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엔 알이 있다

지난 주엔 대학 동아리 친구 몇을 만났다. 나까지 넷, 알고 지낸지 이제 십년이 넘어가는 사이다.

비가 오고 있었다. 대학교 앞이라 어지간한 메뉴는 만원 어치씩 파는 횟집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산낙지와 오징어 튀김을 놓고 술병을 기울이다가, 이윽고 다른 안주를 주문하자는 말이 나왔다. J가 ‘시사모 구이’가 어떻겠냐고 물었다. J를 뺀 나머지 셋은 아직 시사모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맛있다는 그녀의 말에 우린 시사모 구이를 주문했고, 잠시 후에 시사모들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이런 물고기구나. 맛있네.”
 “그치? 알이 꽉 차 있어서 얼마나 맛있다구.”

J의 말대로 시사모마다 알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이 시사모에도, 저 시사모에도 있었다. 혹시 이번에 집어드는 놈엔 없는 게 아닐까 하며 콱 깨물어도 역시 빈틈없이 알은 꽉 차 있었다.

 “어라, 알이 다 있네.”
 “그러네.”
 “이거 신기하다. 어떻게 다 알을 품고 있지?”

시사모를 처음 먹는 셋이 희한해 하자 J가 말했다.

 “시사모엔 원래 알이 있어.”
 “근데 지금 전부 다 알이 있는 거 같은데?”
 “응. 얘들은 항상 알이 있어.”
 “어떻게 알이 항상 있을 수 있어? 그게 가능해?”

우린 시사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항상 알을 품고 있는 생물이라니 웃기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지 뭔가.

 
“알을 계속 품나 보지.”

 “그래도 알을 낳긴 낳을 거 아냐. 그러면 알이 없어야지.”
 “하지만 이건 항상 알이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글쎄.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시사모엔 늘 알이 있었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지. 어떻게 계속 알을 품고 있냐는 거야.”
 “얘들은 알을 안 낳아? 품고만 있어?”
 “허 참 이놈들 괴상하네.”
 “닭도 매일 알을 낳잖아.”
 “시사모도 알을 매일 이만큼씩 낳는다고? 그럴리가. 그렇대도 어쨌든 알을 낳을 거 아냐.”
 “그러면 그땐 알이 없어야지.”
 “하지만 알이 늘 있다는 거잖아.”
 “잡으면 언제나 알이 있는 거잖아.”
 “항상 알을 품고 있는 물고기인 거네.”
 “뱃속에 가득 만들어 놓고 매일 한알씩만 내보내는 건 아닐까?”
 “설마. 그리고 그걸 다 낳으면?”
 “하나 낳으면 바로 하나를 새로 만들고.”
 “됐어. 이거 사실은 알이 아니라 살인 거 아냐?”
 “아, 이거 살이야?”
 “아니, 아니. 알이야.”

이미 적당히 취한 넷이서 시사모를 앞에 놓고 아무리 토론(?)을 해도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종업원까지 부르고 말았다.

 “저기요, 질문이 있는데요. 이 시사모 속에 있는 게 알 맞죠?”
 “네, 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시사모에 알이 있나요?”
 “시사모엔 원래 알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알이 없는 시사모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더 작은 것들 말고, 이만큼 큰 것들을 잡는 거죠. 그러면 알을 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알을 낳으면요? 걔들 중에서 이미 알을 낳아버린 애들은요?”
 “글쎄요. 제가 일하면서 본 시사모엔 항상 알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 이상은 몰라서 다른 답변은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대한지 얼마 안 됐고, 다음 학기쯤 복학을 생각중일 것만 같은 분위기의 종업원은 그렇게 ‘-습니다’ 체로 더이상의 술주정을 거부하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의문이 풀릴 도리가 없었다. 별 수 없이 우린 다른 이야기를 해나갔다. 아주 잠시 지렁이와 조개의 번식에 대해 이야기했고, 문득 집단 자살이 화제에 올랐고, 일반적인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종교 이야기로 넘어갔고, 환생과 내세에 대해 떠들었다. J가  이명박과 신정아의 눈이 닮았다고 주장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느새 시사모는 딱 네 마리 남았다. K가 접시의 네 귀퉁이에 시사모를 한 마리씩 놓으며 말했다.

 “자, 이제 한 마리씩 먹으면 되겠다.”

그러자 다시 시사모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딴생각 하는 걸 눈치챈 Y가 물었다.

 “얘기 안 듣고 뭐해?”
 “미안. 자꾸 시사모 생각이 나서. 이놈들, 이 괴생물체들.”
 “하하, 괴생물체.”
 “아니지, 어쩌면 생물이 아닐지도 몰라. 사실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인지도 몰라. 종업원들이 일렬로 앉아서 매일 이것 뱃속에 알을 넣고 조립하는 거야.”

……

자정은 이미 지났고 비는 계속 내렸다.

가게 밖에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한 양복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가 비를 맞으며 노상방뇨를 시도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여자는 남자를 부축하랴, 취해서 조준할 정신도 없는 남자 대신 고추를 잡아주랴 정신이 없어 보였다. 오줌이 안 나오는지 한참 비틀거리던 남자는 결국 넘어지고 말았고, 여자는 그를 부축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잠시 그들에 집중하던 우리는 다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수다에 수다를 거듭하다가, 그 남자처럼 취하기 전에 자리를 접고 헤어졌다.

다음날이었다.
돌잔치가 열린 분당에 갔다가 지인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길이 막혔고, 차에 탄 사람들끼리 각자 가지고 있는 음악들을 돌려가며 스피커로 들어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문득 지난밤의 시사모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

 “시사모 아세요?”
 “그럼요.”
 “시사모엔 항상 알이 있대요.”
 “그렇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항상 알이 있다뇨.”
 “아, 그게요.”

한 분이 입을 여셨다.

 ” 산란기에 잡아서 냉동 보관하는 거니까요.”
 “……간단하네요.”
 “간단하죠.”

간밤에 그렇게 열광하던 시사모에 대한 의문은 그렇게 간단히 풀려버렸다.
그런데 전혀 시원하거나 개운한 기분이 아니었다.
항상 알을 품고 있는 물고기, 대체 언제 알을 낳는 건지, 낳기는 하는 건지, 알을 낳는 게 목적이 아니라 품고 있는 게 목적인 물고기, 언제 어떤 놈을 잡아도 뱃속에 알이 그득한 신비로운 물고기… 가 사라진 것이었다.
허탈하고 아쉬웠다.
우연히 주운 보석 브로치를 다시 또 금방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잘 가라, 하룻밤 내 마음의 괴생물체였던 시사모들아. 사실은 너희를 각별히 여기려 했다.
그런 괴생물체가 하나쯤 있어 주면 나는 사는 게 조금 더 신날 것 같은데, 너희는 아니었구나.
 

열빙어(시사모)
[명사]
 [동물] 바다빙엇과의 물고기. 몸의 길이는 15cm 정도이고, 가늘고 길며 옆으로 평평하다. 등 쪽은 엷은 풀색이고 배, 몸의 양쪽 언저리는 은백색이다. 주둥이 끝이 뾰족하다. 우리나라 북부에 분포한다. (출처: 다음사전)
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