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인 어 홀”, The road of down in a hole (EP)




[ 2006, 한국, WASP/DNC ]

“제노사이드”, “싸일런트 아이”, 등을 거친 보컬리스트 “서준희”가 2003년 결성한 밴드 “다운 인 어 홀 (Down In A Hole)”은 밴드 이름(Alice In Chains의 곡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가 꾸준히 해왔던 블랙-데쓰 계열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DIAH의 데뷔 음반은 잘 짜여진 악곡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녹음한 티가 나는, 잘 만들고도 아쉬운 음반이었다. 이후 “수요예술무대”와 같은 오버그라운드 무대까지 넘보던 밴드는 어느날 자취를 감추었고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후 DIAH의 주인격인 서준희는 홍대 앞 클럽 “WASP”의 주인장으로 변신, 홍대 앞에서 점점 지분을 잃어가는 메탈 계열 밴드들의 아지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DIAH은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인 2006년 벽두에 튀어나온 이 음반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꽉 찍어주고 싶은 음반이다.

기타리스트 “이동규”와 보컬이자 주인장 서준희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교체된 상황에서 발표된 새 EP는 과거와 거의 단절에 가까운 파격적인 변신을 들려준다. 데뷔 음반에서 “CInderella”의 곡을 커버한 것이 우연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는 미국적인 멜로디와 서준희 특유의 개성넘치는 보컬이 적절히 결합되어있다.

이 음반은 1년여 동안 띠엄띠엄 녹음한 5곡(1집에 수록되었던 「Elegy」의 재녹음을 포함)의 모음집 성격이기 때문에 완전한 일관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전반적으로 밴드가 추구하는 바가 깊이있는 멜로디와 세련된 악곡을 추구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히 짚어진다.


끈끈하게 늘어지는 보컬에서 그로울, 샤우트, 팔세토까지 다양하게 해내는 서준희의 보컬은 정말 개성있다. 그리고 이런 팔색조 보컬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화려한 기타연주와 잘 어울리는데, 특이하게도 서준희는 묵직한 기타들과 더 성공적인 조화를 이뤄내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대의 DIAH은 싸일런트 아이 1집 이후, 가장 그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밴드인 셈이다.

DIAH의 새 EP는 흔히 Alternative Metal이라고 분류되는 음악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성격이다. 그러나 그 동네 음악 특유의 뭔가 메탈도 아니고 그런지도 아닌 허전함 따위는 기대하지 마시라. 밴드의 핵심이 되는 두 멤버의 연륜이 반영된 듯, 리프와 톤에 있어서 톱니바퀴처럼 꽉 짜여진 음악이니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좋은 연주임에도 좀 더 맺고 끊음이 확실했으면 싶은 드럼 플레이인데, 이 부분은 연주력의 문제라기 보다 취향(내가 워낙 딱딱 끊어지는 분절음을 선호한다)이기 때문에 이를 음반에 있어 문제로 제기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심벌웍은 아주 빼어나다.

앨리스 인 체인스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반이고, 앨리스 인 체인스를 모르더라도 굴곡이 심한 리프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보컬을 좋아한다면 강하게 추천하고픈 음반이다.


영진공 헤비죠

“Two Sides of If”, 비비안 캠벨의 처음이자 유일한 솔로 앨범


[2005, 영국, Sanctuary]

“Def Leppard” 활동과 동시에 너무 밋밋해졌다고 욕(?)을 먹는,
30년 전 과거사인 “Dio”의 기타리스트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기타쟁이,
 “비비안 캠벨(Vivian Patrick Campbell)”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솔로 음반.

사실 나는 이 음반을 처음 접했을 때, 막연히 연주 음반일 것이라 생각했다. 은근히 과거의 활화산 같던 연주를 기대하면서 ……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본작, 『Two Sides Of If』는 블루스-록 음반이었다. 사실 비비언의 블루지한 연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Jeff Beck”의 연주곡(「Led Boots」)도 꽤 담담하게 커버한 적이 있었던 비비언이고 보면, 블루스 외도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엔 왠지 섭했다. 나 역시도 여전히 청자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들던 Dio시절의 비비언에 대한 기억이 커다란 위치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블루스-록이라고 하지만 내용물은 어쿠스틱과 세미 솔리드 바디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울림으로 상징되는 고색창연한 블루스에 가까운 연주가 중심이고, 가끔 곁들이로 매끄러운 솔로가 살짝 얹혀진 모습이다. 맨 처음 이 음반을 듣고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봐, 비비언 왜 그러는거야?”

그런데, 밤샘 작업과 과도한 알콜, 컴까지 고장나서 혼이 쏙 빠진듯했던 한 주를 보내고 무거운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려는 시간에 우연히 집어든 이 음반은 좀 다르게 들린다. 클래식 록 좀 들었다 싶은 양반들도 다 아실 블루스의 명곡들로 그득한 본작에서 갑자기 추억과 평화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아마 비슷한 시도(헤비메탈 기타리스트의 블루스 원정기)를 했던 “Gary Moore”에게 이 곡들을 연주하라고 한다면 훨씬 헤비하고, 강렬하지만 과도한 감정 이입이 부담스런 연주로 채워버렸을 듯 싶다.

그러나 비비언은 이 음반에서 좀체로 흥분하지 않는다. 짜릿한 맛이 생명인 「The Hunter」조차도 기타 솔로와 블루스 하프(하모니카)를 함께 내세우는 양보의 미덕을 보인다. 전혀 날카로운 솔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들어보니 편안하게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들 – “Eric Clapton”, “Paul Kossoff”, “Peter Green”, “Jeff Beck”, “Keith Richard”, “Rory Gallagher”, 등 – 을 추억하며 연주한 듯한 인상이다.

즉, 수록곡 대부분이 미국 흑인들의 (소위 ‘원단’) 블루스들이긴 하지만, 비비언은 미국 블루스가 아니라 영국 블루스-록 1세대가 그 곡들을 카피하던 1960년대 중, 후반을 떠올리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주와 잘 맞지 않음에도 흑인 명인들을 게스트로 모셔왔던 게리 무어보다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을 까발리고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듯한 느낌이다.
 
뭐 이 앨범에도 “Z.Z.Top”의 “Billy Gibbons”를 모셔다가 구색맞추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기븐스는 정통파 블루스라기 보다 아메리칸 록커에 가깝기 때문에 연주의 분위기도 서로 아주 잘 맞는 듯 들린다. “Terri Bozzio”의 드럼도 매우 심플하고 따사롭다. 카멜레온 같은 그의 드러밍이야 워낙에 유명하지만, 이번엔 정말 힘을 빼고 함께 즐기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연주자들 역시 그렇고. 단 3일 만에 녹음을 해치운 것이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음악이다. 

굳이 토를 단다면, 음반 후반부로 갈수록 데프 레파드 기타리스트 비비언이 자꾸 보인다는 것인데, 녹음 순서를 알 수 없으니 맘대로 상상해 볼 뿐이다. 아마도 데프의 멜로딕 정교 기타 기운이 녹음 처음엔 자기도 모르게 나오다가 둘 째, 셋 째날에는 옛 기억이 더 새록새록 나서 편하게 쳤을 것이라고 ……

ps. 1
외국 평론가들의 평가나 나의 느낌도 명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음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비언 캠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 가는대로, 맘 가는대로 한 번 따라가며 찬찬히 편하게 감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특히 아직도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넘버 원으로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

ps. 2
생각보다 비비언 캠벨의 목소리가 텁텁하면서 매력있다. 록 보컬과 달리 블루스 보컬은 좀 더 감정을 잘 살리는 거친 맛이 필요하니까. 그러고 보면 슈퍼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은 노래도 다들 기본적으로 받쳐주는 거 같다. 워낙 노래 잘하는 보컬과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런가???

영진공 헤비죠

“Alone Again”, 임달균 퀸텟이 펼쳐내는 최선의 비밥





[ 2005, 한국, Take one/유니버설 ]

한국 대중음악계 거의가 그러하듯, 재즈계 역시 그 쬐끄만 영역 안에서도 편식이 심각하다. 퓨전에 대한 어마어마한 집착에 비해 모던 재즈, 그 중에서도 비밥 성향의 음악인을 찾기란 참으로 힘들다. 여기서 잠깐, 비밥이 194,50년대 재즈 아닌가라고 이야기한다면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의 음악 아니었냐고 반문하고 싶어지니 이 얘긴 담 기회로 미룬다.

오늘 내가 꺼내 듣고 있는 색소폰 주자 임달균의 첫 번째 독집 음반은 한국 재즈계에서 참으로 만나기 힘든 비밥 성향의 음반이다. 나의 비밥에 대한 개념은 Charlie Parker나 초기 John Coltrane이 아니라 Sonny Rollins를 통해 틀 지워졌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 음반은 한참이나 비밥의 박력(?!)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그럼에도 정석적인 스윙 위에서 잘게 나눠진 코드를 피아노(임미정), 색소폰(임달균), 트럼펫(Darren Barrett)이 교차하고 협주하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비밥의 그것이다.

어쩌면 비밥은 그 구성원리 – 쿨/모달 재즈의 창조적인 음의 나열에 비해 코드의 나열이라는 단순한(?크억!) 전통방식으로 조제되야 맛이 난다는 점 – 부터 현대의 젊은 연주인들과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음반은 모달에 비해 훨씬 심플해 보이는 비밥이 연주인과 달리 청취자 사이에선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인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닌가? 아님 말구. 어쨌건 난 비밥이 좋더란 말이지!!!) 아예 이 음반은 전반적으로 코드와 코드 사이에 과다한 테크닉을 줄이고 순수한 음을 나열하여 비밥의 심플한 맛을 강조한다.

임달균은 호쾌한 블로잉 보다는 섬세하고 멜로디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이정식(비밥 스타일의 음반을 몇 장 발표했고 상당한 수준이었다)의 너무나 강렬해서 때로 다른 파트를 주눅들게 하는 연주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는다.

독집 음반(2003)에서 피아노 트리오를 중심으로 부드러운 쿨 재즈를 선보였던 임미정의 피아노는 그래서 임달균의 연주 성향과 상당히 조화롭다. Darren Barrett의 트럼펫은 리더인 임달균을 체이싱(Chasing)하는 수준을 넘어 때로 긴 솔로의 중심을 잡아주는데, 요런 대목에서 이름값 톡톡히 한다고 말할 수 있다.(혹, 이름값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건가…. –;)

전반적으로 최고의 음반이라기 보다 최선의 음반이다. 이 말은 이 음반의 질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재즈 상황에서 음반으로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비밥이란 얘기다. 몇 해 전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는 무대에서 Sonny Rollins의 곡을 연주했었다. 사실 (재즈에 젬병인)나는 임달균이 누구의 곡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의 매끄러운 스타일로 그 곡을 소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난 노란색 커버가 있는 음반은 이상하게 좋게 들린다. Coleman Hawkins에서 Stryper를 지나 P-Type에 이르기까지 …… ^^;;;


영진공 헤비죠


 

“Blizzard Of Ozz”, 다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감동의 연속


꽤 심한 피로를 느낄 때마다 내 손은 자연히 헤비메탈 음반으로 간다. 그것도 정통파라고 불리는 쪽으로. 술이 깨지 않을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오늘도 이상하게 이 음반으로 손이 간다. “Mr. Crowley”는 언제 들어도 소름이 확 돋고, “Suicide Solution”은 심박수를 두배로 끌어 올려버린다. “Good Bye to Romance”와 이어지는 청아한 “Dee”까지 오지와 랜디(Randy Rhoads)의 감수성은 극에 달한다. “I Don`t Know”와 “Crazy Train”의 발랄(?)하고 힘찬 리프는 기타 좀 쳐봤다는 30대 이상의 엉아들이라면 한 번 쯤 연습해봤음직한 아이템이다.

이 음반에 실린 9곡은 오지 자신도 다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감동의 연속이다. Black Sabbath에서 탈퇴한 후, 자신이 꿈꾸던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는 음악 세계를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음반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헤비메탈의 분기점에서 양자 모두의 기운을 내뿜는 독특한 음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Crazy Train”과 “No Bone Movie”를 비교해보라. 1980년대와 1970년대의 록 음악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가운데 “Mr. Crowley”는 이전 무거움에 있어서는 1970년대의 정신을, 사운드의 신선함과 기타 연주의 유러피안 클래식적인 접근은 1980년대의 진수이다. 그래서 오지의 이 음반은 두고 두고 명반 중의 명반으로 칭해지는 모양이다.

오지, 지금 돌아보면 코메디언이 된, 공연 산업의 마이더스의 손이 된, Kiss와 함께 막 살아도 잘 사는 록 스타의 전형이다. 근데, 이 음반 만들 때도 그가 그랬을까? 이 음반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는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의 마왕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냥 늘 궁금하다.

다시 들어도 Bob Daisley의 베이스 연주는 힘이 있으면서도 섬세하게 필인을 잘 넣는다. 이상하게 이 음반 = 랜디+오지(가끔 Don Airey)의 공식으로 얘기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섹션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Lee Kerslake는 이 후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 Uriah Heep에서 연주하다가 지금은 뭐하는 지 모르겠다.

리의 연주는 상당히 부드러운 편인데, 그의 후임자인 Tommy Aldridge가 음반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이 음반의 곡들과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근데… 랜디의 부드러운 기타 연주는 타미의 힘으로 꽉 찬 연주가 뒷 받침될 때 더 힘을 받는 듯한 인상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기타리스트 중에서 강한 리듬 섹션이 있을 때 이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오히려 덕분에 자신이 더 빛나 보이는 유연한 연주자는 흔치 않다. 그래서 랜디의 죽음은 생각할 수록 더욱 아쉽다 T.T

영진공 헤비죠

“바보들의 행진” OST 다시 듣기 (2)



 바보들의 행진
영화음악 『바보들의 행진』에 실린 송창식의 곡은 이후 그의 행보를 모두 점쳐볼 수 있게한다. 특히 그가 작곡한 두 곡, “왜 불러”와 “고래사냥”은 이미 트로트와 포크의 만남에 싸이키델릭-록의 반주까지 고려한 모습이다. 싸이키델릭으로 만든 고래 소리가 들어있어 콜렉터들의 표적이 되었다는 영화음악 버전 “고래사냥”이 실려있는데, 막상 들어보니 그 고래 소리가 나에겐 별반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행진곡 풍의 곡에서 하몬드 올갠과 슬라이드 기타가 역동적인 자리(중심은 물론 아니지만)로 위치지웠다는 것은 신선하고 중요한 지점으로 들린다.

“고래사냥”은 기본적으로 마칭 드럼(꽹과리 소리를 흉내냈다고 해도 좋다)-행진곡 풍의 작곡에 촛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슬라이드 기타로 흥을 돋군다. 흥 돋구기는 트로트를 대놓고 차용한 “왜 불러”의 가창법에서 더 절정이다. 후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의 하나가 되는 트로트이면서도 송창식의 것으로 귀결되는 이 ‘흥'(을 돋구는 창법)과 기발함이 이미 이때부터 충분히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되는 점이 있다. 송창식의 이러한 시도들이 1970년대 초반에 들어 앞서 나간다는 가수들이라면 한번씩 머리 속에 그려보거나 (거칠게)시도했다는 데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 있는 신화 – 신중현은 논외로 치더라도 키브라더스(윤항기)는 산타나의 음악을 리메이크하면서, 한대수(두 번째 음반)는 자작곡에 농악과 타령을 집어넣었다. 포크와 록의 만남은 1974,5년 봇물터지듯 여기 저기서 시도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르면 젊은 음악인들 사이에 장르를 넘어선 다양한 실험이 여기저기서 마구 시도될 만큼 무르익었었다는 얘기다.

또한 『바보들의 행진』음반에는 임희숙, He5, 김세환, 이장희, 투 코리언스의 노래가 더해진다. 조합만 봐도1970년대 초반 새로운 음악으로 등장한 쏘울, 록, 포크가 하나로 모인 느낌이지 않은가? 특히 주목할 이는 포크 계열이라고 하나, 특유의 반항적 이미지와 록을 대담하게 수용했던 이장희(그리고 그의 곡 “한잔의 추억(음반에는 ‘한장’으로 오기되어 있다)”을 부른 더욱 위악스런 목소리로 부른 김도향과 손창철 – 투 코리언스)의 가세이다.

포크 음악인에서 막 새로운 음악으로 전진하는 송창식과 그 보다 앞서 록을 받아들였던 이장희가 한 음반에서 만나는 장면은 1970년대 중반 청년 문화/대중음악이 하나의 모습을 완성해가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음반 전체를 넘실대는 음악은 (이미 단속과 규제의 대상이 된 저항적 포크는 많이 탈색되었지만) 록, 소울, 포크가 휘감겨 들어와 판을 차리고 아예 그 이전 대중음악 판 자체를 뒤집어 버릴 듯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국 음악의 여러 요소가 파편적이지만 직접적으로 젊은 세대를 자극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기존의 주류였던 트로트마저 품어서 새롭게 주물럭 거릴 수 있을 만큼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고 또 다른 색깔마저 찾은 것이다.

3. 그래서 더 답답한
『별들의 고향』에 이어, 『바보들의 행진』은 단순히 잘 나가던 음악인들의 편집 음반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도들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모이고 마무리 단계로 나가고 있음을 슬금슬금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정권은 더욱 미친듯이 이들을 찍어누르고 마침내 질식사 시키긴 하지만.

사실 이 음반은 폭발하지 않는다. 영화 만큼이나 넘치는 음악을 자신 안에서 고사시킨다. 이 기운은 그렇게 그 해(1975년)를 다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청년문화로 칭송되던 음악은 대마 연기와 함께 그렇게 금지곡으로, 활동 금지로, 미국행(추방에 가까운 이민)으로 사라진다. 새로운 기운에 찔끔해서 부랴부랴 눌러 죽이기 바빴던 박정희와 그 밑의 똘마니 새끼들은 자기 색을 찾기 시작한 젊은 음악밭을 락스로 싹 행구고 그래도 남은 애들은 뿌리까지 파 내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박정희가 좋아했던 그 5음계(요나누끼 음계)로 작곡된 “새마을 운동가”와 트로트로 채워놨다. 젊은 음악이 피어오리기 전, 딱 10년 전 음악으로 타임머신을 돌려버린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TV 속에는 트로트 가수만 나왔다. 그 때 난 그게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날 즈음엔 그와 전혀 다른 그리고 완성되어가던 다른 음악이 있었음을 전혀 알수 없었다. 그저 외삼촌이 들려주는 음악들이 신기하고 좋아 보였을 뿐.

『바보들의 행진』 O.S.T.나 1970년대 초반의 한국 가요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유입인)힙합을 제외한 한국 대중음악은 이 때 이미 다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록 밴드 중에는 라틴 록이나 레게를 지향하는 밴드들이 있었고, 포크 진영에도 고급스런 발라드를 지향하던 이들이 있었다. 아마 이들이 모두 박정희 덕분에 압사 당했기에 1980년대 조용필 신화는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조용필 자신도 대마초의 피해자였지만 꾸준히 살아남았던 반면, 대부분은 정권의 짓밟힘에 트로트로 근근히 유지하거나 아예 음악을 꺽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이들이 모두 계속 음악을 했다면 ……? 조용필급 뮤지션, 혹은 그 이상으로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음악인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까? 재즈나 록이 한국 대중음악의 영원한 음지식물로 남지 않았을런지도.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지랄맞고 짜증난다. 차라리 이런 음반들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답답함이 생기지나 않았을텐데.

4. 지금은 뭐 다르나
임희숙이 부른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쏘울과 스탠다드 팝이 섞인 듯한 저 멋진 노래를 거미에게 부르라고 하면 밑도 끝도 없는 한국식 알앤비 아닌가하는. 물론 30년 전 연주이니 악기 소리는 꽤 낡았지만, 그것도 사운드만 지금 가요 세션 악기 소리로 바꿔주면(연주 패턴은 그대로 놔둬도) 그냥 알앤비(R`n B 얘기하는게 아니다 그냥 알앤비!!!)다.

그 뿐인가. 김세환이나 He5의 곡도 사운드와 목소리만 바꾸면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빛이 될 듯 떠들던 인디 씬의 록/포크 성향의 누구 누구가 떠오른다.

오히려 송창식이나 이장희의 통속적이고 실험적인 곡들은 지금도 신기할 만큼 신선하지 않은가? “한잔의 추억”을 봄여름가을겨울이 다시 불렀을 때 원곡에서 무엇이 그리 바뀌었던가? 김종진도 어디선가 얘기한 것처럼, 그저 그 기억으로 그렇게 부르자 음악이 되더라.

그렇다. 이게 한국 가요의 현실이다. 뭐 외국은 다르냐고? 다를 거 하나도 없다. 블루스는 비비킹에서 에릭 클랩튼으로 존 메이어로 자니 랭 손을 통해 지금도 꾸준히 그렇게 연주된다. 메탈리카가 롤링스톤즈를 서포트하고 AC/DC가 여전히 무대에서 그 음악을 짱짱거린다. 걔들도 늘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걔들은 30년 전 음악도 여전히 듣고 있고 가치를 찾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고 나면 새로운 음악이, 어제 음악을 유치하다고 비웃으며 나타난다. 근데 그 새로운 음악도 어제 음악도 실은 똑같은 놈들이다. 어디서 미국, 영국, 일본 노래의 화려한 효과들만 베껴다가 똑같은 곡에 덮어 씌운다.

Soul 뮤지션이 R`n B 뮤지션(그/그녀는 또한 Rock`n Roll 뮤지션이며 Blues 뮤지션이다)이고 그가 Hip-Hop 뮤지션과 연결되어 있음을 걔들은 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하나 하나가 다 잘나서 지 혼자 깨달은 부처들이다. New Wave와 Synth Pop이 클럽에서 House로 또 그 MC와 DJ 손을 통해 Acid로 Electonica로 이어지는 것을 걔들은 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애시드로 핌프록으로 재림하신 예수들이다.

30년이 훨씬 넘어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음악을 마치 새로운 무엇이 계속 나오는 냥 그렇게 살았다. 정권이 찍어 누르지 않으면 자본이 이어가면서 …… 오히려 우리의 음악은 겉 모양새만 화려해졌지 알맹이는 과거만도 못해지는 거 아니었을까? 돈도 안되는데 힘들게 음악하는 사라들에게 왜 더 음악 잘하지 못하냐고 욕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러나 난 묻고 싶다. 비틀즈에 꾸준히 감동하는 당신들, 귀 비우고 찬찬히 당신과 우리가 해온 것들을 다시 살펴 보라고. 도대체 뭐가 얼마 만큼 진보했는지. 아니, 최소한 솔직하긴 했는지.


영진공 헤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