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꼬락 뜯어먹는데 재밌네? <이웃집 좀비>

개봉을 앞둔 <이웃집 좀비>는 신선한 충격이다.
유독 ‘좀비’ 영화만을 피해온 영화 편식인임에도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영화 안팎으로 포진한 여러 특별함 때문이다.

우선, 2천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된 웰메이드라는 점,
홍영두, 장윤정 감독(부부)의 살림집 옥탑방에서 만들어진영리한 ‘하우스무비’라는 점,
충무로 영화현장에서 조감독, 제작팀, 배우, 분장팀으로 만난 네 명의 영화꾼이 의기투합해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이 그렇다.

어느 한국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창의적인 제작시스템, 거기에 열정과 우정을 더해 탄생한 이 좀비영화는 좀비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개인적 취향조차도 단숨에 바꿔버렸다.

<이웃집 좀비>의 오영두, 홍영근, 류훈, 장윤정 감독

영화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빽 지르다가도 낄낄 웃게 되고, 어느새 코끝이 찡해 오는 걸 참다가 또다시 괴성을 치게 만든다.
이렇게 감정의 흐름을 타는 게 영화 관람의 키 포인트가 되겠다.

기대보다 개봉관 수가 적지만, 워낭소리가 영화의 힘으로7개에서 300여 개관으로 확대 개봉된 전례에 비춰 볼때, 그 숫자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웃집 좀비>는 2월 18일 개봉한다.


[ 요거슨 예고편 … ]

영진공 애플

까뜨린느 드뇌브의 매력에 흠뻑 빠지다.

 

‘시네 프랑스’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화요일마다 프랑스 고전, 예술 영화를 소개하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프랑수아 트뤼포의 <마지막 지하철>을 상영하던 날.

 

평일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무려 16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관객들로 극장 로비가 들썩였다.  크지 않은 극장이지만 좌석은 금새 가득 찼고
내 앞의 앞 좌석에는
<은하해방전선>윤성호 감독도 자리해 있었다.

그날은 트뤼포의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 <마지막 지하철>두 번 세 번 더 보고 싶을만큼 강렬한 영화라는 걸 확인할 수 있어 그럴싸한 하루로 남을 거다.


* 까뜨린느 드뇌브의 매력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시작부터 줄곧 한눈을 팔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까뜨린느 드뇌브 때문이었다.

워낙 유명한 배우니까 진작부터 모습과 이름 정도는 매치시킬 수 있었지만
예전부터 얼음처럼 차갑고 귀족적인 이미지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미인’이긴 하지만 금발의 마론인형처럼 인공적인 분위기에 별 매력을 못 느꼈고, 그녀의 출연작 역시 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재능도 알아채기 힘들었다.  이미 세자르상 여우주연상으로 인정받은 그녀의 명연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날엔 이상하게도 까뜨린느의 결벽에 가까운 완벽한 정갈함이, 어찌보면 과장되게 정돈된 깔끔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다가 온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군살 없는 몸매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정성스럽게 손질한 듯한 깔끔한 헤어스타일.  거기에 티끌 한 점 없이 투명하고 맑은 피부가 그랬다.  그녀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놓는 손짓도, 황급히 계단 위를 걸어 오르는 걸음걸이도, 남편을 위해 스튜를 젖는 동작도 모두 우아했다.




첫 공연을 성황리에 바치고
기쁨에 겨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선 소녀같은 천진함도 엿보였다.  그녀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는 건 그저 깊은 눈, 무게있게 흔들리는 두 눈동자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거울 속 스스로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으려면 안을 채우고 겉을 다듬는 노력이 필요하다.  깊은 눈동자와 정갈함으로 무장한 중년의 까뜨린느가 뇌리에 콕 박힌 까닭은 아마도 내외면의 조화가 탁월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쉽게도 <마지막 지하철>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몇몇 장면을 찾을래야 찾을 수 가 없다. 모든 이미지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어서인지 이미지 검색창이 소극적으로 탈바꿈 돼있다.

영화 이야기를 할래도 음악 이야기를 할래도 아무튼 어려워졌다.  그래서 내가 반해버린 까뜨린느의 모습은 기억 안에서만 훨훨 자유로울 뿐이다.

영진공 애플

애플이 사파리4로 노리는 것은?





최근, 애플이 웹브라우저 사파리 4 베타 버전을 발표했다. CSS3를 완벽하게 지원한다는둥, 새로운 자바스크립트 엔진 [니트로]의 탑재로 성능이 대폭 향상됐다는둥, 화려한 선전문구를 곁들이면서, 맥용과 윈도우용을 동시에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써 보면 빠르다. 윈도우 버전의 사파리 4와 크롬의 속도를 벤치마킹해 봤는데 구글 V8 벤치마크 슈트를 제외한 다른 모든 테스트 – 선스파이더 테스트 등 – 에서 사파리가 크롬보다 조금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줬다. 게다가 텍스트 렌더링 엔진도 윈도우 기본 엔진을 이용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 때문일까, 벌써부터 “애플이 본격적으로 브라우저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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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플은 데스크탑 시장에서 브라우저 전쟁을 벌일 여력도, 이유도 없다.


뭐시라? 똑 같은 웹킷 엔진을 이용해서 더 빠르고 멋지고 쌈빡한 브라우저를 만든 구글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급히 사파리 4를 만든 거라고? 만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한 것임에 틀림없다.


일전에 나는 애플이 윈도우용 사파리 3를 개발한 이유는 아이폰/아이팟 터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으면 웹어플리케이션으로 만들라던 애플의 권고는 사람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애플은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긴 척 하면서 아이폰용 공식 SDK와 함께 애플 앱스토어의 오픈을 선언했고,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 그리고 벌어지고 있는지 – 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뭐지? 애플에서 사파리 윈도우 버전을 계속해서 개발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순전히 홍보를 위해서다. 사파리의 핵심, 애플 비장의 무기, 웹킷을 홍보하기 위해서.


현재, 임비디드 OS를 사용하는 모바일 시장에서 웹킷에 대한 관심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1) 공짜고,


2) 맥, 윈도우는 물론 리눅스용 소스코드까지 공개되었고,


3) 같은 오픈소스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에 비해 소스코드 크기가 압도적으로 작은 데다가,


4) 저사양 cpu에서도 비교적 빠른 속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구글 안드로이드에는 웹킷 엔진을 사용한 크롬 웹브라우저가 들어갔고, 노키아도 일부 휴대폰에 웹킷 브라우저를 얹었다. Adobe AIR 런타임 엔진에도 웹킷이 내장되었고, AIR 어플리케이션은 웹킷을 기반으로 해서 실행된다.


즉, 일반 데스크탑 사용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웹킷은 야금야금 시장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특히 모바일 시장을 중심으로.


이제, HTML 5에 CSS 3에 몇 배나 더 빠른 자바 스크립트 엔진을 탑재한 사파리 4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제품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웹킷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제품에 웹킷을 기본 브라우저로 탑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강구할 것이다.


앞으로도 데스크탑 PC 시장에선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그리고 모질라의 파이어폭스가 계속해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사파리나 크롬 등을 비롯한 웹킷 기반 웹브라우저는 데스크탑 시장에선 어쩔 수 없는 3인자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스크탑을 벗어난 다른 시장에서 웹킷은 서서히 시장을 잠식할 것이 분명하다. 좋건, 싫건, 확실하게. 그리고 윈도우용 사파리 4는 그러기 위한 초석일 따름이다.






영진공 DJ Han













하드웨어 스펙을 높이면 잘 팔릴 거라고? 글쎄올시다!




IT 분야에서 이름난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이트의 하드웨어 리뷰는 거의 예외없이 스펙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열광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1) 이거 봐, 이 PMP는 DIVX에 XVID, WMV9, 거기다가 H.264까지 재생한다는 거야. 이걸 안 사면 도대체 뭘 사겠어?
2) 이건 AMOLED라고. 10000:1이 넘는 명암비를 자랑한단 말야. 엄청난 숫자 아냐? 이건 무조건 질러야 해!

이런 사용자들의 입심에 힘입어 한국의 IT 하드웨어 업체들은 용감하게 신기술을 도입하고 과감하게 수십 가지 기능을 박아넣는 데 아낌없이 돈을 투자했다. 그래, 이거저거 집어넣으면 값이 좀 비싸도 잘 팔릴 거야! 틀림없어!
하지만 그 결과는?
지속적인 마진율 악화와 수출 부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내수 시장의 불황으로 자금난에 허덕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펙에 열광하는 건 일부 마니아나 얼리어답터에 한정될 뿐이다. 그나마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쉽사리 돈을 쓰지도 않는다. 이거저거 따지고 재는 사람들이 돈지갑을 설렁설렁 열 리가 없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은 기술엔 별 관심 없다. 액정을 AMOLED로 박아넣건, 신기술을 무지막지하게 집어넣건, 그런 건 별로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는 a) 가격이 싸거나, b) 폭풍간지를 불러일으키는 쉬크함과 새끈함을 겸비하거나,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기능이 많은 걸 좋아한다고? 그런 건 근거 없는 도시괴담 수준의 신화다.

외국 시장의 현실은 이보다 더 각박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인터넷 쇼핑몰보다 대형 양판 체인이 유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애플이나 필립스, 소니 같은 대형가전업체에 비해 이름값이라 할만한 게 없는 한국의 중소 IT 업체가 이런 양판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따라서 a)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하거나 b) 어쨌건 엄청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해야 하고 c) 뭐가 어찌 됐건 무지막지하게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드웨어 스펙을 무지막지하게 올렸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는 덴 한계가 있다. 그나마도 애플 아이폰/아이팟 터치의 성능을 쫓아가기조차 벅차 숨을 헐떡일 지경이다.
일례를 들어 보겠다. 아이폰/아이팟 터치에는 3D 가속 칩셋 외에 주문 제작된 2D 가속 칩셋도 들어가 있다. 이것은 bitblit 함수를 가속 처리하는 칩셋으로 화면 처리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준다. 터치 스크린에서 아이콘을 끌어당기면 아무런 시간 지연 없이 움직이는 건 순전히 이 칩셋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가속 칩셋이 없는 다른 디바이스들은 터치 스크린에서 아이콘을 끌어당기면 0 콤마 몇 초 후에나 반응이 일어나기 일쑤다. 이건 3D 칩셋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거 하나 해결하겠답시고 2D 가속 칩셋을 주문 제작한다는 건 보통의 하드웨어 업체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짓이다.
아니, 주문 제작 칩셋이고 뭐고를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천만이나 억 개 단위로 부품을 구입하거나 라이센스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대형 가전업체의 구매력을 쫓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다. 따라서 고만고만한 한국 중소 IT 하드웨어 업체가 원가율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동급 가격대에서 대형 가전업체의 최신, 최고 스펙의 제품보다 한 단계 딸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고작이다.

이름값도 없고, 그렇다고 기능이 정말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게다가 가격 경쟁력까지 없다면, 해외 시장에서 애플이나 소니, 필립스를 이긴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날개돋친 듯 팔린다는 건 기대할 수조차 없다. 기껏해야 몇 천, 몇 만대를 팔고선 [의미있는 숫자]라고 자축할 뿐인데, 그 정도 숫자로는 해외 법인 유지비도 나올까 말까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블로거들은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한국 업체들에게 끊임없이 충고할 것이다. 하드웨어 스펙을 높이라고.
하지만 그 충고가 과연 얼마나 쓸모있는 충고일까 하는 점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적어도 여태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정말 무쓸모한 충고였으니까!

영진공 DJ. Han

[문화와 총] – 2장: 울증형의 일본, 조증형의 우리나라

이전 글 보기 : [문화와 총] – 1장: 2차대전 중 일본군의 안습 무기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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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라는 일본 정신과의사가 쓴 <튀는 신세대 숨는 신세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1995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구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사람들을 조증형과 울증형으로 구분합니다. 조증과 울증은 원래 정신질환의 진단명이지만, 히데키가 사용했을 때는 정신과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구분하는 틀입니다. 즉,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울증형으로 해결하고, 어떤 사람은 조증 형으로 대한다는 거죠. 사실 이런 구분방식의 기원을 따지자면 칼 구스타프 융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 아저씨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원형(archetype)에 집착한 사람인데, 그 원형 이론이 MBTI 같은 검사의 기초가 됩니다. 그렇다면, 울증형과 조증형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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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신세대 숨는 신세대의 도서정보. 이미 품절..

숨는 신세대에 해당하는 울증형 인간은 타인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깊이 파고듭니다. 얼핏 보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성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성격은 외향적인데 라이프스타일은 울증형인 사람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현대적인 사람들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든요(이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자기 것이랄 것이 분명치 않음에도 그 자기에게 의지하려다 보니 규칙에 의존합니다. 한번 어떤 것을 배우면 절대로 그것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큽니다. 이렇게 스스로만 주어진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소극적이나마 단죄하려는 스타일로 나갑니다.

그렇다면 조증형 인간은요? 네, 이들이 튀는 신세대에 해당합니다. 이 사람들은 울증형 사람들과는 정 반대로 자기가 아니라 남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들에 맞춰 자기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매우 쉽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유행에 따라가는 변화. 바로 이 유형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변화를 통해 발전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얼핏 보면 계속 변화하는 것 같지만, 유행이 돌고 돌듯이 결국 그 변화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순환됩니다. 발전이라기보다는 그냥 변화 자체일 뿐이죠. 게다가 언제나 남들에 맞춰간다는 기본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유형은 또한 외향성과도 다릅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표현을 잘 하는데, 이 조증형 사람들은 그저 따라할 뿐입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에서도 조증이나 울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울증과 조증의 특성을 쉽게 보여주는 이야기로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들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들은 울증형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직면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필요한 것을 모아 내부에 축적하고는 외부와 자기들을 차단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부의 자원만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죠. 이렇게 “외부와의 교류는 최소화 하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가 울증형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특히 베짱이처럼 지금 현재 순간을 즐기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베짱이는 반면에 조증형입니다. 이 친구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충실합니다. 그저 지금은 놀 때니까 놀 뿐이고, 미래는 나중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다가 겨울이 닥칩니다. 갈 곳 없어 개미네 집으로 찾아온 베짱이에게 개미는 냉정하게 문을 닫아겁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거죠. 역시 전형적인 울증형 선택입니다.

히데키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울증형 인간들의 문화라고 정의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문화는 기본적으로 스탠드 얼론 플레이어(Stand Alone Player)의 문화입니다. 전통적인 일본 밥상은 모두 1인용입니다. 식탁에서 누구와 같이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각자의 테이블에 각자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각자 먹을 뿐이죠. 스탠드 얼론 플레이 게임이 가장 발달한 곳도 일본이고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죠. 혼자 놀기는 울증형의 특성입니다. 이런 혼자 문화에 대해서는 윤서인님의 조이라이드 블로그에서도 묘사한 바 있습니다.
내용 보시려면 여기로 http://kr.blog.yahoo.com/siyoon00/1365571

울증형의 또 다른 특성은 쉽게 변치 않는다는 겁니다. 즉, 신뢰성과 지속성이 보장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번 배운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한번 맛있는 집은 수십 년이 지나도 계속 그 맛을 유지합니다. 공산품들도 마찬가지죠. 일본의 제품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요. 몇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유지하는 장인의 전통은 바로 울증형 문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본은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남들보다 더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혁신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개선의 결과죠. 이렇듯 끊임없는 개선을 통한 기술적 성취는 산업사회 시대의 일본을 최강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호환성에 대한 의식이 매우 약하다는 점입니다. 울증형 문화는 자체완결성을 중시합니다. 내가 배운 원칙에 따라 완벽하게 돌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뭐 하러 남에게 맞추냐는 거죠. 그 결과 일본은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통신혁명이 가장 늦게 일어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일단 일본자체가 20세기 동안 지나치게 성공한 산업사회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호환성에 대한 개념의 부족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휴대전화 기술은 그 자체로는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로 나가질 못하고 일본 안에서만 통용됩니다. 최근 <뉴스위크>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했더군요. 아래는 그 기사가 담긴 2007년 12월 12일자 뉴스위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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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산업화 과정에서는 가장 성공한 국가였는데, 어째서 정보화 과정에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결국은 호환성의 문제입니다. 카메라나 기타 정보통신기기에 사용하는 플래시 메모리 분야만 예를 들어보죠. 이 분야는 일본이 주도한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그 결과, 10개가 넘는 메모리 표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SD카드, MMC, 메모리스틱, 컴팩트 플래시… 기능이 많이 다르냐? 천만에요. 모두 그냥 메모리일 뿐입니다. 내부 부품도 결국 같아요. 그런데 그 똑같은 기능을 하는 부품 하나를 통일하지 못해서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마다 다른 메모리를 사게 만들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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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짓?

이 메모리 규격들을 보자면 저는 앞서 보여드린 2차 대전당시 일본 제식탄약들이 떠오릅니다. 결국 그때와 똑같은 짓을 반복한 거죠. 2차 대전 때와는 달리 이제는 기술적인 제약도 없는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건 미국이나 유럽에서 USB 같은 단일표준을 먼저 만들어놓는 것과는 정반대 패턴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각자 자기네 카메라에는 이런 모양의 메모리가 더 적절하다고 우기거든요. (물론 메모리 표준을 자꾸바꾸면 메모리 장사도 해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만…) 결국 자체완결성의 집착입니다. 소니가 자기들 제품에서만 통용되는 커넥터 규격을 만들거나, 자기네 제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파일압축 포맷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자체완결성, 제품 자체의 품질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자체완결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남들의 것과 얼마나 잘 호환되느냐도 무지무지 중요합니다. 애플이 시장주도권을 놓친 가장 큰 이유는 자체완결성이 높은 매킨토시를 만들고 벽을 둘러쳤기 때문이죠. 그동안 IBM이 PC 표준을 만들어놓고 그 틀 안에서 모든 업체를 포괄하며 기술적으로 훨씬 우월한 애플을 이겨버렸습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호환성을 무시하고 자체완결성에 집착하는 건 결국 스스로를 왕따 시켜버리는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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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 신뢰성, 나머지 모든 성능은 우수한 맥이 IBM의 호환성 동맹에 포위되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어차피 2차 대전 이전에 일본 식민지가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미국의 표준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총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한일합방 이전에 고종 황제께서 삽질을 하느라 온갖 표준의 총기를 사들인 것에 대해서야 워낙 기술도 개념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치고요.

그 이후의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조증형 문화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적어도 표준 문제는 일본보다 우월합니다. 정보화시대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의 보급속도는 아마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을 겁니다. 어디서도 쓰지 않던 CDMA를 냉큼 들여와 표준으로 삼아서 나름 국제 표준화에 성공한 나라가 우리나라죠. 인터넷에서만 사용하던 MP3를 들여와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만든 것도 우리나라이고, 지금도 뭐든 유행이다 싶으면 정말 전 국민이 그 유행을 따르는 나라가 우리나라죠. 호환성의 극대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어요. 일단 수십 년간 같은 모습으로 같은 품질을 보장하는 장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신촌거리도 매년 새 식당이 생깁니다. 한때는 찜닭이 유행이다가, 어느 순간 불닭으로, 뭐 이런 식으로 계속 바뀌어대죠. 그러다 보니 전통이란건 정말 박물관에나 있게 됩니다. 어떤 한 분야에 천착하는 사람들이 적으니까 전문적인 컨텐츠의 생산도 적습니다. 컨텐츠 유통은 활발한데, 정작 그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적으니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60-80%가 전부 카피본이라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모두 같은 유행에 휩쓸리니 다양성도 부족합니다. 유행 상품만 많고, 유행에서 벗어난 물건은 없죠.

물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적절한 조증과 적절한 울증의 혼합이겠죠.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울증형 문화가 존재하고, 일본에도 조증형 문화가 존재합니다. 괜히 히데키가 튀는 신세대 이야기를 한 게 아니거든요. 일본의 미래를 그 조증형 문화에서 찾은 셈이죠. 어쨌거나, 결론은 이겁니다. 어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나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에 맞춰서 변형하고(혹은 타협하고) 유통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너무 당연한 결론이라고나 할까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