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어느 사채업자의 되도 않는 구라

 

 


 


 


이 글은 최근 개봉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나름대로의 감상을 써 본 것입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오니 아직 이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얼른 빠져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김파이씨는 자신이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다고 느끼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고 매사에 호기심이 넘치던 어린시절을 지나 평탄하게 생활하던 그에게 그 일이 닥친 건 5 년 전, 그가 열 다섯 살 때였다.


 


목수일을 하며 개집도 만들고 새집도 만들며 생활비를 대던 가게에 점점 일거리가 줄어드는 걸 견디다 못한 파이씨 아버님은 급기야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렇게 서둘러 작은 트럭에 짐을 싣고 서울로 가던 날, 하늘에서는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져 내렸고, 빗 속에서 중심을 잃은 트럭은 그만 전복을 하고야 말았다.


 


 


 




 


 


 


처참한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파이씨,


하지만 살아남은 것만으로 하늘은 파이씨에 대한 시험을 거두신 게 아니었다.


 


이삿짐을 싣고 달리던 그 트럭은 무보험차량이어서 사망한 가족에 대한 보상금은 커녕, 오히려 중상을 입고 1년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파이씨가 홀로 산더미같은 병원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것이다.


 


억이 넘는 병원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어린 그에게 병원측은 많은 액수를 깎아주었지만, 그렇다고 공짜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사채업자에게 돈을 꾸어서 겨우 병원비를 메꿀 수 있었다.


 


퇴원은 하였지만 여전히 여러가지 후유증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잡역 등을 하며 약값 마련하기에도 허덕이던 파이씨는, 어쩔 수 없이 연락처를 바꾸고 노숙생활을 하는 등 사채업자와 부딪히지 않도록 나름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


 


 


 




 


 


 


허나 사채업자는 결국 파이씨 앞에 나타나고야 말았다. 어느 토요일 오후, 손 등에 선명한 호랑이 문신을 하여서인지 호랭이 성님이라 불리는 그는 하이에나라는 별명을 가진 똘마니와 함께 기어코 들이 닥쳐서는 다짜고짜 파이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어느 허름한 건물로 끌고갔다.


 


“파이 형제님, 그 목에 걸린 건 뭔가요?”


건물 안에 있는 커다란 방 안 중앙에 있는 의자에 우격다짐으로 앉혀진 파이씨에게, 특이하게도 형제님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는 호랭이가 말했다.


 


사고 이후 파이씨는 항상 목에 두개의 목걸이를 걸고 다녔는데, 그건 사고 현장에서 파이씨가 수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부모님의 유품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의 띠에 맞춰 함께 하고 다니시던 원숭이와 말 모양의 금목걸이였다.


 


호랭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이에나는 잽싸게 파이씨에게 덤벼들어, 두 목걸이를 거칠게 벗겨내서는 호랭이의 손지갑 안에다 얼른 넣어버렸다.


 


그리고 하이에나가 방 안 구석에 놓여있던 TV를 켜고 볼륨을 높이자, 호랭이는 파이씨에게 바짝 다가들었다.


 


“파이 형제님 … 세상 살기 많이 힘들죠? …  그렇다고해서 인간의 도리를 어기시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호랭이는 장광설을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하이에나의 발길질과 손찌검이 연달아 파이씨에게 가해졌다. 신체에 가해지는 극심한 고통은 참으로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호랭이의 되도 않는 설교질도 그 못지 않게 고통스러운 파이씨였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순간,


호랭이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게 깔며 뭐라 읊조리던 말이 파이씨의 귀에 그 어느때보다 또렷하고 큰 소리로 들어와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파이 형제님,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 이 모든 게 다 하늘의 배려라고 말이예요 …”


파이씨는 숙였던 고개가 저절로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다 하늘!이 예비하신! 시험!이라고 생각하시란 말이죠 …”


어느새 파이씨는 호랭이의 눈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이게 다 그 뭐냐 … 그래 … 일체유심조! … 그 … 중 이름이 뭐더라 … 암튼 … 그거!”


그러자 파이씨는 입가에 고인 피의 맛이 달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늘이 있어 … 나를 이용하사 파이 형제님이 가장 필요할 때 돈을 내리시는 은혜를 베푸셨고 … 그리고 그 은혜를 갚지 않고 계속 하늘을 거역하시는 파이 형제님에게 다시 나를 보내시어 하늘의 뜻을 가르치게 하신 거란 말입니다 … 그러니 이게 다 파이 형제님이 바르게 살도록 예비하신 하늘의 시험임을 굳게 믿으셔야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즈음에 파이씨는 자신이 얼마나 못나고 방탕한 인간이었는지를 진심으로 뉘우치기 시작하였고 눈가에는 참회의 눈물이 굵게 맺히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파이씨가 꺼이꺼이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며 잠시 말문을 닫았던 호랭이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 형제님 … 이제 하늘에 당신의 믿음을, 당신의 충심을 보여주실 때입니다. 이제 곧 형제님을 도우러 사람이 올 겁니다 … 그가 파이 형제님의 눈과 심장과 간을 하늘에 되돌리게 도와 줄 겁니다. 파이 형제여, 기꺼이 그에게 형제님의 믿음을 맡기실 거죠?!”


 


파이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눈물이 흘러나오는 눈망울을 크게 뜨고 호랭이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맞잡아 가슴 앞에 모았다.


 


 


 




 


 


 


바로 그때였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까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순간 강렬해지는가 싶더니, 열려진 창을 통해 갑자기 하늘에서 강력한 번개가 타고 들어와서는 TV 앞에 서 있던 하이에나를 내려 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고 처참한 광경에 너무 놀란 호랭이는 기겁을 하며 서둘러 방안을 빠져나가려다 제 풀에 넘어지면서 단단한 바닥에 머리를 박더니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너무도 놀라운 일의 충격에 파이씨는 온 몸이 굳어지며 꼼짝할 수가 없었지만, 이내 이 모든 게 하늘이 예비하신 일이라는 믿음이 떠올랐고 그러자 비로소 파이씨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호랭이와 하이에나의 주검을 뒤로 하며 건물을 빠져 나온 파이씨의 손에는 뺐겻던 목걸이가 들어있는 호랭이의 손가방이 들려있어서, 그 안에 있는 자동차키로 호랭이의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서 그 안에 들어있는 돈으로  고기집에 가 맘껏 소고기를 사 먹었다.


 


커다란 포만감과 함께 고기집을 나서면서 파이씨는 정말 이 모든게 하늘의 절묘한 계획임을 절실히 느꼈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던 거라고 느끼게 되었다.


 


 


 



 


 


 


며칠 후 무심히 차를 몰고 가던 파이씨는 경찰에 의해 검문을 받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경찰서로 연행되어 취조를 받았다.


 


취조가 끝나자 담당 형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조서를 파이씨 앞에 내밀면서 서명을 하라 하였다.


 


[이 사건 용의자 김파이는 사채업자이자 장기밀매업자인 일명 호랭이와 일당 일명 하이에나에게 납치되어 외곽 건물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던 도중 강제로 장기적출을 당할 뻔 했으나, 마침 그때 내린 폭우가 창을 타고 들어와 TV 전원선의 합선을 일으켜 근처에 있던 일당 하이에나가 감전으로 사망하였고 이에 호랭이가 당황한 틈을 타 김파이가 덤벼들어 호랭이의 머리를 방바닥에 마구 찧어 사망케 한 후 호랭이의 손가방과 차량을 탈취하여 도주한 사건임.]


 


그러면서 담당 형사는 김파이씨의 기구한 인생사에 측은지심을 느껴서인지 정당방위라는 의견을 검찰에 올렸고,


 


이후 김파이씨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와 지금은 단칸방이나마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나름 잘 살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안 감독이 이제 막 종교철학 개론을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인 건지,


아니면 이 세상 모든 철학과 종교를 섭렵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람인 건지,


내내 헷갈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헷갈림의 원인이 내 부덕의 소치임을,


그리고 사물의 양면성에 대한 내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주절주절 뇌까리고 있다.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