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이후의 이순신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이유

<허핑턴 포스트> 한국판의 8월 6일 기사, “‘명량’ 이전의 이순신 영화들 : 이순신 때문에 전 재산을 투자한 배우는 누굴까?” 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순신 영화는

등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1977년 이후 제대로 된 이순신을 영화관에서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저위에 천군같은 뭐 이상한 코메디 영화들 말고 …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에는 거의 하늘이 내린 기적과 같은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이란 인물을 제대로 표현만 하면 대박이 난다.

김훈의 소설(2001년)이 “명량”의 원작인데 당시 얼마나 세상이 뜨거웠는가를 생각해 보면 왜 13년이나 지난 지금 굳이 “명량”이 제작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칼의 노래”를 원작으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아주 잘 만든 TV드라마가 이미 그 분위기를 다 가져가 버리기는 했다.

그러다보니 “명량”에서의 해전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해전이 더 좋다는 사람도 많다.

어찌됐든 이순신 영화를 제대로 만들면 대박이 난다는 것은 거의 잘 알려진 수학공식과 같다. 게다가 “칼의 노래”라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도 이미 존재하고 있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명량”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추측해 보자면 그 원인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

1. 제작비: 굉장히 많이 든다. 게다가 어설프게 돈쓰면 이건 죽도 밥도 안되기 때문에 엄청나게 써야 한다.

2. 배  우: 사실 이순신 장군 역할을 제대로 해 낼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김명민은 연기가 좋긴 하지만 너무 젊다.

3. 감  독: 마땅한 감독이 없었다. 사극을 잘 만든다는 감독이 있었지만 전쟁씬을 잘한다는 감독이 그동안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최종병기 활”이라는 조선식 액션영화가 나오고, 게다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나름의 역사관이 표출된다. “조선은 백성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내 누이는 내가 구한다.” …

“명량”은 이 세 가지 측면이 해결되었을뿐만 아니라 “칼의 노래”에서 글로 보았던 이순신 장군을 영화관의 큰화면으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게 만든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망은 실로 대단했다. “소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말과 함께 명량해전으로 사실상 나라를 구원한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던 열망이 13년 만에 터져 나온 것이다. 게다가 최민식의 이순신 역할이었으니.

이건 이미 천 만 관객이 들 조건을 갖추고 시작한 것이다. 개봉 시 CGV가 상영관을 많이 깔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 만으로 천 만이 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한국 역사에서 이순신은 거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인물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이 전쟁에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했던 짓은 절로 한숨 나고 몸둘바를 모를 정도이다.

사실상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조정은 정규군을 궤멸시키고 명나라 군대에게 나라를 되찾아 달라며 떼쓰는 것말고는 했거나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 와중에서 정규 군대가 왜를 물리친것은 이순신 장군의 전투 밖에는 없었다. 행주산성 전투는 실은 민초들이 힘겹게 싸워서 이긴 전공이고 말이다.

그러고도 조선은 과거의 잘못을 거울 삼아 발전은 커녕 극복조차 하지 못하고 다시 병자호란으로 또 한 방에 한양이 털리게 되고, 나중에는 전쟁조차 하지 않고 종이에 싸인하고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는 허망한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 역사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거대한 자존심이고 가슴 벅차게 만드는 인물이기에 우리는 비록 극장 안에서나마 그에게 열광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명량”에서 이순신 영화는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량 이후 정유재란은 너무나도 비참했고 왜와 강화를 맺으려고만 하는 명나라와

임진왜란이 난지 7년이 다 되어서도 제대로 된 육군도 없는 조선이 명나라 뒤에서 찌질하게 구는 모습을 봐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적의 전투선 450여 척을 깨부순 노량해전이라지만 거기에서 이순신장군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공 기적

영화 “명량”과 “군도”에 대한 단상


 


 



 


 


영화 “명량”은 역사 매니아도 아니고 밀덕후도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봐도 고증의 문제가 툭툭 걸립니다. 게다가 메이크업을 잔뜩 한 조총 스나이퍼 따위를 쓸 데 없이 만들어 넣는 등 영화의 매무새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충무공이 장계를 쓰는 장면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글을 쓰는 이순신의 상반신 샷으로 시작하면서 다음은 글을 쓰는 손을 클로즈업하고 그 다음은 손까지 포함한 전체 샷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체샷으로 넘어올 때 꼿꼿했던 충무공의 허리가 숙여져 있습니다. 첫 샷에서는 손이 안 잡히니 글은 쓰는 척만 하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을 테고 마지막 샷에서는 손까지 잡히니 신경써서 글을 써야 하는 터라 허리를 숙였겠지요. 허나 샷의 연결이 껄끄러울 정도로 튑니다.

그리고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에서 충무공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올려 베는 모습을 정면에서 잡고 다음 샷에서 카메라는 적장의 등 뒤에 가 있는데, 이순신의 칼이 왼쪽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오른쪽 아래에 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뭔가 깔끔하지 않다는 것을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다 느끼게 되고 이 정도면 NG컷이라 할 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컷들이 꽤나 많아서 매무새가 조악합니다. 아무리 쌈마이 헐리웃 영화라고 하더라도 이런 컷들은 보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배우 최민식의 존재입니다. 자신없는 감독은 최민식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듯 보입니다. 최민식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최민식 연기가 정말 잘 나올 때는 극 안 캐릭터의 개성이 매우 강할 때입니다. “파이란”에서의 강재,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장경철처럼 말입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취화선 동행취재기를 씨네21에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최민식과의 인터뷰를 인용하겠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습니까.

=근본적인 차이는 없죠. 그러면 큰일나게요. (웃음) 다만 지금 초상화냐, 풍경화냐, 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전 굵은 붓으로 죽죽 그리고 싶은데, 그럴 때 감독님이 아니다, 굵은 붓으로 그리다가 가는 붓으로 바꿔라, 하시면 내가 성이 안 차는 부분이 생깁니다. (웃음) 자꾸만 내것이 나오니까 괴롭죠. 내 것을 버리고 감독님 것을 취해야 하는데, 나를 죽여야 하는데, 자꾸만 내 분석대로, 내 방식대로 몸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목표를 가는 거니까요.

다음은 임권택 감독 인터뷰 중에서 발췌입니다.

=장승업이 김병문 집에 담 넘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최민식씨가 눈물을 흘려서 NG를 내셨다면서요.

– 그것도 기품과 관련될지도 몰라요. 물론 울 수도 있는 거요. 그러나 사소한 감정을 드러내는 쪽으로 장승업이를 찍어오지 않았다고. 거기서 느닷없이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안에는 깊은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놈인데, 여기 와서 울고 있으면 그게 맞겠냐고. 삐끗삐끗 감정이 튀어나오면 수렁을 밟는 거죠.


 



최민식은 이런 배우입니다. 영화는 여러 파트가 한 데 어우러져야 하는 장르인데 그는 연기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캐릭터만 살아나고 나머지는 죽어버린다는 것이죠. 저는 이 절정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최민식은 과거처럼 자신의 연기로만 영화를 다 뒤덮진 않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에서는 많이 절제하는 연기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민식은 최민식이죠. “명량”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은 모든 대사, 모든 표정에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아들과 밥을 먹으면서 하는 간단한 대사 “같이 먹으니까 좋구나” 이 아홉 글자에도 목소리의 톤과 인토네이션을 써서 감정을 묻혀내죠. 그로써 최민식의 이순신은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나는 힘들어, 나는 괴로워, 나는 어려워 ……

그런데 과연 이순신이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마구 쏟아내는 인물이었을까요?
“난중일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병신년 이월 열 나흘 – 밤에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은 대낮처럼 밝고 물결 위에 비친 빛은 비단결 같은데, 혼자서 수루 위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수선하여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을미년 칠월 초 하루 – 혼자 수루에 기대어서 나라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았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으니 이 나라가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어지러워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갑오년 이월 열 엿새 –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 밀계 초본을 가지고 왔다. 임실, 무장, 영암, 낙안의 수령을 파면하고 순천 부사는 탐관오리의 으뜸으로 거론하고 기타 담양, 진원, 나주목, 장성 창평 등의 수령은 나쁜 짓을 덮어두고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갈 데까지 갔다. 나랏일이 이 모양이나 나라가 평정될 리 없다.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다.


 



물론 아들이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격정적으로 비통함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외로울 때에도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고, 뒤척거리고, 천장만 올려다보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이런 이순신의 모습과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모습은 격차가 큽니다. 아마 연출자가 이를 알고 최민식의 연기를 더 죽이려 해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둘 사이의 “짬밥” 차이가 얼만데 ……


 
오히려 류승룡이 이순신을 맡고 최민식이 구르지마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외에도 소위 과도한 ‘국뽕’이나 텔레파시와 치마 시그널 등 무리한 설정이 있는데도 “명량”은 흥행가도를 힘차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리얼리즘을 정말 사랑하는 한국의 관객들, 그리고 문단 독자들의 성원 덕분에 말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는 게 리얼리즘이라 한다면 한국의 대부분 흥행 영화는 모두 리얼리즘이 베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국열차”가 좀 예외랄까? 실은 “괴물”도 리얼리즘이지요.

우리 관객이나 독자들이 왜 리얼리즘을 좋아하는지는 다른 차원의 분석이 있어야겠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군도”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매무새, 그러니깐 만들어 놓은 모양은 “군도”가 “명량”보다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군도는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묘사했고, 이는 관객에게 매우 불편한 접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현실의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이며 그 과거의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 별로 다를 게 없죠. 그런데 그 현실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촬영하고 음악을 깔고 편집을 해 놓으니 관객은 혼란스럽지요.

김구 선생이 절정 무술을 사용하며 일본인을 때려 잡는데 거기다가 무협 스타일 자막으로 “흑심패룡장의 고수 백범 김구”라고 깔고, 고속 촬영에다 웨스턴 음악 넣고 영화 “300”처럼 편집하면서 재해석하면 관객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김구 선생이 몸 담았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이처럼 재해석하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허나 “군도”가 보여주는  현실도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백성은 현재와 흡사한 채권추심도 당합니다.


 
영화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묘사는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누리끼리한 서부 영화 스타일 색보정, 음악과 무협 영화와 같은 캐릭터 구축과 샘 페킨파 같은 급격한 줌인 줌아웃 등을 써대니 당연히 언발란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군도”의 흥행이 주춤하는 것은 여타의 요인이 많겠지만 제 생각에는 “명량”과는 다르게 리얼리즘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진공 철구


 


 


 


 


 


 


 


 


 


 


 


 


 


 


 


 


 


 


 


 


 


 


 


 

“님포매니악”, 성애의 외피에 암시와 비유를 담은 영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애호가 성애자와 함께 “님포매니악” 볼륨 1 마지막 상영날 볼륨 1만 보고 2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감상하였는데 … 딱 재미난 부분에서 볼륨 1이 끝나더군요! 마치 임성한 작가의 끊기 신공을 보는 듯한 신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동시에 머리를 움켜쥐고 악! 하는 짧은 비명을 토한 뒤 우리는 홀린듯이 볼륨 2를 예매했고 사이좋게 커피 하나씩 빨면서 도합 5시간동안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친구가 너무 겁을 줘서 지루할까봐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기덕같은 감독이라면서, 서사적인걸 별로 안좋아하면 엄청 지루할거라고 겁을 얼마나 주던지 …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생각 이상으로 설명을 잘 해주는 아주 친절한 영화더군요.

 


그리고 김기덕과 비슷한 점을 저는 거의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서사적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할지 모르겠지만 … 소설로 치면 문체가 아예 다른건데, 그 둘을 비슷하다고 하거나 비교를 하거나 하는건 서로에게 실례가 아닐까 하여 친구놈 뒤통수 때려주려다 참았습니다. 아무튼 볼륨 1, 2를 통틀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몇가지 꼽아보겠습니다.

 


 


1. 어린 조와 친구 B, 유아의 성

 


저는 예전부터 유아~청소년의 성욕/ 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5~6살, 조숙한 아이들은 4~5살때부터 자위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게 단순히 문지르는 방식이든 압박 자위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그들이 성기를 통해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걸 배운다는 거죠. 친구들과의 놀이나 자신의 몸을 스스로 만져보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보통 유아의 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려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숫제 부정하는 반응을 보이죠. 왜냐하면 불편하니까요, 아이는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예쁘게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벌써부터 발랑 까진(?) 더러운 것부터 배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아이들이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쾌감에 집착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아동의 수준에 적합한 올바른 성교육을 조금 일찍 실시해 성욕의 통제법이나 발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게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영화에서 짧게나마 유아의 성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충격적인 동시에 느끼한 치즈 피자먹다가 사이다마신 기분이 들더군요. 대단히 신선했습니다.


 


 


2. 위선과 본능의 첨예한 대립

침대에 앉아서 밀크티를 홀짝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조에게 샐리그먼은 때때로


상관없는 사족같은 이야기들을 하죠. 그것도 매우 공돌이스러운 이야기들요, 조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3 + 5 라는 숫자를 듣고 피보나치 수열 이야기를 아주 거창하게 한다던가, K의 이야기에서 매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등산 로프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그리고 동방교회 서방교회,클래식 음악, 성화 등 다양한 장르의 지식을 뽐내는 굉장히 현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조의 ‘니그로’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보이는 등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과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인물이 마지막에 조에게 한 행동은 인간의 이성은 별로 쓸모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조는 샐리그먼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위선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죠. 그리고 샐리그먼에게 조목조목 반박해주고 싶지만 피곤하다며 관둬버리고요. 그 대신 단 한발의 총성으로 모든 것을 명쾌하게 해결해버리죠.

 


 



조가 샐리그먼을 살해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본능을 상징하는 조가 위선과 이성을 대변하는 샐리그먼을 처단함으로써 인간의 이성과 위선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야한 영화라는 기대감을 품고 영화관을 찾은 뭇 남성들에게 … ‘짜샤, 이건 그딴 영화가 아니니까 냉수나 먹고 속이나 차려라!’ 하는 감독의 일침으로도 볼 수가 있겠죠.


 


사실 저 혼자 보러 갔다면 첫번째 의미로만 받아들였겠습니다만 같이 관람했던 남자사람 왈, ‘샐리그먼이 조를 겁탈하려다 사살당하는 장면에서 사실 엄청 뜨끔하고 부끄러웠다’고 하더군요. 자기의 조그마한 흑심이 다 까발려진 느낌이라나요.

 





3. 부녀관계와 에로티시즘




조는 아버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산책, 물푸레 나무를 바라보던 추억, 영혼의 나무 이야기..마치 그 둘은 소울 메이트같은 느낌을 주죠. 어떻게보면 마치 연인같이 풀밭에 같이 누워 하늘을 보는 등 아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머니와의 관계는 무미건조하다못해 차갑습니다. 조가 어머니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어머니는 계속 등을 돌리고 트럼프를 하는 옆얼굴 정도만 나올 뿐, 카메라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하는 장면은 안나오더군요. 심지어 어머니더러 COLD BITCH라고 하는 부분에서 조금 섬뜩할 정도로 냉담한 모녀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조와 아버지의 관계는 사실 전형적인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볼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특히 아버지가 악몽에서 깨어나 조에게 매달리는 장면에서 흐르던 미묘한 성적 긴장감은 저만 느낀게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4. 삼각관계 




P와 조의 관계는 시작부터 불안했던 관계였습니다. 애초에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었으니까요. 조는 P에게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추억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면서 P와 천천히 교감을 하게되죠. P 또한 의지할 곳 없던 자신에게 다가와준 조에게 신뢰를 보내면서 제법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는 아버지와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있었음에도 아버지를 끝까지 아버지로 대했죠. 하지만 P는 부모같은 존재였던 조와 육체 관계를 맺습니다. 저는 이게 조와 P의 차이를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롬과의 삼각 관계는 조의 가족들과 오버랩되는 감정구도를 형성하죠.


 



친밀한 딸과 아버지, 그리고 냉담한 어머니 VS 조의 연인이자 딸인 P와 옛 연인 제롬, 그리고 조의 구도. P가 제롬의 집으로 수금을 하러 다니는 동안 느닷없이 트럼프를 시작하는 조의 모습을 보면 제롬과 P, 조의 삼각관계와 조의 가족들이 대치되는 구도로 느껴집니다.


 



조 = p

아버지 = 제롬

어머니 = 조


 

조금 오버스럽게 해석하자면 조가 트럼프를 시작하는 장면은 조가 어머니를 딸로서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표현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조와 어머니의 관계 묘사가 너무 생략되어 있어서 확실하게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러닝타임이 각 두시간 반쯤 되는 아주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화면에서 쏟아지는 여러가지 암시와 함축된 비유들을 읽어내기만도 버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볼륨 1은 대부분의 극장에서 이미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기회가 되면 꼭 두 편을 연달아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1만 보신다면 저처럼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지르실 거고, 2편만 보신다면 전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를 못하실 거니까요.

 


 



 


 


 


영진공 내개인듯내개아닌내개같은너


 


 


 


 


 


 


 


 


 


 


 


 


 


 


 


 


 


 


 


 


 


 

미국 박스오피스에 나타난 <디워>



<디워>의 미국 흥행성적은 내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살짝 높다. 1)비수기인 데다 2)극장수 때문에 그나마 좀 높게 잡아 첫 주 3백만 불 정도로 예상했고 이는 Wolverine님의 예상과 대동소이한데 실제로는 5백만 불을 넘었다. 확실히 미국에 지금 볼 영화도 별로 없고 관객들도 극장으로 안 나오고 있다. 닐 조던의 신작 <브레이브 원>이 조디 포스터를 등장시켜 액션 복수극을 펼쳤는데 첫 주 1,300만 불 수준이고, 스크린당 애버릿지가 5천 불이 채 되지 못한다. (물론 평이 그닥 좋지는 않다.) 전통적으로 비수기인 시기라 그런데, 성수기였다면 <디워>는 명함조차 못 내밀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영화(과연 이 영화를 ‘한국영화’라 불러주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일단 별개로 하고)가 미국 박스오피스 10위 권 안에 들어있는 것 자체가 ‘스펙터클’로 여겨질 다수의 한국사람들에게 이 성적마저도 ‘잘했다’고 여겨질 만한 것이겠지만, 민족의식 애국심 같은 거 개뿔 안 키우고 매주 미국 박스오피스를 들여다보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저 숫자가 더 크게 박힌다. 극장 2천여 개에서 5백만 불, 그리하여 스크린당 애버릿지 2천 불 남짓은… 전형적인 ‘망한 영화’의 숫자다. ‘와이드 릴리즈’ 왜 했니? 싶은 숫자. 이거에 대해선 밑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어쨌건 <행운을, 척!>이나 <레지던트 이블 3>, <시드니 화이트> 등이 개봉하는 이번 주에 <디워>의 드롭율은 50% 이상이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지난 주 개봉 2주차, 3주차 영화들의 드롭율이 고작 30%였던 것을 기억해 보라.) 극장수도 빠르게 빠질 게 확실하다. <레지던트 이블 3>도 그렇지만, 아만다 바인즈가 주연을 맡은 <시드니 화이트>나 제시카 알바 주연의 <행운을, 척!>의 경우 비수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10대 소녀들의 티켓파워를 겨냥한 영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워>의 박스오피스 성적. 불과 5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스크린당 애버릿지 2,275불을 기록했다


<디워> 관련해선 사실 2,267개라는 극장 수에 더 놀랐는데, FreeStyle은 미국에선 대체로 B급 배급사에 속한다. 예를 들어 New Market 같은 경우 중소배급사이긴 해도 별로 B급 취급을 받지 않는 건 첫 배급작 <메멘토>를 시작으로 대체로 작지만 품위있는 영화들을 개봉해와서인데, FreeStyle의 경우는 일부 디빠들이 <4.4.4.>와 <일루셔니스트>를 배급한 명망있는 회사라고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이 명성을 한 방에 잠재울 이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우베 볼이다. 우베 볼에 대해서는 알아서 각자 검색해 보도록 하시고, 2,267개라는 숫자는 FreeStyle로서도 자신들의 캐파의 최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로 보인다. 이제껏 FreeStyle이 잡았던 최대 극장수가 1,700개 수준이었고, 국내에서 <디워> 개봉 전 미국 극장 1,500개 예정 어쩌고 얘기는 여기에서 나온 얘기다. 이렇게 자신의 캐퍼마저도 훌쩍 뛰어넘는 극장잡기에 성공했다면, <디워>의 월드와이드 세일즈를 맡고 있는 쇼박스와 배급대행사인 FreeStyle 사이에 모종의 계약조건 – FreeStyle에 매우 유리한 – 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당연히 할 수 있다.


<디워>의 경우 deseason님이 쓰신 이 글에서 드러나듯, FreeStyle은 북미지역 판권을 사간 게 아니라, ‘배급대행’을 해줄 뿐이고 여전히 미국 배급 판권은 쇼박스가 가지고 있다. 배급대행을 한다는 것은, 시장 내 마케팅은 판권 소유자가 다 하고 FreeStyle 입장에서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수에 최대한 근접한 숫자의 극장을 잡아주고 손해가 나건 수익이 나건 무조건 총매출액의 일정 퍼센티지를 배급수수료로 받아가면 된다는 얘기다. (심형래는 인터뷰에서 배급수수료가 2%라고 했는데, 이건 해외배급 실무자들에게 확인해봐야 할 숫자다.) 즉 P&A비용(Print & Advertisement 비용, 보통 마케팅 비용과 프린트 벌수에 따른 비용을 포함하고, 프린트 한 벌당 200만원 정도로 계산하면 된다.)은 여전히 배급대행을 의뢰한 판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인 것이다. 심형래가 인터뷰에서 “배급피 2%만 빼면 다 우리 수익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배급해야 한다” 이딴 소리를 했는데 이건…. 듣는 사람이 오해하기 딱 좋은 블러핑성 발언이다. 자국영화 점유율이 2002년 93.9%인 미국에서, 미국영화가 아닌 영화가 개봉하는 방식이란 매우 한정돼 있고, 흥행 가능성과 시장조건을 면밀히 조사하여 작품마다 가장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각각 달리 접근해야 할 문제이며, 막말로 북미판권을 팔고 싶어도 사주는 회사가 없어서 결국 배급대행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영화의 북미판권을 (플랫딜 형태가 아닌) MG딜 형태로 팔았다면, 바꿔 말하면 그 영화의 판권을 산 회사가 어느 정도 영화의 흥행을 자신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영화가 미국에 MG딜 형태로 팔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배급대행 의뢰는 막말로 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 영화를 해외에서 개봉시키는 방법엔 대략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직접배급, 배급대행 의뢰, 판권을 파는 것.


직접배급은 말그대로 그쪽 나라에서 직접 배급을 한다는 것인데, 물론 그쪽 나라에 배급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쪽 나라에 있는 회사를 끼고 공동배급을 한다고 해도 일정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야 하니 미국에서는 우리가 거의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거나 소규모 아트하우스 개봉 혹은 한정개봉을 할 때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멀티플렉스가 이미 진출해 있는 중국에선 쇼박스가 직접 배급한다. 그런데 나는 쇼박스가 미국에서 직접배급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디워>는 이를 위한 시장조사용, 나아가 일회성 ‘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배급대행 의뢰는 판권은 이쪽에서 가지고 있되 그쪽의 배급사 하나를 컨택해 일정 계약을 맺고 우리 영화를 개봉시키는 것. 물론 마케팅 비용과 각종 개봉 비용은 배급대행을 의뢰하는 이 쪽에서 부담해야 하고, 일정한 배급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판권을 파는 건, 물론 이 회사가 그 나라에서 흥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바이어들이 이 물건을 사줘야 계약이 성사되는 거다. 플랫딜과 MG딜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플랫딜은 일정 금액 지불하면 땡, 그 다음 수익은 모두 산 사람 차지이고, MG딜은 미니멈개런티(MG)를 받고 그 영화가 개봉한 뒤 흥행성적에 따라 러닝개런티를 원 판권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요즘 대부분의 판권 딜은 MG딜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가 더 낫고 어느 게 더 나쁘고 한 건 없다. 다 영화마다, 작품마다, 상황마다 어느 게 가장 이익일지 주판알 튕겨보고 결정하는 거고 미국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운신의 폭이 대단히 좁다. 대강 그런 건 있다. 산업으로 가면 영화란 것도 다 비지니스라, 내가 팔고 싶다고 무조건 팔 수 있는 게 아니라 상품성이 있어야 저쪽에서도 사간다. MG딜은 대체로 흥행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질 때 사간다. 미국영화들은 무조건 한국에 MG딜을 강요한다. 사는 사람이 미쳤다고 망할 게 뻔한 영화를 사겠는가. 배급대행이 자기 돈 안 쓰고 수수료만 받는다고 무조건 할 만한 것도 아닌 게, 배급한 영화 라인업이 그 회사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베볼 영화를 배급대행한 FreeStyle 같은 회사의 경우 일단 돈 된다 싶으면 하는 경향이 꽤 있는 듯하다. 아직 작은 회사라서 그런 듯.


2,267개라는 극장수는 아주 B급영화도 아니고 아주 대박영화도 아닌, ‘중간규모’ 영화를 ‘와이드 릴리즈’하는 맥스의 숫자인 셈인데, 쇼박스나 FreeStyle이나 개봉주 5백만 불의 성적은 이미 예상했거나, 오히려 자신들의 예상보다 더 높은 성적일 가능성이 크다. 근거는… 선수의 깜이다. 선수들 끼리라면 대강 비슷한 예상을 하기 마련이다. 나는 요 몇 년 그쪽 업계를 떠나 있었으니 감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미국 박스오피스를 봐온 게 10년이다. <디워> 때문에 대부분이 처음 알게 됐을 박스오피스모조 사이트는 오래 전부터 내 즐겨찾기에 등록돼 있던 곳이다. FreeStyle이야 배급수수료 먹고 떨어지면 된다고 쳐도, 그렇다면 심형래나 쇼박스는 왜 손해 볼 걸 뻔히 알면서도 와이드 릴리즈를 강행했을까? 일단 심형래가 워낙 매명욕이 큰 사람이라 ‘한국영화 사상 미국 최대 극장 개봉’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알거지가 된다 한들 승부를 걸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을 게다. (순진한 사람들은 영구아트무비가 앞으로 한국영화의 CG를 담당할 ILM 같은 곳이 되길 주문하거나, 심형래에게 연출과 각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을 충고하지만, 이거 말그대로 너무 순진한 데다 심형래를 잘못 보고 하는 말이다. 할 거면 진작 했지. 심형래는 자신이 감독, 제왕의 자리에 올라야 만족하는 사람이지, 절대로 프로듀서나 비주얼 이펙트 총괄 수퍼바이저 따위의 이름으로 만족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영구아트무비는 처음부터, 목적 자체가 ‘형래 킹덤’일 가능성이 크다. <용가리> 때도 각본과 연출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란 충고는 셀 수 없이 나왔지만 심형래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심형래의 매명욕, 명예에 대한 욕심은 그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심형래는 영구아트무비는 CG 하청업체가 아니라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미국 극장 2,200개 개봉’이란 타이틀이 매력적인 것은 쇼박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시장만으로는 도저히 수익이 날 수 없다는 게 이미 증명됐고, CJ와 쇼박스는 이미 오래 전 코스닥에서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회사 방침상(이미 중국에 진출해 CJ와 다툼을 벌이고 있다.) 미국 내 와이드 릴리즈, 2,200개 이상 극장 개봉이란 타이틀은 돈으로는 당장 손해일지 몰라도 회사 브랜드 가치로는 꽤 매력적인 것이다. 나아가 ‘돈’의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디워>가 미국에서 실제로 노리고 있는 곳은 극장수익보다는 극장개봉 이후 렌탈시장과 부가판권 시장이라 추측하고 있기 때문에, 극장수익이 얼마가 나오든 일단 무조건 와이드 릴리즈하는 게 리스크가 큰 도박이긴 해도 최선의 선택이긴 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비디오든 DVD든, 미개봉작과 개봉작은 위상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개봉작 중 와이드 릴리즈 개봉작은 더하고, 미국은 비디오와 DVD 시장의 규모도 엄청나지만(2004년 기준 미국의 영화시장 중 극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7.3%에 해당한다. 게다가 시장의 절대적 크기를 감안해 보라.) 공중파 채널, 케이블 채널뿐 아니라 페이퍼뷰 TV, VOD 등 다양한 윈도우의 시장이 이미 개발돼 있다. 심형래가 기자들에게 직접 보여줬다는 소니와의 “비디오” 계약서는, 그 자리에서 본 기자들과 계약 당사자들만 정확히 알겠지만 만약 정말로 심형래 측에 유리하게 계약이 됐다면, 미국 내 일정 규모 이상의 극장 배급을 전제조건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것은 미국 부가시장에서뿐 아니라, 다른 시장, 예컨대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그밖의 해외시장에서 엄청난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일종의 ‘자산’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투자’의 의미로 와이드 릴리즈를 강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 심형래가 맥스무비와 가진 9/12일자 인터뷰)

<디워>에 대한 미국 평론가들의 평까지 종합되어 여기저기 포스팅되는 걸 보고나니 기분이 좀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디워>로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와중에 차례로 소위 ‘타겟’들이 마녀사냥 당하는 걸 보고 꼭지가 돌아버린 사람이고, <용가리>가 개봉하던 때 이미 영화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지라 심형래를 모종의 ‘사기꾼’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포스팅한 사람들 역시 한윤형님의 고백처럼 꼬습단 마음이 있긴 해도 역시 허탈하고, 기분 안 좋고, 그럴 게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것은 사실 그대로의 팩트이고, 디빠들을 놀려먹는 것 보다는, 여기에서 과연 영화산업, 문화산업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발전적인 방향일 게다. <디워>가 취했던, 그리고 쇼박스가 취했던 일련의 마케팅 방식과 해외시장 진출 방식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이것이 과연 옳은가? 의 문제는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근거는 이전에 쓴 <디워> 관련 단상(1)과 관련된 시장규모 및 능력과 함께, 문화상품이란 건 그런 식의 소품종 다량생산의 공산품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유례가 없는 미국 독과점 시장인 영화시장에서 ‘헐리웃의 중심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우습지도 않은 제국주의적 일념으로 <디워>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아무리 최첨단의 기술이 발전해도 역시 영화는 스토리와 미장센과 편집이라 생각하는 나 같은 이들에겐 참 참담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영화사 100년을 수놓은 무수한 거장들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본질을, 삶을, 사회를, 우주를 성찰하고 고찰하며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즐거움과 위로와 격려를 주고 때로는 새로운 성찰과 새로운 시선을 주었던 영화라는 매체가 한갖 중국제 싸구려 수출용 신발 취급을 받고 있는 느낌. 이송희일의 비유는 너무나 정확했다. 소위 디빠들이 <디워>를 대했던 방식이 “드디어 조립에 성공한 수출용 모방 토스터기” 였던 것, 나아가 그것이 마치 영화라는 매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말을 쏟아냈던 것은, 영화가 좋아서 결국 영화로 밥벌어 먹고 살기로 결심한 뒤 10년이 가까워 오도록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내게는 어마어마한 모욕으로 느껴진다. 정말로 미국 진출이 그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우리는 오히려 최근 미국 합작사를 차린 진원석 감독의 24/7 Pictures사의 프로젝트들이나, 한-미 합작 영화를 끌어낸 김진아 감독의 <두번째 사랑>, 김정중 감독의 <허스>와 같은 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쓰리 몬스터>나 최근 스폰지가 진행하고 있는 “도쿄 프로젝트”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터이다. 아울러 미국에서 결국 고배를 마시고 돌아온 이명세 감독의 경우까지.



영진공 노바리 N.

ps. <디워> 미국 현지 실시간 반응댓글 모음, 꽤 재밌다. 주인장이 꽤 열려있는 사람이라, 영화에 실망해서 화를 내는 리플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서 리플들 보는 재미가 꽤 있다. 다만 이런 반응들에도 여지없이 흥분해서 끼어들어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가 하면 미국 현지인인 척하며 한국에서 <디워>를 까는 머저리들도 섞여 있다. <괴물>의 미국 개봉 당시 너무나 적극적으로 상영극장 체크해 개봉일 기다리며 먼 길을 여행가듯 갔다와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집 앞 극장에서도 영화가 상영되는 것 자체를 감격스러운 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비록 언어도 영어고 배우도 미국인이지만, 한국이름의 영어 표기만 봐도 울컥하는 게 교민들의 심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