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영감님, 축하합니다. ^^ <영진공 70호>

산업인력관리공단
2007년 3월 8일

‘뒷북 전문’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번에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 상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바다.  마티 할아범의 필모그래피는 숱한 ‘시대의 명작’과 ‘평범한 감독의 걸작보다 뛰어난 범작’들로 꽉 채워져 있다. 한국의 박스오피스에서 마티 할아범의 영화가 그닥 통하지 않았던 건, 그의 영화가 지독히도 미국적인 정서, 특히나 대체로 단일 민족으로 살아온 한국인들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다민족 이주민들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기반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마티 영감님의 범작 <갱즈 오브 뉴욕>에서 서로 대립하는 집단의 정체성과 차이, 혹은 아이리쉬 어메리칸의 수난과 전투의 역사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한국관객의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미국 땅에 이민온 다양한 출신의 이주민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어떤 반복과 화해를 거듭해오며 미국의 역사를 구성해 왔는지,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솔직히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이것을 알면 <갱즈 오브 뉴욕>이, 또한 숱하게 많은 미국 영화들이 좀 다르게 보인다. 그 이전 마틴 스코시즈의 초기작들 역시 마찬가지. 물론 <분노의 주먹>이나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를 보는 데에 ‘이태리 이주민’으로서의 그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알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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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ly!!!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까지 <디파티드>가 휩쓴 것을 두고 말이 많다. 물론 마티 영감님을 사랑하는 팬으로서는, 그가 수상한 작품이 필모그래피에 가득한 그 무수한 명작들이 아닌 <디파티드>라는 사실에 조금 씁쓸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아카데미가 ‘뒷북 전문’인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 이에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마음 상할 이유도 없다. (마티 영감님 말고도 숱한 거장과 장인들이 최고작이 아닌 범작으로 상을 받곤 했다, 그것도 아주 늦게.) <디파티드>는 미국에서 평단과 흥행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 수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디파티드> 같은 졸작에 작품상을 주다니 역시 아카데미는…”과 같은 의견을 보며, 조금 기분이 우울해졌다.


물론 원작이었던 <무간도>가 훌륭한 영화였던 것은 사실이고, 또한 이미 <무간도>를 본 관객의 입장에선 <디파티드>의 흠결이 더욱 크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의 리메이크인 이상 두 영화를 비교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으로 당연한 일이다. 나는 <무간도>가 <디파티드>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의견도 수긍할 수 있고 <디파티드>가 마티 영감님의 영화론 후지다는 의견도 수긍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과 소통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며, 관객이라는 집단은 다양한 맥락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천하의 걸작이 다른 동네에 가서 쓰레기가 되는 건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전에 <디파티드> 감상문에서도 의견을 피력한 바 있지만 <디파티드>가 그토록 (절대적으로, 영화 미학적 측면에서) 후진 영화인가, 그토록 졸작인가, 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런 졸작’ 운운하는 소리 앞에서 <디파티드>가 지나치게 부당한 폄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비슷한 줄거리를 공유하고 있다 해도, 두 영화는 접근하는 방향과 입장, 그리고 주제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디파티드>가 거장의 범작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다른 평범한 감독들의 범작/걸작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근거는 이미 감상문에서 밝혔으므로 여기에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인을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되는(그리고 굳이 이해해야 할 당위가 있는 것도 아닌) 미국식 사고에 기반한 영화를 만드는 마티 영감님이 쉽게 이해가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그런 미국식 사고가 익숙한 것도 아니며, 그렇기에 그의 영화를 100%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를 향한 미국 내에서의 환호가, 단순히 ‘훌륭한 영화(<무간도>)를 못 봐서인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마티 영감님을 ‘그렇고 그런 흔한 헐리우드 감독 중 한 명’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관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는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나의 냉소가 갈수록 짙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뭐, 마티 영감님의 영화가 한국에서 오해되건 말건 어차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티 영감님한텐 별 상관이 없는 일일 터이고, 사람들이 마티 영감님에 대해 저토록 오해한다 하여 내 애정에, 혹은 마티 영감님이 가진 굳건한 명성과 성취에 금이 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 어쩌면 이 글의 본질이라는 것도 실은 ‘니들이 뭔데 마티 영감님을 욕해!’에 불과할런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마틴 스코시즈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을 받을 만했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그저 멀리서 작은 축하를 드릴 수 있다. 마티 영감님, 진심으로 축하해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영화를 보여주세요.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