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녀석, 맛나겠다”(まえうまそうだな, 2010), 내가 니 밥이다!





감독
: 후지모리 마사야

어린 시절 아버지가 권해준 고기를 손가락 쪽쪽 빨아가며 맛있게 먹었는데 알고보니 그 육질 좋은 고기의 정체가 어제까지도 함께 뚝방을 누비던 누렁이였다는 식도를 죄여오는 사연이 종종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곤 한다.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애매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 시골 곳곳에서 벌어진 이런 비극은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 존재로서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숙명을 외면하고 단지 동심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애니메이션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어깨동무하며 놀아제끼는 빨갱이 같은 사회를 그리고 있다
. 이는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로 하여금 먹이사슬의 위계질서를 망각케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예로 최근 10년간 호랑이와 같은 거대 육식동물이 애완동물로 키워지다 에피타이져 신세가 되었다는 해외토픽 기사의 증가는 이런 빨갱이 같은 애니메이션의 작품 수와 분명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당 영화는 이런 생태학적 만행에 일침을 가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아무리 불알친구라도 자칫하단 골로 갈 수 있으니 긴장하며 지내라는 바람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원작은 “고녀석 맛있겠다”라는 동화책으로 동화 일러스트 작가 미야니시 다츠야의 단순한 형태와 원색들로 그려진 공룡 그림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당연히 얘기지만 원작이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이다.



동화책 “고녀석 맛있겠다는 티라노사우르스가 주인공으로 열연하고 있는 시리즈 중 하나로 현재 국내에는 5권이 출간되었다. 애니메이션은 이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모두 엮어서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동화책의 내용은 하나 같이 뛰어넘을 수 없는 주식(主食)의 벽 앞에서 이별을 맞이하는데 반해 애니메이션은 아쉽게도 이를 모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해피하게 편집해 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문제는 동화책과는 너무 다른 그림체이다
. 작가의 개성 넘치는 색과 형태가, 너무나 진부해 보이는 그림체로 바뀌어져 원작에 매력을 느낀 이라면 선뜻 이 애니메이션을 선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뚜껑을 열어 보면 애니메이션의 그림체 역시 각각의 공룡의 특징까지 감안한, 공들여서 그린 그림으로 원작과의 이질감은 금새 사라지고 애니메이션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작정하고 작품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는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는 정말 귀여워서 언제 잡아먹힐지 기대하게 만들지만 안타깝게도 잡아먹히지 않는다
. 그리고 동화책에선 볼 수 없는 육식공룡들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은 본의 아니게 아이와 함께 시청할 수밖에 없는 아빠들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 줄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도착(THE ARRIVAL), 흑백 무성영화처럼 흘러가는 가슴 아련한 동화.


글,그림_숀 탠

펴냄_사계절 출판사




현대 사회에서의 고독한 개인을 그렸던 ‘빨간 나무’나 유럽의 제국주의 혹은 산업화의 횡포를 이야기한 ‘토끼들’에서 어린이 책을 넘어선 주제들을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림으로 풀어냄으로 어린이를 비롯 어른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었던 숀 탠은 이번엔 직접 스토리까지 쓰며 4년간의 노력 끝에 신작 ‘THE ARRIVAL’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는데 (물론 그가 발표하는 작품을 접할 때 마다 나는 매번 충격에 휩싸였지만!) 무엇보다 동화책이 아닌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입니다. 동화책이라는 매체의 한계(12~15장)를 벗어나 그는 무려 781컷의 그림을 통해 보다 마음껏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숀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유려한 그림실력과 기발한 상상력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주제의식과 자칫 어둡게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아름답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이민, 난민이라는 인류의 어둡고 슬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은 따스하고 아련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과 같은 그림들이 뭉클하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가 ‘이민, 난민’을 주제로 택한 이유가 그의 아버지가 이민자였다는 개인적 가정사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이민자들로 세워진 호주 대륙의 역사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과 호주라는 대륙을 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책 속에는 가난을 피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떠나야만 했던 부모님 세대, 지금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하루 12시간 이상을 노동하고 있는 우리 주변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과 전쟁, 폭력을 피해 고국을 버리고 낮선 나라에 정책해야만 했던 가슴 아픈 이들의 상처를 저채도의 정성스런 소묘화를 통해 따스한 손길로 그려내었습니다. 물론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의 상상력은 이 어둡고 슬픈, 그래서 딱딱하거나 신파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부드러운 한편의 동화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대사가 없는, 빛바랜 사진처럼 그려진 그림들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한 편의 무성영화처럼 흘러갑니다. 



아픈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언제나 피어난다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저는 국내 출판은 어렵지 않을까 해서 원서로 구입하였는데 이번에 사계절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서도 정식출판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의 좋은 안목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기쁘지만 아쉽게도 동화책으로 분류되어 서점에서는 동화책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