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임브레이스”, 비극적 멜로와 영화 만들기

<귀향>(2006) 이후 3년만에 찾아온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입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다시 한번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 역을 맡고 있는데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작품치고는(?) 매우 통속적인 줄거리의 영화이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있어서는 역시나 감독 특유의 색깔을 재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대기업 총수의 정부가 영화배우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감독과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질투심에 가득찬 총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15년 전의 과거사로 설정해놓고 현재 시점으로부터 조금씩 캐내어 관객들 앞에 펼쳐보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를 통해 고전적이라 할 만큼 뻔한 내용의 치정극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과거 시점의 아픔으로서 전달되게끔 하는 것이지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레나(페넬로페 크루즈)와 마테오(루이스 호마르)가 만나고 사랑한 것은 다름아닌 영화를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 사랑은 질투심에 눈이 먼 자본가 어네스토 마르텔(호세 루이스 고메즈)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지요.

레나와 함께 시력까지 잃어버린 마테오는 두 사람이 함께 묵었던 도피처에서의 이름, 해리 케인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세월을 살다가 마침내 마르텔의 죽음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과거의 사랑을 복원하기 시작합니다. 마르텔의 손에 의해 최악의 작품으로 편집되어 버린 영화 속 영화 “여인과 가방”이 마테오와 레나를 만나게 해준 작품이었던 동시에 두 사람의 사랑이 빚어낸 결실이었다고 본다면 이 영화를 복원하는 과정은 곧 마테오에게 있어 레나와의 사랑을 불멸의 것으로 남기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의 플롯에서 흥미로운 부분들 가운데 하나는 메이킹 필름을 찍는다며 마테오와 레나의 뒤를 쫓아다니던 마르텔의 게이 아들이 결과적으로는 맹인 작가 해리 케인으로 살고 있던 마테오가 레나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메이킹 필름의 카메라를 피해 사랑을 나누었던 두 사람은 그 카메라를 통해 레나가 마르텔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먼 훗날 마테오에게는 레나와의 마지막 순간을 추억하는 결정적인 매개체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조악한 디지털 화면 속에 담긴 마테오와 레나의 마지막 입맞춤 장면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애절하게 표현되고, 그 뒤를 이어 레나가 연기했던 화려한 색감의 복원판 “여인과 가방”이 이어갑니다. 사랑의 기쁨도 슬픔도, 사랑에 대한 추억까지도 모두 영화와 함께 이루어지는 세계가 <브로큰 임브레이스>에 담겨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