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3호]오후 네시, 강원래와 마주친 비루한 청춘의 단상

재외공관소식
2006년 11월 15일

오후 4시쯤이던가 . 한 음악채널에선 2003년도 뮤직비디오 어워드를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 마침 구준엽의 축하무대가 나오는 참이었는데 , 그는 가수 비와 함께 ‘난’ 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비는 참 춤을 잘 추는 가수지만 어쩐지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 그의 춤은 섹시하고 드라마틱할지는 모르나 클론의 춤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 ‘파워’ 그 자체였지 .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서 보고 있기만 해도 몸이 저절로 들썩여지는 .
뭐 어쨋든 , 두번째 곡은 다소 잔잔한 ‘오빠생각’ 이라는 곡이었다 . 구준엽의 랩 한 소절이 끝나자 어두운 무대 한켠에 핀 조명을 받으며 랩을 시작하는 강원래가 나타났다 . 휠체어를 타고서 . 내빈들은 어디서 본건 있어서 기립박수를 치며 그에 대한 경외를 표현했다 . 기립박수같은 것은 스티비 원더에게나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 나름 클론도 한때(라고 하기엔 꽤 장기간에 걸쳐) 굉장한 가수 아니었던가 .

1996년 여름이었지 아마 . 둘다 춤으로 잔뼈가 굵은 인간들이란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써는 ‘클론’ 의 결성이 엄청 반가운 소식일수밖에 없었다 . 예상대로 ‘쿵따리 샤바라’ 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 자신들의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관중이 호응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두명의 ‘댄서형 가수’ 는 그해 여름을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 그렇다고 해서 , 그들이 여름에만 어울리는 가수였던가 . 날씨가 추워지면 육중하고 박력있는 비트의 ‘난’ 같은 곡을 들고 나와 겨울을 다 녹여버릴 기세로 춤을 췄었지 . 그들은 마치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
1집 , 2집 , 3집 … 그리고 초련까지 . 그렇게 그들은 계속해서 승승장구 하는 듯 했다 .
그리고 2000년 11월 , 모두를 안타깝게 만든 사고가 일어났다 . 강원래의 오토바이 사고 . 그리고 하반신 마비 . 해외진출까지 성공한 후여서 충격은 더욱 컸다 . 방송에서는 앞다투어 그의 재활훈련하는 모습 등을 내보내주었으나 난 그런것들이 나올때면 은근슬쩍 채널을 돌려버린것이 사실이다 . 이제와서 고백하자면 , 난 ‘춤을 추지 못하는 강원래’ 를 보고 싶지 않았다 . 그리고 그의 사고 소식도 , 하반신 마비 – 다시는 춤을 출수 없다는 – 이야기도 믿고 싶지 않았다 . 그저 잊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 매년 여름마다 그랬던것처럼 끗발나는 곡과 신명나는 춤으로 짜잔 하고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 나의 여름은 늘 클론의 곡처럼 신명났었고 , 그래야만 했었다 .
물론 구준엽이 솔로활동을 했지만 강원래가 없는 구준엽은 색이 입혀지지 않은 , 펜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과도 같았다 . 난 그의 무대를 보노라면 늘 강원래의 빈 자리가 더 그리워지곤 해서 , 그의 솔로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

그리고 난 대학을 중퇴했고 , 몇군데 일자리를 전전하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 대학교를 포함하여 학생일때는 크게 돈이 필요하지 않았었다 . 난 사회에 나가서도 내가 가진 몇 안되는 재능을 이용하여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소박한 희망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될줄로만 알았다 . 그러나 세상은 루저에게 월계관을 허락하지 않았다 . 바라는 것은 점점 낮아지고 낮아져 지금은 한달에 두번있는 휴일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보낼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던 2006년 11월 2일 오후 4시의 나는 , 휠체어에 앉아서 랩을 하는 강원래를 마주하게 되었다 .
구준엽의 역동적인 몸짓과 비교하면 강원래는 거의 정지되어있는 사진과도 같은 모습이었으나 , 난 분명히 보았다 . 그의 어깨가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 그것은 그가 할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이었다 . 난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 건강하던 시절의 그를 떠올렸으나 이내 그것은 눈을 감지 않아도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 그의 어깻짓이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그를 다시 내 눈앞에 되살려 놓았다 .
그는 고작해야 어깨를 움직였을 뿐이지만 , 난 그 힌트 하나로 그의 수많은 동작을 유추해낼수 있었다 . 그리고 그는 내 기억속에서 여전히 건재했다 .

누구나 주어진 상황을 억지로 납득하며 살아간다 . 그러나 그들 모두는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박 터지는 싸움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 발악이라고 칭할수도 있겠다 . 그러나 그것이 추하다고 누가 말할수 있을까 . 투팍이 말했잖은가 . Life goes on이라고 .


어느 오후의 해탈
담패설(http://dampaesul.ddanzi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