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흥행성적과 모에 요소

<명량>과 같은 시기에 개봉한 신작 중에 재미있는 제목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 재미있는 제목이란 다름 아닌 …

두둥!

<옹녀뎐>

너무나도 참해보이는 <옹녀>입니다.

습관처럼 검색이란걸 해봅니다.

8월에 개봉을 했다곤 하는데 여러분 중에 이 영화개봉한 거 들어보신 분이라도 계신지 궁금합니다.

찾다 보니 이렇게 배우를 모집하는 블로그도 눈에 띕니다.

음 출연료가 너무 짜다.

그래도 뉴스도 몇건 있고 개봉을 하긴 했나 봅니다.

아니군요. 1건이네요. ㅠㅠ

naver_com_20140821_225914.jpg개봉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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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개입니다. 이거 보려면 시흥까지 갔어야해요. ㅠㅠ 이런 작은 영화는 정말 어디 상영관 구하기조차 어렵나봅니다.

이런 검색과정 도중에 문득,

관객은 어떤 것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량과 개봉관 수로만 관객의 수가 좌우되는 걸까? 라는 생각 말이죠.

마이클 베이 감독의 경우 영화 자체로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심형래 거장이나 서세원 거장보다는 무언가를 좀 아시는 분 같습니다. 최소한 영화로 제작사를 말아먹는 짓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런데 솔직히 <트랜스포머> 4편은 확실히 망했을거라고 모두들 짐작했는데, 역시 중국에는 인구가 참 많았드랬습니다.

그다지 잘 만든 영화도 아닌데 왜 팔릴까?

마이클 베이 류라고 할 수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감정과잉에 오버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치가 떨리고 닭살이 돋아서 정~말 보기 힘들더군요. <트랜스포머>는 정말 감정이입이 안되는 주인공이었고 말이죠.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인데 <모에 요소>가 바로 그런 작품들은 흥행시키는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사람들이 흥분하는게 뭔지 아는거죠.

전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란 책에 나온 내용인데 말입니다.

일본의 만화에는 아주 체계적으로 매 시기별로 사람들을 흥분 시키는 모에 요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령 메이드복, 고양이 귀, 튀어나온 머리카락, 커다란 눈, 고양이 양말과 장갑 등등,

이제는 각 캐릭터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규격화된 모에요소가 있고, 이것을 소비하는 것이 오타쿠들인거죠.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오타쿠는 일반화되었고요.

소녀시대의 경우 남성이 좋아하는 모에 요소를 단 한 명에게 모두 모이는게 어려우니까 캐릭터별로 나눈 걸테고요,

분명 <트랜스포머>에도 이런 모에 요소가 있습니다.

거대 로봇, 외계인, 장엄함 등등. 사람들에게 이런 모에 요소를 충족시켜주는 것만으로도 표를 사게 만드는 거죠. 일종의 공식화된 흥행요소가 된 겁니다.

전 솔직히 <전우치>가 참 보기 불편했는데 왜냐하면 거기에는 멋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대사를 총집합 시켜 놓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거의 모든 대사가 마치 공식화되어 있는듯한 느낌? 그래서 혹시라도 예전에 시나리오 공부한답시고 읽은 시나리오집들 때문에 그런가? 뭐 그런 생각도 다 들었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에요소를 활용하는 집단이 있죠.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나라 꼴통 우익들이죠.

아니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이야 말로 꼴통 우익들이 좋아하는 모에 요소를 갖춘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드는군요.

육영수 여사의 얼굴,

박정희 전대통령의 이미지,

과거 회귀적 말투와 행동들,

그런데 그런 캐릭터가 어느날 갑자기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김대중 전대통령처럼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모에가 파괴된 것처럼 충격을 먹을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사람들의 마음을 툭 건드는 그 모에 요소를 끊지 못하고, 매 선거때마다 계속 활용하는 거 같습니다.

정치조차 오타쿠화 된 모에 요소의 총집합이 된 셈이죠.

어쨌든, 스토리로 승부한다거나 실질적인 내용으로 승부하지 않고 사람들의 모에 요소를 건드려서 흥행하는 작품들의 특징은, 그걸 보고나서 인간적인 성장을 하게 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끝없이 그 모에 요소를 찾아다니게 만든다는 거라 느껴집니다.

소비하고 바로 끝나버리면 좋을텐데, 저 모에요소라는건 마치 끝없이 찾아다니게 만드는 <욕망>같은거죠. 질리지도 않아요. 마약처럼 더 많은 자극을 원하는거죠.

그래서 자극의 크기만 자꾸 커져가고요. 일본 교복 컨셉의 AV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교복을 입은 배우를 소비하는게 아니라 교복 자체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끝없이 그런걸 찾고, 그 욕망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고 말이죠.

막장 드라마도 그렇습니다.

배우와 장소만 바뀌고 기본적인 모에 요소는 유지합니다. 사람들은 남이야 욕하든 말든 자기도 욕하든 말든 그 <막장>을 즐깁니다. 휴가 때 고향집에가서 요즘 하는 그 <뻐꾸기 둥지> 보다가 제가 “미친년의 남자 꼬시기”라고 평하는 인터넷 댓글을 어머니께 읽어드렸는데요,

어머니 말씀이 “아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그런걸 써둔대니?” 그러시는 겁니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말씀드려도 똑같은 반응이 올 것 같았습니다.

영진공 신샘

영화 “명량”과 “군도”에 대한 단상


 


 



 


 


영화 “명량”은 역사 매니아도 아니고 밀덕후도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봐도 고증의 문제가 툭툭 걸립니다. 게다가 메이크업을 잔뜩 한 조총 스나이퍼 따위를 쓸 데 없이 만들어 넣는 등 영화의 매무새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충무공이 장계를 쓰는 장면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글을 쓰는 이순신의 상반신 샷으로 시작하면서 다음은 글을 쓰는 손을 클로즈업하고 그 다음은 손까지 포함한 전체 샷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체샷으로 넘어올 때 꼿꼿했던 충무공의 허리가 숙여져 있습니다. 첫 샷에서는 손이 안 잡히니 글은 쓰는 척만 하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을 테고 마지막 샷에서는 손까지 잡히니 신경써서 글을 써야 하는 터라 허리를 숙였겠지요. 허나 샷의 연결이 껄끄러울 정도로 튑니다.

그리고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에서 충무공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올려 베는 모습을 정면에서 잡고 다음 샷에서 카메라는 적장의 등 뒤에 가 있는데, 이순신의 칼이 왼쪽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오른쪽 아래에 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뭔가 깔끔하지 않다는 것을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다 느끼게 되고 이 정도면 NG컷이라 할 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컷들이 꽤나 많아서 매무새가 조악합니다. 아무리 쌈마이 헐리웃 영화라고 하더라도 이런 컷들은 보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배우 최민식의 존재입니다. 자신없는 감독은 최민식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듯 보입니다. 최민식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최민식 연기가 정말 잘 나올 때는 극 안 캐릭터의 개성이 매우 강할 때입니다. “파이란”에서의 강재,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장경철처럼 말입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취화선 동행취재기를 씨네21에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최민식과의 인터뷰를 인용하겠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습니까.

=근본적인 차이는 없죠. 그러면 큰일나게요. (웃음) 다만 지금 초상화냐, 풍경화냐, 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전 굵은 붓으로 죽죽 그리고 싶은데, 그럴 때 감독님이 아니다, 굵은 붓으로 그리다가 가는 붓으로 바꿔라, 하시면 내가 성이 안 차는 부분이 생깁니다. (웃음) 자꾸만 내것이 나오니까 괴롭죠. 내 것을 버리고 감독님 것을 취해야 하는데, 나를 죽여야 하는데, 자꾸만 내 분석대로, 내 방식대로 몸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목표를 가는 거니까요.

다음은 임권택 감독 인터뷰 중에서 발췌입니다.

=장승업이 김병문 집에 담 넘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최민식씨가 눈물을 흘려서 NG를 내셨다면서요.

– 그것도 기품과 관련될지도 몰라요. 물론 울 수도 있는 거요. 그러나 사소한 감정을 드러내는 쪽으로 장승업이를 찍어오지 않았다고. 거기서 느닷없이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안에는 깊은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놈인데, 여기 와서 울고 있으면 그게 맞겠냐고. 삐끗삐끗 감정이 튀어나오면 수렁을 밟는 거죠.


 



최민식은 이런 배우입니다. 영화는 여러 파트가 한 데 어우러져야 하는 장르인데 그는 연기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캐릭터만 살아나고 나머지는 죽어버린다는 것이죠. 저는 이 절정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최민식은 과거처럼 자신의 연기로만 영화를 다 뒤덮진 않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에서는 많이 절제하는 연기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민식은 최민식이죠. “명량”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은 모든 대사, 모든 표정에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아들과 밥을 먹으면서 하는 간단한 대사 “같이 먹으니까 좋구나” 이 아홉 글자에도 목소리의 톤과 인토네이션을 써서 감정을 묻혀내죠. 그로써 최민식의 이순신은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나는 힘들어, 나는 괴로워, 나는 어려워 ……

그런데 과연 이순신이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마구 쏟아내는 인물이었을까요?
“난중일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병신년 이월 열 나흘 – 밤에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은 대낮처럼 밝고 물결 위에 비친 빛은 비단결 같은데, 혼자서 수루 위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수선하여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을미년 칠월 초 하루 – 혼자 수루에 기대어서 나라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았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으니 이 나라가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어지러워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갑오년 이월 열 엿새 –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 밀계 초본을 가지고 왔다. 임실, 무장, 영암, 낙안의 수령을 파면하고 순천 부사는 탐관오리의 으뜸으로 거론하고 기타 담양, 진원, 나주목, 장성 창평 등의 수령은 나쁜 짓을 덮어두고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갈 데까지 갔다. 나랏일이 이 모양이나 나라가 평정될 리 없다.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다.


 



물론 아들이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격정적으로 비통함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외로울 때에도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고, 뒤척거리고, 천장만 올려다보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이런 이순신의 모습과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모습은 격차가 큽니다. 아마 연출자가 이를 알고 최민식의 연기를 더 죽이려 해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둘 사이의 “짬밥” 차이가 얼만데 ……


 
오히려 류승룡이 이순신을 맡고 최민식이 구르지마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외에도 소위 과도한 ‘국뽕’이나 텔레파시와 치마 시그널 등 무리한 설정이 있는데도 “명량”은 흥행가도를 힘차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리얼리즘을 정말 사랑하는 한국의 관객들, 그리고 문단 독자들의 성원 덕분에 말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는 게 리얼리즘이라 한다면 한국의 대부분 흥행 영화는 모두 리얼리즘이 베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국열차”가 좀 예외랄까? 실은 “괴물”도 리얼리즘이지요.

우리 관객이나 독자들이 왜 리얼리즘을 좋아하는지는 다른 차원의 분석이 있어야겠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군도”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매무새, 그러니깐 만들어 놓은 모양은 “군도”가 “명량”보다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군도는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묘사했고, 이는 관객에게 매우 불편한 접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현실의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이며 그 과거의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 별로 다를 게 없죠. 그런데 그 현실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촬영하고 음악을 깔고 편집을 해 놓으니 관객은 혼란스럽지요.

김구 선생이 절정 무술을 사용하며 일본인을 때려 잡는데 거기다가 무협 스타일 자막으로 “흑심패룡장의 고수 백범 김구”라고 깔고, 고속 촬영에다 웨스턴 음악 넣고 영화 “300”처럼 편집하면서 재해석하면 관객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김구 선생이 몸 담았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이처럼 재해석하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허나 “군도”가 보여주는  현실도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백성은 현재와 흡사한 채권추심도 당합니다.


 
영화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묘사는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누리끼리한 서부 영화 스타일 색보정, 음악과 무협 영화와 같은 캐릭터 구축과 샘 페킨파 같은 급격한 줌인 줌아웃 등을 써대니 당연히 언발란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군도”의 흥행이 주춤하는 것은 여타의 요인이 많겠지만 제 생각에는 “명량”과는 다르게 리얼리즘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