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파이어” (Foxfire), 영화 속 음악들의 의미


 

 


 


 



 


 


“폭스파이어” (2012, 원제: Foxfire, Confessions of a Girl Gang)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미국’의 시작점은 1950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전세계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패권국가가 된 것이죠. 이 시대는 동시에 냉전의 개막기이기도 했습니다.


 


냉전 … 다들 잘 알고 계시는 매카시즘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풍요와 매카시즘의 결합된 오묘하게 풍요로운 시절의 어린 아이들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울부짖는 어른들에게 별반 흥미가 없었죠. 그 때 등장하는 게 록큰롤입니다.


 


많은 록큰롤 가수들이 젊은이들의 추앙 속에 “매카시즘? 몰라! 씨바 오늘밤은 여자랑 밤새 술 마시고 춤추고 침대서 구를 거야”를 외치죠. 그러다가 된통 얻어맞기도 하고요.


 


잘 알려진 록큰롤 스타들은 10대 여성 강간(근데 나중에 둘이 결혼해요), 10대 성매수 등등으로 감방 신세를 지게되죠. Little Richard, Chuck Berry 가 그렇죠. 물론 Elvis는 재빨리 어른들 눈치 보면서 자원입대 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큰롤은 청년문화, 저항의 상징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그 이미지는 계속되고 있죠. 록이 저항의 아이콘이 된 건 다 이 때 형들의 공입니다. 엘비스가 한국에선 로큰롤 스타지만, 미국에서는 초기에 분명 록큰롤이지만, 로큰롤보다 결국 팝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형은 타협했기 때문이죠. 덕분에 누나팬들은 더 많아졌겠지만.


 


 



Timber Timbre, “Woman”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1950년대 여성이 얼마나 억압된 존재였는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런 틀을 깨고자 나선 아가씨들의 맹랑한 저항의 파국을 그린 이 영화에선 우리가 놓치고 있던 로큰롤의 남성성을 거칠게 들고 나옵니다. 물론 영화에 이런 내용이 직접 거론되진 않죠. 오히려 1950년대라는 시대상을 보여주기 위해 로큰롤이 쓰입니다. 그런데, 그게 영화의 내용과 겹쳐지면서 은근히 까입니다.


 


영화의 스코어는 Timber Timbre라는 프로젝트 팀이 맡았습니다. 캐나다의 포크 블루스 프로젝트죠. 중요한 장면들의 스코어와 스크롤과 함께 나오는 음울한, 새로 쓴 곡 같은데, 옛날노래 같은 “Where Are You Going, Where Have You Been?”이 이들의 노래에요. 관심있는 분들은 앨범도 몇 장 발매되어 있으니 유튜브 검색하시구요.


 


스코어보다 중요한 게 영화에 나오는 로큰롤과 그녀들이 부르는 노래에요. 시대에 맞게 라디오에선 로큰롤이 나옵니다. Johnny Carroll, Rosco Gordon, Angie & The Citations, Bobbie & Boobie 같은, 지금은 로큰롤의 원조로 불리는 형아들이죠.


 


스포주의: 보시려면 드랙하세요 –>  (중요한 장면이 있어요. 학교에서 백치로 통하는 리타가 껄렁한 남동생 놀러 가는데 따라갔다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죠.) 리타 엄마도 리타의 옷을 보고 여자 행실이 이게 뭐냐는 식으로 힐난하죠. 그런 시대예요. 그리고 그 껄렁한 망할 놈들이 소위 야전에서 틀어놓고 있는 게, 이 형아들 노래죠.


 


 



Carmen Miranda, “ Mamãe Eu Quero”



 


물론 소녀들의 파티에도 Johnny Carroll의 ‘Wild Wild Women’이 나오긴 합니다. 근데, 좀 놀라운 건 그녀들끼리 놀 때 스스로 부르는 노래에요. 물랑루즈나 1930, 40년대 여성성을 마구 자랑하는, 혹은 관능적인 모습을 자랑하는 노래죠. 그것도 철저하게 남성적인 시각에서 섹시한 노래들이란 거에요.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섹시하고 귀여운 여성으로 당시 남성들에게 만만한 여성상으로 비쳐졌던 카르멘 미란다 누님의 노래를 부르는거죠. 이런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리더 레즈(Legs)의 시선이 묘하죠. 웃고 있는데, 어딘가 씁쓸한.


 


결국 풍요의 시대는 남성과 마초의 시대였다는 거죠. 남자 어른은 매카시즘으로, 어린 남자놈들은 로큰롤로 섹스 얘기할 때, 여성들은 부르주아건 워킹 클래스건, 나이 많건 적건 여전히 거기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레즈는 밖으로 떠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봐요.


 


이 작품은 로랑 캉테 감독의 평타라고 하는데, 최소한 음악의 사용에 있어선 시니컬한 시선의 극치였다고 봅니다.


 


 


영진공 헤비죠


 


 


 


 


 


 


 


 


 


 


 


 


 


 


 


 


 


 


 


 


 


 


 


 


 


 


 


 


 


 


 


 


 


 


 

“설국열차”, 다 죽어야 사는 이상한 신세계

 

 


 


 



 


 


스포일러가 가득하니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은


즉시 뒷칸으로 돌아가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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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 대해서 좋다는 얘기, 싫다는 얘기, 뭔 소린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얘기 등을 다 듣고 난 뒤에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이 영화가 최근 몇 년새 본 영화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손꼽을만하다고 평가하게 되었다.


 


허나 이런 나의 평가는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감독이 심어놓은 철학에 대한 것이어서, 소위 영화적 완성도라든가 관객과의 소통방식이라든가의 요소에 있어서는 최고가 아니라 지적해도 그닥 반박할 생각은 없다.


 


영화가 좋다고는 평가를 하지만 사실 관객이 왜 이렇게 많이들 보러 오시는지는 아리송하다. 캐릭터가 뜬금없기도 하고 전개의 개연성이 없는 장면도 많고 무엇보다 결론에 대한 모호함이 관객 동원력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리송하든 대단하든 일단 “설국열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영화 보신 분들은 이해할 수 있는 ‘나르는 신발짝’


2008년 이라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에게,


이라크 출신 기자가 저항의 의미로 신발을 집어 던진 적이 있다.


 


 


 


1. 다 죽어야 산다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다 죽는다. 왜 그래야 했을까?


 


편의상 열차 안에서 업악받고 있는 꼬리칸 쪽을 좋은 편이라고 하고 체제를 장악하여 조정하는 쪽을 나쁜 편이라고 하자. 그런데 나중에 보면 어느 쪽에 있는 누가 좋고 누가 나쁜 건지 무척 헷갈리게 된다.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 거다.  결국 중간에 희생당한 사람들만 불쌍한 거다.


 


그리고 좋은 편이 죽어서 더 애틋하다거나 나쁜 편이 죽는다고 해서 통쾌하다거나 하질 않는다. 영웅도 없고 악당도 없다. 그냥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죽음에 대한 거창한 명분이나 맥락도 없이 뜸들이지도 않고 그냥 죽임을 당한다.


 


그간 많이 보아온 영화처럼 하자면 … 거대한 악의 세력과 이에 맞서는 정당하지만 나약한 이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무언가 짜릿한 죽음과 숭고한 죽음이 대비되면서 관객이 관람하기 편하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좋은 편이 승리하여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든지 아니면 처절하게 패배하면서 관객들에게 의문점과 고민을 안겨주든지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다 죽는다. 그리고 그게 옳다.


 


영웅이 되어야 할 등장인물이나 악당이 되어야 할 등장인물 모두 다 이미 체제 안에서 순이든 역이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주어진 에너지와 윤리 한계치를 다 지나치게 오버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전개에 적합한 긍정의 힘이 아니라 부정의 힘 퇴행의 힘으로 작용하게 될 뿐이다. 그러니 대단히 수고하셨지만 이제 그만 안녕~


 


 


 



미안하다 … 다 안녕이다 … 한 명만 빼고


 


 


 


커티스가 메이슨을 잡기 위해 에드가를 포기하는 장면을 보자. 아무리 반란의 목적을 위해 절실했다 하여도 커티스는 에드가를 포기해서는 안되는 거다. 그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란의 선봉장으로 다시 날 수 있었던 동기가 바로 에드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커티스는 대의를 위해 사람을 버린 죄를 저지른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라면, 커티스는 에드가를 구하러 달려 갔을 것이다. 그래도 에드가는 죽었을 것이고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가 오히려 커티스를 더 달구어내 결국엔 어떻게든 메이슨을 잡고 복수의 행보를 가열차게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저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모두들 커티스에게 전자를 요구할 것이다. 겉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메이슨을 잡기를 바랄 것이다. 후에 비인간적이지만 대의를 이끄는 냉철한 지도자로서 어쩔수 없었노라고 합리화 될 터이고.


 


후자의 커티스는 어떨까? 인간적이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결국엔 모두의 운명을 짊어져야 할 리더가 될 수는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일 뿐이다.


 


대의를 좇아 사람을 버린 커티스든, 대의를 저버리고 사람의 정을 좇은 커티스든 자신의 역할이 마무리되면 어떻게든 속죄를 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다 사라져야 새 세상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봉감독의 의도된 메시지인 건지 아니면 나의 오역으로 인한 자뻑인 건지는 중요치 않다. 메시지가 있든 없든 옳든 그르든 그걸 결정하는 건 매우 당연하게도 순전히 관객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자,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2. 플랜 같은 거 있기? 없기?


 


따지고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무모하고 생각 없는 인물은 주인공 커티스다.


 


그에게는 계획도 없고 정보도 없고 플랜B도 없다. 눈 앞에 보이는 한 가지 장애물 제거에만 온 신경을 쓸 뿐 애시당초 정체모를 소스가 보내주는 쪽지에 모든 상황판단을 의지하고, 물론 길리엄이 부추겼지만, 앞으로 가서 뭘 어떡해야 겠다는 목표도 없다.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일단 가는 거다. 가서 뭘해야 할지 생각하는 거다. 거기에는 여기보다 나은 무언가가 있을 테니 거기가서 … 아 잠깐만 … 그 다음엔 뭘 해야지? … 그래! 그거야! 윌포드를 처단하고 엔진을 점령하고 그리고 … 그리고 …


 


아예 플랜이 없다. 있다면 그저 길리엄을 지도자로 옹립한다는 거. 그외엔 어디에 가서 무엇을 얻고 그걸 어떻게 활용하고 그리고 일정 지점에서 협상을 시작할지 더 나갈지 판단하고 뭐 이런 거 없는 거다 … 오로지 진격이다 … 나를 따르라!


 


어 그런데 또 잠깐 … 진격을 계속 하려면 앞칸의 체제를 구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보안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안된다. 그러니 그에게 가자  우르르 … 이게 뭐하자는 건가 지금 ….


 


 


 



여기 송강호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계신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빼앗긴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해 나서서 싸우는 거는 너무도 당연하고 옳다. 그래서 반드시 해야 한다. 여기에는 아무 이견이 없다. 그런데 왜 계획을 안 세우냐고? 최소한의 준비는 왜 안 하는 건데, 분노만 쌓아 올릴뿐 … 뒤를 따르는 많은 이들 모두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거사를 하면서 왜 배수의 진으로 덤비는 건데, 안되면 다 죽자는 거야? 무슨 불사파야?


 


그래, 너무도 힘이 열세이고 전혀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계획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겠냐 하겠지. 그렇다면 단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도 되지 않을까. 여건의 변화를 유도해내면서 말이야. 한 칸 앞으로 가서 버티고 협상하고 또 한 칸 앞으로 더 나가서 협상하고 이렇게 말이다.


 


뭘 하더라도 사전에 최소한의 마스터플랜과 로드맵은 가지고 가야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 일단 일을 저질렀다 해도 언젠가는 이기고 성공하려면 그 시점에서 주어진 조건을 살펴보고 계획을 세우는 정도는 해야 한다 … 이보시오 커티스씨, 그러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문부터 따기 전에 일단 의견수렴과 대책강구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소 …


 


 


 


3. 세상 만사 다 단계가 있다.


 


윌포드와 길리엄에게는 계획이 있다.


 


균형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이 둘은 열차 내에 주기적으로 축적되는 역기능의 여분을 처리하기 위해 마스터 플랜을 세웠다. 간단하다.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74%에 맞춰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러려면 꼬리칸이 도발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도발을 용인할 수 있는 한도와 도발이 닿아서는 안되는 칸을 정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자, 이제 거사의 날이 왔다. 덤벼라.


감옥칸, OK … 식량배급칸, 괜찮아 … 윌포드는 이때까지는 실탄이 없는 경찰력으로 대처를 하며 밀리는 척한다.


 


최악의 경우에 용인할 수 있는 한도는 용수칸까지 이다. 그래 용케 여기까지 왔군 … 이제 윌포드는 새로운 폭력을 동원하여 애초의 목적을 실현하려 한다.


 


그건 바로 도끼와 칼을 든 용역깡패의 투입이다. 영혼이 없는 맹목적인 이 놈들은 눈마저 가리워져 있다. 무자비하게 살육을 시작한다. 길리엄과 윌포드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의외의 동력이 나타난다. 횃불이다! 꼬리칸에서부터 피워올려진 횃불의 엄청난 포스에 힘입어 커티스는 용수칸을 장악하고 거물급 인물을 포획하게 된다. 물론 커다란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이쯤에서 계획이 틀어지게 된 길리엄은 말린다. 커티스는 가려고 한다. 그러자 길리엄은 뒤로 빠진다. 윌포드를 만나거든 입도 열기 전에 즉시 없애달라고 당부하면서.


 


당황한 윌포드는 밀리기 시작한다. 화원, 과수원, 수족관, 스시집까지 내주고 마침내는 절대 내주지 말아야 할 칸까지 커티스의 진입을 허용하고 만다.


 


학교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체제의 우월성과 충성심을 주입하고 체제에 거역하면 보복당하고 체제에 순종하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가르쳐 체제를 온존케하는 핵심기능을 수행하는 학교인 것이다.


 


 


 



선생님, 이러시면 안됩니다른이름으로 저장 …


 


 


 


윌포드는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에 최후의 보루인 가장 강력한 무력을 투입한다. 군대다. 최후의 저지선을 지키기위해서 학교선생님까지 직접 손에 총을 들고 갈겨댄다.


 


결국 꼬리칸은 속절없이 밀리고 밀려 장악되고 선두는 고립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지도부는 내쳐 달릴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반란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엔진룸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윌포드가 애초에 꾀했던 ‘균형유지’는 실행이 되고 …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의외로 준비가 잘 되어있으며 단계적 플랜이 있다. 그들이 원래 똑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을 내주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다 우연히 실수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런 불의한 체제를 고쳐보겠다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다고 하여도 적어도 그들의 시나리오와 단계 설정 정도는 카피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 만사 다 단계가 있는 법인데 그걸 점프 한 방으로 다 뛰어 넘으려는게 과연 현명한 접근일까.


 


 


 


4.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순환고리를 …


 


꼬리칸은 버려진, 쓸모없는 잉여 공간이 아니다. 꼬리칸이 필요 없었으면 아예 만들지 않았거나 예전에 벌써 처치해 버렸을 터이다.


 


사실 이 열차 안에서 꼬리칸은 앞칸의 특권층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꼬리칸이 없으면 앞칸은 그들의 속성상 그 안에서 다시 지배와 피지배를 만들어 내게 돼있다. 그렇게 반복이 되면 결국의 그들의 앙상레짐은 자멸하고 말 것이고 그러기에 윌포드는 꼬리칸이 멸망방지장치라는 걸 잘 알고있다.


 


그리고 길리엄도 그걸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둘은 손을 잡게 되는 것이다. 윌포드도 길리엄도 다 이유가 있고 자기 변호가 가능하다.


 


꼬리칸은 원래 가진 게 없어서 무임승차한 사람들이거든, 그렇다면 쾌적한 열차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희생은 해야 하지 않겠어 … 그렇다고 아예 기회가 없지도 않잖아, 재능이 있으면 언제라도 얼마든지 앞칸으로 갈 수가 있어, 그런데 뭔 불만이 그리 많아, 쯧쯧쯧 …


 


앞칸은 가진게 많아서 그걸 다 쓰지도 못하고 죽어, 그런데 절대 남과 나누려고는 하지 않아 … 그게 인간의 본성인가봐, 우리 꼬리칸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 우리는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말고 필요한 만큼만 가지자고 … 저 더러운 권력따위 필요하지 않아 … 팔, 다리가 잘리더라도 숭고하고 의롭게 살면 거기가 나만의 낙원인 거지, 허허허 …


 


 


 



윌포드가 어린 시절 즐겨 읽으며 미래의 꿈을 키웠다는 만화


 


 


 


커티스여도 좋고 커티스가 아니여도 좋다. 엔진룸에 가서 윌포드를 처단하고 나서는 어차피 자신이 그의 자리를 대체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의롭고 자애로운 지도자가 되어보자. 권력을 다 나누어주고 자원을 다 공유하고 뭐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자.


 


그러면 모든 이들이 스스로 현명하게 나누고 절제하며 동참하여 열차를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게 될까.


 


주어진 공간, 한정된 자원에 비추어 분명히 열차는 관리가 필요하다. 집단지도부를 형성하면 그게 될까. 그렇다고해도 역기능의 여분은 어떻게든 조치가 필요하다. 도대체 누가 그걸 정하고 누가 조치되어져야 하나. 제비를 뽑을 수도 없고.


 


결국 다시 이전 체제가 돌아올 것이다. 거기에 속하는 사람은 바뀌겠지만 꼬리칸은 다시 생길 거고 특권층 또한 생겨날 것이다. 그러면 또 제2, 제3의 윌포드와 커티스, 그리고 길리엄이 나오고 반란이 일어나고 실패를 거듭하다 성공하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아, 이를 어째야 하나, 어차피 똑같아질 거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하나, 아니 그럴 순 없지, 좋은 방향으로 바꿔야지, 그렇다면 지도자라는 걸 아예 세우지 말자 … 어 그런데 Occupy Wall Street 도 그렇게 해보려다가 결국 권한을 가진 대표자가 없어서 흐지부지 된 거잖아 …  아 어쩌나 …


 


결국 영화는 아예 체제를 폭파시켜버린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파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인 건지 아니면 순전히 나의 지나친 상상력에 의한 오독인 건지는 중요치 않다. 그걸 결정하는 건 또 여전히 관객의 몫이니까.


 


 


 


5. 요나와 백곰


 


열차가 폭파되고나서 살아 남은 이는 요나와 꼬마다.


그리고 바깥 세상에는 놀랍게도 빙하기를 견딘 백곰이 살아 있다.


 


새로운 세상은,


옛 체제를 유지하는데 좋든 싫든 관여한 이들이나 체제의 단물을 빨며 타락에 빠졌던 이들이 만들어 나가면 안된다는 건 당연할 터. 쾌락에 빠져 아무 생각없이 살던 이들도 결국에는 자신의 신분이 변하게되는 체제의 변동에는 본능적으로 저항한다는 건 영화 말미에 표현이 되어 있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나마 순수함을 간직하고 나름 혜안의 단초를 가지고 있는 이와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이가 새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상징 정도로 해석해보면 어떨까싶다. 


 


 


 



지구온난화로 거주지인 빙산이 위협받고 있는 북극곰


 


 


 


북극곰의 경우는, 지구온난화가 거론될때마다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동물이다. 빙산이 녹아내려 살 곳을 잃어가는 백곰의 모습을 비추며 사태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일깨우는 영상이나 이미지가 아주 많다.


 


그래서 그 백곰은 빙하기가 풀리면서 생물이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내고 지구가 다시 북극곰이 살아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상징이라고 보여진다.


 


 


 


6. 마무리


 


간만에 뭐라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우리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영어로 진행이 돼서 그런지 송강호 특유의 맛깔나는 보이스톤과 대사처리가 묻히면서 존재감이 예전같지 않아서 아쉽다.


 


북미 버전은 20분 가량이 잘려 나간다 한다.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전개에서 날린다는데, 126분이 106분으로 준다니 한국에서 영화 본 우리가 원본을 보게 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셈이다.


 


 




 


 


영진공 이규훈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래서 인기인가보다.

 

 


 


 



 


 


 


정말 그런가보다. 그래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인기인가보다.


 


어릴 때 부터 악을 악을 써서 입시경쟁을 지나고 스펙경쟁을 지나왔는데, 취직이 안되서 엄마네 슈퍼에나 얹혀 살면서 외상값이나 적는게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보다. (5446특수부대의 훈련병들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은 우리 입시전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이 아닌가.) – 류환


 


어릴 때 부터 꿈을 가지고 살라해서 꿈을 갖고 멋스럽게 살라했는데, 오디션 하나 통과 안되는게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보다. (오디션의 서바이벌과 5446의 서바이벌은 비슷하지 않은가.) – 리해랑


 


 


 



 


 


 


어릴 때 전교 1등하고 공부 잘해봤자 내 현실은 결국 동네 바보 백수 건달인데, 그런 나를 멋있다고 전교 1등 하려고 아등바등 공부하며 올라오는 아랫세대가 너무 안쓰러운게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보다. – 리해진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비수를 꽂는게 기성세대인 것이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인기인가부다. – 서상구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선진조국에 태어난 줄 알았는데, 되는 일이 없어서, 여기가 대한민국이 아니고 북한인가 싶은게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이런 비유가 먹히나보다.


 


 


 



 


 


 


그런데 자꾸 투항하라고 ‘일자리에 대한 눈을 낮추라고’하는 기성세대가 미워서 끝까지 투항하지 못하는게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이라서 이런 비유가 먹히나보다.


 


수습 안되니까 끝에 다 죽어버리냐고 시나리오작가랑 감독을 욕했는데. 수습안되니까 젊은 애들 다 죽으라고 하는게 우리 현실인것 같아서 가심이 쫌 아프다.


 


 


영진공 라이


 


 


 


 


 


 


 


 


 


 


 


 


 


 


 


 


 


 


 


 


 


 


 


 


 


 


 


 


 


 


 


 


 


 


 


 

“위대한 개츠비”, 그 뒷 얘기가 궁금하신가요?

 

 


 


 


개츠비를 떠나보내고 닉은, 출생배경이 계급이 되어버린 암담한 사회현실과 그 현실에 굴복한 삶을 사는데 급급한 사람들에 대한 절망감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저 목적없이 방탕한 삶 속으로 빠져들고야 만다.


 


술과 도박 등에 빠져 이리저리 부유하던 닉은 급기야 정신병원에까지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의료진의 도움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였고 그 글들을 책으로 엮어 출판하려 하였다.


 


 


 



니콜라스 캐러웨이


 


 


그리고 그 글을 완성하던 날, 책 제목인 “Gatsby”에다가 “The Great”를 덧붙이던 닉은 불현듯,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암흑가와 결탁하여 부를 쌓은 개츠비였지만 그 역시 넌덜머리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둥바둥 몸부림치는 여느 젊은이와 다를 바 없었고, 그런 과정에서 손에 쥐어진 부를 이용해 주류에 인정받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자신이 그리도 오르고자 했던 기존 상류층에게 거절당하고 마침내 목숨까지 잃은 것이 아니었던가.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 기득권층과 그들에 의해 이용 당하면서도 그들을 두려워하며 오히려 비슷한 이들에게로 분노의 창끝을 돌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 이 책을 던져 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닉은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그는 개츠비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하였다. 닉이 복수를 위해 맨 처음 한 행동은 얼굴을 바꾸는 것이었다.


 


 


 



성형 후의 닉, 톰 리플리


 


 


이름도 톰 리플리로 바꾸고 신분증도 위조한 닉은, 뷰캐넌가 만큼이나 부유하고 집안이 서로 사이도 돈독한 그린리프가의 손자 필립을 복수의 대상으로 정하였다.


 


필립 그린리프는 전형적인 철부지 부잣집 도련님인지라 토마스, 데이지 그리고 개츠비와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생활양태를 깊숙이 체험하였던 닉, 아니 톰에게는 매우 쉬운 공략대상이었다.


 


그닥 오래지않은 기간에 말하자면 노리개감이 되어주는 친구관계를 형성하여 필립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동시에 신뢰를 얻어내며 기회를 노리던 닉은, 필립이 이태리로 떠난 시점에 드디어 행동을 개시하였다.


 


 



닉과 필립의 이야기는 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태리에 있던 필립과 합류한 톰은 계획한대로 필립을 유희와 환락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고, 스스로 그 나락으로 걸어들어간 필립은 톰이 그를 해꼬지해도 될만한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톰은 개츠비에게도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 요트에서 일을 치르고야 말았다. 바다 위에서 필립을 제거한 톰은 뭍으로 돌아와 그간 준비해왔던 바에 따라 자신이 필립인 것처럼 신분을 도용하고 필립의 애인인 마지를 설득하여 그린리프 가문의 돈을 마지에게로 증여한다는 필립의 유서까지 만들었다.


 


완벽해 보였던 톰의 계획은 거의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만 불의의 실수로 인해 그가 저지른 복수의 속살이 만천하에 드러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를 소환하였다.


 


허나 여기에서 주저앉을 닉이 아니었다. 닉은 그 시점에서 과감히 그린리프 가문과 마지와의 일은 다 포기하고 위조여권으로 이태리를 떴다.


 


 


 



이태리의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시 성형한 닉


 


 


닉이 선택한 다음 행선지는 바로 개츠비와의 추억이 어려있는 뉴욕이었다. 닉은 이름을 다시 이녹 존슨으로 바꾸었고 후에 애칭으로 넠키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태리를 떠나 뉴욕 바로 밑에 있는 뉴저지의 부두에 발을 내린 닉은, 특유의 감각과 뉴욕증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닥치는대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지역유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하며 마침내 뉴저지 지방재정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닉은 개츠비의 죽음 이후로 항상 간직하고있던 그의 후계자라는 마음 속 목소리에 따라 밀주사업에 진출하여 동부권 밀주사업의 가장 큰 공급자가 되었다.


 


마침내 돈과 명예를 한 손에 쥐게된 닉이었지만, 아직도 그의 목표는 만족되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개츠비와 자신을 절망시켰던 기득권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였다.


 


그래서 그는 밀주사업을 통해 바로 뉴욕의 마이어 윌샤임(일명: 아놀드 로스틴)을 정조준하였고, 정치에 손을 뻗어 자신이 후원한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는데 큰 공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닉의 말년인 너키 존슨 이야기는 절찬리에 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허나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고 모든 욕망은 찌꺼기를 남기듯, 복수를 위해 전진만을 거듭하던 닉도 결국엔 세월과 함께 사그라들고 말았다.


 


기득권과 그들의 욕망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쾌한 복수를 가하고자 했던 닉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기득권이 되었고, 그러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가 복수하고자 했던 그들의 방식을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타인의 욕망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쌓고 그 부를 더 불려야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굴레와 그 굴레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다른 이들에게 전가해야 자신이 살아남는 그 사슬에서 닉은 헤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숨가쁜 삶을 살아야만 하다가 결국 기득권 사이의 경쟁에서 도태된 그는, 이후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게된 요양원에서 예전에 자신이 썼다가 출간을 포기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던 “The Great Gatsby” 원고를 꺼내어 마지막 구절에 다음 문장을 덧붙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개츠비가 위대한 건 그가 더 이상의 욕망을 펼치기 전에


그의 삶이 강제로 멈추어졌기 때문이다.”


 


 


 


영진공 이규훈


 


 


 


 


 


 


 


 


 


 


 


 


 


 


 


 


 


 


 


 


 


 


 


 


 


 


 


 


 


 


 


 


 

“슈가맨을 찾아서”와 아이폰의 상관관계

 

 


 


 



 


 


 


시각효과 업계에 대한 무시와 홀대로 짜증나는 아카데미입니다만 이번 장편다큐부문 수상작인 “슈가맨을 찾아서“(Searching for Sugar Man)의 제작 뒷얘기는 재밌어서 지나칠수 없네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전설이 된 한 무명 미국인 뮤지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한 감독 말릭 벤쥬룰은 과거와 관련된 부분을 8mm 필름 카메라로 촬영 하기로 합니다. 다만 한가지 생각못했던것은 8mm 필름 프로덕션의 제작비용이 상상외로 높았다는 것이죠.


 


모든 촬영을 끝내기 전에 제작비를 다 써버린 말릭은 주머니속에 있던 아이폰으로 앱스토어에서 $2짜리 8mm 빈티지 카메라 앱을 구입합니다. 몇 장면만 더 찍으면 촬영을 마무리 할수 있었기에 급한대로 폰카메라를 사용하기로한 그는 올드카메라 효과를 내주는 앱이 예상외로 훌륭하게 8mm 필름 흉내를 내주는것에 놀라서 심지어 필름으로 촬영했던 몇 부분을 아이폰으로 재촬영하기도 합니다.


 


 


 




$2짜리 앱으로 촬영했다는 뒷얘기를 다룬 CNN머니 채널의 꼭지


 


 




진정한 필름 퀄리티를 감히 폰카메라 따위가 흉내나 낼수 있겠냐고 화를 내는 순수필름주의자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 다큐가 필요했던것은 깊이있는 필름색감 이런게 아닌 6,70년대의 낡은 필름느낌이었고 그 정도는 감히 폰카도 훌륭한 소프트웨어로 충분히 흉내가 가능했나 봅니다.

 


저도 8mm 효과 앱을 한두개 구입한적이 있지만 조금 가지고 놀다가 건드리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그 사이에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찍어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았군요.


 


슈가맨을 찾다가 골든맨을 손에 쥔 말릭에게 축하를!


(하긴 박찬욱 감독도 아이폰으로 찍은 단편으로 영화제에서 수상했었죠? 역시 실력있으면 툴 따위야… ^^; )


 


 




혹시 이 영화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 … “슈가맨을 찾아서” 예고편





 





[ 앱스토어의 필름효과앱들 ]


 

https://itunes.apple.com/us/app/8mm-vintage-camera/id406541444?mt=8

말릭이 사용했던 8mm 효과앱. $2이라서 구입하지는 않았습니다.


 



https://itunes.apple.com/us/app/isupr8/id413566476?mt=8

다운받은것중 가장 맘에 들었던 8mm 효과앱. $2인데 무료일때 받았죠 ㅎㅎ


 


https://itunes.apple.com/us/app/super-8/id435739918?mt=8



포스가 충만한 JJ 애이브럼스의 영화 수퍼8과 관련해서 나온 앱. $1


 


https://itunes.apple.com/us/app/wen-yi-lu-ying-ji/id516851401?mt=8

무료앱. 중국어앱이네요. 효과는 단순하고 아주 그럴듯하진 않네요.


 


https://itunes.apple.com/us/app/cinecam/id445584503?mt=8

역시 무료라는데 이것저것 in-app 구매가 많다는거보니 쓸만해지려면 돈을 써야할지도.


 


https://itunes.apple.com/us/app/movie-looks-hd/id409948907?mt=8

시각효과전문가가 만든 앱, 8mm 효과보다는 다양한 필름느낌으로 현상해줍니다.



영진공 플라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