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직전 그들 (Just Before They Died)”, 고백의 힘을 믿기에 …

캄캄한 밤.
흉측한 모습으로 뒤집어진 자동차 내에 두 남녀가 보인다.
안전벨트에 간신히 의지한 여자는 거꾸로 매달려 있고
제대로 앉아있는 남자는 예리한 어떤 것에 가슴팍이 찔렸다.

큰 소리로 살려달라 외치면
여자의 얼굴은 터져버릴 듯 피가 쏠리고
남자의 가슴팍에선 꾸덕꾸덕한 피가 콸콸 쏟아진다.

살고 죽는 경계에 선 둘.

 


여자: 너 나 좋아한다며.
남자: 누가 그래?
여자: 수정이가.
남자: 아닌데.
여자: 아니야? 그럼말고…
여자: 나중에…사람들이 왜 너랑나랑 같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겠다
…..
……

여자: 내가 너 좋아해.

죽기직전… 뜻밖의 고백.

순간, 남자는 있는 힘을 다해 두 다리로
자동차 문을 쾅, 내리 찬다.
커다란 쇠덩어리가 거짓말처럼 떨어져 나가고
남자는 여자를 꺼내 들쳐 업고 걷는다.
이게 바로 김영관 감독이 연출의도에 밝힌
힘 나는 순간!.

<죽기직전 그들> 은
처참함과 유머러스함을 뒤범벅한
감독의 재기가 빛나는 단편영화다.
미장센영화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에
상영, 관객과도 만났다.

영화이기에 현실보다 희화된 면이 없지 않지만
이게 바로 단편영화의 묘미가 아닐까.

고백의 힘! 힘나는 순간! 을 부정하기 않기에.
별 네개.

영진공 애플

두근두근 윤성호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면 몸살이 날 정도로 질투를 한다. 

또 몸살이 날 거 같다.

<우익청년 윤성호> <은하해방전선>을 만든 윤성호 감독의 <두근두근 배창호>

개봉관을 세 번이나 찾게 만들었던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서 사랑을 얘기한다. 재치 넘치는 저 대사.

“이성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고 키에슬로브스키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그토록 각잡고 썰푼 주제를 두 번의 빵빵 터지는 웃음과 함께 8분 만에 전달하는구나.

시바. 다음에 혹 만나게 되면 사귀어달라고 찐따 붙어야겠다.

* 보태기

생각해보니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개봉관에서 3번 본 게 아니다. 재개봉관이었다.

왕조현에 대한 풋사랑에 빠져 극장 입구 홍보용 스틸 사진을 밤마다 뽀리까러 다니던 중삐리 시절. 극장 주인은 스틸사진 광고판에 끝내 자물쇠를 채우고 말았다.
그때 <천녀유혼>을 상영하던 재개봉관에서 동시상영해준 영화가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었다. 처음엔 왕조현 때문에 보게 된 <기쁜 우리 젊은 날>이 나중엔 <기쁜 우리 젊은 날> 때문에 왕조현을 덤으로 관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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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기쁜 우리 젊은 날>과 <천녀유혼>의 동시상영. 이 얼마나 놀라운 작품 선정인가. 재개봉 동시상영관은 우리 감성의 자양강장제였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영웅본색>을 보러 동시상영관에 갔다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만났다. 찰리 채플린이라고는 바른손 문고에서 나오는 노트 디자인으로만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흑백의 무성영화라는 사실에 친구와 나는 극장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자리에 눌러붙고 말았다. <영웅본색>의 윤발 형님 쌍권총 보다 더 놀라운 충격이었다.

<산딸기>를 보러 갔다가 만난 영화는 <스카페이스>였다.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무섭고 멋있고 슬프고 안타까운, 정체불명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외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를 나는 재개봉관에서 만났다.

값도 비싸고 대부분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입장할 수 없었던 개봉관과는 달리 재개봉관은 알면서도 중삐리 고삐리들을 받아줬다. 물론 주된 관람 목록은 <여왕벌 시리즈> <애마 시리즈> <딸기 시리즈> 등등이었고 좌석에 앉아 담배도 뻑뻑 태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놀라운 영화들을 무려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작은 해방구라고 할까?

당시에는 수입 금지 영화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명분 없는 정권은 좌파의 색이 묻어나는 영화들을 특히 남미나 유럽 영화들을 우리와 차단시켰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안전하면서도 전두환의 3S에 부합하는 헐리웃 영화들.

그래서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더더욱 목마를 수밖에 없었다. 갈증이 커지니 욕망도 커지고, 욕망하면 상상력도 풍성해지는 법. 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그 재개봉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류승완처럼.

이젠 영화가 너무 흔하다. 흔하기 때문에 찾아보는 노력도 안 들이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모던 타임즈>와 <영웅본색>을, <천녀유혼>과 <스카페이스>를, <7인의 사무라이>와 <파마탱>을, <맨하탄>과 <촉산>을 함께 하는 극장이 있다면 다시 걸음이 옮겨질 것도 같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