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야 간다”, 김수철

 










배창호 감독의 1984년작 <고래사냥>의 주제가는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아니라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이다. 물론 송창식의 곡이 먼저 나왔고(아마도 75년, <바보들의 행진> OST에서였다고), 배창호 감독의 영화 제목은 거기에서 따왔을 수도, 혹은 다른 데에서 연유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건 마지막에 일행이 춘자의 고향에 도달해 무사히 어머니의 품에 안착할 뿐만 아니라 춘자가 말을 되찾기까지 하는, 매우 낙관적이고 희망이 넘쳐나는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에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송창식의 노래가 아무래도 좀 우울한 구석이 있는데다 가사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간다기보다는 아무래도 ‘도피’의 고래를 찾아나서는 듯한 느낌인 반면, 김수철의 노래에는 청춘다운 패기와 정말로 희망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힘이 살아있다.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젊은 나이를/세월을 눈물로 보낼 수 있나”인데,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 노래의 가사는 원래 박용철이 1925년에 발표한 시 ‘떠나가는 배’의 1연을 베이스로 한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 두 야 가련다) 김수철의 ‘젊은 그대’도 그렇지만, ‘나도야 간다’ 역시 굉장히 단순하고 힘찬 로큰롤 가락인지라 박용철의 원시의 비장하면서도 절망어린 표정 대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나는 희망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이런 건강한 희망과 낙관이야말로 현실을 돌파하는 가장 큰 힘, 나아가 예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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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을 검색하다가 저 뮤직비디오를 찾았는데, 2002년에 제작된 거라고 하는 듯? 이미숙과 안성기가 찬조출연을 해주고 있는데, 이미숙의 추억 속 앨범에 등장하는 <고래사냥> 원래 영화 장면, 이라는 시작도 좋고(미숙언니 너무 예쁘심 ㅠ.ㅠ), 안성기가 <고래사냥>의 바로 그 거지왕초 캐릭터로 다시 등장하는 것도 너무 좋다. (안성기 최초의 뮤직비디오 출연이라고 한다.) 다만 현대의 아이들은 너무… 곱고 팬시하다는. 뭐 뮤직비디오니까 어쩔 수 없는 거려나. 남자애가 보고 있던 TV에 나오는 장면이 유곽에서 도망치는 장면과 기차 지붕 위로 올라타는 장면인데, 특히 저 기차 장면은 영화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잘 찍힌 명장면이다. 음악은… 기타 사운드가 좀더 일렉해지고, 전체 템포가 좀더 빨라진 듯한. 소박한 원래 버전이 더 좋지만 이 버전도 나쁘진 않다.


<고래사냥>이 저토록 희망차고 낙관적인 영화임에도 나는 영화를 보다가 여러 번 눈물을 흘리며 아픈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신나는’ 2002년 뮤비 버전도, 처음에 볼 땐 혼자 막 눈물 찔끔대며 가슴이 아팠더랬다. 웃다가 울다가 가슴 부여잡다가, 그럼에도 너무나 밝은 저 김수철의 표정이 참 좋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아, 근데 다시 들어도 진짜 명곡이다. 25년 전 노래가 이토록 세련되고 여전히 힘있을 수가 있다니까. 김수철 만세!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밭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편지를 쓰네
노랑나비 한 마리 꽃잎에 앉아
잡으려고 손 내미니 날아가 버렸네
떠난 사랑 꽃잎 위에 못다 쓴 사랑
종이 비행기 만들어 날려 버렸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집으로 돌아갈 때 표를 사들고
지하철 벤치 위에 앉아 있었네
메마른 기침 소리 돌아보니까
꽃을 든 여인 하나 울고 있었네
마지막 지하 열차 떠난 자리에
그녀는 간데 없고 꽃 한 송이 뿐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세월을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사랑 찾아 나도야 간다


사랑아 나도야 간다


영진공 노바리

두근두근 윤성호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면 몸살이 날 정도로 질투를 한다. 

또 몸살이 날 거 같다.

<우익청년 윤성호> <은하해방전선>을 만든 윤성호 감독의 <두근두근 배창호>

개봉관을 세 번이나 찾게 만들었던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서 사랑을 얘기한다. 재치 넘치는 저 대사.

“이성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고 키에슬로브스키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그토록 각잡고 썰푼 주제를 두 번의 빵빵 터지는 웃음과 함께 8분 만에 전달하는구나.

시바. 다음에 혹 만나게 되면 사귀어달라고 찐따 붙어야겠다.

* 보태기

생각해보니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개봉관에서 3번 본 게 아니다. 재개봉관이었다.

왕조현에 대한 풋사랑에 빠져 극장 입구 홍보용 스틸 사진을 밤마다 뽀리까러 다니던 중삐리 시절. 극장 주인은 스틸사진 광고판에 끝내 자물쇠를 채우고 말았다.
그때 <천녀유혼>을 상영하던 재개봉관에서 동시상영해준 영화가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었다. 처음엔 왕조현 때문에 보게 된 <기쁜 우리 젊은 날>이 나중엔 <기쁜 우리 젊은 날> 때문에 왕조현을 덤으로 관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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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기쁜 우리 젊은 날>과 <천녀유혼>의 동시상영. 이 얼마나 놀라운 작품 선정인가. 재개봉 동시상영관은 우리 감성의 자양강장제였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영웅본색>을 보러 동시상영관에 갔다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만났다. 찰리 채플린이라고는 바른손 문고에서 나오는 노트 디자인으로만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흑백의 무성영화라는 사실에 친구와 나는 극장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자리에 눌러붙고 말았다. <영웅본색>의 윤발 형님 쌍권총 보다 더 놀라운 충격이었다.

<산딸기>를 보러 갔다가 만난 영화는 <스카페이스>였다.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무섭고 멋있고 슬프고 안타까운, 정체불명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외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를 나는 재개봉관에서 만났다.

값도 비싸고 대부분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입장할 수 없었던 개봉관과는 달리 재개봉관은 알면서도 중삐리 고삐리들을 받아줬다. 물론 주된 관람 목록은 <여왕벌 시리즈> <애마 시리즈> <딸기 시리즈> 등등이었고 좌석에 앉아 담배도 뻑뻑 태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놀라운 영화들을 무려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작은 해방구라고 할까?

당시에는 수입 금지 영화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명분 없는 정권은 좌파의 색이 묻어나는 영화들을 특히 남미나 유럽 영화들을 우리와 차단시켰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안전하면서도 전두환의 3S에 부합하는 헐리웃 영화들.

그래서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더더욱 목마를 수밖에 없었다. 갈증이 커지니 욕망도 커지고, 욕망하면 상상력도 풍성해지는 법. 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그 재개봉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류승완처럼.

이젠 영화가 너무 흔하다. 흔하기 때문에 찾아보는 노력도 안 들이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모던 타임즈>와 <영웅본색>을, <천녀유혼>과 <스카페이스>를, <7인의 사무라이>와 <파마탱>을, <맨하탄>과 <촉산>을 함께 하는 극장이 있다면 다시 걸음이 옮겨질 것도 같다.


영진공 철구

[꼬방동네 사람들], 가장 훌륭한 데뷔작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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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영화포스터답다…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던 배창호 감독이 데뷔작으로 선택한 것은,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의 원작자인 이동철 씨가 쓴 또다른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이다. 판자촌 마을인 이 꼬방동네는 아침마다 하나뿐인 공동화장실에 길게 줄이 늘어서며 빨래터에서 팬티 한 장을 서로 내 거라고 아귀다툼을 하다 싸움이 나기도 하는 동네다. 이곳에서 검은 장갑을 낀 여인 명숙(김보연)은 매일 노름이나 하며 소일하는 한량 태섭(김희라)과 결혼해, 새아빠에게 반항하며 점점 삐뚤어져가는 아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친다. 그러던 명숙 앞에 그녀의 전남편이자 아이의 생부인 주석(안성기)이 나타난다. 택시기사로 변해있는 주석은 명숙과 서로 사랑해 결혼했지만 원래 직업은 소매치기였고,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했던 명숙은 몇 번이고 그가 감옥에 갈 때마다 그를 기다렸지만 그 기다림에도 지치자 결국 꼬방동네에서 태섭과 재혼한 것이다.

아마도 이동철의 원작에서는 명숙과 태섭, 주석 간의 삼각관계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리라. 그러나 배창호 감독은 꼬방동네의 여러 사람들을 배경으로, 이들의 삼각관계를 영화의 중심으로 적극 끌고 나온다. 이는 아마도 시나리오 검열, 이후 완성된 영화의 검열이라는 이중검열제도가 존재하던 당시 검열의 칼날을 피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여겨진다(실제로 배창호와 이동철이 각색한 시나리오는 사전 검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 지시를 받았고,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제목마저 사용 금지를 당했다.). 다행히 완성된 영화는 해외상영 불가를 조건으로 무수정 통과를 하게 되는데, <꼬방동네 사람들>이 결국 멜러영화라는 장르의 틀로 만들어진 것은 검열의 결과이긴 했으나, 배창호 감독의 영화세계를 규정짓는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후 그가 만든 영화들 역시 대체로 진한 멜러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명숙에 대해 접지 못한 사랑 때문에 계속 명숙 모자 앞에 나타나는 주석. 그리고 어쩐지 낯이 익은 주석을 의심하면서도 사람좋은 한량의 태도로 주석을 대하며 슬슬 찔러보는 태섭. 그 사이에서 조마조마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명숙. 영화는 이렇게 세 사람의 삼각관계에 줄거리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단연 빛나는 것은 배창호 감독이 캐릭터들을 그려내는 방식, 그리고 이들의 이런 갈등이 펼쳐지는 배경이 되는 꼬방동네이다. 아내가 힘들여 번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는 태섭은 사람좋은 너털웃음과 능글거리는 태도로 애교를 떠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제아무리 명숙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마초적으로 군다 해도, 주석 앞에서 자신이 무서운 사람이라며 폼을 잡고 허풍을 친다 해도, 그가 그렇게 과장된 폼을 짓고 있는 동안 드러나는 건 혹여 사랑하는 명숙이 결국 자신을 떠날까 봐 안달하는 두려움이다. 김희라는 이 태섭 캐릭터를 그 ‘육덕진(!)’ 몸으로 매우 섬세하게 연기해 낸다. 술값으로 아내가 힘들여 본 돈을 슬쩍해 팬티 속에 숨겨놓고, 잔치 때 그저 신나서 눈을 반짝이며 춤을 추고, 그러다 주석과 대작을 하며 그에게 허풍을 치면서도 그 사이로 이 건달 한량의 두려움을 슬쩍 내비치는 솜씨가 너무 훌륭해서, 어릴 적 TV에서 주로 후까시를 잔뜩 잡는 조직 보스 역으로 낯이 익은 이 분이 이토록 연기를 잘 하는 분이었구나, 새삼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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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녀의 삼각관계가 영화를 이끄는 축이 된다.


한편 주석 역시 참 기구한 인생인데, 소매치기인 걸 숨긴 채 명숙과 결혼했다가 감방에 가는 건 그렇다 치고, 그렇게 돌아온 뒤 마음잡고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항구에서 일을 하지만 전과가 있는 탓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소매치기 재범으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인생이 더욱 꼬이게 된다. 그때까지도 기다려줬던 명숙이건만, 굶고 있는 자식과 아내 때문에 눈이 뒤집힌 그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가 잡히는 장면은, 정말로 지갑을 훔쳐야겠다는 일념보다는 차라리 잡혀서 인생 끝내고 싶다는 도피적인 절망감이 가득하다. 명숙을 꼬시던 시절엔 자신만만하고 철없어 뵈던 젊은 청춘이었던 이가 꼬방동네에 나타나 명숙과 7년만에 재회를 하는 현재 시제에서는 어느 새 깊고 어두운 우울과 고독을 눈에 가득 담은 30대가 돼 있다. 배창호 감독은 안성기 특유의 도시적 우울과 고독을 가득 안은 ‘걷는 모습’을 매우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가 미로같은 꼬방동네의 골목을 헤매며 명숙의 주변을 서성이는 장면이 주는 안타까움은, 보통 사람 좋아보이는 호인 인상으로 여겨지는 안성기의 얼굴이 실제로 깊은 도시의 우울을 근사하게 체현해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시네마스코프로 촬영됐는데, 배창호 감독의 말을 듣자하면 이 당시에는 시네마스코프로 촬영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과연 이 시네마스코프 촬영은 우연히 꼬방동네에 왔던 주석이 명숙을 발견하고 뒤쫓는 장면, 그리고 명숙을 뒤따라가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너비의 좁디좁은 골목길 장면, 그리고 마을잔치 장면 등에서 매우 적절히 효과를 드러낸다. 그런데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정말로 빛을 발하는 장면은 이런 몹씬보다도 의외로 안성기나 김보연 같은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줄 때이다. 배창호 감독은 종종 시네마스코프의 가로로 절찍한 화면을 반은 인물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나머지 반은 후경의 (초점이 아웃된) 움직이는 사람들/물체들로 채워넣곤 하고, 이런 미장센은 <꼬방동네 사람들>뿐 아니라 이후 <적도의 꽃> 같은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화면이다. 이런 장면에서 인물의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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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이른바 ‘병신춤’에 환호하는 마을사람들.


판자촌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 그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고 힘겹게 만드는 당시 사회상을 세 남녀의 멜러영화의 틀로 그려낸 것이 과연 이 영화의 단점일까? 아니,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모를 비밀을 안고 있는 태섭뿐 아니라 주석과 명숙의 캐릭터를 통해 화려한 도시의 한 구석, 산동네의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가난하기에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배창호 감독은 이들의 삶을 그저 절망과 우울로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회갑을 맞은 마을 어른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돈을 각출해 마을 잔치를 열고 함께 즐기는 이른바 마을잔치 장면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따뜻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힘을 애정어린 눈길로 묘사해낸다. 늘씬하고 값비싼 명품을 몸에 두른 세련된 도시여인한테나 어울림직한 ‘삼각관계’를 판자촌의 검은 장갑 ‘명숙’을 주인공으로 펼치면서, 이 가난하고 힘겨운 사람들의 삶에 눈물과 한숨과 고통과 절망뿐 아니라 그럼에도 웃음과 사랑이, 춤이 있다는 것을, 그로인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1982년작인 <꼬방동네 사람들>은 다소 “80년대 영화스럽다’ 싶은 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한 시대의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 당시의 영화문법일 뿐만 아니라, 신인감독의 데뷔작으로서의 미숙한 부분이기도 할 터이다. 그럼에도 <꼬방동네 사람들>은 한국영화사에서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과 함께 가장 놀라운 데뷔작으로 꼽혀도 무방할 만큼 아름답고 능숙한 연출솜씨를 자랑하는, 소중한 작품이다.


영진공 노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