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감상하는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1.
Zombie
By Cranberries

“It’s not me, It’s not my family … In your head, In your head … What is in your head?”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뭔가에 눈이 먼다는 것 … 좀비가 되는 것과 같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좀비는 용서가 불가한 그리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지만,
눈이 먼 사람은 그게 불분명하다는 것.

善인지, 惡인지, 害인지, 상처받은 영혼인 건지 알기 힘들고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다.
눈먼 이들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대개는 그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눈먼 채로 각자 자기를 눈멀게 하는 것에 묶여서 살아갈 뿐 …

2.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s
By Zucchero, Sharon Corr, Brian May, Roger Taylor

“Change your hear, look around you … I need your loving like the sunshine …”


<2004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Beck의 노래로 삽입되어 잘 알려진 곡 …
영국 밴드 Korgis의 1980년 곡이 오리지널이다.>


<이 곡이 오리지널>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이다.

눈먼 이들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게 다라고 믿는다.
더 배울 수 없다 생각하고 그리 행동한다.

그들에겐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다.
다만 현재, 아니 현실만이 … 그리고 욕구만이 있다.

3.
It’s A Man’s Man’s Man’s World
By Christina Aguilera


“Man made the trains to carry heavy loads,
Man made electric light to take us out of the dark,
Man made the boat for the water, like Noah made the ark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2007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오리지널은, 소울의 대부 James Brown>

눈먼 자들의 도시 역시 남자들의 세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4.
American Witch
By Rob Zombie

“Do you want to know where their dreams come from? … The end, The end of the American witch …”

억압받는 이들의 가장 큰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내부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약한 이를 괴롭히며 기생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기생충은 제가 마치 숙주인 듯 행세한다.
게다가 숙주들은 그런 기생충에게 조아린다.

미친 세상이다.
아니, 미친 건 세상이 아니다.

5.
Mad World
By Tears For Fears


“I find it kind of funny, I find it kind of sad … The dreams in which I’m dying are the best I’ve ever had …”


<Gary Jules의 노래로 잘 알려진 곡이지만 오리지널은 Tears For Fears이다.>


<“Kiwi”!의 에피소드에 Gary Jules의 버전을 입힌 작품>

미친 세상

희망은 없는가?

6.
Stand By Me
By Playing For Change

“The land is dark …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ll see … No I won’t be afraid … Just as long as you stand by me …”


<도큐멘터리 영화 “Playing For Change: Peace Through Music”의 한 장면이다.  부르는 노래는 Ben E. King의 “Stand By Me”.  세계의 거리 뮤지션들이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을 통해 세계의 평화와 변화를 기원하는 것이 이 영화의 제작의도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playingforchange.com 을 참고하시길.>

어느 세상에서나,
어느 때에나,
주어진 희망의 크기는 같다.

눈 떠 그걸 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다른 이들과 함께 보고자 애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보기 위해 눈 뜨려 노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따라 희망의 크기는 변하는 것이다.

샬라나미~
영진공 이규훈

“눈먼 자들의 도시”, 원작의 무게에 눌려 범작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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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의 제작과 홍보에는 원작의 유명세가 많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발목을 잡힐 수 밖에 없는, 즉 ‘문학 작품을 영화화’할 때 빠질 수 밖에 없는 흔한 딜레마를 반복합니다.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이도 그 중간 과정에서 인물들의 사고와 감정의 변화를 통해 충분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문학과 달리 영화는 시청각적으로 인지되는 내용들을 우선시하면서 적당한 논리적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그게 아니라면 충분한 감정적 이입이라도 필요하죠)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 때문에 영화가 원작 소설 만큼 성공적이거나 그 이상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대부분 적지 않은 각색을 필요로 합니다. 때로는 에피소드의 생략과 추가, 주요 등장인물의 비중이나 캐릭터의 변화가 필요하고 심지어 결말을 바꿔버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죠. 그렇게 과감한 각색을 했음에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작품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 또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에 따른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원작은 캐스팅과 펀딩을 용이하게 해줍니다. 일단 판권 계약에 성공하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배우와 감독들은 생판 모르는 작가의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이 뛰어다니는 경우에 비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정작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돌입하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문학 작품과 영화 장르 간의 ‘화법 상의 괴리’ 때문에 연출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물론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존 그리샴 등과 같이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쓰는 대중 소설류는 상관 없겠지요) 원작을 그대로 따르자니 영화로 만들어져 보여졌을 때 아무래도 허전한 감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과감하게 뜯어고치자니 원작을 이미 읽은 관객들로부터의 맹비난이 두려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우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는 쪽입니다. 원작이 죽어야 영화가 산다고나 할까요. 원작과 조목조목 비교하며 ‘문학계의 걸작을 영화가 망쳤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처음 접하는 더 많은 관객들을 위해 새로운 걸작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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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작에 좀 더 충실하기로 하는 길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로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다면?’이라는 간단한 아이디어와 거기에서 시작된 상상력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는 작품입니다. 문학에서는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도 훌륭한 작품으로 발전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사건의 발생 원인과 인과관계 따위에 대한 좀 더 논리적인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지극히 아름답고 긍정적인 결말은 이런 영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문학 작품과 달리 2시간 분량의 영화는 ‘결말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16부작 TV 미니시리즈라면 좀 다를 수 있겠습니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성공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았을 때에도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되어 ‘원작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리하여 영화가 미처 다뤄주지 못한 디테일이나 원작과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런 걸작들의 반열에는 오르기 힘든 또 한번의 ‘시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배우이자 작가이기도 한 돈 맥켈러(영화 초반에 차를 훔치다가 자신도 눈이 멀게 되는 인물로 직접 출연도 했더군요)의 각색을 기초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눈 앞에 하얗게 되는 현상과 그 감정적인 상태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극악의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 공동체의 광기와 절망, 그리고 희망을 남미 특유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데에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언제나처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줄리엣 무어와 마크 러팔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등의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훌륭했고 이제는 그다지 스펙타클한 광경도 아닌 것이 되었지만 ‘폐허가 된 대도시의 풍경’들 역시 충분한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역시 눈으로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플롯으로 승부하는 ‘2시간의 문법과 미학’의 장르라는 생각을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객들을 사로잡는 고유의 방법론에서 실패하고 있는 영화가 뒤늦게 나레이션 등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등의 노력은 그저 안타깝게만 보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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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