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래트럴”, Hands of Time


 


 


 


 



 


2004년 개봉 영화 “콜래트럴”(Collateral),


마이클 만 감독의 수작 중 하나인 이 영화에는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


그리고 제이다 핀켓 스미스 외 재능있는 조연들이 열연을 펼친다.


 


이 영화에는 영화 못지않게 멋진 노래가 삽입되어있는데,


영화의 초반부, Annie(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Max(제이미 폭스)의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가는 장면에서 나온다.

L.A.의 밤 거리,
옅은 안개가 낀 듯 우울한 그 거리 여기저기,
높이 솟아있는 빌딩들에서는 불빛이 반짝이는데,
그 사이를 Max의 택시가 달린다.
그리고 흐르는 노래 …

“Hands of Time”

London 출신의 2인조 그룹, Groove Armada의 2003 년 앨범 “Love Box”에 수록되어있는 이 곡, Richie Havens가 피쳐링으로 참여한 이 노래가 문득 듣고 싶어졌다. 


 



 






 


 







 


 



Hands of Time



Groove Armada


Keep looking through the window pane
Just trying to see through the pouring rain
It’s hearing your name, hearing your name
I never really felt quite the same,
Since I’ve lost what I had to gain
No one to blame, no one to blame
Seems to me,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Oh it seems to me, can’t back the hands of time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다보고 있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그 너머를 보고자 하네,
당신의 이름이 들려와 … 당신의 이름이 들리는듯 하네 …
내가 가져야만 했던 것을 잃은 이후로,
진정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네,


아무도 탓 할 수 없지, 누구도 탓 할 수 없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아, 정녕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네.



Seems to me,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Oh it seems to me,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Seems to me, history was left behind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아, 정녕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네.
모든 것이 이젠 과거로 남겨지고 말았네.


 


 


 


 


영진공 이규훈


 


 


 


 


 


 


 


 


 


 


 


 


 


 


 


 


 


 


 


 


 


 


 


 


 


 


 


 


 


 


 


 


 


 


 


 


 

“어벤져스”, 너는 홀몸이 아니란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었나 보다.”


 


 


근래 Made in 마블 코믹스 표 영화를 보던 내 마음을 표현해준 것은 이 시 한 구절이었다. 제아무리 매니아가 아니라면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영화라고 해도, “아이언 맨 2″부터 “토르”,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마구잡이식 재고 대방출, 찍고보자식 영화 완성도의 꼬라지는 그야말로 암담한 수준이었다.


 


그건 매니아란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배트맨”과 “엑스맨”의 완성도는 원작을 보지 않은과연 영화 붐을 타고 미국산 코믹스들이 번역 되기 전에 그 원작을 본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이들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드디어 2012년 세계 종말이 오기 전에 등장한 어벤져스. 대체 어떤 세기의 대작을 만들었길래 앞의 작품들을 그렇게 분탕칠 해야 했는지, 수능 시험 성적표를 앞에 둔 수험생 아니 재수생 마냥 내 가슴이 다 설레었다.


 


그렇게 “어벤져스”는 마블이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났던 것이 이해가 갈 만큼 평일 관람료 8,000원을 후울~쩍 뛰어넘는 재미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서 마구 뱉아내던 작품들을 꾸역꾸역 보느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말초신경을 시원스레 경락 마사지해주었다.


 


그러나 “어벤져스”는 홀몸이 아니다. 앞서 3개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등장한 작품이 아니던가. 나 역시 울며 겨자 퍼먹는 심정으로 앞선 작품들을 다 보았기 때문에 어벤져스를 향한 나의 기대치는 평일 관람료 기준 아이언맨2(8,000)+토르(8,000)+캡틴 아메리카(8,000)이 포함된 32,000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느 한 작품 조조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과연 “어벤져스”가 나에게 32,000원 어치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었냐고 한다면 글쎄다. 연애에서도 상대방과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보스급인 사슴머리의 존재감은 옥의 티가 아니었을까 한다. 기껏해야 헐크의 1회용 개그 소재 정도였으니 이렇게 폼 안나는 보스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주인공들이 워낙 넘사벽이라 적과의 싸움보다는 지들끼리 싸울 때 오히려 더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점수는 32,000원 만점에 24,000원까지다. B급도 아닌 C급 특촬물스러웠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생각해도 안주 없이 소주 한 병 까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전차로 니들이 진정 히어로라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기 앞서 우리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서 앞으로 이 이상의 수준으로 3편 정도 더 나올 수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OK?!



영진공 self_fish


 


 


 


 


 


 


 


 


 


 


 


 


 


 


 


 


 


 


 


 


 


 


 


 


 


 


 


 


 


 


 


 


 


 

“이터널 선샤인” (2004), 네가 내 곁에 있든 없든 난 괜찮아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사랑과,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만류인력의 법칙에 따라 땅껍질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한번이 되었든 수십번이 되었든 어떤 모양이든지간에 사랑을 하고 만들고, 그 기억을 가슴 한켠에 붙박이장처럼 붙여 들여놓고 살기 마련이다.

결점투성이인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보듬는 일 또한 실수와 오발의 연속이며 유치한 이기심과 알량한 속셈의 퍼레이드다. 누구라고 그 혐의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동화같은 사랑이야기는 사람들이 원해서 만들어 지는 것. 화면 안의 해피엔딩-영원히 행복했답니다-은 악성 변비환자의 내일 아침 쾌변처럼 이상향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눈꺼풀에 씌워져있던 얇디 얇던 콩깍지는 햇빛에 직격당한 흡혈귀의 피부처럼 재가 되 버려 바람에 날려 흩어지기 마련이고 진실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라만 봐도 밤잠을 설치고 심박수를 무한대로 끌어올리던 사람의 사소한 단점들이 100원짜리 망치게임의 두더지 대가리처럼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순간 꿈같던 사랑은 구질구질한 현실로 돌변하고 대부분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은 그렇게 끝나버린다.

전혀 남남이던 사람을 순식간에 내 반쪽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얄팍한 감정의 반대편은 이렇게 냉정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을 조작한다. 유치한 짓거리지만 인간은 그렇게 한다. 내가 쪽팔렸던 부분, 내가 싫었던 부분을 싸그리 들어내 봉투 속에 꼭꼭 눌러담아 폐기 처분하고 좋은 기억, 아름다운 기억들만 붙박이 장속에 예쁘게 정리해 넣어 두고 가장 사랑스럽게 나온 사진을 커다랗게 찍어내 철퍼덕 붙여 자기를 속이고 남들을 속인다. 내 사랑은 아름다웠네, 내 사랑은 달콤하고 짜릿했네라고.

니체가 말한 망각의 축복은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폐기 처분하는 편리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들은 “정말 그랬던 것”으로 바뀌고 아예 그것이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어버림으로서, 애틋하고 아름다운 한편의 [추억 : 사랑편]은 완성된다.
사랑은 어쩌면, 뿌연 생크림이 잔뜩 얹어진 커피처럼 망각으로 덮인 기억 속에서만 달콤한 것일지도.



조엘도 언젠가 자신만의 기억을 만들어냈을 거다.
 

기억을 제거하는 따위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녀가 남긴 필름들을 잘라내고 이어붙여 가슴떨리게 만들던 그녀의 모습과 귓가에 속삭이던 설레이는 단어들과 예쁜 기억들만으로 만든 추억편을 완성했을 거다.

너무 많은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미처 정리를 못했을 뿐. 그는 혼자 힘으로 꾸역꾸역 지근지근 정리하고 골라내고 지워내서 예쁜 이야기책을 완성했을 거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이야기책을 혼자 몇번이고 반복해 읽다보면 또, 그는 예정된 실패는 까맣게 잊게 되었을 것이고(잊기를 원했으므로) 스스로 골라내 꼭꼭 담아 버린 것들을 완전히 잊어먹었을 때, 사랑했던 시간보다 몇배의 아픔을 견뎌내던 시간들을 완전히 망각했을 때.

그는 클레멘타인을 생각나게 하는 또다른 누군가(기억이 전부 지워지지 않았다면 다시 클레멘타인이 되지는 않았을거다)에게 더듬거리며 손을 내밀었을 것이고 비슷한 지점의 그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았을 것이고

“당신 … 내가 다시 지겨워지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을 거에요. 아마도.”

그렇게 막연한 희망으로 또 가슴이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유치해도 인간은 그렇게 한다.

영진공 거의없다

 

“셔터 아일랜드”, 반전 하나로 간단히 덮는 기술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정 정도의 반전을 후반부에 보여주곤 합니다만 <식스 센스>(1999)식으로 단 한 마디의 스포일러에 영화 전체를 완전히 달리 보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의미의 반전 영화는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듯 합니다.

제 경우 <셔터 아일랜드>의 반전을 감독이 의도한 지점에 이르기까지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영화를 제대로 잘 감상한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가 반전되는 그 지점에 당도하기 전까지 <셔터 아일랜드>는 상당히 피곤하고 짜증스럽기까지 한 영화로 여겨졌습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초반부터 배경음악을 아주 유난스럽게 사용하더니 컷과 컷의 연결이 자주 어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데군데 앞뒤가 잘 안맞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외 폭풍우 내리치는 장면이나 모닥불 가에서 대화하는 장면조차도 상당히 신경이 거슬리더군요.

최근에 <러블리 본즈>에 대해 레인맨님이 “피터 잭슨이 발로 연출한 영화”라고 하신 것 때문에 신경질을 부렸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셔터 아일랜드>를 놓고 “마틴 스콜세지가 발로 연출한 영화”라고 해야 하는가 보다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반전을 통해 시종일관 어색하게만 보였던 내러티브의 전모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의도된 연출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반전을 알고 나면 그때까지 보아온 등장 인물들의 이상한 행동이나 전개들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참 이상하게 찍어놓은 장면들조차 모두 정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시나 이 영악한 노인네 감독이 그렇게까지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었을 리는 없었던 거죠.

하지만 오랜만에 반전 영화의 묘미를 만끽했다기 보다는 그저 아항 그게 그런 거였냐 – 이제야 납득은 한다만 여전히 피곤하구나 – 라는 정도입니다.

스콜세지 감독이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고전 영화의 연출 기법을 차용해서 보여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바로는 이런 정도의 영화를 굳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 그러지 말라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만 –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전체적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외 기술적으로 흠잡을 만한 구석도 없습니다만 –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보고난 후에 다시 정리된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 그렇다고 아주 좋아라 할 만한 이유도 딱히 없는 작품이랄까요. 요즘은 영화를 워낙에 다들 잘 만드시니까 내용까지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선뜻 치켜세워주게 되지를 않는군요.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일찌감치 감을 잡고 달리 보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예전에 자주 얘기하던 바로 그 ‘반전 영화’다 보니 내용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도 잘 못꺼내겠군요. 영화 줄거리를 확 뒤집는 반전이 있다는 이런 식의 정보조차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미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영화 속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크 러팔로가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데, 그럴 때마다 < 땡큐 포 스모킹>(2005)에서 담배 회사 대변인인 주인공이 헐리웃의 영화 제작자를 찾아가 PPL 상담을 하던 장면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태우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디카프리오가 연습을 참 많이 했더군요.

Leonardo Dicaprio와 감독 Martin Scorsese

영진공 신어지

 

<셔터 아일랜드>,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지를 동시에 보다

이건 정말이지 영화다운 영화다! 물론 <언 에듀케이션> <어웨이 위고> 도 좋았지만, 이 두 영화는 훗날
DVD로 봤대도 크게 후회하지 않을 뻔했다. 바로 <셔터 아일랜드>에 비하면 말이다.

필름온에서 뽑은 제목대로 ‘고전영화 미학의 재림’이 정확히 들어맞는 이 영화는 마틴스콜세지가 작정하고 오마주한 히치콕의
영화처럼 과거로 회귀한듯한 미학영상을 보여준다. 내겐 바로 이점이 <셔터아일랜드>의 최고 매력이다.

셔터 아일랜드라는 미지의 섬에 중범죄들만을 격리, 치료하는 정신병원이 있다.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곳에서 한
여인이 신발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사를 위해 연방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동료 척(마크 러팔로)이
도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테디가 겪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악몽과 끔찍한 두통으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좀처럼 풀리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 관객의 숨을 끝없이 죄여온다.

당장 읽고 싶어진 영화의 원작,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이 워낙 훌륭하대도, 원작을 이토록 매끈하게 영화화한
건 바로 마틴스코나세지라는 거장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의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미간의 주름을 더해 상처와 불안으로 점철된 극중 테디의 모습이 바로 제것인양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더해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오르고 나면 척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의 연기에도 새삼 박수가 터져 나온다.

<셔터 아일랜드>는 스릴러 영화로 1%도 부족함이 없지만, 무의식, 트라우마, 자기분열 같은 인간의 내면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흥행을 노린 헐리우드 영화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꽃샘추위가 반짝 고개를 든다는 이번 주말에, 하늘이 어둡고 잔뜩 칙칙하다면 더욱 더 <셔터 아일랜드>를 보러
극장으로 향하면 좋을 것같다. 컴컴한 봄날과 ‘고딕풍의 미스터리 스릴러’의 앙상블에 제법 마음을 뺐길지도 모른다.

영화의 원작 소설.
국내에는 '살인자들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