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4”, 이젠 나도 어엿한 블럭버스터


2002년에 <레지던트 이블>이 처음 개봉되었을 때에는 혹평 일색이었습니다. 게임 원작으로 만들어진 또 한 편의 지루한 액션 영화라는 얘기가 많았었고 그래서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이 영화가 4편씩이나 계속 만들어지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죠. 2년 뒤에 만들어진 <레지던트 이블 2>(2004) 는 그나마의 신선함마저 사라진 속편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시리즈의 종말을 예고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제작비의 3배 이상을 전세계 상영관에서 벌어들이는 꽤 내실있는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특히 부가판권 시장을 통해 그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었지요. 애초부터 대단하다고 할 만한 작품은 못되었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괜찮은 영화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할까요.

그리하여 2007년에 <레지던트 이블 3 : 인류의 멸망>이 다시 나왔을 때에도 작품에 대한 평가는 특별히 나아질 이유가 없었습니다만 역시나 탄탄한 흥행 기록을 세우며 시리즈를 이대로 끝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그 브랜드 가치가 성장했음을 입증했습니다. 비유하자면 1억불 이상의 제작비를 쏟아부어 그 이상의 호평과 흥행 성적을 올리는 초대박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3 ~ 4천만불 규모로 매번 쏠쏠한 재미를 거둬들이는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죠. 놀랄 만한 수익률을 보여주는 일 보다 중요한 건 역시 리스크 없는 착실한 성장이니까요.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이번 <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은 첫 편과 비교할 때 제작비 2배에 흥행 수익 역시 2배 이상으로 훌쩍 커지면서 이제는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블루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국 뉴캐슬 출신인 폴 W. S. 앤더슨 감독은 시리즈의 첫 작품을 제작, 각본, 감독한 이후 2편과 3편의 연출을 계속 다른 감독들에게 맡겨오다가 이번 네번째 작품을 통해 촬영 현장에 직접 나섰습니다. 앤더슨 감독의 연출은 T-바이러스의 창궐로 인류가 멸망하면서 전편에서는 거의 <매드 맥스>(1979)의 사막 풍경처럼 변모해버린 시리즈에 다시 한번 사이버펑크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영화 초반을 장식하는 도쿄 지하 기지에서의 총기 액션은 누가 보더라도 <매트릭스>(1999)의 장면들을 연상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닮아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액션 영화 팬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미지들이 넘실거리는 편인 <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은 워쇼스키 형제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 또는 마이클 베이 감독과 같이 선구자적인 위치에 서기 보다는 남들이 이미 완성해낸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되 간결한 편집을 통해 영화 전체의 속도감을 부여하는 폴 W. S. 앤더슨 감독의 연출 방식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드라마적인 측면에서는 절대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영화이지만 – 그런 점에서는 3편 <레지던트 이블 3 : 인류의 멸망>이 가장 나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오직 액션 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당대의 어느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매우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여전히 내러티브 자체가 게임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고 – 마지막에는 언제나 보스전이 기다리는 – 관객들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대충 건너뛰는 허술함도 엿보이긴 합니다만 3D 포맷의 트렌드에 맞춰 블럭버스터급 영화로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 시리즈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5편의 예고편이나 다름이 없을 만큼 유난스럽기까지한데 <레지던트 이블>(2002)을 의외로 꽤 재미있게 보았던 이후로 줄곧 앨리스(밀라 요보비치)의 액션 씨퀀스를 즐겨왔던 관객들이라면 오히려 시리즈의 팬들을 위한 확실한 약속 쯤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앞에서 언급한 <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의 첫 액션 씨퀀스는 시리즈의 한 축을 이루는 좀비 호러의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앨리스의 얼굴이 처음 드러나는 순간 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정말 즐거웠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