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트 가드너”, 생명 위에 군림하려는 제약회사의 탐욕








*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 출연: 랄프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위베르 쿤드 

이 영화 (원제: Constant Gardener, 2005)는 인권 운동가인 케사(“레이첼 와이즈”)와 외교관 저스틴(“랄프 파인즈”)을 통해 케냐라는 빈국의 현실과 이를 이용해 먹는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임상실험을 다큐멘터리적인 자세를 취하며 관객들에게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쓰리비’ 라는 제약회사는 겉으로는 케냐의 빈민들에게 약을 무상 제공하며 선행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뒤로는 신약 개발의 효능을 위한 불법적 임상실험을 자행한다. 이런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모습은 불행하게도 영화 속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3대가 놀고 먹다 지치게 만들어줄 신약 개발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물가가 낮고 규정이 느슨한 빈국으로 임상실험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인도 역시 이러한 요건에 잘 맞는 나라 중 하나로 최근 많은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는 2차 대전 종전 후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실시했던 나치의 과학자들을 처벌하였다. 이 재판을 기초로 한 뉘렌베르크 강령은 이후 임상실험에 관한 국제적 법령이 되었다. 이 법령의 핵심은 의사는 지원자에게 실험에 따른 모든 부작용에 대해 이해시킨 뒤 자발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령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에서 임상실험에 참여한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가난한 빈민으로 임상 실험 내용을 이해시키기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영어로만 쓰여 있는 임상 실험 동의서도 있었다. 게다가 치료비용을 마련할 수 없는 빈민들은 실험을 통해서라도 치료의 희망을 얻고자 실험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동의를 하는 경우도 많아 이런 경우 의사의 도덕적 판단에 의존해야만 한다.

임상실험의 위험은 무엇보다 실험 전까지 행해졌던 모든 치료가 중단되고 신약의 효능을 위해 2~3개월 동안 세척기간이라 하여 일체의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이나마 차도가 있던 치료를 중단하게 만든다. 게다가 실험 지원자 중에는 플라시보약(가짜약)을 투여 받기도 한다.

세계화라는 강대국들의 허울 좋은 깃발 아래 빈익빈 부익부는 가히 ‘세계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세계화의 물결은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의료분야에서도 이렇게 비극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의 목숨이 수익이라는 물질적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는 이 씁쓸한 현실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이들 뿐일 것이다.

 한미 FTA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협상내용에 의약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제약회사의 신약에 대한 특허권 보호를 위해 값싼 복제약의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미국이 자국 제약회사의 이익증대를 위해 요구한 것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불러오고 약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아고라(Agora, 2009)”, 히파티아는 과연 꽃처녀였을까?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좀 피던 시절 그리스에서 등장했던 자연철학은 인류문명사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문화였다. 실용적인 목적이나 돈, 명예와 같은 잿밥에 관심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진리를 추구했다는 점, 국가나 단체의 지원없이 사적인 모임이나 동아리에 가까운 모임만이 존재했다는 점, 이전까지 다른 모든 문명에서 과학자가 익명이었던데 비해 일종의 개인의 지적 재산인 듯이 과학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점 등은 이전 문명에선 볼 수 없었던 문화였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이후 알렉산더 대왕님이 등장해 세계를 한번 크게 휘저어 버리면서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 꽃을 피우게 되지만 곧 대왕님이 요절하시고 로마가 패권을 쥐면서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과학적 활동은 전반적으로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학적 독창성의 수준도 낮아졌다. 새로운 지식의 발견보다는 옛 지식의 보존 쪽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이렇게 그리스의 자연철학의 끝물에 등장한 것이 히파티아였다.



당영화는 영화사가 광고했던 ‘스펙타클’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 자체는 수작이다.





영화[아고라]는 400년대 초 알렉산드리아의 자연철학자 히파티아가 기독교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던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잔다르크 만큼이나 영화화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당시 쇠락해 가던 그리스 자연철학의 마지막 보루이자 이성의 상징이 종교에 의해 숨이 끊어졌다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순결한 꽃처자가 거지 깽깽이 같은 광신도들의 손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함으로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감성적 부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을 충족시킨다. 게다가 영화는 히파티아를 짝사랑하는 노예 ‘노부스’를 등장시키고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 스포일러를 발설할 뻔 했다는 가상의 이야기까지 끼워 넣어 로맨스와 인문학적 재미까지 손에 거머쥔다.

히파티아 역으로는 레이첼 와이즈 여신님을 등장함으로써 이 비극적 사건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300% 몰입시키니 마지막 결말에서 많은 관객들을 더욱 분기탱천하게 만드는 영화적 완성도마저 이뤄낸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옮기면서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재구성 하기위해 이것저것 넣고 빼고 가공했을 것은 뻔할 터이다. 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사료들로 추정해보건데 히파티아가 죽임을 당할 즈음의 나이가 50대였을 거라고 한다. 아아 ……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래도 우리의 마음 속 히파티아는 레이첼 와이즈닷!


그럼 영화는 어디 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 까지가 가공된 것일까?


히파티아가 문학작품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근대유럽에서였다. 이후 예술적으로 승화되면서 엄친딸처럼 언제나 아름답고 젊고 똑똑한 철학자로 그려졌지만 정작 그녀를 이야기해주는 사료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스콜라스티쿠스의 [교회사]나 10세기 비잔틴 사전인 [수다suda], 그녀의 강의를 들었으며 애제자였던 시네시우스의 편지등과 같은 극히 제한적인 사료만이 있을 뿐이었다.



히파티아의 애제자였던 키레네의 주교 시네시우스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그녀를
배신(?)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정과 존경을 표한다.
오히려 그가 히파티아와 제자들에게
보냈던 편지는 현재 히파티아를 밝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무엇보다 히파티아가 죽임을 당할 당시 시네시우스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 예수님과 면담 중이었다.




그녀는 흔히 주장하듯 370년경이 아니라 355년경에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테온으로 뛰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국립 연구소라 할 수 있는 뮤세이온의 회원이었다. 그 아비의 그 딸답게 수학과 천문학과 더불어 철학에 이르기까지 히파티아는 팔방미인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동아리’에서 이러한 학문들을 강의했다.

그녀의 강의에는 지배계층과 부유한 자제들이 많았으며 적잖은 기독교 신자들 역시 그녀의 강의를 들었다. 그녀는 지배계층의 존경을 받았고 제국과 도시의 고관들과 부유하고 좋은 혈통, 세력있는 학생들에 둘러 싸여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문화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385년이 되자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던 대주교 테오필루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직을 맡게 된다. 영화는 이즈음을 배경으로 시작하는데 테오필루스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교도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결국 이교도의 신전인 세라페움을 공격하여 교회의 손아귀에 넣는다. 


옛부터 행해져온 기독교의 남의 신전 땅밟기.
이 사건으로 신전 내 세라피스 동상은 물론 수많은 동상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사실 히파티아는 이 싸움에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기독교인이 많았던 알렉산드리아에서 히파티아는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이었으며 이교 숭배에 무관심했고 종교적 분쟁이나 논쟁에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녀와 그녀의 제자들이 당시 세라페움에 있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 후에도 그녀의 활동은 교회로부터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테오필루스의 조카 키릴루스가 그의 계승자로 선출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기독교에서 키릴루스는 성인으로 그려지지만 동시대 사료에서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무자비하게 권위를 추구한, 충동적이고 권력에 굶주린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안식일을 핑계로 유태인을 공격했고, 유태인들은 교회에 불이 났다는 거짓 경보를 발해 기독교인을 공격했다. 격분한 키릴루스는 대규모 군중을 이끌고 도시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쫒아낸다.

일련의 사건에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관리였던 오레스테스는 분노했고 키릴루스는 그와 화해를 요청하지만 오레스테스는 거절한다. 키릴루스는 오레스테스를 압박하기 위해 오백명의 수사들을 도시로 불러모았고 그 중 암모니우스가 오레스테스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는 테러까지 일어난다.



오레스테스는 히파티아의 오랜 제자도 아니었고 그녀를 짝사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부임하자마자 히파티아와 친해진 것은 예전부터
그녀의 명성을 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암모니우스는 오레스테스의 머리에 돌침(?)을 놨다가 당연히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게 된다.

돌침을 맞긴 했지만 오레스테스가 키릴루스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드리아에 부임하자마자 돈독하게 지냈던 히파티아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파티아는 주교의 권위가 제국과 도시의 행정영역까지 확대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고 그녀의 지지에 힘입어 오레스테스는 정당을 만들기에 이른다.

키릴루스는 오레스테스의 당파와 더불어 그 뒤에 있는 히파티아와 그녀의 지지기반을 두려워한다. 오레스테스 역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기독교 세력이 있었고 히파티아의 제자들은 제국과 교회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키릴루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며 그녀를 마녀로 몰아갔다. 특히 그녀의 지지기반은 부유층이었고 대부분의 빈민들은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키릴루스는 이런 빈민들을 부추겼고 페테르(Prter)라는 행정관리가 폭도들을 이끌고 마차를 타고 있던 히파티아를 잡아 캐사리온 교회에서 옷을 벗기고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로 죽인다. 시체는 도시 밖으로 끌고가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오레스테스는 이 사건에 식겁했는지 이후 종적을 감추게 된다.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인 노예 다보스는 히파티아를 짝사랑했다가
파라볼란이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파라볼란은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에
고용된 건장한 젊은이들의 단체인데 그들의 임무는 병든 사람이나 불구자
또는 집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병원이나 교회의 구빈원에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한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의 군인으로 활동했으며
여러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대주교의 적들을 공격했다.







키릴루스가 히파티아의 살인을 계획했는지 사료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이 일에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히파티아를 비방하는 소문을 부추긴 장본인이며 그녀에 대한 편견과 악의를 조장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료에서도 키릴루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있는 위험한 인물로 히파티아의 죽음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문학과 예술작품에서 그녀는 항상 아름답게 그려진다.
찰스 윌리엄 미첼의 그림. 히파티아


히파티아는 412~415년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었을 당시의 나이는2,30대의 꽃처녀가 아닌 약 60세 가량이었다. 이는 그동안 시네시우스의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었던 점, 수학과 천문학 철학까지 모두 능통했다는 점, 지배계층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에서 미루어 결코 젊은 나이는 아니었을거라는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윤리적 용기나 공정함, 정직함, 시민적 헌신, 그리고 지적 용기에 있어서 모범적 인물이었다는데 모든 사료들이 일치한다.


히파티아의 사건은 영화나 많은 문학작품들에서 그려지는 종교적 암살 보다는 정치적 암살이었다. 히파티아는 이교도 관습에 관심이 없었고 종교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기독교도인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고 기독교도 제자들을 보호했다. 때문에 키릴루스는 이교도라는 핑계로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키릴루스 자신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교도를 핍박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적들은 기독교 내의 다른 정파들과 이단자들, 유태인들이었다. 히파티아는 그녀가 행했던 이교도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키릴루스의 정치적 행보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종교적인 이유로 그녀를 죽인 것으로 보긴 힘들다. 또한 히파티아가 죽음으로써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유행하였고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기 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계속해서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을 연구하였다.




히파티아의 ‘광장’에서 이교도와 기독교는 함께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말하는 천국이 아니었을까?


 

영진공 self_fish




뽀나스~ 그녀는 지동설을 알았을까?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of Samos, BC 310~230)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의 연구원이었다.




영화에서 히파티아는 아리스타르코스가 주장했던 이론에 주목한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자신의 축을 도는 일일 운동과 1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도는 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고대에 대단한 반말을 불러일으켰다. 왜냐면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면 지구 위의 모든 것들은 날아가 버려야 할 것이다. 즉 감각적 증거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히파티아는 이러한 점 때문에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정면으로 위반하기 때문에 고대 천문학자들 중 누구도 그 가설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밌는건 이 이론을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가 시차문제였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운동을 한다면 항성들의 시차가 관측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위치 변화는 관측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아리스타르코스는 항성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위치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코페르티쿠스와 케플러도 같은 대답을 하였다.




지구와 항성과의 거리는 무지무지 멀기 때문에
그림에서와 같은 시차의 변화는 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규~




이후 1세기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 과학자이자 원추곡선을 연구했던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는 지구 중심론을 유지하면서 대안적인 모형을 만들었다. 그게 주전원과 이심원이다. 그리고 히파티아는 이 아폴로니우스의 주석서를 썼다. 주석이라 하면 대단찮게 들리겠지만 근대 이전에는 창작의 수단으로 쓰였다. 주장을 펼치기 위해 자기 이름으로 책을 펴내기 시작한 것은 근대로 접어든 뒤의 일이었고 그 전까지는 옛 대가들의 책에 주석을 달면서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아폴로니우스의 주전원과 이심원은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 발전한다. 

 


즉, 그러한 이유로 아폴로니우스의 주석서를 썼던 그녀가 설령 아리스타르코스의 이론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이론에 동의했을거라 보기는 힘들다.



-참고 및 발췌-


마르자 드스지엘스카 저, 이미애 역, [히파티아], 우물이 있는 집, 2002
기태호 저,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루시드], 김영사, 2007
제임스 E. 맥클렌란 3세, 해럴드 도른 공저, 전대호 역,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모티브, 2006 
버트런트 러셀 저, 서상복 역,[서양 철학사], 을유문화사, 2009



 


 


 



 


 


“러블리 본즈”, 피터 잭슨에게 영화다양성을 허하라


개인적으로 피터 잭슨 감독의 팬이냐고 물으신다면 뭐 꼭 그렇지도 않다는 쪽이다. <반지의 제왕> 보다 <매트릭스>가 더 좋다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개봉했던 3부작 영화들을 꼬박꼬박 보러가기는 했으되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정도로 영화 속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이 아니라 솔직히 엉덩이가 좀 아파서 아 이젠 그노무 작별 인사 좀 그만 하시지? 뭐 이런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뒤늦게 피터 잭슨 감독 팬덤에 줄을 서서 <고무인간의 최후>(1987)나 <데드 얼라이브>(1992)를 굳이 챙겨보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감히 뉴질랜드 영화 산업의 자랑스러운 큰 형님이 되신 감독의 역량을 평가절하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누가 감히 <반지의 제왕>을 3부작의 형태로 기획하고 연출할 생각을 했겠는가. 그리고 그처럼 완전한 형태로 대서사시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탐욕이 그러하듯 절대 사라지지 않는 저 반지 ...

차기작이었던 <킹콩>(2005)은 피터 잭슨의 대범한 스케일과 연출 역량이 탁월함을 다시 한번 입증해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아울러 나오미 왓츠의 캐스팅에 개인적으로 무척 감사할 따름이다. <디스트릭트 9>(2009)도 피터 잭슨의 손을 거쳐 탄생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견을 달기 어려울 만큼 영화를 잘 만드는 것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다. 피터 잭슨은 한마디로 감히 딴지를 걸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이지만 관객으로서의 내 취향에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영화를 만들어주는 감독도 아닌 부류다.

특정 감독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나 애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다른 한편으로 그의 새로운 영화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 과도한 기대나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서의 실망도 없이 – 봐줄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않나 싶다.

<러블리 본즈>는 분명 우리가 아는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들과는 내용이나 스타일면에서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킹콩>이 피터 잭슨 영화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관객이 그 이름만 보고 선택했다면 우선 내용면에서 재미없어할 가능성이 높고,

그리 많지 않은 감독의 전작들 가운데 <천상의 피조물>(1994)과 같은 영화까지 봐두었던 관객이라면 이 감독이 갖고 있는 취향의 다양성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그나마 당황하는 일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러블리 본즈>는 이웃집 남자에게 유괴 살인을 당한 14세 소녀의 사후 세계를 판타지 형태로 펼쳐보이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강한 – 피터 잭슨이라는 알려진 브랜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 영화라 할 수 있고 앨리스 시볼드의 2002년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피터 잭슨이 직접 영화화 판권을 매입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품이다.

피터 잭슨이 무슨 생각으로 이와 같은 비상업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어찌되었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 상업적인 성공이 보장된 것 – 보다 진정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바를 실천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크랭크인 사흘 전에 주연급 남자배우가 급히 교체(마크 왈버그의 배역은 원래 라이언 고슬링이 캐스팅되었었다)되는 와중에서도 피터 잭슨은 이 까다롭기 그지 없는 원작 소설의 영화화 프로젝트를 기술적인 완성도에 있어 만큼은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완성해냈다.

미국 내 유괴 살인 사건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많았지만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죽은 피해자의 시각에서 다루는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회성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이런 이야기야 말로 피터 잭슨과 같은 감독이 아니고서는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러블리 본즈>는 사후 세계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케일을 과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만 했던 어린 소녀의 안타까움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의 상실감을 성공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의 이벤트들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부분들은 <러블리 본즈> 전반을 아우르는 묘미라고 할 수 있고 피터 잭슨 감독의 연출력을 입증하는 요소라고 하겠다. 여기에 수지(시얼샤 로넌)의 동생(로즈 맥키버)이 물증을 얻기 위해 살인자의 집 안에 침입하는 시퀀스는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서스펜스를 전달하기도 한다.

피터 잭슨의 전작들과는 경향 자체가 다른 작품이기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가 없었다는 평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기 힘들다. 하지만 피터 잭슨이 발로 연출을 했다는 식의 일부 폄하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관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 역시 연출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연출력과 취향은 분별을 해두는 편이 맞다 – 발연출로 만든 영화를 좋게 보고 온 사람들은 그럼 눈이 삐어서 좋았다는 것이겠는가.

<러블리 본즈>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기술적인 완성도나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적 울림의 수준을 볼 때 시간을 들여 감상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일부 관객들은 의외의 감동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막내 동생(크리스챤 토마스 애쉬데일)이 죽은 누나를 봤다며 아버지와 서로 위로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감추기 어려웠다. 수지의 소녀적 감성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살아남은 자로서 주어진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할 수 있으리라.

일찌감치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훌륭한 스릴러 영화로서는 자리매김하기를 포기했던 작품이 되었지만 언제나 감초 같은 조연으로 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왔던 스탠리 투치가 <러블리 본즈>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탠리 투치인줄 모르고 피터 스토메이어 닮긴 했는데 좀 다른 것 같다라고 생각만 했을 정도로 분장이나 연기력이 훌륭했다.

수지의 외할머니로 등장하는 수잔 서랜든은 등장 인물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극의 분위기를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수녀나 이상적인 어머니 같은 역할도 좋지만 <19번째 남자>(1988)나 <하얀 궁전>(1990)에서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 수잔 서랜든은 반짝반짝하곤 한다. 그리고 쇼핑몰 사진관에서 피터 잭슨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다.

시얼샤 로넌과 감독 피터 잭슨
영진공 신어지

콘스탄트 가드너 (The Constant Gardener, 2005), “정치 스릴러냐? 러브 스토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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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랄프 파인즈의 모습은 언듯 톰 클랜시 원작 영화에서의 해리슨 포드를 연상시키지만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그의 실제 캐릭터는 “성난 폭도들에게 머핀 한 조각씩을 권할 법한” 유순한 성격의 하급 외교관일 뿐이다. 화초 기르기가 취미인 그는 다국적 제약/유통 회사들의 반인륜적인 음모로부터 사실상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여행 중 비참하게 살해 당한 이후부터 비로소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영국 외무부와 다국적 기업들 간의 결탁을 파헤치는 영웅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때문이다. 이것이 <콘스탄트 가드너>를 정치 스릴러 액션이기 이전에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먼저 기억되게 만드는 이유다.

<시티 오브 갓>에서 입증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역동적인 연출 감각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전작에서부터 함께 해온 세자르 샬론의 카메라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릴 만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영화 속에 가득 담아냈다. 여기에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음악까지 더해지면서 <콘스탄트 가드너>는 시청각적인 풍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다. 배경음악을 자제하고 보다 건조한 영상이 어울릴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콘스탄트 가드너>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감을 잃지 않는 잘 연출된 풍성함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랄프 파인즈의 대표 캐릭터는 여전히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다혈질 러버보이지만 <쉰들러 리스트>의 독일군 장교나 <퀴즈쇼>의 대학교수도 있었고 <스파이더>의 정신분열증 환자와 <레드 드레곤>의 연쇄 살인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춘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콘스탄트 가드너>에서는 좀 더 일상적인 인물로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손쉽게 하여 마침내 영화의 중심적인 정서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레이첼 와이즈는 단독 주연작은 드물지만 <미아라>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콘스탄틴>과 같은 액션물과 <어바웃 어 보이>와 <엔비> 같은 코미디까지 비중 높은 조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해온 배우인데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연기는 이번 수상이 그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콘스탄트 가드너>에는 빌 나이, 피트 포슬스웨이트, 제라드 맥솔비 등 낯익은 영국계 조연들이 함께 출연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름 없는 아프리카의 단역 배우들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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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