

 

 

대개 폭력이나 괴롭힘의 양상은 아래와 같더군요.

1. 분노하는 신 (폭력으로 약자를 눌러버람) – 무자비한 폭행

2. 주인 노예 (언제든 굽신거리며 주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

   – 심부름, 셔틀, 무엇이든 하도록 시키는 짓

3. 장난치는 신(치약먹이기, 바퀴벌레먹이기, 이상한 짓 시키기)

   – 윤일병에게 한 짓들, 학교에서 왕따에게 이상한 짓 시키기등

 

결국 이 비정상적인 환경을 제거하지 않거나,  일반 시민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이상 학교와 군대에서는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내면까지 변화시킨다는 얘기였고, 그 사회 바깥으로 나오면 자기가 거기에서 왜 그런 짓을 하고 살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주부터 이번주까지 내내 군 자살 사건, 사망사건이 끊이지를 않는걸 보면 그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2013년 6월 17일의 기사를 보면 자신의 지위를 알리기 위해 다른 반 애들에게 구경까지 시키면서 저렇게 하고 있었답니다.

전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내부 규칙이 시민법의 규칙보다 우위에 있는 집단-그게 바로 관피아겠죠. 정당 내부의 규칙 역시 여기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전 안철수나 김한길도 이 관점에서보면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즉 자기들의 규칙이 그 어떤 일반적 시민사회의 규칙보다 우선인 사회 말이죠.

 

 

 

 

 

저런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부모의 말도 안되는 규칙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많이 반복됩니다. 그 안에서는 평등한 시민사회의 규칙보다는 얼핏 보스와 노예같은 상태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다시 철저히 그런 사회로 편입되고, 군대에 가면 한번 더,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도 또 한번 더, 그 자신이 가정을 가지면 또 그렇게 하겠지요.

 

이러한 때에 싸워야 할 적은 뭘까요?

유교적 고정관념일까요? 아니면 폐쇄적인 가족주의의 병폐?

해답을 찾고 있지만 답이 잘 나오질 않네요 …

 

 

 


영진공 신샘

 

 

 

 

 

 

 

 

 

 

 

 

 

 

 

 

 

 

 

 

 

 

 

 

 


 

“가오갤”, 유쾌한 찌질이들이 은하계를 수호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라는 은하수호대는 이름이 너무 길어 그냥 가오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들의 활약을 보면서 어쩌면 시저도 못한 세계정복을 디즈니는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오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옹골차게 유머를 주입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심지어 그 진지할 수밖에 없어야 할 클라이막스의 위기상황에서도 이들은 유쾌한 유머로 위기를 헤쳐나갑니다.

 

그런점에선 정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위대한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캐릭터들의 특색이 황홀할 정도로 가지각색인 데다가 그 종류도 애정이 깊이 들만큼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레미제라블”과 “겨울왕국”을 강하게 이끌어줌으로써 흥행에 성공시킨 장점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가지고 있는데요.

 

그건 바로 음악입니다. 80년대의 히트곡들을 모아서 절묘하고 흥겹게 배치시켜 놓아서

가뜩이나 유머에 즐거워하던 관객들의 흥을 더욱더 돋게 만듭니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이 장점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안이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마블 코믹스가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고 있으며 발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는 전혀 창의적인 발상이 없습니다. 스토리는 너무 밋밋하고 별 볼일 없으며 세계관의 확장으로만 이용됩니다. 그래서 화려한 영상은 단지 스토리의 부실함을 감추기 위한 겉치레로 전락해 버렸고 영상미마저 색이 바라게 됩니다. 

 

 

 

 

 

게다가 캐릭터들의 특색은 있지만 그 깊이가 너무 얕습니다. “어벤저스”는 그 영화를 위해 이전부터 캐릭터 고유의 영화를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그래도 그다지 깊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어벤져스 팀에 깊이를 부여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전혀 아닙니다.

 

새로운 영웅들에게 새로운 활약을 위한 목적의식을 심어주기엔 그들은 너무 어중이떠중이들입니다. 우정타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습구요. 결국,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연이은 흥행으로 인한 마블의 오만함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락블록버스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4D로 봤는데 영화 도중 얼굴에 물을 (기분나쁠정도로) 쏟아붓는 장면이 3개 정도가 있고 우주선의 움직임을 표현하느라 쓸데없이 움직여대는 의자에, 액션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격하게 움직여서 안경추스르느라 오히려 액션이 보이지 않았던 점은 정말 최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저 여름을 잠시 잊게 할만한 오락영화 입니다. “윈터 솔져”를 기대하였지만 이 영화는 그저 유머감각이 좋아진 “트랜스포머”일 뿐이었습니다.

 

하나 더 아쉬웠던 점은 영화가 청소년 관람가라 그런지 등장인물의 몇몇 재미있을 드립을 직역해서 번역하여서 좀 더 찰지게 전달되지 못한 점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유머감각은 정말 최고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영화 중 최고의 드립

-지금 뭐하는 거지?

-댄스배틀!

 

 

영진공 샤인제이드

 

 

 

 

 

 

 

 

 

 

 

 

 

 

 

 

영화 “명량”과 “군도”에 대한 단상


 


 



 


 


영화 “명량”은 역사 매니아도 아니고 밀덕후도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봐도 고증의 문제가 툭툭 걸립니다. 게다가 메이크업을 잔뜩 한 조총 스나이퍼 따위를 쓸 데 없이 만들어 넣는 등 영화의 매무새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충무공이 장계를 쓰는 장면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글을 쓰는 이순신의 상반신 샷으로 시작하면서 다음은 글을 쓰는 손을 클로즈업하고 그 다음은 손까지 포함한 전체 샷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체샷으로 넘어올 때 꼿꼿했던 충무공의 허리가 숙여져 있습니다. 첫 샷에서는 손이 안 잡히니 글은 쓰는 척만 하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을 테고 마지막 샷에서는 손까지 잡히니 신경써서 글을 써야 하는 터라 허리를 숙였겠지요. 허나 샷의 연결이 껄끄러울 정도로 튑니다.

그리고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에서 충무공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올려 베는 모습을 정면에서 잡고 다음 샷에서 카메라는 적장의 등 뒤에 가 있는데, 이순신의 칼이 왼쪽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오른쪽 아래에 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뭔가 깔끔하지 않다는 것을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다 느끼게 되고 이 정도면 NG컷이라 할 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컷들이 꽤나 많아서 매무새가 조악합니다. 아무리 쌈마이 헐리웃 영화라고 하더라도 이런 컷들은 보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배우 최민식의 존재입니다. 자신없는 감독은 최민식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듯 보입니다. 최민식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최민식 연기가 정말 잘 나올 때는 극 안 캐릭터의 개성이 매우 강할 때입니다. “파이란”에서의 강재,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장경철처럼 말입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취화선 동행취재기를 씨네21에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최민식과의 인터뷰를 인용하겠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습니까.

=근본적인 차이는 없죠. 그러면 큰일나게요. (웃음) 다만 지금 초상화냐, 풍경화냐, 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전 굵은 붓으로 죽죽 그리고 싶은데, 그럴 때 감독님이 아니다, 굵은 붓으로 그리다가 가는 붓으로 바꿔라, 하시면 내가 성이 안 차는 부분이 생깁니다. (웃음) 자꾸만 내것이 나오니까 괴롭죠. 내 것을 버리고 감독님 것을 취해야 하는데, 나를 죽여야 하는데, 자꾸만 내 분석대로, 내 방식대로 몸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목표를 가는 거니까요.

다음은 임권택 감독 인터뷰 중에서 발췌입니다.

=장승업이 김병문 집에 담 넘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최민식씨가 눈물을 흘려서 NG를 내셨다면서요.

– 그것도 기품과 관련될지도 몰라요. 물론 울 수도 있는 거요. 그러나 사소한 감정을 드러내는 쪽으로 장승업이를 찍어오지 않았다고. 거기서 느닷없이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안에는 깊은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놈인데, 여기 와서 울고 있으면 그게 맞겠냐고. 삐끗삐끗 감정이 튀어나오면 수렁을 밟는 거죠.


 



최민식은 이런 배우입니다. 영화는 여러 파트가 한 데 어우러져야 하는 장르인데 그는 연기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캐릭터만 살아나고 나머지는 죽어버린다는 것이죠. 저는 이 절정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최민식은 과거처럼 자신의 연기로만 영화를 다 뒤덮진 않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에서는 많이 절제하는 연기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민식은 최민식이죠. “명량”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은 모든 대사, 모든 표정에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아들과 밥을 먹으면서 하는 간단한 대사 “같이 먹으니까 좋구나” 이 아홉 글자에도 목소리의 톤과 인토네이션을 써서 감정을 묻혀내죠. 그로써 최민식의 이순신은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나는 힘들어, 나는 괴로워, 나는 어려워 ……

그런데 과연 이순신이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마구 쏟아내는 인물이었을까요?
“난중일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병신년 이월 열 나흘 – 밤에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은 대낮처럼 밝고 물결 위에 비친 빛은 비단결 같은데, 혼자서 수루 위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수선하여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을미년 칠월 초 하루 – 혼자 수루에 기대어서 나라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았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으니 이 나라가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어지러워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갑오년 이월 열 엿새 –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 밀계 초본을 가지고 왔다. 임실, 무장, 영암, 낙안의 수령을 파면하고 순천 부사는 탐관오리의 으뜸으로 거론하고 기타 담양, 진원, 나주목, 장성 창평 등의 수령은 나쁜 짓을 덮어두고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갈 데까지 갔다. 나랏일이 이 모양이나 나라가 평정될 리 없다.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다.


 



물론 아들이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격정적으로 비통함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외로울 때에도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고, 뒤척거리고, 천장만 올려다보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이런 이순신의 모습과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모습은 격차가 큽니다. 아마 연출자가 이를 알고 최민식의 연기를 더 죽이려 해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둘 사이의 “짬밥” 차이가 얼만데 ……


 
오히려 류승룡이 이순신을 맡고 최민식이 구르지마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외에도 소위 과도한 ‘국뽕’이나 텔레파시와 치마 시그널 등 무리한 설정이 있는데도 “명량”은 흥행가도를 힘차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리얼리즘을 정말 사랑하는 한국의 관객들, 그리고 문단 독자들의 성원 덕분에 말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는 게 리얼리즘이라 한다면 한국의 대부분 흥행 영화는 모두 리얼리즘이 베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국열차”가 좀 예외랄까? 실은 “괴물”도 리얼리즘이지요.

우리 관객이나 독자들이 왜 리얼리즘을 좋아하는지는 다른 차원의 분석이 있어야겠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군도”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매무새, 그러니깐 만들어 놓은 모양은 “군도”가 “명량”보다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군도는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묘사했고, 이는 관객에게 매우 불편한 접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현실의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이며 그 과거의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 별로 다를 게 없죠. 그런데 그 현실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촬영하고 음악을 깔고 편집을 해 놓으니 관객은 혼란스럽지요.

김구 선생이 절정 무술을 사용하며 일본인을 때려 잡는데 거기다가 무협 스타일 자막으로 “흑심패룡장의 고수 백범 김구”라고 깔고, 고속 촬영에다 웨스턴 음악 넣고 영화 “300”처럼 편집하면서 재해석하면 관객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김구 선생이 몸 담았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이처럼 재해석하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허나 “군도”가 보여주는  현실도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백성은 현재와 흡사한 채권추심도 당합니다.


 
영화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묘사는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누리끼리한 서부 영화 스타일 색보정, 음악과 무협 영화와 같은 캐릭터 구축과 샘 페킨파 같은 급격한 줌인 줌아웃 등을 써대니 당연히 언발란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군도”의 흥행이 주춤하는 것은 여타의 요인이 많겠지만 제 생각에는 “명량”과는 다르게 리얼리즘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진공 철구


 


 


 


 


 


 


 


 


 


 


 


 


 


 


 


 


 


 


 


 


 


 


 


 

“님포매니악”, 성애의 외피에 암시와 비유를 담은 영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애호가 성애자와 함께 “님포매니악” 볼륨 1 마지막 상영날 볼륨 1만 보고 2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감상하였는데 … 딱 재미난 부분에서 볼륨 1이 끝나더군요! 마치 임성한 작가의 끊기 신공을 보는 듯한 신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동시에 머리를 움켜쥐고 악! 하는 짧은 비명을 토한 뒤 우리는 홀린듯이 볼륨 2를 예매했고 사이좋게 커피 하나씩 빨면서 도합 5시간동안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친구가 너무 겁을 줘서 지루할까봐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기덕같은 감독이라면서, 서사적인걸 별로 안좋아하면 엄청 지루할거라고 겁을 얼마나 주던지 …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생각 이상으로 설명을 잘 해주는 아주 친절한 영화더군요.

 


그리고 김기덕과 비슷한 점을 저는 거의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서사적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할지 모르겠지만 … 소설로 치면 문체가 아예 다른건데, 그 둘을 비슷하다고 하거나 비교를 하거나 하는건 서로에게 실례가 아닐까 하여 친구놈 뒤통수 때려주려다 참았습니다. 아무튼 볼륨 1, 2를 통틀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몇가지 꼽아보겠습니다.

 


 


1. 어린 조와 친구 B, 유아의 성

 


저는 예전부터 유아~청소년의 성욕/ 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5~6살, 조숙한 아이들은 4~5살때부터 자위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게 단순히 문지르는 방식이든 압박 자위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그들이 성기를 통해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걸 배운다는 거죠. 친구들과의 놀이나 자신의 몸을 스스로 만져보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보통 유아의 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려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숫제 부정하는 반응을 보이죠. 왜냐하면 불편하니까요, 아이는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예쁘게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벌써부터 발랑 까진(?) 더러운 것부터 배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아이들이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쾌감에 집착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아동의 수준에 적합한 올바른 성교육을 조금 일찍 실시해 성욕의 통제법이나 발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게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영화에서 짧게나마 유아의 성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충격적인 동시에 느끼한 치즈 피자먹다가 사이다마신 기분이 들더군요. 대단히 신선했습니다.


 


 


2. 위선과 본능의 첨예한 대립

침대에 앉아서 밀크티를 홀짝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조에게 샐리그먼은 때때로


상관없는 사족같은 이야기들을 하죠. 그것도 매우 공돌이스러운 이야기들요, 조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3 + 5 라는 숫자를 듣고 피보나치 수열 이야기를 아주 거창하게 한다던가, K의 이야기에서 매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등산 로프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그리고 동방교회 서방교회,클래식 음악, 성화 등 다양한 장르의 지식을 뽐내는 굉장히 현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조의 ‘니그로’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보이는 등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과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인물이 마지막에 조에게 한 행동은 인간의 이성은 별로 쓸모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조는 샐리그먼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위선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죠. 그리고 샐리그먼에게 조목조목 반박해주고 싶지만 피곤하다며 관둬버리고요. 그 대신 단 한발의 총성으로 모든 것을 명쾌하게 해결해버리죠.

 


 



조가 샐리그먼을 살해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본능을 상징하는 조가 위선과 이성을 대변하는 샐리그먼을 처단함으로써 인간의 이성과 위선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야한 영화라는 기대감을 품고 영화관을 찾은 뭇 남성들에게 … ‘짜샤, 이건 그딴 영화가 아니니까 냉수나 먹고 속이나 차려라!’ 하는 감독의 일침으로도 볼 수가 있겠죠.


 


사실 저 혼자 보러 갔다면 첫번째 의미로만 받아들였겠습니다만 같이 관람했던 남자사람 왈, ‘샐리그먼이 조를 겁탈하려다 사살당하는 장면에서 사실 엄청 뜨끔하고 부끄러웠다’고 하더군요. 자기의 조그마한 흑심이 다 까발려진 느낌이라나요.

 





3. 부녀관계와 에로티시즘




조는 아버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산책, 물푸레 나무를 바라보던 추억, 영혼의 나무 이야기..마치 그 둘은 소울 메이트같은 느낌을 주죠. 어떻게보면 마치 연인같이 풀밭에 같이 누워 하늘을 보는 등 아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머니와의 관계는 무미건조하다못해 차갑습니다. 조가 어머니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어머니는 계속 등을 돌리고 트럼프를 하는 옆얼굴 정도만 나올 뿐, 카메라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하는 장면은 안나오더군요. 심지어 어머니더러 COLD BITCH라고 하는 부분에서 조금 섬뜩할 정도로 냉담한 모녀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조와 아버지의 관계는 사실 전형적인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볼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특히 아버지가 악몽에서 깨어나 조에게 매달리는 장면에서 흐르던 미묘한 성적 긴장감은 저만 느낀게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4. 삼각관계 




P와 조의 관계는 시작부터 불안했던 관계였습니다. 애초에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었으니까요. 조는 P에게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추억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면서 P와 천천히 교감을 하게되죠. P 또한 의지할 곳 없던 자신에게 다가와준 조에게 신뢰를 보내면서 제법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는 아버지와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있었음에도 아버지를 끝까지 아버지로 대했죠. 하지만 P는 부모같은 존재였던 조와 육체 관계를 맺습니다. 저는 이게 조와 P의 차이를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롬과의 삼각 관계는 조의 가족들과 오버랩되는 감정구도를 형성하죠.


 



친밀한 딸과 아버지, 그리고 냉담한 어머니 VS 조의 연인이자 딸인 P와 옛 연인 제롬, 그리고 조의 구도. P가 제롬의 집으로 수금을 하러 다니는 동안 느닷없이 트럼프를 시작하는 조의 모습을 보면 제롬과 P, 조의 삼각관계와 조의 가족들이 대치되는 구도로 느껴집니다.


 



조 = p

아버지 = 제롬

어머니 = 조


 

조금 오버스럽게 해석하자면 조가 트럼프를 시작하는 장면은 조가 어머니를 딸로서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표현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조와 어머니의 관계 묘사가 너무 생략되어 있어서 확실하게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러닝타임이 각 두시간 반쯤 되는 아주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화면에서 쏟아지는 여러가지 암시와 함축된 비유들을 읽어내기만도 버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볼륨 1은 대부분의 극장에서 이미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기회가 되면 꼭 두 편을 연달아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1만 보신다면 저처럼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지르실 거고, 2편만 보신다면 전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를 못하실 거니까요.

 


 



 


 


 


영진공 내개인듯내개아닌내개같은너


 


 


 


 


 


 


 


 


 


 


 


 


 


 


 


 


 


 


 


 


 


 

“아메리칸 허슬”, 출연진 만큼이나 음악이 빵빵한 영화


 


 


출연진의 빠방함으로 이미 판단할 수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도 안 되는 영화는 안 되죠. 그런 면에서 <아메리칸 허슬>은 좋은 예상이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난 영화입니다. 미국서는 2013년 개봉이지만, 한국서는 2014년 개봉이니, 개인적으로 올해의 영화 후보 0순위로 올려놓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에이미 아담스를 그냥 이쁜 여배우로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최고의 여배우로 자신있게 꼽게 되었구요, 크리스천 베일의 변신과 연기도 환상이고, 정서 불안 역할에는 이제 여배우로 제니퍼 로렌스를 능가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집니다. 정서불안한 끝 간 데 없는 섹시함, 그리고 액션 히로인까지 … 안젤리나 졸리가 브란젤리카로 걍 셀러브리티가 되어 버린 지금 그 자리를 차근차근 다 차지하는 느낌입니다. 좀 측은하기도 한 또라이 역할의 끝장판입니다.


 


 


 



 


 


 


브래들리 쿠퍼, 제레미 레너, 깜짝 등장 로버트 드니로, 그 밖의 모든 배우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환상적인 연기를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197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1970년대의 정서가 진득하게 느껴지는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즐거움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거의 1970년대 미국 주류 팝계 총결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류 팝, 록, 디스코 장르를 널뛰며 환상적인 노래들이 영화 내내 흘러나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노래들이 그냥 좋아서 나온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나 느낌, 복선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음악감독은 대니 앨프먼입니다만, 대니 앨프먼이 각 등장인물들에게 부여한 테마보다 당대의 히트곡을 통해 생각하게 만드는 게 더 많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장면, 장면 삽입된 노래를 알면 두 배는 더 재밌는 작품이 됩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의 내용이나 약간의 스토리까지 알면 세 배는 더 재밌어 질 겁니다. 그래서 영화의 스포일러를 최소화 하면서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OST로 발매된 CD에는 15곡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데니 앨프먼이 작곡한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어빙의 테마 곡도 있습니다. 즉 현재 발매된 OST에는 영화 크레딧에 명기된 29곡 중에 절반 정도밖에 확인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의미를 알면 훨씬 더 영화의 재미가 확대될 곡들도 꽤 있습니다. 29곡 모두를 훑어볼 순 없고, 주요한 곡들만 살펴보겠습니다. OST 수록곡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곡도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노래들이 아주 진득합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을 엮어주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Jeep’s Blues”는 영화의 오프닝, 만남 씬, 크레딧에 모두 등장하죠. 두 남녀가 듀크 엘링턴에 극찬을 보내는데, 사실 그것도 되게 웃기는 겁니다. 듀크 엘링턴은 한국에서도 재즈 팬이라면 다 아실테고, 미국서는 스티비 원더가 “Sir Duke”로 경의를 표할만큼 1930년대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티스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재즈 아티스트 입니다.


 



 



 


거기에 1974년 사망과 함께 미국사회에서 재조명을 받았기에 1978년에 이미 사기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두 남녀가 만난 시점 즈음에 이 둘이 듀크의 이름을 들어보고 음반 한 두 장 아는 건 당연할 겁니다.


 


근데, amazing을 외치며, 어떻게 듀크는 이런 사운드를!를 외쳐대는 둘의 대화 자체가 두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걸 증명합니다. 이 곡이 분명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작품이지만 실은 오케스트라의 핵심 멤버였던 색소포니스트 자니 호지스의 곡이기 때문이죠. 제목부터 자니 호지스의 별명이고, 듀크와 자니의 공동 작곡이며, 자니의 플레이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베일이 충격의 올챙이 배를 보여준 후, 더 큰 쓰나미를 머리로 보여주시는 인트로에 흐르는 음악은 영국밴드 America의 첫 히트곡 “A Horse with No Name”. 이름 없는, 심지어 이름을 남길 수 없는, 그러나 열심히 달리는 말의 이미지는 영화 내내 반복되는 것이죠. 거기에 크리스천 베일, 에이미 아담스, 브래들리 쿠퍼가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며 자막이 흐르는 장면에는 OST에 수록되지 않은 스틸리 댄의 “Dirty Work”가 등장합니다. 제목과 가사 내용도 그렇고, 심지어 이 앨범이 수록된 스틸리 댄의 데뷔 음반 제목은 『Can’t Buy a Thrill』입니다. 앨범 제목에 곡명까지 영화 도입부에 영화가 하고픈 얘기가 다 드러나죠.


 


이 영화에는 ELO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Electric Light Orchestra … 한때 한국의 FM에서도 이들의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B급 냄새를 풍겼죠. 핑크 플로이드, 퀸, YES, 탐 패티 등의 밴드가 개척한 새로운 사운드의 세계를 쉬운 멜로디로 우려먹는 듯한 느낌이었달까요.


 


신념 있는 정치인의 현실적 한계를 표현하는 제레미 레너의 시장 역할 소개 장면에 흐르는 곡이 있습니다. OST에는 수록되지 않았는데요. Frank Sinatra의 “The Coffee Song”입니다. 그런데, 이 곡의 부제가 “They’ve Got An Awful Lot of Coffee In Brazil”입니다. 브라질은 아니지만 이 시장이 자신의 신념과 정치적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도박도 역시 미국 밖 무엇이죠.


 


돈 많은 아랍 수장이 등장하는 파티 장면에서 저는 빵 떠질 수 밖에 없었는데요, Jefferson Airplane이 부른 사이키델릭 록의 명곡인 “White Rabbit”이 아랍어로 흘렀기 때문이지요. 최고의 킬러 출신 로버트 드 니로와 만난 힘 없는 하얀 토끼라니 … 거기에 아랍어라뇨. 물론 원작의 흰 토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 얘깁니다. 그러나 아랍어로 바꿨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그저 초특급 킬러 앞의 토끼만 알면 되죠. 물론 이 노래를 몰라도 그냥 아랍어로 된 긴장감 넘치는 곡이라고 넘겨도 되긴 합니다. 여튼, 레바논계 미국인 여가수 Mayssa Karaa에게 이 곡을 다시 부르게 한 건 거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크리스천 베일의 두 여인이 만났을 때 흐르는 비지스의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도 제목이 죽이죠. 비지스가 디스코의 제왕이 되기 전, 발라드 그룹으로 날리던 시절 곡이죠. 이 노래의 주인공인 에이미 아담스와 Paul McCartney & Wings의 “Live and Let Die”가 표상하는 제니퍼 로렌스의 대비가 환상이죠.


 


제니퍼 로렌스의 헤드 뱅잉이 돋보이는 이 “Live and Let Die”는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 해산 후, ‘존 레논 너만 마누라랑 음악 하는 줄 알아?’하면서 결성하신 윙즈의 노래죠.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의 수록곡이기도 하구요. 하드록/메탈 팬이라면 Guns & Roses의 버전으로도 유명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한 쪽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한 쪽은 죽거나 살거나 내꺼만 외치는 대비도 좋고, 두 곡 제목은 두 사람의 미래이기도 하죠. 스포일러가 될테니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2시간 20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푹 빠져서 본 영화였는데, 일부에선 한 방 없이 자잘한 얘기를 주욱 늘어놔서 잔재미만 있었다고 평하는 분도 있더군요. 역시 취향은 다양한 겁니다. OST도 그렇겠죠. 1970년대인데 이 노래를 빼먹었다면 무효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정도면 최고의 곡들을 모아놓은 데다가 영화의 내용과 호흡이 딱이니 더 바랄게 없는 수준입니다. 연초부터 그 자체로도 좋고, 추억과 더해지면 금상첨화로 즐기실 수 있는 영화 한 편 만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영진공 헤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