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본주의는 얼마나 더 천박해지려는 걸까 …




토니 키틀러도 얘기했다. 마샬 맥루한이 진지하게 얘기한 ‘미디어는 메세지다’라는 말보다는 농담으로 얘기한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이어 그는 얘기한다. ‘미디어의 진실은 은폐됐다’라고.

인간은 경험으로 구성된다. 경험의 도구는 감각이다. 기존의 인간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으로 자신의 외부 세계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 더 있다. 미디어와의 접촉이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그것이 미디어다. 도시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은 미디어라는 환경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는 ‘접하는’ 게 아니라 ‘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도시에 사는 현대인을 구성하는 외부세계의 중요한 한 축이 미디어라는 거다. 문제는 미디어가 맥루한의 말처럼 단순하게 ‘메시지’ 곧 정보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인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기보다는 ‘감각의 만족’을 더 얻는다. 더 직접적으로는 새로운 욕망을 얻고, 그 욕망의 만족을 얻으며 산다. 그래서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욕망을 불어넣는다.

살아본 적도 없는 타워팰리스에 대한 욕망, 들어본 적도 없는 뉴칼레도니아 여행에 대한 욕망, 맛본 적도 없는 푸와그라에 대한 욕망은 기존의 오감이 준 것이 아니다. 미디어가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욕망의 배후에는 언제나 자본이 숨어 있다.

모든 욕망이 다 채워질 수는 없다. 건강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장기매매를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천박해질 때는 어김없이 ‘시장’이라는 만병통치약을 통해 채워져서는 안되는 욕망이 채워질 때다. 미디어가 이 음험한 욕망을 부추길 때 우리는 미디어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을 전파하는 미디어는 위험하다.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사회의 합의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그래서 화간이든 뭐든 간에 ‘청소년보호법’에 저촉된다. 미성년자를 욕망할 수야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남몰래 집구석에 숨어 혼자 해야 한다.

미성년 아이돌들이 미디어에 나와 섹시한 춤을 춰대는 것이 나는 그래서 음험해 보인다. 가져서는 안 되는 욕망을 부추기는 뒤에는 그래서 거대 기획사라는 자본이 숨어 있고 이 자본은 어김없이 채워져서는 안 되는 욕망을 시장에 유통시키는 거다. 미성년 아이돌이 살을 드러내고 엉덩이와 가슴을 흔드는 것에 열광하는 짓이 이제 더 이상 창피하고 불온한 짓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미성년 성폭행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미수다에서였나? 프랑스 패널이 나와서 얘기했다. 프랑스에서 성인 남성이 미성년 아이돌 이름을 줄줄이 외우다가는 손가락질 받는다고.

사랑 혹은 결혼도 교환가치가 돼 버렸다. 여자는 남자에게 섹스를 제공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좋은 차와 넓은 집을 제공한다. 그래서 남자의 중요한 스펙은 직업과 연봉이고 여자의 중요한 스펙은 미모다. 그래서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성형과 다이어트다. 조건을 갖춘 남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아름답다는 것에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하지만 그런 다양한 아름다움은 자본에게는 불리하다. 모든 제품에는 규격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내다팔아야 하는 자본에게는 규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규격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만들어내고 성형외과는 그 규격을 전파한다. 성형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스타워즈의 씨스리피오(C-3PO) 같은 얼굴이 언젠가부터 아름다운 얼굴이 되어 있다.

문제는 생존이다. 생존이 해결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랑 혹은 결혼이 교환가치가 되어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교환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내다 팔아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최근 뉴스를 보면 OECD 최고 남녀 임금 격차가 우리나라였다.

우리의 자본주의가 끝없이 천박해지고 있다.

영진공 철구

금융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보아야 할 영화 다섯 편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세계 경제 전체에 먹구름이 덮히고 있다.  빚장사치(Debt Trader)들이 대출금 하나에 새끼를 낳고 낳아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기면서 장부 상의 이익으로 돈 잔치를 벌이다가 급기야는 빵꾸가 나게 된 게 요번 사태의 요약되겠다.

이를 급하게나마 수습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물경 840,000,000,000,000 (8 백 4 십 조)원 이란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액수도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사태가 어찌 전개될지 지금 누구도 섣불리 예측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 폭발력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여 안절부절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화폐유동성의 위기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실물경제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리만브라더스는, 한국 경제는 튼튼하며 달러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타령만 늘어놓으며, 가장 위험하달 수 있는 시기에 ‘종부세 폐지’에 올인 중이다.

자, 여기에서 문제.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달러 가격은 어찌될까?  당연히 약세로 가고 현재 세계 화폐 시장에서도 그렇게 거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달러 환율은 오르는 게 정상일까, 내려가는 게 정상일까?

한국 경제와 금융이 튼튼하다면 당연히 내려가야지만 지금 환율은 연일 힘차게 산악등반 중이다.  그리고 지난 3개월 간 국제적으로 달러 환율이 오른 나라는 태국과 한국 뿐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로 인한 이익이 늘어난다고?  원료비는 어떡할 건데? … 유가가 내려갔다고?  석유의 가격은 달러로 매겨지는데 뭔 소리래?

경제와 금융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 서민들, 작금의 상황이 그저 강 건너 불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몇 번 보지 못했던 위기를 맞고 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다가오는 삭풍을 견뎌내야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다섯 편을 골라 소개하오니, 끌리시는 분들은 영화를 보시면서 현 상황에 대해 좀 더 이해의 폭을 넓히시기를 바라며 또 이런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시기 바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1. 겜블 (Rogue Trader, 1999)
   * 감독: 존 디어든 (John Dearden)
   * 주연: 이완 맥그리거

닉 니슨(Nick Neeson)은 영국의 거대은행 베어링의 직원이었다.  그는 싱가폴 증시(SIMEX) 선물(Futures) 부문에 파견되어 일하면서, 장부조작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선물투자 실패를 숨기고 마치 커다란 이익을 올린 것 처럼 꾸미는 수법으로 막대한 보너스를 챙겼다.

이런 그의 행각으로 인한 손실은 최초에 약 2 백만 파운드 정도였으나, 이 년 만에 2 억 8 백 만 파운드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1995년에 일본 증시에 대한 예측 실패로 그는 무려 8 억 2 천 7 백만 파운드의 손실을 끼치고 도피해 버린다.  이 손실로 베어링 은행은 결국 지불불능을 선언하고 파산해 버렸다.

말레이시아, 태국, 독일 등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하던 그는 추후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고, 6년 반의 형기를 선고 받았지만 1999년에 암 진단을 받고 풀려났다.  현재 그는 재혼을 하여 아일랜드의 한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의 자서전 “Rogue Trader”를 영화화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극 중에서 닉 니슨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
사실 베어링 은행의 파산이 온전히 그의 행각 만으로 초래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부 인사들의 여러가지 이해관계와 적절한 감시가 이루어지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가 결합하여 재앙을 초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보너스의 달콤함에 취해, 뻔히 닥쳐 올 엄청난 불행을 더욱 크게 부풀리기에 분주했던 그를 그저 철부지라고만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마이클 클레이튼
   (Michael Clayton, 2007)

   * 감독: 토니 길로이
   * 주연: 조지 클루니, 틸다 스윈튼

어느 시골 마을의 주민들은 세계 굴지의 농업회사 uNorth (극 중 명칭)를 상대로 6 년간에 걸쳐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uNorth의 제품이 독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마을의 주민들이 중독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나타난다.

이에 uNorth의 신임 법무팀장 카렌과 회사측 소송대리인의 해결사인 마이클 클레이튼이 해당 사건 속으로 휘말려들게 되는데 …


사용자 삽입 이미지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카렌.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불행한 사태 뒤에는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사실 그녀는 이 사건에 있어서 메인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녀에게 돌아올 이익이라곤 경영진의 칭찬과 이후 혹시나 주어질지도 모르는 파트너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몇몇 경영진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주저없이 실행에 옮긴다.

요새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작년까지만 해도 “종부세”의 당위성을 역설하기에 바쁘다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종부세”가 징벌적 세금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내느라 바쁘신 공무원분들.
밥줄 때문에, 애들 교육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겠지만 … 과연 아이들이 그런 부모들에게서 뭘 보고 배울지 …


사용자 삽입 이미지3. 인사이더 (The Insider, 1999)
   * 감독: 마이클 만
   * 주연: 러셀 크로우, 알 파치노

1996년에 미국의 “60minutes”(한국의 “PD수첩”과 비슷한 성격의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어느 전직 담배회사 중역의 인터뷰로 인해 촉발된 대규모 소송에 대한 실화를 극화한 영화.

담배회사 Brown&Williamson의 연구개발분야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제프리 위간드(실명)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그에 의하면 해고사유는 담배의 유해성을 줄이고자 했던 그의 연구 때문이었다 한다.  즉, 암모니아 공법을 적용해 니코틴이 보다 빠르게 인체에 흡수되게하여 담배의 중독성을 심화시키려했던 경영진의 의도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당시 담배와 화재의 연관성을 취재하던 유명 기자 로웰 버그만(실명)이 기술적인 문제로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한 담배회사들의 비리에 대해 파고 들어가는 단계로까지 진행된다.

여러가지 어려움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프리 위간드의 인터뷰는 방송을 타게 되고,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2,460 억 달러의 합의금이 도출된 소송이 벌어지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제프리 위간드와 알 파치노가 연기한 로웰 버그만.

우리는 제프리와 같은 사람을 “내부고발자”라 부르고, 영어로는 “Whistle Blower”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건전한 사회와 기업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조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나 나쁜 의도를 가진 배신자로 치부된다.
 
로웰 버그만 같은 이는 “외부고발자”라고 할 수 있겠다.  조직의 바깥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Whistle Blower가 바로 기자의 모습 중 하나 아닌가.

그런데 최근의 우리 사회는 호루라기를 불면 너무 시끄럽다고 불순하다며 꾸짖고 처벌을 들먹인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4. 어 퓨 굿맨
   (A Few Good Men, 1992)

   * 감독: 롭 라이너
   * 주연: 톰 크루즈, 데미 무어, 잭 니콜슨

풋내기 군법무관 대니얼 키프는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에 주둔 중인 해병대 병영 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두 피고인에 대한 변론을 맡게 된다.  살해 당한 이는 평소 불만이 많고 전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병사였는데, 사건이 있던 무렵에 그는 배치 부대를 변경시켜 달라고 요구하며 들어주지 않으면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하던 중이었다.

해군 수사관 조앤 갤로웨이와 함께 사건의 실체를 조사하던 대니얼은, 이 건이 단지 동료 병사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고위급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소위 “코드 레드” 사건 임을 파악하게 된다.

결국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코 부대 지휘관인 네이선 제습 대령을 증언대에 세우게 되는데 …


잭 니콜슨이 연기한 네이선 제습 대령.

그가 남긴 명대사가 있었으니 … “너는 진실을 알 자격이 없어! (You cannot handle the truth)”

그의 말인즉슨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직업군인들에게 일반의 기준을 적용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자신들 덕분에 후방에서 편하게 사는 나약한 국민들은 자신들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하는 게 과연 나라와 국민일까?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은 결국 제 손에 쥐어진 권력일 뿐이다.  나라와 국민이 있어 그에게 권력이 위임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요새 너무 많이 본다.  잠시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그간 자신들이 받았다고 생각한 설움(?)에 대한 한풀이를 하는 모양인가 본데 … 아서라, 그러다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너희들은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 (You cannot handle the power)


5. 땡큐 포 스모킹
(Thank You For Smoking, 2006)

   * 감독: 제이슨 라이트만
   * 주연: 아아론 엑크하트

닉 네일러는 담배 관련 연구기관의 부사장이다.  이 연구기관의 목적은 흡연과 폐암의 연관관계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이 단체는 담배회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며 흡연과 폐암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데이타를 만들어내 담배회사를 지원하는 로비단체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고 흡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을 맡고있는 닉 네일러는 주류업계의 로비스트인 폴리와 무기산업의 로비스트인 제이와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그들의 직업이 그리 자랑스럽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스스로 “죽음의 상인 (the Merchants Of Death squad)”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담배갑에 해골 표시를 해야 한다는 법안이 상정되자 닉은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렇게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악착같이 행하던 닉에게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는데 …


극 중에서 투 페이스 … 아니, 닉 네일러를 연기한 아아론 에크하트

그에게는 흡연권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담배회사로부터 커다란 이익을 보장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  윤리, 사명감, 역사적 의무 … 이런 거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바쁘고 피곤한 사람인 것이다.

그의 모습이 왠지 친숙하지 않은가.  그대와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그를 비겁하다고, 어리석다고 맘껏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할까.

조금 서글프지려 한다.


끗.


영진공 이규훈


 

그대들의 양아치 자본주의

 

경쟁해야 된다며? 자유 경쟁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된다며?

하다못해 초등학생들도 경쟁시켜야 된다고 애들 성적 만천하에 까고, 학교 등급 만천하에 나발부는 생지랄을 떤 게 누구니? 니들 아니니?

그런데 21일날 발표한 부동산 정책 보니깐 건설사는 예외더라? 전매제한 완화하고,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가능케 하고, 분양가 상한제 흔들고, 아파트 후분양제 사실상 없애고, 미분양 아파트는 정부가 매입해 주고. 왜 건설사는 경쟁 안 시키니?

지들이 존나게 만들어서 존나게 비싸게 내놓은 아파트 안 팔린 게 국민 탓이니? 그걸 왜 국민이 책임지니? 건설사는 경쟁 안 해도 경쟁력이 자동빵으로 생기니? 니들이 공구리 노가다 출신이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 거니? 아니면 니들이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다주택자 협의회라서 집값 떨어지면 골프장 회원권 줄여야 될 거 같아서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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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주인인 국민은 쎄빠지게 경쟁시켜서, 사교육비 팍팍 부어, 존나게 비싼 등록금 쳐내가며, 어렵사리 대학 졸업해도,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 하나 잡을까 말까인데 니들은 니들끼리 빨아주고 핥아주면서 배따지 두드리니? 국민들은 존나게 경쟁시켜 뒤쳐진 놈은 60일을 단식해도 돌아봐 주지도 않으면서, 농가 부채로 자살하는 농민들은 ‘지못미’ 한 번 달아주지 않으면서, 니들끼린 자빠지면 세워주고, 넘어지면 아까징끼 발라주고, 밥 굶으면 목구멍 안으로 밥숟가락 들이밀어 주니?
 
그래서 니들은 탈세하고, 뇌물 받아먹고, 위장전입해도 괜찮고, ‘니들 정책 싫어’라고 소리치는 국민은 ‘법과 원칙’이라고 다 잡아가니? 그 놈의 ‘법과 원칙’은 왜 니들만 비켜가니? 법원이랑 검찰이 니들 똘마니다 이거니?

그리고 니들 양아치니? 자유로운 자본주의 경제가 니들 원칙 아니었니? 재벌들 사면까지 해줬는데 투자 안 한다고 삐졌다며? 그런데 사면해주면 투자해야 하니? 법에 그렇게 나와 있니? 왜 재벌한테 시발시발거리니?

재벌이야 돈 될 일이 없으니까 투자 안 하겠지. 돈이 된다면 투자 안 할 바보가 어딨니? 니들의 임무는 자본한테 투자 안한다고 협박질하는 게 아니라 자본이 투자할 좋은 환경을 만드는 거 아니니? 그런데 니들이 경제 다 망가뜨려 놓고 투자 안 한다고 지랄대면 이게 자본주의니? 사면해주면 투자해야 된다는 법 조항이라도 있니?

법에도 없는 의무를 왜 재벌들한테 씌우니? 정부가 나서서 투자계획, 경제계획 다 세우고 관리감독하는 건 니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공산당 빨갱이들 수법 아니니? 니들 공산당이니? 니들 빨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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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입 돌아간다는 처서에 옵하 야마 확 돌아갈 일이 또 있드라?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대변인, 방송통신 위원장이 KBS 이사장이랑 KBS 후임 사장 유력 후보랑 시내 호텔에서 만났다며? 청와대는 KBS 사장 인선에 아무런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엊그제 아니니? 전혀 믿을 수 없는 소리를 그렇게 뻔뻔히 씨부렸으면 들키지는 말아야지? 사람 꼭지 돌아가게 이 무슨 개지랄이니? KBS 사장에 관한 얘긴 없었다고? 그럼 왜 만났니? 그것도 호텔에서? 옛날 니네 당 대변인 말마따나 그냥 불륜으로 만난 거니? 남자들끼리? 유 스핀 미 롸잇 나우?

박지원 의원이 얘기하드라. 니들이 잃어버렸다는 10년. 그 10년 전 니들이 청와대에 앉아 있을 때는 KBS 보도국장이 청와대 공보수석실에 나와 근무했다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미치겠니? KBS가 9시 뉴스 시그널 땡 치자마자 정권 애널 서킹해주던 시절, 맨날 오르가즘에 질질 싸고 좋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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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니들도 대통령 기록물 압수수색한다드라? 비밀로 지정돼 있는 대통령 기록들 몰래 열어본 뒤 청와대에 달려가 보고하고 뼈다귀 하나 얻어 먹을 생각하니 좋니?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했을 때 불어올 파장 따윈 꼬리 살살 흔들고 뼈다귀 받아 먹는 재미에 빠져 요단강 저 너머 바이바이니? 아유 귀여워 디지겄네. 정권의 강아지들.

그런데 니들이 하나 등한시한 게 있는 건 아니? 니들 집권하던 시기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 바로 인터넷.

인터넷에는 모든 기록이 DB화돼 쌓여 있걸랑. 니들의 찬란한 과거 꼴통짓 찾는 일을 10년 전에는 관련 정보에 접근이 용이한 전문가들만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초딩들도 할 수 있다는 얘기야.

더이상 예전처럼 쉽게 속일 순 없을 거라는 거 짐작은 하니? 내 장담하마. 4년 안에 니들을 이 나라에서 왕따 못시키면 내가 이 나라를 뜰란다. Zot 같아서 못살겠다. 정치인 때문에 국민이 Zot 같아서 못 살겠단 말이다.


영진공 철구

**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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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인간의 존엄

 

우선 영상 두 개부터 보시죠 ^^

본 사람도 많겠지만. 위의 영상은 EBS의 지식채널-e 에 나온 ‘광우병’ 관련 영상이다.

난 광우병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1980년대의 ‘영국’을 이야기 하려 한다.

위의 영상들의 시초는 모두 영국의 1980년대다. 물론 ‘미친 공장’의 경우 1970년대부터 시작된 소의 사료 이야기지만 그 배경에는 역시 ‘인간’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이 있다.

영국은 1970년대 – 1973년과 1979년 – 오일쇼크를 두 번 겪었다. 그 중 두 번째 오일쇼크 덕에 정권이 ‘철의 여인’ 대처에게로 넘어갔다. 물론 이 배경에는 숙련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넘어가면서 ‘변절’하는 등의 여러가지 사건이 많지만 어쨌든 ‘경제 위기’ 덕분에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복지 따위 집어 치우고 닥치는대로 ‘민영화’를 시켜버린 대처가 수상이 되어버린 거다.

대처는 이 때부터 1990년 퇴임때까지. 12년을 영국의 수상으로서 온갖 ‘암울한 일’을 벌였다. 이후에 ‘토니 블레어’ 총리 시대때 대처가 벌여놓은 ‘경제 호황’을 누렸다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처 덕분에 영국은 빈부 및 지역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영국의 근본적인 경제 문제의 근본은 건드리지도 못 했다.

어떤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경제 발전 시키겠다고 국민을 현혹시켜 당선 되어 놓고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은 채 ‘닥치고 민영화’? 더불어 그 뿐인가?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사람’이라는 최대의 가치를 가볍게 다루는 이 ‘정권’에게 저런 과거의 영국이 걸었던 길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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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 for Vendetta의 원작인 만화는 저런 ‘대처리즘’의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동시대를 살던 만화가가 ‘대처’ 때문에 암울한 시대를 한탄하기 위해 만든 거다.

권위주의 정부.

시장 논리를 내세우며 기본적인 ‘인권’ 마저 ‘국가’라는 명목으로 가볍게 여기고, 무시해 버리는 정부.

더 할 말이 없다.

‘사람’을 위해,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을 위해.
우리 조금만 더 ‘함께’ 생각하면 안 될까?

복지를 줄이고, 민영화를 시키고, 빈부 격차를 넓히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아름다운 세상이라 말하고 싶은가?

약육강식의 세상이 ‘본능’이 아니라 저 빨간 털 원숭이처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인간 아닌가?


영진공 함장

어버이날 단상

 

어버이날 지나고 내려가기엔 애매한 연휴라 지난 주에 미리 고향에 들렀다.

생활비만 드려왔지 변변한 선물 한 번 해드린 적이 – 물론 부모님 생일 때도 – 없어서 이번에는 맥북 판 돈도 좀 있겠다, 무언가 해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교외로 나가 봉성에 있는 숯불 돼지고기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1인분이 500g 인데다가 만원 밖에 안 한다. 더군다나 미리 구워서 나온다. 정말 싸고 맛 좋다.

다시 시내로 차를 몰고 나가면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영주에 거 마사이 족 신발 파는 데 있냐?”
“오거리에서 가고파 극장 가다가 우측에 있어요.”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다. 중소도시에도 하나 있으니.

아버지는 모터싸이클만 내리 10년 넘게 타셨던 이후로 무릎에 바람이 들어서 사다리 – 아직도 사다리 오르내리는 간판장이시니 – 타면 아프시다 하시고,
어머니는 한번 다치신 이후로 걷기만 하셔도 무릎이 아프시다 하시니 늘상 마음에 걸리던 게 이거였다.

‘뭐 한 켤레 돈 십만원 하그찌’

가격은 묻지 마시고 마음에 드는 색깔이나 고르시라고 얘기했다.

이것 저것 신어보시고 걸어도 다녀 보시더니 끝내 주인장에게 가격을 물으신다.

“한 켤레에 이십구만칠천원입니다.”

내심 놀란 건 나다.

‘뭔 신발이 왤케 비싸?’

어머니나 아버지나 묵묵히 신발만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아 가격 신경쓰지 마시고 색깔이나 마음에 드는 거 고르시라니께네?”

아버지는 신발 안을 들여다 보면서 ‘Made in China’랑 ‘Made in Vietnam’만 용케 찾아내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핑크색을, 아버지는 그냥 무난한 회색을 고르시고, 결국 두 분 다 한 켤레씩 구입해서 매장을 나왔다.

두 분 평생 3천원 뺀 30만원짜리 신발은 처음 신어 보신 게다.

형 장가갈 때 형수네서 혼수로 해오는 물품도 서민답게 예의만 갖췄지 비싼 거 아니 원하셨던 분들이시다.

물론 나도 30만원짜리 신발은 커녕 신사화도 제일 좋은 게 군용 에스콰이어 보급 단화가 고작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건 일종의 사치였다. 일상에서 신을 신발도 아니고 – 사실 저 마사이 족 신발은 걷기 운동 외에는 좀 불편해 보인다 – 산책하시고 걷기 운동 하실 때 신으시라고 사드린 ‘레저용 신발’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멈췄을 때 어머니가 얘기를 꺼내셨다.

“엄마가 너들 메이커 있는 옷도 한 번 못 입혀보고 키우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아나?”
“아이고 엄마, 다른 애들한테 밑보이지 말라꼬 맨날 깨끗하게 옷 입힐라꼬 고생한 거 내 모르는가? 말이사 바른 말이지, 메이커 한 번 못 입어보고 크는 바람에 나는 ‘메이커’가 뭔지도 모른 채 컸잖는가?”
“그렇나? 엄마도 똑같데이, 엄마도 뭐 메이커를 써 봤어야 메이커를 살 줄 알쟤.”

한바탕 차 안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사실 그러고 보니 내가 ‘나이키’라는 상표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였다. 농구화가 몇 만원 한다는 사실도 내겐 충격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농구화처럼 생긴 신발을 5천원에 난전에서 구해 오셨기 때문이다.

신발 뿐이던가, 난전표 티셔츠, 난전표 잠바….

집에 돌아와서 참외 하나 깎아 먹고 어머니는 새 신발을 신고 동네 운동을 나가셨다.

그리고 들어오시다가 지퍼가 다 나가 떨어진 내 신발을 보셨다.

“아는 다 떨어진 신발 신기고, 부모란 게 30만원짜리 신발을 사 신네 그려”
“거 2만원짜리 신발 쫌만 신으면 다 닳두만, 올라가서 새로 사 신을 끄여”

오늘도 수업 시간에 ‘브랜드 충성도’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 대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지금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건지, 아니면 이 엿 같은 상황을 무시하고 관조하는 건지, 아니면 어느 새 적응하고 사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자들끼리 모임에 ‘명품’ 하나 정도 꿰 차고 나가야 쫌 있어 보이는 사회.

남자들 패션에 ‘명품’ 하나 쯤 걸쳐야 ‘패션 감각’이나 ‘센스’가 있어 보이는 사회.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내가 ‘부모님께 명품 하나 장만해 드려야지’라는 마음이 아니라 부모님 무릎 아프시고 허리 아프실까 부담 좀 줄여 드리려 ‘기능’으로 신발을 골랐다는 점일 게다. 그렇기에 사실 지불 능력이 있어서 ‘뭔 신발이 이리 비싸’ 생각은 했어도 ‘돈 아깝다’는 생각 따윈 들지도 않았다.

평생 보세는 커녕 시장 난전에 널린 옷 가지나 사 입어 오던 가족.

1년 내내 쇠고기는 커녕 돼지고기 한 번 먹을까 말까 했던 가족.

난 서울 사는 고모네가 우리 가족 올라올 때마다 돼지고기를 구워 주길래 되게 잘 사는 줄 알았다. 물론 우리 집 보다야 잘 살았지만.

서울 와서 벼래 별 짓 다 하면서 부모님 생활비까지 챙겨도 1년은 커녕 1주일에 몇 번씩 고기를 먹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기가 막혔다.

왜 우리나라는 ‘지방’에서 우리 부모님 모시고, 1주일에 한 번 외식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여유있게 살기 어려운 걸까?

아니, 왜 그렇게 사는 방법을 억지로라도 막는 걸까?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어서, 내가 아직 고향에 살았더라면. 아직까지도 취업은 커녕 공사판에서 노가다나 뛰고 있었을 게다.

서울로 올라와 돈은 조금 더 벌었을 지언정.

부모님께 뭐 제대로 해드린 것 하나 없다.

지방 어딜 가나 듣는 이야기.

‘누구네 아는 서울 가서 돈 잘 벌고 있댜’

도대체 누가 자식키워 서울, 뉴욕 보내려 뒷바라지만 하는 세상을 만든 건가?

기회비용이고 나발이고.

난 우리 부모가 반평생 고생하시며 날 키워주신만큼, 조금 더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도록 내가 노력하고 싶다.

그저 1년에 몇 번 고향에 내려가는 게 아닌.

고향에서도 어렵지 않게 취업해, 부모님 옆에서 돌봐드리며 월급 받아 가족이 즐겁게 웃으며 살면 그 보다 더 나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무한 경쟁이니, 시장 원리니.

그토록 자기 가치를 높이는 것과 그 돈으로 명품을 비롯해 자기 치장을 하는 것과.

가족끼리 작은 차에 모여 앉아 웃으며 저녁 나들이 할 수 있는 삶과.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마음은 후자가 그립지만 현실은 전자가 아니냐고?

씨바 ‘민주주의’ 사회라면 후자를 이룰 수 있게 대다수가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비싼 신발을 온천이나 – 내 고향 영주에는 시에서 관리하는 온천이 있다. 목욕탕 정도로 싸다 – 공공장소에 두면 사람들이 가져갈까봐 고민하는 어머니께 결국 한 마디 했다.

“아 잃어버리면 또 사면 되잖는가?”
“그럼 아깝잖냐?”
“아 뭐가 그리 아까운가, 원래부터 없던 건데, 생겨서 잠깐이라도 즐거웠으면 됐지 비싸든 싸든 다 똑같이 발에 신고 다니는 건데, 잃어버렸다고, 누가 훔쳐갔다고 발만 동동 구르면 내 속만 타지 훔쳐간 놈 속이 타는가? 거 엄마가 불공을 그리 들였으면 법정 스님 ‘무소유’ 정도는 생각해야되잖는가?”
“그래도 아들이 사준 건데 아깝지.”
“아 거참 아들이 또 사준다니께네?”

자본주의를 치장하는 것은 욕심에 대한 허용이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는 방법은 과욕에 대한 제재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생각있는 사람들의 연대다.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