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 플랜”, 여주인공은 지형지물에 익숙해야 한다.

  



이 영화는 마치 “조디 포스터”의 오랜 팬이 ‘마침내’ 영화판에 뛰어들고 ‘뜻하지 않게’ 초짜가 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주연으로 “조디 포스터”를 기용하게 된 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볼을 스스로 꼬집으며 기뻐 날뛰는 마음으로 찍은 팬픽 같다.


철학도 출신으로 무려 컬럼비아 대학과 AFI 같은 영화 명문가에서 영화를 배운 사람이 그토록 인물 클로즈업으로만 일관한 이유는 아무래도 그거이지 않을까. 그 맘 이해못할 바 아니기에, 그리고 정말 아름답게 나이먹은 “조디 포스터” 모습을 실컷 보았기에 대강 수긍하고 만다.

영화의 전반부는 감쪽같이 사람 하나 바보되는 과정이고, 후반부는 악당과의 대결. 관객들에게 좀더 혼란을 주었으면 했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조디 포스터”라는 배우가 주는 강인한 이미지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던 것같다. 개인적으로 『패닉 룸』에서 “조디 포스터”가 미스캐스팅이라고 생각한 건 그 배우가 주는 믿음직한 강인함의 이미지 때문에 영화 내내 긴장도가 떨어졌던 탓이다. (뭔 일이 벌어지든 어쨌건 그녀는 악당을 물리치고 딸도 구할 것이니까. 원래 캐스팅대로 “니콜 키드먼”이 연기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폐쇄공간에서 점차 히스테릭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여주인공 캐릭터가 훨씬 더 잘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서투른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안전한 길을 택한다. 영화 내내 보는 사람들은 “조디 포스터”가 정신 착란을 일으켰을 가능성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은 채 도대체 범인이 누구고 무슨 짓을 했길래 저토록 완벽햐게 사람을 바보를 만들고 있나, 궁금하게 된다. 마침내 범인이 밝혀지고 난 뒤 “조디 포스터”와 악당의 대결 시간은 의외로 짧다. 악당은 맥없이 “조디 포스터”에게 당하고 만다. 
 



 


 


“나이트 플라이트”와 “플라이트 플랜”은 영화 러닝타임의 상당부분이 비행기 안에서 흘러간다는 점 외에도, 악당 캐릭터가 다소 약하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이는 시나리오상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듯싶다.


이제 우리는 여주인공에게도 – 완력은 약할지 모르나 – 지혜와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나아가 다른 이를 구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자립적 주인공을 기대한다. 이런 여주인공을 설정하려면 당연히 악당은 완력이 아니라 머리로 범행을 벌이는 사람이어야 하고, 총을 함부로 들이대서도 안 된다.


하긴, 함부로 완력을 들이대는 악당들이 넘쳐나는 시대란 아직 덜 문명화된 시대이다. 돈 때문에 범행을 계획해도 사람을 죽이는 건 별로 원하지 않은 악당의 일반화란, 사회 분위기 전체가 점차 소.위. 문명화되는 대신 아무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 그래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매력적이고 자상한 남자일수록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는 – 현상을 반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후 스릴러 장르 영화의 숙제란, 이러한 범인을 상대로 어떻게 다른 종류의 긴박감을 만들어내고 그걸 관객들에게 어떻게 설득시키며 새로운 장르 컨벤션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될 듯.


이에 대한 해법 중 두 영화에서 제시해주는 하나는 이것이다.


스릴러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앞으로 주변의 자잘한 소품 응용 기술과 재능을 더욱 길러야 할 것! (소화기 사용 예와 “나이트 플라이트”의 집안 가재도구의 다양한 이용 등).


그 두 경우의 공통점을 도출해 보면, 본격적인 대결은 여주인공이 매우 잘 알고있는 공간 내에서 일어나야 한다.


영진공 노바리


 


 


 


 


 


 


 


 


 


 


 


 


 


 


 



 

“나잇 & 데이”, 재미와 씁쓸함을 함께 느끼다






평범한 노처녀가 우연히 비밀요원과 만나 사건에 휘말리고 이 과정에서 사랑도 얻게 된다는 지극히 뻔한 설정의 <나잇 & 데이 (Knight and Day)>는 그러나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그 배역을 맡아 출연하게 되면서 일약 화제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이 영화에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솔직히 <나잇 & 데이>는 두 배우가 아니었다면 굳이 봐야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코믹 로맨스 액션’ 장르에 충실하다.

부담없이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팝콘 무비의 법칙에 충실하다 못해 진지한 메시지 전달은 커녕 논리적인 개연성조차 제대로 챙길 겨를 없이 마냥 달리기만 하는 작품이 <나잇 & 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나잇 & 데이>에는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나온다. 두 배우가 얼토당토 않는 각본과 연출의 부실함을 채워주면서 관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는 말이다.










<나잇 & 데이>에 출연한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를 보면 이 영화야말로 두 배우가 헐리웃과 세계 영화 시장에서 더이상 초일급 배우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50대의 나이에 가까워진 톰 크루즈는 첨단 미용 성형술의 도움을 받아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케이티 홈즈와의 결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소파 위로 올라간 이후 확실히 예전만은 못한 편이다.

물론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초일급 배우라고 해서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특급 프로젝트에만 항상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좋아하던 배우가 생활비나 벌러 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트로픽 썬더>(2008)에서의 이미지 변신이 환영할만 했을지언정 이런 식의 눈에 띄는 하향 곡선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게 만든다. 드디어 실사 영화 연출에 도전장을 내미는 브래드 버드 감독과의 차기작 <미션 임파서블 4>(2011)은 아마도 톰 크루즈의 영화 경력에서 마지막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그나마 톰 크루즈는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대로 삭아버린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나서고 있는 카메론 디아즈 때문이다.

마음은 여전히 <마스크>(1994) 시절이실테고 <미녀 삼총사 2>(2003)까지만 해도 생동감 넘치는 매력을 과시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먼저 결혼하는 동생을 둔 노처녀가 아니라 거의 과부처럼 보이고 있는 지경이다.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처럼 보톡스 시술 후유증으로 이상하게 부어버린 입술을 들이미는 것 보다야 낫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 로맨틱 코믹 액션 영화인 <나잇 & 데이>와 같은 영화에서는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을 대접받은 것처럼 불만스러워 할 수 밖에 없다.

여성 관객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런지 모르겠지만 카메론 디아즈는 비밀 요원과 사랑에 빠지는 ‘귀여운 여인’이 아니라 CIA나 FBI의 베테랑 요원 쯤으로 나와줘야 하는게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나잇 & 데이>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눈요기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개연성이라곤 일절 없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데다가 별다른 고민 없이 써제낀 듯한 마지막 장면의 로맨스 대사들이 헛웃음을 자아내긴 하지만 몇 군데 확실하게 터뜨려주는 코믹함과 액션 장면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미국 내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등지를 오가며 촬영한 근사한 풍경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그저 보는 동안 충분히 즐기고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깨끗이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애초에 톰 데이 감독에 크리스 터커와 에바 멘데즈의 조합으로 영화가 만들어질뻔 했었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편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의 캐스팅으로 그나마 이런 정도 규모의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패트릭 오닐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자체가 팝콘 영화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톰 크루즈에 대한 오랜 팬심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이다. 피터 사스가드와 폴 다노, 비올라 데이비스와 조르디 몰라 등의 출연은 그야말로 재능의 낭비요 알바 뛰러 잠시 출연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정도다.


영진공 신어지

 


 

“언 애듀케이션”, 꿈이라면 부디 깨지 말길 바랬건만


줄거리는 단순하다. 대학 입학을 앞둔 여고생이 중년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진학을 포기하고 결혼할 마음까지 먹지만 그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님을 크게 깨닫고 원래의 가던 길로 돌아왔더라는 얘기.

흔한 성장 스토리인 동시에 뼈아픈 첫사랑의 실패담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 <언 에듀케이션>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매혹적이다. 나중에 그 매혹적인 순간들이 얼마나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는지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했던 만큼 매혹적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주인공 제니(캐리 멀리건)의 대사는 어쩐지 재미가 없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얘기는 고리타분한 잔소리에 가깝다. 하지만 제니가 거쳐온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그 한 마디에 실린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사실 진작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강했다. 그래서 아무런 암시도 없이 진실이 드러나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꺼꾸로 뒤집혀 버리는 이런 방식을 순순히 수긍하고 만다.

에밀리 왓슨과 케이티 홈즈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듯한 캐리 멀리건은 너무 당연하게도 <언 에듀케이션>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열쇠다 – 가끔 주인공 배우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가 좌우되는 경우를 봐서 하는 얘기다.

만약 여고생처럼 보이기만 하던 제니가 햅번 스타일로 차려입었을 때에도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이 여배우가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고 따라서 영화 자체도 영 신통찮은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된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피터 사스가드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표현보다는 선악의 개념 자체를 흐리게 만드는 부류다. 그래서 데이빗 역할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 배우 어디서 봤었나 결국 생각해내지 못했었는데 전부 미국인으로 출연한 영화들이었고 실제로 피터 사스가드는 <언 에듀케이션>에 출연한 유일한 미국인 배우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영국인 사업가로 변신해 제니와 관객 모두를 홀딱 넘어가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언 에듀케이션>의 이야기를 데이빗의 입장에서 다시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데이빗의 직업은 결국 제니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힌트가 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빼앗아 가는 일이 데이빗의 직업이었다.
 
어찌보면 남다른 심미안을 가진 타고난 감식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해 데이빗의 삶은 본인과 가족,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남겨주곤 하는 것이다 – 어찌보면 영화 속에서 더 자주 다뤄지곤 하는 쪽은 제니 보다 데이빗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 에듀케이션>은 영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린 바버가 문학잡지 <그랜타>에 기고한 글을 기초로 닉 혼비가 시나리오로 완성한 작품이다.

린 바버 자신도 동명의 책을 써서 2009년 6월에 출간했다고 하는데 닉 혼비는 린 바버의 책을 참고하지 않고 오직 최초의 짧은 글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그래서 데이빗의 캐릭터와 직업은 아마도 온전하게 닉 혼비 자신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언 에듀케이션>은 덴마크 출신의 여성 감독 론 쉐르픽의 섬세한 연출과 함께 아름다운 프러덕션 디자인 담당자의 이름까지 찾아보게 만든다. 앤드류 맥알파인이다.

영진공 신어지





“언 에듀케이션”, 17살 인생 최고의 선물


제니(캐리 멀리건)의 나이는 17살. 한국나이로 치면 18살쯤. 그때 난 즉석떡볶이, 스티커사진, 브래드피트, 스크린,
로드쇼 같은 것에 빠져 살았다. 가끔 일탈을 꿈꿀 때도 있었지만 기껏 점심시간에 학교 담을 넘어 친구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명동에 나가 핸드폰 줄을 사오는 걸로 만족하곤 했다. 제니처럼 친구들과 러시아제 담배를 나눠 태우며 파리의 환상을 노닥거리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때 난 남자가 뭔지도 몰랐고, 책을 나눠 읽을 이성 친구 하나 없었다. 헌데 제니는 진짜 남자 데이빗(피터 사스가드)과
대화도 나누고 데이트 날을 잡고 예쁘게 치장하고 꿈같은 파리 여행도 떠난다. 아 물론, 첫날 밤 아닌 첫날 밤도 함께 보낸다.

이 모든 게 너무 너무 부러워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한 것 같다. 제니의 수줍은 미소와 데이빗의 유쾌한
농담으로 점철된 첫 만남 장면에선 거의 넋을 놓았다. 상큼한 제니의 미소가 내 것인 양 시공간을 무시한 채 영화에 푹 빠졌다.
곧 제니가 마주칠 진짜 현실을 까맣게 모르고서.

남들처럼 무난해 별 감동도 깨침도 없던 지난날을 비춰보면, 제니의 경험들이 (비록 행복과 불행의 극단을 오갔더라도) 분명 그녀에게
사랑과 욕망 같은 감정을 직시하고 또 견제하는 힘을 얻게 해 줬을 것이다. 오드리 헵번이 보였을 법한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모든
걸 포기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은 순수함은 곧 현명함으로 성숙됐을 것이다.
 

나의 과거에게 이 영화를 주고 싶다.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생고생하는 사춘기의 여고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혹 더러운
경험으로 인생 망쳤다고 생각하는 안타까운 소녀들도 주저 말고 이 영화 꼭 보길 바란다. 실패는 언제나 도약하는 계기를 준다.
제니처럼.


<언 애듀케이션>은 영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린 바버의 실화를 닉 혼비가 각색한 작품으로, 3월 18일 정식 개봉한다.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