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타이거스”, 쿵푸 허슬 옥수동판 잔혹사라고나 할까 …


 

 


 


 




옥수동 타이거스


 

저자: 최지운

펴냄: 민음사



흡사 주성치영화 같은 느낌이다. 쿵푸 허슬의 옥수동판 학원물버전이랄까. 코믹한 장면이지만 왠지 맘 놓고 웃을 수 없고 웃다보면 눈물이 나오고 싸움하는 장면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낄낄대며 웃다보면, 싸움 그 이외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필력이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 주성치 영화를 놓고 개연성과 만듦새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일이다. 주성치영화는 주성치 스타일인 것 자체가 미덕이니까. 작가가 이런 스타일로 쭉~~ 계속 써 줬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단지 무협지적 허풍은 좀 더 비주얼하게 잘 써주길.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서울을 대놓고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에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김애란의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이 한강 다리를 건너며 쳐다봤던 오른쪽 강안(江岸)에는 용공고 오호장군이 활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공고 오호장군 콘티


[ 출처: 교보문고 북뉴스 ]


 


 


 


그나저나 작가는 서울출신이 아니다. 서울출신이 아닌 작가들이 더 서울의 어떤 동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잘 쓰는 것 같다.


 


손홍규작가는 동국대근처 서식(?)의 주특기를 살려 이질적인 문화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한남동을 배경으로 한 ‘이슬람 정육점’을 멋드러지게 쓰더니, 최지운 작가는 중구와 중랑구 동대문구를 아우르는 동국대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살려 ‘옥수동타이거스’를 써냈다.


 


이만하면 강남과 강북의 중간지점(옥수터널 전까지는 준강남이라며…)이며, 구시가와 신시가의 중간지점이며 남산지하실과 장충체육관을 지척에 둔 동국대야 말로 문학이 탄생하기에 최적의 장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진공 라이


 


 


 


 


 


 


 


 


 


 


 


 


 


 


 


 


 


 


 


 


 


 


 


 


 


 


 


 


 


 


 

When We Two Parted (1)




김씨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박기호 기자는 김씨의 이야기를 ‘정보 보고’ 했다.


 


<16일 오후 서대문구 파출소에서 김모씨(남,34) 난동 피움. 무단으로 경찰 업무용 컴퓨터를 사용하려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찰을 구타함. 한 달 전 애인이 사라졌는데 주변 사람 누구도 자신의 애인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여자를 사귀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 사라진 애인의 신원을 확인하고자 이 같은 일을 저지렀다는 경찰 설명. “나는 귀신과 사귄 게 아니다”라며 소리쳤다 함. 현재 공무집행 방해로 조사 중.> 



 


하지만 데스크는 관심이 없었다. 김씨의 이야기에 사실 박기호는 첫사랑을 생각했다. 박기호는 첫사랑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이별하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굳이 기억하려 한다면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냥 바래지게 놔두고 살았다. 바래지자 첫사랑인지 뭔지도 희미해졌다. 그저 기억의 느낌만 남았다. 5월의 햇살이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거리 위에 벚꽃잎 몇 장이 나뒹굴었다. 분홍빛으로 만발해 지천을 물들이던 꽃이 이젠 얼룩처럼 몇 점 보도블럭 위에서 부대꼈다. 박기호에게 남은 첫사랑의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박기호에게는 김씨의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다. 김씨는 감성이 짙은 단어를 사용해 이야기했다.


 


여자는 외국에서 공부했어요. 영어 뿐 아니라 불어, 독어도 능통했어요. 하얀 팔뚝은 달빛 내린 뒷산마냥 눈부셨는데 그 팔에 들린 책들의 저자는 벤야민이나 들뤼즈 혹은 이정우였어요. 물론 저는 그들이 누군지 모르죠. 술을 먹고 돌아오는 새벽 길에서는 영어로 된 시를 읊어주기도 했어요. When we two parted in silence and tears, Half broken-hearted to sever for years. 물론 저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이 사랑에 관한 시라는 사실은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술 기운이 도는 여자의 입술은 그녀의 속살처럼 부끄러워 했고,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싯구는 인적 드문 거리에 안개 젖은 강을 펼쳤으니까요. 저는 그 강을 군 시절에 봤어요. 강 건너편은 키 큰 억새가 넘실대고 그 위로 별들이 쏟아졌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 위에 쌓였던 별들이 사방으로 튕기며 복작거렸죠. 적은 그곳에서 온다고 중대장은 항상 말했어요. 그 억새가 소리를 내며 휘청일 때마다 적들의 발자국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이라고 중대장은 항상 말했어요. 별을 뿜어대는 억새밭을 바라보며 적의 모습을 찾는 것이 저의 임무였지요. 그래서 저는 별이 쏟아지지 않는 흐린 날과 강 너머가 보이지 않는 안개 낀 날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여자의 시가 우리가 걷는 길 앞에 바로 그 강을, 안개 낀 그 강을 펼치곤 했지요. 저는 편안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싯구의 뜻을 알고, 그 안개를 걷어내면 멀리 다시 별을 뿜어대는 억새가 찬란하게 넘실댈 것 같았지요.
 




그래서 영어를 공부했어요. 아침 일곱시 반에 현장에 나가면 오야지는 공구리 판넬 좀 옮기라고 말했어요. 밤새 영어책을 들췄던 제가 판넬이 아니라 패널이라고 대답하면 오야지는 데모도 자리도 못 구해서 데마찌 하고 싶냐고 되물었어요. 기리빠리와 사보로꾸와 시하찌와 각종 세끼다를 옮기다 보면 전날 공부한 영어 단어들은 머릿속에서 흩어지곤 했지요. 저는 데마찡으로 먹고사는 하루살이 노가다였어요. 일을 끝내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죠. 허름한 다세대 주택의 페인트 떨어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늦은 저녁을 혼자 차려 먹고, 아무렇게나 설거지를 팽개치고, TV를 켠 채로 담배를 피우다, 무거운 엉덩이를 떼 욕실에 들어,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벌써 서너 번은 썼을 법한 수건을 빨래통에 던지고, 느릿느릿 방에 들어오면 여자는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빛을 받으며 창가 의자에 앉아 있곤 했어요. 봉지 커피를 나눠 마시며 오늘 하루 일을 이야기하고, 어제 일을 다시 이야기하고, 지난 달 일을 재차 이야기하고, 이번 달 여자의 벌이와 저의 벌이를 합쳐 생활비를 계산하다 보면 여자는 갓 따온 복숭아처럼 붉어졌지요. 여자의 솜털 사이로 바람이 불고 입 안에서는 향기가 났어요. 목울대 너머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마다 여자의 눈동자 아래로 깊은 우물이 생겼어요. 그 어떤 빛도 탈출하지 못할 만큼 우물은 안으로 안으로 어둠이었고, 그 어둠의 끝은 알 수도 없지만 알아도 제가 이해하지 못할 수많은 것들로 고요했어요. 여자의 울대 안에서 요동치는 말발굽 소리와 여자의 눈동자 안으로 가라앉는 고요에 안겨 저는 매일 잠들었어요. 그때 여자는 또 시를 읊곤 했지요. A shudder comes o’er me, Why wert thou so dear? They know not I knew thee, Who knew thee too well. Long, long shall I rue thee, Too deeply to tell. 물론 저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육 개월을 들었으면 외울 만하잖아요. 







<계속>



영진공 철구


“7년의 밤”. 독자라서 행복한, 스티븐킹보다 서늘한, 그러나 뜨거운 소설


독자라서 행복한,
독자라서 행복한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라면 상상도 못할 주제, 나라면 상상도 못할 스케일, 나라면 상상도 못할 디테일, 나라면 엄두도 못 낼 전개. 그런 것들을 읽어나가는 기쁨을 선사하는 소설 말이다. 독자에게 최악인 소설이라면 그 반대의 것일 것이다. ‘이런 소설 나도 쓰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 실제로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사실 여부와는 관련 없이 그 만큼 도무지 신선한 것도 압도적인 것도 없는 소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스티븐 킹 보다 서늘한,
내 독서량이 일천하기 때문에 아무 소설이이나 함부로 연상하고 색깔을 입히는 것은 안될일이다. 하지만 처음 소설을 잡고부터 이런 저런 소설들에서 스타일이 겹치는 부분이 없는 지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7년의 밤’을 손에 잡고 정신 없이 읽어 나가다가 문득 생각해 보면 얼른 떠오르는 한국 소설은 없다. 내가 장르 문학을 많이 읽지 않아서인 탓도 있겠지만, 추리, 공포, 범죄 소설의 느낌을 그려내는 본격 문학 주류 작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일천한 독서력(讀書歷)에 떠올린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와 스티븐 킹이다. 배경에 대한 세밀한 포석, 분/초 단위의 촘촘한 사건관계 구성, 불우한 주인공(?) 등은 히가시노 게이고를 떠올리게 했으며, 인간 내면에 존재한 불안감과 공포. 그 불안감과 공포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에 따라 그 자신이 괴물이 될수도, 혹은 괴물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음을 그려낸 세세한 내면묘사와, ‘인간 집단’자체가 얼마나 비이성적인 괴물이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하는지를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스티븐 킹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뜨거운 소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와 스키븐 킹의 소설과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의 밤’이 뜨겁다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간혹 ‘따뜻한 것’은 있으되- 내 영혼의 아틸란티스, 사다리의 마지막 칸 등- ‘뜨거운 것’은 없었던 듯 하다. 스티븐 킹 소설에서 따스함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련한 회한이랄까.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7년의 밤에는 ‘현재 진행 중인 것’에 대해 잃지 않으려는 뜨거움이 있다. 무자비한 폭력의 사이에서도 냉소와 허무와 자기 부정으로 상황을 등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따라 붙고 물고 늘어지는 그 뜨거움. 그 어떤 기법적인 장점보다, 그 뜨거움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영진공 라이

좀비 타임즈 4






전국의 모든 중장비가 서해로 몰려들었다. 배가 근접만 하면 그 지역부터 신속하게 운하를 파서 가장 가까운 강으로 대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배는 더 이상 뭍으로 접근하지 않고 연평도 북서쪽 해상에 멈춰버렸다. 더욱 얄궂게도 그곳은, 북한과 한국이 서로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딱 NLL 선상이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의 호방한 여성 아나운서는 연일 방송을 날렸다. 제 아무리 미제의 좀비라고 하더라도 조선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주체사상의 단매를 맞으면 투철한 혁명 역군으로 갱생될 것이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도 다시 회의가 열렸다.


– 사태가 긴박합니다.
– 그래도 미국 배를 우리가 격침할 수는 없는 일 아니오?
– 북이 격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이야 북의 불구대천 원수니까요.
– 그래주면 좋으련만.
– 북한 원조를 약속하고 부탁을 해보지요.
– 북한 퍼주기다 뭐다 여론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 북은 그래도 우리 동포이자 형제 아니겠소. 어려울 때 형제끼리 돕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 그거야 뭐 PJ의 햇살 정책 당시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 아니었습니까? 그때는 퍼주기라고 욕해놓고 이제 와서 우리가 또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참 이 사람 답답하네. PJ는 빨갱이 아니오? 빨갱이가 빨갱이를 도우니까 문제였던 거지요. 대북 원조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하느냐가 문제인 거요. 아직도 그걸 모르오?

그리하여 회의는 북한의 도움을 구하는 쪽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팍팍한 시절이라 북측과 연락할 모든 핫라인이 단절되고 없다는 게 문제였다. 대통령은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라인을 뚫으라고 국정원장에게 지시했다. 국정원장은 중국 지린성에서 활동하는 국정원 대북관계팀장 작전명 영산강에게 다시 지시했고, 영산강은 북한과 교통하는 조선족 김팔봉에게 부탁했다. 며칠 후 김팔봉은 북한으로 들어가 함북도 샛별 지역 보위부 상위 박달곤에게 남측의 메시지를 전했고, 박달곤은 평양 당 중앙위원회로 연락을 넣었으며, 중앙위는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국방위원장에게 최종 전달했는데 그가 받은 남측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 할 얘기가 있다.

국방위원장은 그 메시지에 대한 자신의 답을 다시 남측에 보내라고 명령했고, 중앙위는 박달곤 상위에게 전달했으며, 박달곤 상위는 김팔봉에게 전달하고, 김팔봉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 지린성으로 나와 작전명 영산강에게 전달하고, 영산강은 국정원장에게 전달했으며, 국정원장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전달했는데 그 내용은 또 다음과 같았다.

– 할 얘기가 뭐냐?

남북의 메시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여러 차례 왕래했는데 마치 내외하는 고관댁 도령과 규수처럼 먼저 핵심을 얘기하지 않고 변죽만 울려대니 그 사이를 잇는 연락책들이 죽을 맛이었다. 특히 북한 샛별군 보위부 상위 박달곤은 가랑이 사이에서 방울 소리가 날 지경이었는데 그날도 마침 조선족 김팔봉이 국경을 넘어 군내로 들어와 봉투를 내밀었다.

– 남에서 온 문서야요.

당시는 그나마 남북이 어느 정도 이야기를 진전시킨 상태였고 구체적인 원조 날짜와 격침 시기를 저울질하는 문서가 오고갈 때였다. 그날 김팔봉이 박달곤에게 전한 문서에도 남측이 원하는 격침 시기가 적혀 있었다. 박달곤은 평양으로 전화를 넣었다.

– 남에서 문서가 도착했습니다.
– 아, 그거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늘 내로 보내라.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곤란하게도 박달곤은 똥이 마려웠다. 문제는 그가 심각한 변비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평소에는 길어도 삼십 분 안에 해결되던 일이 두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시라도 지체했다가는 교화소행이 될 터였다. 마음이 급박해진 박달곤은 아내를 불렀다.

– 여보, 똥이 안 나와.

안 그래도 찢어지게 가난한 애옥살이에 불만이 많던 아내가 답했다.

– 잘됐네요. 밑 닦을 필요도 없이 일어나면 되겠네요.

하지만 그건 박달곤의 처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 아니, 아니.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고 시작하는 대가리는 나왔는데 끄트머리가 나오질 않는다고.
– 아, 그냥 자르고 나와요.
– 안 잘리니까 문제지.
– 이녁 식구는 먹지 못해서 똥이라고는 피식 방구도 안 나오는데 누군 똥이 잘리지도 않을 정도로 잘 자시고 다녔구려.

박달곤은 아내를 변소 문 앞으로 불러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낯빛이 바뀐 아내가 뒷곁으로 가 삽을 들고 왔고 변소 문을 화들짝 열어 제쳤다.

– 궁둥이 좀 들어보시라요. 내 확 끊어드리갔소.

하지만 몇 번이나 삽으로 내려쳐도 똥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삽날에 이가 나갈 정도로 박달곤의 똥은 단단하고 강했다. 그러자 아내는 삽을 내 던지고 대가리를 길게 내민 박달곤의 똥을 덥썩 잡았다.

– 안 끊기면 뽑겠시오.

아내는 화장실 문턱에 다리를 개고 뒤로 몸을 눕히며 박달곤의 똥을 당겼다. 하지만 박달곤의 비명과 함께 그의 항문에서 피가 날 뿐 똥은 뽑히지 않았다. 오기가 생긴 아내는 인근 마을에서 가장 오랜 그리고 가장 탁월한 솜씨를 자랑하는 산파, 끝년네 할매를 데려왔다.

– 누구여? 누가 애를 낳는단디?

투덜대며 끌려온 끝년네 할매는 박달곤네 변소 앞에서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 나 보고 지금 똥을 받으라고?

하지만 딱한 사정을 들은 할매는 소매를 걷어 붙였다.

– 달곤이, 배에 힘을 주지 말고 허리에 힘을 줘야 돼. 숨을 한 번에 크게 들이 마신 다음에 잘게 쪼개서 내뱉고.

그로써 끝년네 할매와 박달곤 똥과의 사투가 벌어졌다. 네 쌍둥이, 다섯 쌍둥이, 아홉 쌍둥이는 물론이요 거꾸로 선 애, 옆으로 선 애, 서다 만 애, 다 서고 안 나오는 애까지 받아 본 데다가 심지어는 자기 애를 자기가 받은 적도 있는 사십오 년 경력의 베테랑 산파는 역시 남달랐다. 장돌뱅이 발바닥 티눈처럼 박혀서 안 나오던 똥이 아주 조금씩 미끄러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달곤의 똥도 결코 만만한 똥은 아니라서 나오기는 나오는데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길었다. 그리하여 배설도 아니고 출산도 아닌 이 이상한 광경은 그 후로도 장장 삼박사일 동안 계속 됐다. 더럽다며 계속 구토를 해대던 박달곤의 아내가 끝내 못 견디고 친정으로 도망가 버린 게 첫째 날 밤이었고, 청국장 얻어먹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침만 뱉고 돌아간 게 둘째 날 밤이었고, 박달곤이 탈진해 쓰러진 게 셋째 날 밤이었다. 그러나 할매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건 명인의 자존심과 관련한 문제였다. 할매는 똥을 고쳐 잡고 다시 한 번 용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나흘 째 되는 날, 홀로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던 끝년네 할매의 손에 직경 팔 센티, 길이 이십팔 미터짜리 거대한 똥이 온전히 뽑혀져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의 순간, 안타깝게도 박달곤은 이미 절명해 있었다. 박달곤의 비극적인 죽음에 끝년네 할매는 한숨을 내쉬며 한 마디 내뱉었다.

– 인생은 짧고 똥은 길구먼.

그리고 박달곤이 싼 똥을 구리라고 속여서 내다팔아 끝년네 할매는 부자가 되었다.

한편 사일 전 박달곤이 남한의 문서를 받았다는 내용의 전화를 넣은 그 시점부터 평양은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



 


영진공 철구


 

좀비 타임즈 1 + 2


1.

멕시코 국경 도시인 레돈도에서 67년째 살고 있는 곤잘레스 영감은 그것을 처음 봤을 때 죽은 아들 벨라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벨라는 전에도 그런 모습으로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미국으로 밀입국 해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겠다던 벨라는 돈은커녕 결핵이니 영양실조니 옴이니 하는 구질한 병만 안고 돌아왔다. 나이 마흔이 넘어 벨라는 아홉 번째로 미국행에 나섰고 일 년간 소식이 없었다. 드디어 미국에 자리를 잡았나 싶었을 때, 그러니까 모든 불행한 사연의 배경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어느 비 내리는 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곤잘레스 영감은 미국 정착에 실패한 벨라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직감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미소를 머금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문 앞에 서 있는 건 산송장이었다.




비와 흙과 피에 엉킨 머리칼이 목까지 늘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피를 철철 흘리는 오른쪽 손목은 썩어 문드러졌는지 떨어져 없었고, 옆구리에서 꾸물꾸물 새어 나오는 창자를 남은 한 손이 계속 밀어 넣고 있는 그것은 무덤에서 기어 나온 송장이 틀림없었다. 영감은 주방으로 뛰어가 칼을 찾았다. 그런데 그 송장이 비칠비칠 집 안으로 다리를 끌며 들어왔다. 아버지. 곤잘레스 영감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디오스 미오. 디오스 미오. 산송장이 내 아들 벨라라니, 이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니. 영감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아들을 끌어안았다. 샌디에고에서 약을 팔았어요. 신께 맹세하지만 그곳이 콜롬비아 애들 구역인 줄은 몰랐어요. 놈들이 제 팔을 자르고, 샷건을 제 배에 박고, 국경에 제 몸을 묻었어요. 비만 안 내렸다면, 그래서 흙이 구덩이 밑으로 빠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생매장 됐을 거예요.






이미지 출처: http://openvein.com/art/zombieportraitrequest6/



영감은 절망했다. 그리고 그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 건 아들 벨라가 그 상태로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쉬지 않고 떠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제 손목을 자른 나이프는 미국 스트라이더사의 ‘SMF G10 BK’인데 손잡이 재질이 티타늄이에요. 담배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세상에 손목이 없는 거예요. 두 시간 동안 제 손목이 잘린지도 몰랐다니까요. 제 배를 쏜 샷건은 미국 레밍턴사의 ‘Mossberg M590’인데 탄창이 아홉 발짜리였어요. 도망가는 저를 잡으려고 모두 네 발을 쐈는데 총성이 얼마나 웅장한지, 빠바바 빵,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연주하는 줄 알았어요. 역시 미국은 달라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들을 맞이할 줄 알았던 곤잘레스는 산송장을, 아니 산송장 아들을, 아니 떠벌이 산송장 아들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피 흘리며 삼 일 간 떠들다가 죽었다. 아들이 흘린 피를 모았더니 네 말이나 됐고, 혈액 병원에 팔아볼까 가져갔더니 약에 절어 쓸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병원 의사가 몰래 아들의 피를 정제해 다시 약 이백 그램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한참 뒤에 들었다. 산송장 같았던 아들이 죽은 그때가 벌써 칠 년 전이다. 그리고 지금, 역시나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봤더니 문 앞에 또 산송장이 서 있는 것이다. 곤잘레스는 말했다. 누구냐? 길 건너편 마리아네 둘째냐? 너희 집 한 블록 아래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산송장은 진짜 좀비였다. 그날 곤잘레스는 죽었다, 아니 좀비가 됐다.

2.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 통하는 모든 국경을 폐쇄했다. 미국에서 수만 마리 좀비들이 끊임없이 멕시코로 기어 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가려는 멕시코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거의 백 년에 걸쳐 미국으로만 향하던 국경의 풍경은 달라졌다. 아메리칸 드림은 멈췄고 멕시코로 넘어오는 좀비를 막기 위해 미국과 접한 모든 국경에 삼 미터 높이의 시멘트 벽과 전기 철책이 세워졌다. 그것은 캐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위성사진, 항공사진을 판독한 결과 모든 미국인이 좀비가 돼 버렸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했다. 형제의 나라 영국이 두 차례에 걸쳐 군대를 투입시켰지만 그들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강대국들은 처음에 입을 다물었다. 세계 증시가 무너지고, 미국이 관여했던 모든 분쟁 지역에서 국지전이 거세지고, 세상이 혼란에 빠지자 중국이 먼저 치고 나왔다. “아메리카는 이제 좀비리카가 되었다.” 삼억 미국인이 좀비가 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상은 경악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중국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앞으로 기축 통화는 달러에서 위안화로.” 그러자 러시아도 나섰다. “미국의 F-22 전투기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습니다. 전투기 구입 문의는 이제 러시아로.” 역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탄도 미사일 다량 확보.” 일본도 가만있지 않았다. “Vivid는 추억으로. SOD가 곁에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 해병대 존 밀러 대위는 독특하게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탐 행크스’가 맡은 역할과 이름이 똑같았는데, 아무튼 그는 조국의 비극적인 운명을 탈레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미국이 좀비랜드가 되어 인접 국가들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지도상에서 지워졌다는 프랑스 르몽드지 기사를 탈레반이 복사해 미군 주둔지 전역에 뿌린 것이다. 많은 병사들이 탈영해 영국이나 호주 같은 우방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는데, 존 밀러는 달랐다. 영화 속 탐 행크스처럼 용맹하게 혼자 탈레반 소탕에 나섰고 끝내 포로가 되었다. 존 밀러는 토굴에 갇혔고, 토굴 감옥 경비는 탈레반 말단 병사 카림이 맡았다.




얼마 후 존 밀러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카림의 본명은 ‘카림 빈 라쉬드 알 막툼’, 그러니까 ‘막툼 부족 라시드의 아들로 온화한 카림’이라는 뜻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우리 이름에는 아빠 이름만 들어가 있어. 내 이름에도 내 아버지의 이름 ‘라시드’가 들어가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 무슬림이 여성을 차별한다고 오해받는 거야. 오해지. 암, 오해고 말고. 그래서 난 이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아랍 이름에 아빠 이름 대신 엄마 이름을 넣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내 세 명의 자식들 이름은 이렇게 바뀌겠지. ‘압둘 빈 아말 알 사디(사디 부족 아말의 아들 압둘)’, ‘오마르 빈 바노 알 하디드(하디드 부족 바노의 아들 오마르)’, ‘하미다 빈트 라자 알 사우드(사우드 부족 라자의 딸 하미다)’. 내 자식들 이름이 각각 ‘압둘’, ‘오마르’, ‘하미다’이고 내 아내 이름이 각각 ‘아말’, ‘바노’, ‘라자’니까. 그랬다. 카림은 아내가 셋이었던 것이다. 몇 달 후,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미군 주둔지에 새로운 전단이 뿌려졌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제국주의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행복. 탈레반으로 건너오세요.’ 그리고 그 아래에는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자를 한 팔에 한 명씩 품은 존 밀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는 것으로 좀비들의 육로 전파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 발생 137일 후, 한국 제주도 해상 사백 킬로미터 남단에서 정체불명의 선박이 포착됐다. 미국 L.A. 크루즈 여행업체 인터네셔널 오션사 소속 크루즈호인 만오천 톤급 윈드메리호였다. 중국, 한국, 북한, 일본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일본 해상 자위대 정찰기가 근접 촬영한 갑판 위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수차례 통신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격침하자, 특공대를 투입하자 등등 각국 정부가 방안 마련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배는 쿠루시오 해류에서 황해 난류로 바꿔 타고 제주도 서쪽 해상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일본이 자국에 내려진 데프콘 상황을 해제하고 자신들은 일본 평화헌법 정신을 준수한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배가 조금씩 북진하며 한국 영해 쪽으로 다가서자 중국 정부 또한 자신들은 한반도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한국 정부는 불난 호떡집이 되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