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의 권총, 글록(Glock)

1990년 영화 <다이하드2> 에서 공항을 점거한 테러범들과 한판 붙은 브루스 윌리스는 곁에서 덜덜 떨고 있던 관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놈들이 들고 있는 총이 뭔지 알아? 저 건 플라스틱하고 세라믹으로 만들어져서 X레이에도 안 걸리는 졸라 신형이라고. 아마 당신 한달치 월급을 줘도 못살껄?”



이게 바로 그 대단한 권총이라고?
T-1000으로 뜨기 전의 로버트 패트릭이 테러범이네요.

1995년 영화 <언더씨즈2>에서 주인공 케이시 라이백(스티븐 시걸)이 테러범들에게 점령당한 기차에서 숨어있다 만난 객실종업원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이렇게 말하죠.
“필요할 때는 손잡이를 이렇게 단단히 잡고 무조건 방아쇠만 당기면 되,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문제의 <언더씨즈2>, 물론 ‘정상적’인 독자들은 그 따위 오덕 대사 보다는
캐서린 헤이글을 더 잘 기억하시겠지만 …

1998년도 영화 <도망자2>에서 연방보안관 제라드(토미 리 존스)는 SIG 스텐레스 모델을 갖고 있던 CIA 파견관 로이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장난감은 버리고 이 총으로 바꿔”


그 총 회사에서 돈 얼마 받았수? 제라드 반장

이 세 주인공이 말하는 권총은 모두 같은 권총입니다. 바로 글록 Glock이죠.
공교롭게도 모두 속편 액션영화에 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단, 브루스 윌리스의 대사는 완전히 뻥이고, 스티븐 시걸의 대사는 바로 사실 그대로이고, 토미 리 존스의 대사는 좀 과장이 섞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 이란 댄스그룹이 등장했더랬죠. 음악성에 대해서야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발라드 음악중심의 가요계를 랩댄스라는 새로운 장르로 뒤바꾸어버린 엄청난 그룹이었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랩은 존재했습니다. 현진영이라는 힙합댄스 전문 가수도 있었지만, 서태지는 노래와 그들의 출신성분과 가사와 그들의 행동 모든 것이 바로 청소년들이 원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죠.

권총업계에서도 이처럼 서태지에 비견될만한 세대개편을 이룬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글록입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

그럼 어째서 글록이 신세대 권총일까요?

1911년에 브라우닝이 Colt .45를 개발한 이후, 자동권총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거의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안전장치들(특히 공이차단장치)과 복열탄창과, 쇼트리코일 등의 반동흡수장치들 … 그래서 모두들 자동권총은 이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들 생각했죠.

하지만, 198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플라스틱(정확히는 기능성 폴리머)으로 공구나 칼집 등을 만들던 사업가 ‘가스통’ 글록은 총의 소재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스통 글록은 원래 화학자였고, 폴리머 계열의 소재들을 개발하는 게 전공이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총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더 총에 대한 기존의 틀에 구애받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는 자기가 개발한 폴리머(쉽게 말해 플라스틱) 중의 한 종류가 내구성이 아주 강하면서도 유연성이 있어서 권총 같은데 써먹을 수 있을 거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의 총기설계자들을 불러 모아서 플라스틱 권총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그 결과 글록이라는 권총이 나온 겁니다.


총기업계의 이단아, 아웃사이더, 가스통 글록 회장

사실 글록 이전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권총은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독일의 HK(헤클러 운트 코흐)사에서 만든 VP70 이라는 권총이 그것이죠.

이 총은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총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냉전시대의 ‘리버레이터’ 권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에라도 소련군이 서유럽을 침공했을 때, 서유럽 시민들이 무장저항을 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총인거죠. 그래서 구조는 지독하게 간단해서 고장날 곳이 없되, 장탄수는 많고(20발), 개머리판도 장착해서 사용하면 3점사(3발이 연속으로 발사되는 것)까지 되는 특이한 총으로 개발되었습니다.

NATO는 이 총을 엄청 많이 사다가 서유럽 곳곳의 비밀아지트에다 보관해놓았다는데 … 문제는 이 총은 너무 간단함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했고, 뭐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냉전이 끝날 때 쯤에 거의 폐기처분 되었다죠.
 


최초의 플라스틱 프레임 권총 V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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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수납하는 통이 개머리판이 되고, 그 개머리판을 총에 붙이면 3점사가 가능해지는 총


구조는 거의 딱총 수준으로 단순하지만, 그 덕분에 장전하기도 힘들고

방아쇠도 열라 무거워서 쓰기는 힘든, 진짜 리버레이터 같은 총

* 리버레이터 권총이 뭔지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http://kr.blog.yahoo.com/funnyblog/1275581

그런데 이 VP70을 개발할 때 HK사에서는 좀 더 싸게 만들기 위해서 과감하게 플라스틱을 썼습니다. 슬라이드는 강철이지만 손잡이 부분(즉 프레임)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초의 권총이 된거죠.

당연히 글록의 연구개발팀도 이 총을 알고 있었고, VP70의 구조를 분석해서 플라스틱으로 총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사례로 삼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글록은 VP70 처럼 총의 윗부분(슬라이드, 총열, 스프링, 공이 등등)은 모두 강철로, 총의 아랫부분 중에서 손잡이와 방아쇠, 탄창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권총으로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손잡이의 스프링, 나사, 레일 등등은 당연히 강철입니다).

글록은 참신한 컨셉에 비해서는 개발 시간도 짧게 걸려서 1980년대 초반에 시제품이 나왔죠.
 


처음 나온 글록, 탄창도 겉은 플라스틱, 내피하고 스프링은 강철

이 총은 먼저 1982년에 P80 이라는 이름으로 오스트리아 군의 제식 권총으로 채용되었고, 그 다음에 세계시장, 특히 미국시장을 조금씩 두드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보는 플라스틱제 권총이니 대중적인 관심을 끌긴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권총을 사서 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죠.

사람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존재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을 바꾸기 보다는 자기의 생각에 어울리는 것만 받아들이고 경험하려 하는게 사람이죠. 게다가 총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죠. 총은 무기입니다. 무기는 유사시에 자신의 목숨을 맏겨야 하는 물건이죠. 총이 제대로 발사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내 목숨이 걸려있습니다.

그래서 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위력이나 디자인 따위가 아니라 신뢰성입니다. 최후의 순간에 내 목숨을 걸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총이죠. 그러니 당연히 오랫동안 사용해봐서 검증된 물건을 쓰려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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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라서 색깔도 이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슬라이드는 페인트칠 했지만. 진짜 장난감 분위기.

그런데 장난감도 아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진짜 권총이라니.. 이걸 어떻게 믿습니까?
신뢰성은 둘째 치고 내 손안에서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겠습니까?

오스트리아군이 제식 채용했다는 것을 보면 좀 믿어볼 수도 있겠으나, 오스트리아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사실 그런거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겼겠죠.

게다가 글록은 생긴 것도 참 못생겼습니다. 보통 생각하는 ‘권총의 멋’과는 거리가 멀죠. 밋밋하게 네모진 슬라이드에 그냥 손에 맞게 만들어진 손잡이가 전부거든요. 베레타처럼 우아한 곡선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콜트처럼 고전적인 굴곡이 있지도 않죠. 만화가들이 권총을 간략하게 묘사할 때 사용하는 모양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이 글록은 생긴 것도 정말 장난감 권총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디자인은 최대의 실용성과 최대의 생산성을 고려한 결과죠. 하지만 총의 멋은 무조건 블루스틸(blue steel)이야! 라고 외치는 보수파들은 글록을 총으로 치지도 않았습니다.
 


억지로 S라인이라 우기는 안타까운 모습의 글록

그리하여 글록은 세계최대의 민간총기 시장인 미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구원의 여신이 나타났으니, 바로 헛소문들이었죠.

글록이 출시된지 얼마 후에 이 총이 X레이 투시기나 금속감지기에 걸리지 않는 특수권총이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국내일간지의 해외토픽란에도 소개가 될 정도로 화젯거리였죠. 유럽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권총을 만들었는데, 이게 플라스틱이라 금속감지기에 걸리지 않아 치안당국이 고심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로 말입니다.

물론 이건 기본적으로 사실과 다릅니다. 앞서 말했듯, 글록은 프레임(손잡이부분)만 플라스틱이고 총알이나, 총열, 슬라이드, 그리고 내부 장치들은 거의가 금속입니다. 그러니 금속탐지기에 안걸릴리가 없죠. 하지만 이 헛소문은 글록이란 권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사실 처음 모델은 엑스레이로 찍으면 형태가 잘 안보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금속부품들만 보이죠


가방에 들어간 글록, 찾으실 수 있나요?


이것도 억지로 윤곽선을 넣어서 잘 보이지만, 어쩌면 좀 헷갈릴 수도 …

이 소문은 처음에 글록 미국지사의 부사장이 퍼트리기 시작했다는데, 소문의 확산에는 위의 <다이하드2> 같은 영화들이 한 몫을 했을 겁니다. 나중에는 미 연방정부에서 글록을 판매금지시킬 것이라는 헛소문까지 돌아서 갑자기 많이 팔리기 시작했죠. 사람들은 언제나 마감세일에 약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총이 쓸만하지 못했다면 저런 식의 헛소문에 기댄 인기는 거품에 불과했을 겁니다. 진짜 임팩트는 그 다음에 왔습니다. 바로 미국 경찰들이 이 글록의 “진가” 를 발견한거죠.


그럼 글록은 다른 총에 비해 뭐가 더 우수할까요?

첫째, 엄청 튼튼하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플라스틱 총이라고 신뢰성을 걱정했는데, 알고보니 정말 신뢰할만한 총이었다는 거죠. 고장안나는 물건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단순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품들 자체의 품질이 좋아야죠. 마지막으로 전체 구조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잘 작동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품이 적은데 제대로 만들어졌고, 설계도 제대로 되어 있으면 당연히 고장이 안납니다. 글록이 바로 그런 원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글록은 해머도 없고 해머스프링도 없으며, 방아쇠를 제외하면 외부 안전장치도 없습니다. 그 덕분에 부품숫자도 매우 적죠. 그리고 그 적은 부품들은 모두 최고의 품질기준에 맞춰서 생산되었습니다. 특히 강철제 총열과 슬라이드는 “테니퍼’ 코팅이라는,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는 고강도 피막을 입혀서 내구성을 최대한 강화시켰습니다. 플라스틱 부품들도 그냥 플라스틱이 아니라 가스통 글록이 개발한 최고의 폴리머로 만들어졌죠.

당연히 고장 안나고 튼튼한 총이 되었습니다.



VP70 만큼은 아니지만 엄청 간단한 구성


겉으로 보이는 안전장치는 바로 이것, 방아쇠 내부의 걸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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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야먄 해제가 되는 방식,

한눈에 봐도 원리를 알 수 있는 엄청 단순한 구조.

물론 최근에는 글록도 터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만, 그건 총을 정말 험하게 다룬 경우 + 총이 무척 낡은 경우가 겹쳐서 생긴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글록에는 완전자동 모델이 있습니다. 터미네이터3 에도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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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막굴리며 규정보다 강력한 탄을 넣어 쏘다 보면 이렇게 터지는 수도 …

둘째, 플라스틱 소재의 장점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일단 플라스틱은 가볍죠. 게다가 제작비도 적게 듭니다. 그리고 열전도율이 낮아서 쉽게 뜨거워지지도 않고, 겨울에 손이 얼어붙을 염려도 없죠. 게다가 유연성이 있어서 총 자체가 반동을 어느 정도(고무와는 달라서 그리 대단하지는 않겠지만) 흡수하기도 합니다. 울라!

글록은 이런 장점을 모두 살렸습니다. 당시 경찰들이 많이 쓰던 베레타92 권총이 총알없이 총만 950그램 정도이고, 콜트45 는 1킬로가 좀 넘는 무게인 반면에 글록은 620그램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루 죙일 허리에 권총차고 다녀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300그램 가벼운 것만 해도 엄청 대단한 거였죠.

게다가 글록은 존 맥클레인의 말과는 전혀 달리 값도 쌌습니다. 베레타가 800불이 넘고, 지그는 1000불이 넘던 시절에 글록은 600불 정도면 살 수 있었죠. 원래 시장에는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은 없습니다. 싼게 비지떡이죠. 요즘 보니 이런 원칙도 모르는 인간도 있긴 있더군요.

하지만 권총업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그런 물건이 나온 적이 있었으니 바로 글록이 그랬죠. 그 혁신적인 가격과 품질은 모두 소재의 혁명, 즉 플라스틱 덕분이었습니다.



플라스틱이라 색깔도 다양하게 넣을 수 있습니다. 이건 글록2세대 버젼.

앞서의 1세대 초기형과 차이점이 뭘까요?


글록의 2세대 버젼은 프레임에 홈을 파놨습니다.

그 홈에다가 라이트나 레이져 등을 쉽게 장착할 수 있죠.


원래 이렇게 홈파놓기는 HK가 시작했으나 좀 아쉬운 점이 있었고,


제대로 파기 시작한 거는 글록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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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총이 인기 있으면 부가장치 업체들도 늘어납니다.

총열아래 스프링가이드를 레이저 포인터로 바꾸는 옵션

셋째, 조작이 간단합니다.

앞서 말했듯 글록은 공이도 따로 없는 스트라이커 방식입니다. 외부 안전장치도 없죠. 하지만 내부에는 3중의 안전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한 오발은 없죠. 결국 일단 장전만 해놓으면 그냥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발사되고, 방아쇠를 당기지만 않으면 절대 발사되지 않는 총이 된 겁니다.

게다가 방아쇠는 당기는 거리가 길어서 손가락 잘못 움직여서 오발될 가능성도 많이 줄였죠. 사실, 글록은 더블액션 리볼버 권총들의 특성과 비슷합니다. 미국 경찰들이 제일 선호하는 것이 바로 간단한 조작 + 확실한 작동인데, 바로 그것을 충족시킨 거죠.

덧붙여, 스트라이커 방식은 총신의 높이를 낮출 수 있어서 반동의 통제에도 유리합니다. 권총 쏠때 반동을 잘 통제하려면 총을 높이 잡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면 여자 요원들은 죄다 권총쏘다가 총 놓칠 것 같은 포즈더군요.

총 그렇게 잡으면 안됩니다. 이 파지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기회가 되면… 저 말고도 이 문제를 설명해줄 진짜 전문가들이 많은 주제라서.
 


소연씨, 총 그렇게 잡으면 쏘다가 놓치는 수가 생겨요

글록의 이런 성장은 처음 언급한 영화들에서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글록이 미국시장을 두드리던 초기에 해당하는 영화 <다이하드2>는 글록에 대한 헛소문으로 점철되어 있죠. 글록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입니다. 그러다가 군과 경찰의 전문가들에게 글록의 진가가 확인된 시점에 나온 <언더씨즈2>에서는 글록의 장점들이 간단히 언급됩니다. 간단한 총. 바로 그것이죠. 마지막으로 <도망자2>에서는 아예 주인공이 글록 빠돌이로 나오죠. 왜냐면 대부분의 미국경찰들이 바로 그런 상태였거든요.

지금도 글록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권총 시장에서 최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다른 업체들에서도 다양한 플라스틱 권총을 만들면서 글록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으니, 조만간 이 판도도 바뀌겠지요.

영진공 짱가

인크레더블 헐크 (The Incredible Hulk), “속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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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튼의 헐크, 잘 어울린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이안 감독의 2003년작 <헐크>의 속편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오프닝 크레딧이 흐를 동안 2003년작 <헐크>의 줄거리를 매우 빠른 컷들을 통해 제시하지만, 이 컷들에서 보이는 브루스 배너와 베티 로스는 에릭 바나와 제니퍼 코넬리가 아닌 에드워드 노튼과 리브 타일러다. 오프닝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공간적 배경은 <헐크>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릭 바나의 브루스 배너가 머물고 있던 곳, 브라질이지만 이후 영화의 성격은 <헐크>와 다른 길을 간다. 분명 <인크레더블 헐크>는 <헐크>가 가지 않았던 길을 향해 가는 블록버스터이다. 그러나 <헐크>가 이전에 쌓아놓았던 성과를 굳이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심지어 일정 부분을 계승하기까지 한다.


2003년 개봉했을 당시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블록버스터로서는 실패작’이라는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받았고 일각에서는 저주에 가까운 혹평을 들었던 <헐크>에 대한 논의를 되짚어보면,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블록버스터를 ‘장르’라 부를 수 있다면)가 새삼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확인할 수 있다. 저 ‘블록버스터로서는 실패작’이라는 말은 참 복잡한 여러 가지 뜻을 전제하고 있다. 다른 지점에서 성취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진지한 평론가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블록버스터에 대해 내용이 없다는 둥 플롯이 단순하다는 둥 의례히 회의적인 태도를 갖기 마련한 사람들도 정작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이 담긴 블록버스터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다른 기준을 갖다댄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는 다소 단순하고 쉬우며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과연 당시 <헐크>에 대한 평을 보면 미국사회에 대한 은유라는 둥, 고전적인 희랍비극의 틀을 가져온다는 등의 평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블록버스터들, 특히 슈퍼히어로나 안티히어로의 이야기 중 신화적 요소가 없는 작품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체로 모든 블록버스터들은 평범한 / 유약하던 주인공이 힘을 갖게 되거나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권위있는’ 악당과 싸우게 되는데, 저 권위있는 악당이란 곧 ‘아버지 세대’ 혹은 기득권의 비유가 아니던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외디푸스의 신화는 변용되기 마련이고, <헐크>는 그걸 좀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뿐이다. 브루스 배너의 적은 자신의 아버지(‘매드 사이언티스트’ 타입)일 뿐만 아니라 베티의 아버지, 즉 썬더볼트 장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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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섬세하고 감성적인 브루스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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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지적이고 불쌍한 브루스 배너


한 사람 안에 있는 두 가지 극단적 인격이라는 측면에서 보통 ‘지킬과 하이드’ 모티브로 주로 해석되는 헐크의 이야기에, 이안이 강력하게 가미한 것은 ‘미녀와 야수’ 모티브이며, 소위 ‘문명화’라는 과정을 통해 야수성을 억압 혹은 거세당한 현대 남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네바다 사막에서 탱크와 장갑차와 헬기를 장난감처럼 때려부수던 헐크는 베티 로스에게 향하는 먼 길을 돌아오면서 그녀 앞에서 비로소 진정을 찾고 브루스 배너로 돌아온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에서 이안 감독은 DVD 코멘터리를 통해 “누가 뭐래도 이 영화는 사랑 영화죠.”라며 능청을 떤다. 이것이 비극적인 것은 가정으로의 귀환 본능, 혹은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브루스 배너가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는 그녀와(혹은 그 누구와도) 결코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는, 레이건 시대의 강력하고 권위적인 우파 아버지 세대로부터 억압당한 클린턴 시대의 유약한 그러나 더 능력있는 리버럴한 젊은 세대에 대한 비유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이안 감독은 그가 헐리웃에서 영화를 만들 때 견지하는 예의 그 태도, 즉 ‘카메라를 든 인류학자’로서 꼼꼼하게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통찰하고 기록하는 태도를 이 영화에서도 드러낸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블록버스터로서는 실패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실은 철저하게 미국 안으로 들어갔던 다른 블록버스터와 달리 이 영화가 오히려 미국 바깥에서 마치 지구인을 관찰하는 화성인 과학자처럼 코믹스 문화와 슈퍼히어로를 대하는 미국 대중들의 관심과 호감을 문화인류학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는 태도가 헐크라는 안티 히어로와 충돌하는 지점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충돌이 과연 ‘서로 융합되지 못한 채 따로 노는’ 어색함일까? 아니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매우 ‘생산적인 균열’인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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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한 번 하지 않는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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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커플


<인크레더블 헐크>가 <헐크>를 계승하는 지점은 역시 미녀와 야수 모티브를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줬다는 것, 그래서 심지어 <킹콩>을 닮은 장면마저 등장한다는 점이다. 억눌린 현대 남성의 폭발이라는 측면은 오히려 <헐크>의 근육질 에릭 바나보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비쩍 마른 에드워드 노튼에게 더 잘 어울린다. 안 그래도 얼굴이 날카롭고 턱이 뾰족해 어딘가 불쌍해 보이는 노튼이다. 노튼이 각본을 매만진 <인크레더블 헐크>는 노튼의 이 왜소한 몸매를 이용한 유머가 여러 번 등장한다.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로 돌아온 뒤 늘어나고 찢어진 바지 허리춤을 붙잡고 다 찢어진 엉덩이와 허벅지를 노출하며 그토록 불쌍한 거지꼴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장면은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브루스가 헐크가 됐을 때 벌이는 파괴는 <헐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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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와 에밀 블론스키(어보미네이션), 두 번째 대결 (<인크레더블 헐크>)


나는 이안의 <헐크>를 매우 좋아하지만(나중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DVD를 비싼 값을 주고 샀을 정도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헐크> 식의 장중하고 품위있는 이야기의 무게를 뺀 대신 <헐크>에서 약했던 쾌감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유머와 타격감이다. 우리가 ‘헐크’라는 녹색괴물을 둘러싸고 종종 킬킬대며 주고받는 농담이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아주 유효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아무리 해도 찢어지지 않는 헐크의 바지는 <헐크>에서도 농담거리이긴 했지만, <인크레더블 헐크>에선 좀더 노골적인 농담으로 여러 번 드러난다. 브루스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허리가 늘어나는 바지를 선호하며 심지어 뚱뚱한 아주머니의 널찍한 엉덩이에 바지를 대보기까지 한다. 고무줄 몬뻬 ‘보라색’ 바지에 대한 농담은 또 어떤가. 심지어 헐크를 둘러싸고 차마 대놓고 하지 못했던 성적인 농담마저도 영화에서 유머로 등장한다. 그토록 사랑하지만 베티와 브루스가 섹스할 수 없는 이유를 대놓고 묘사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게다가 타격감. 헐크가 어보미네이션과 싸우는 장면뿐만이 아니라, 그가 경찰차를 둘러 찢어 무기처럼 사용한달지 하는 장면에서 주는 타격감과 파괴감의 쾌감이 아주 크다. 건물을 부수고 도로를 엉망으로 만드는 장면들이 <헐크>에선 다소 만화처럼 가벼운 무게감으로 묘사된 반면, <인크레더블 헐크>에선 육중한 무게감과 둔한 타격감을 자랑하며 파괴의 쾌감이 더 크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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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역시 ‘그림’스럽다. (이안의 <헐크>)


무엇보다도 <인크레더블 헐크>가 <헐크>보다 뒤에 나왔기에 유리한 점은 바로 그 사이에도 눈부시게 발전한 CG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것.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하는 그 과정, 혹은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로 돌아오는 과정의 신체적 변화를 바로 눈앞에서 재현시켜 준다. 이는 스턴스 박사를 찾아간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고소영, 정우성이 주연했던 <구미호>에서 “앞으로 CG 기술이 발전하면 묘사될 수 있는 장면”이라 상상되었던 바로 그 몰핑 기법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근육 하나하나, 힘줄 하나하나가 변화는 그 과정을 보는 건 매우 경이롭다. 대낮의 컬버대학 교정에서 장갑차와 헐크가 싸우는 장면은 어떤가. 비록 피부 표현에서 여전히 CG 티가 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빛의 방향과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명암의 변화가 아주 자신만만하게 눈앞에 표현된다. 정점은 바로 <킹콩>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밤에 번개가 치고 비가 퍼붓는 장면에서의 헐크가 묘사된 것이다. 비록 여기에서 킹콩의 피부는 시종일관 회색으로 표현되어 역시 그림같다는 느낌을 여전히 주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피부결이나 번개가 칠 때마다 근육질이 움직이는 방향이 매우 세심하게 표현된다.


역시 이야기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인크레더블 헐크>보다 <헐크>에서 좀더 은근하고 깊은 재미를 느끼는 게 사실이지만, <인크레더블 헐크>가 주는 말초적인 감각의 쾌락 역시 쉽게 폄하하지 못할 요소이다. <헐크>와는 다른 노튼 식의 유머 역시 점수를 높게 줄 수 있는 부분. 노튼 옵빠가 블록버스터에서 낭비될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브루스 배너에 이 정도의 멋진 숨결과 개성을 불어넣은 건 역시 노튼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 나는 에릭 바나의 브루스 배너 역시 좋아하지만, 역시 노튼의 브루스 배너가 한 수 위였음은 부정할 수가 없겠다. 문제는 역시 연출인 게지. (이안 만세!)


영진공 노바리

ps1. 마지막 장면에서 녹색눈으로 씨익 웃는 노튼 오빠의 압도적인 표정. 꺄악~!

ps2.
팀 로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아저씨가 서른 아홉이란 건 좀 사기…

ps3.
컬버대학 교정에서 싸울 때 헬기에서 박격포를 쏘자 헐크가 자신의 온몸으로 베티를 화염으로부터 막아내는 장면, 이 장면은 두 번째 볼 때도 참 짠하면서 애절하더라.

ps4.
대놓고 레슬링 흉내라니. “Hulk Smashhhhhhh~!!”에서는 정말 눈앞에 만화 말풍선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게다가 역시 헐크는 미녀 앞에서 무지하고 순진한 바보 머슬이었… (귀여워!!)

ps5.
마지막에 깜짝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는 어쩐지 <아이언맨> 때보다 더 사악한 악당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