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게 님의 살신성인 (1/2)


인류는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지만 사실 수많은 생물들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자 민폐 종결자라 할 수 있다. 생태계를 무상지원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약, 화장품, 신기술 개발 등을 위해 토끼, , 원숭이 등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아무런 친분도 없는 인류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살생부에는 비록 우리 동네에 거주하지 않아서 대면한 적은 없지만 익히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현 지구상의 최대 짬밥을 자랑하는 투구게
horseshoe crab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해,
 진화론을 공격하는 창조론자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고 있는 투구게

공룡보다도 더 오래된 연식으로 현존하는 생물들이 알아서 기어도 시원찮을 판에 투구게는 어쩌다가 새까만 후배인 인류의 손에 놀아나게 되었을까. 그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게 해준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투구게의 면역체계 때문이다.

생긴 건 게처럼 생겼지만 오히려 거미나 전갈 같은 애들과 머나먼 친척관계인, 절지동물에 속하는 투구게는 피가 섹시하게도 파란색이다. 이것은 투구게의 고향이 안드로메다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투구게의 혈액 내에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헤모시아닌)에 구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
(헤모글로빈)에 철을 포함하고 있어서 붉은 색이다. 춥고 산소가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에게는 헤모글로빈hemoglobin의 산소 수송보다는 헤모시아닌hemocyanin의 산소 수송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투구게는 파란 피를 택한 것이다.

투구게의 섹시한 파란 피는 그 영롱한 색 말고도 또 하나 매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세균과 접촉하면 바로 굳어버리는 원시적인 면역체계이다
. 그리고 이런 훌륭한 면역체계로 인해 투구게님은 팔자에도 없는 인간과 세균(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일선에 나서는 처지가 되었다.


폐렴으로 죽은 환자의 폐조직을 검사하다가 그람 염색을 개발하게 된,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


인류는 백신을 개발하여 수 천 년 동안 세균에게 넋 놓고 린치 당하던 상황을 역전시키고 세균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백신의 원리는 간단하다
. 우리의 면역체계를 미리 해당 세균에 노출시켜 기억시킨 후 다음에 같은 놈이 찾아오면 신속하게 걷어 차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쌩쌩한 세균을 몸에 직접 주입 했다가는 스파링 뛰려고 했다가 재기불능으로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백신은 독성을 낮추거나 제거한 세균(생백신)이나 아니면 아예 죽인 세균(사백신)을 이용한다.

그런데 초창기 백신을 연구하던 중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 죽은 세균으로 만든 백신을 맞은 환자 중 일부에게서 열이 나거나 심지어 쇼크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죽은 세균이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의사들은 난감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풀기위해 머리를 싸맨 끝에 결국 그 원인을 밝혀내었는데, 그건 바로 일부 세균들의 세포벽 때문이었다.



이쁘게 그람 염색을 한 세균들
왼쪽이 그람양성 세균, 오른쪽이 그람음성 세균이다.

세균을 분류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염색에 의한 방법이 있다. 이것을 그람 염색 Gram stein이라고 하는데 덴마크 출신의 의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 Hans Christian Gram이 개발한 염색법이다. 이 염색법을 이용하면 세균의 특성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그람 염색을 하면 자주색을 띄는 그람 양성 세균
(G+)들로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폐렴균, 나병균, 파상풍균 등과 같은 놈들이 여기에 속한다. 요녀석들은 두꺼운 세포벽이 특징인데 왜냐하면 이들의 나와바리가 육지이기 때문이다. 거친 육지생활을 위해선 아무래도 단단한 세포벽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붉게 염색되는 세균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람 음성 세균
(G-)이라고 한다. 살모네라균, 이질균, 티푸스균, 대장균, 콜레라균, 페스트균 등이 여기에 속하며 요녀석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나와바리는 물이다. 그래서 보다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얇은 세포벽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그람음성 세균들의 세포벽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람음성 세균의 세포벽은
LPS(lipopolysaccharide)라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의 면역체계는 세균의 LPS를 감지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죽은 세균으로 만든 백신이었지만 인체는 죽은 세균의 LPS를 감지하고 면역반응을 일으켜 몸에 열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그람음성 균의 LPS를 내독소 endotoxin라고 한다.

그람음성균들은 자라면서 세포벽에서 지속적으로 내독소를 방출한다
. 또한 그람음성 균은 세포벽이 얇아서 물에서 꺼내면 쉽게 죽거나 뭉개지며 이 과정에서도 내독소를 방출한다. 즉 우리는 언제나 내독소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살벌하게 생긴 세균의 자태

그래서 우리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독소에 반응하는 면역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며, 몸에 열이 나는 것은 체온을 올려 세균을 태워 죽이려는 포유류들의 자연스러운 면역반응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며 대부분 내독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양의 내독소가 인체로 쳐들어와서 너무 많은 열을 발생시키면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 특히 백신이나 정맥주사액 같은 생의학 제품과 의료장비의 경우 그 대상이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독소의 제거는 중요하다. 내독소를 효율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200도 이상의 고온이나 강산, 강염기에 장시간을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도 장담할 수 없다
. 주위에는 내독소가 널려 있어서 다른 과정에서 묻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내독소에 민감한 토끼를 주로 애용하였다. 오염이 의심되는 샘플을 토끼에게 주사하고 토끼가 열이 나는지를 통해 오염유무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런 시험을 위해선 많은 토끼를 길러야 했기 때문에 넓은 공간과 많은 유지비가 들었으며 윤리적인 문제도 대두되었다. 게다가 실험 결과를 얻기까지 무려 48시간이나 걸렸다.

이렇게 인류가 예상치 못한 세균의 내독소에 전전긍긍하던 중 투구게의 영롱한 푸른 피가 한줄기 빛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물론 투구게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백신에서 내독소를 제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단백질의 변성으로 인해 고온을 이용해서,
내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은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여러 정제과정을 통해 내독소의 대부분이 제거되지만,
기준치 이하로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다
.
그래서 보다 경제적으로 내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영진공 self_fish



왜 얼룩말은 “얼룩”말일까???



영화 ‘말아톤’에서 100만불 짜리 다리를 가진 초원이는 세렝게티 초원을 죽기살기로 내달리는 얼룩말을 보며 달리기에 대한 낭만(?)을 꿈꿨지만 호기심 대마왕이었던 과학자들은 좀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왜 얼룩말은 ‘얼룩’말일까~~~~~~~~~~!?



동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무늬를 보노라면 저게 과연 저절로 만들어 졌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쁘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어떤 놈은 점땡땡이 무늬고 어떤 놈은 줄무늬고 어떤 놈은 기하학적 패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도대체 동물들의 무늬에는 어떤 원리가 숨어있는 것일까.

생물들의 무늬는, 과학과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사람이라도 들어보았을, 멜라닌이라는 색소세포에 의해 색이 발현되는 것이다. 멜라닌은 단백질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유전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늬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유전학이 아닌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유전자가 만능이라 해도 ‘3cm 폭의 줄무늬를 2cm간격으로 그리시오’라던가 ‘반지름 3cm의 원을 4.5cm 간격으로 찍으시오’ 따위의 시시콜콜한 명령을 내리고 있기에는 유전자는 바쁘신 몸이다.





혀…..형?

게다가 종을 뛰어넘어 동물과 어류 사이에서도 비슷한 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종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어떤 원리 때문이며 이 원리는 모든 생물이 동일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원리는 현재 모든 생물의 무늬 패턴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만 했다.

멜라닌은 색소세포다. 즉 무늬는 색소에 의한 패턴이며 색소는 화학반응의 결과물이다. 다시말해 무늬의 패턴에 숨겨져 있는 원리는 화학반응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 화학반응을 방정식으로 정리한 최초의 인물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앨런 튜링이었다.

 








일반 사람들에겐 튜링 패턴보다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에니그마를 엿먹인 인물 혹은
 인공지능의 창시자로 더 유명한 앨런 튜링. 하지만 2차 대전 당시의 연구활동에 대해서는
기밀사항이란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고, 동성애자임이 알려져 강제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결국 육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게 다 SBS때문이다!

1952년 튜링은 “형태발생의 화학적 기초 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2종 이상의 분자가 서로 반응하면서 확산에 의해 주위로 퍼져 나가면 줄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무늬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방정식을 이용해 밝혔다. 여기서 나온 방정식을 반응확산 방정식, 만들어진 패턴을 튜링 패턴이라고 한다.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여러 튜링 패턴들




지금이야 이 튜링의 논문은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생물학자가 아니었던 튜링의 이론은 발표 후 생물학자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저 이론으로만 평가되었다. 게다가 그의 이론은 우리의 직관하고도 달랐다. 예를 들어 잉크방울을 투명한 물속에 떨어트리면 고루 확산되어 탁해져야 하는데 반해 튜링의 이론에 의하면 확산이 다시 응집을 일으키며 잉크방울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튜링패턴이 실재세계에도 적용가능한 이론이라는 것을 1950년 구소련의 보리스 벨로소프B.P.Belousov(1893~1970)에 의해 벨로소프∙자보틴스키 반응(B-Z reaction)으로 확인된다. 이것은 튜링 이론이 예언하는 무늬를 화학 반응으로 실현한 것이다. 





BZ반응에서는 비커 속에 특정한 시약을 넣고 계속 흔들면, 용액이 붉은색이
되거나 푸른색이 되거나,
번갈아 변화한다. CG가 아니다!





얇은 살레 등에서 섞지않고 BZ반응을 일으키면 동심원의 무늬나 소용돌이 무늬가 생기며
파동처럼 퍼져 나간다. 물론 CG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