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1.
세상의 모든 양서류는 보름날 짝짓기한다.

2.
음력 5월 21일에 서울대공원 인공 증식장에서 사육되던 개구리 이만칠천 마리가 사라졌다. 보름달은 그로부터 일주일 전에 떴을 터인데 콘크리트 지붕 아래 있던 이만칠천 마리의 개구리들은 보름달을 보지 못했다. 그
전 달도 그랬고, 그 전전 달도 그랬다. 언제 짝짓기를 해야 하는지 난감해 하는 이만칠천 마리 개구리 중에는 타고난 본능을
무시하는 놈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놈은 단연 수컷인 경우가 허다하여서, 왕왕 어떤 수컷은 달의 유무와 상관없이 암놈의 궁둥이를
올라타기도 했다. 인간과 달리 개구리 암컷은 365일 짝짓기가 가능하지 않으니 미련하게 왕성하기만 한 수컷은 헛힘만 쓰고 내려올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놈들은 소수일 뿐이었고, 몸에 박힌 천성대로 짝짓기를 하지 못하는 개구리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오빠, 오빠가 남자로 보여”
“왕눈아 너는 나를 채워주지 못해”
“당신의 등은 너무 섹시해요, 물방개 씨”
“이 놈, 우리집 며느리로 곤충을 들일 수는 없다”
욕정에 다급한 젊은 놈들은 근친과 종의 장벽을 허물 기세였고, 피에 얽매이는 늙은 놈들은 씨가 끊긴다는 위기감에 급박했다.

그리고 놈들은 마침내 어제 사라졌다. 콘크리트 지붕 아래 갇혀 보름달을 보지 못한 채 살아온 이만칠천 마리 개구리들이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3.
인공증식장에서 개구리 사육장 청소를 맡아 하던 고철구는 곤란했다. 개구리가 사라졌으니 청소일은 훨씬 더 수월해졌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사육장은 실외의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나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달랐다. 밖에 비가 오면
그녀는 혼자 비의 냄새를 맡고 처량하게 울었으며, 밖에 바람이 불면 그녀는 혼자 들밀 잎사귀에 올라 앉아 청승맞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몸은 사육장 밖 세상의 햇빛·바람·흙·물과 같이 연동했고 같은 계통이었는데 그 몸으로 감지하는 세상의
온도·습도·풍향·기압이 그녀의 감성을 울려댔다. 그 흔들리는 몸과 감성에 젖은 고철구는 마침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청개구리
아롬이가 그녀의 이름이었다.


지적 능력이 있다는 호모 사피엔스의 거창한 학명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랑 역시 욕정과 결부되는 것이라서 고철구는 아롬이와 짝짓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짝짓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고철구는 괴로웠다. 한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롬이도 다른 놈들과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치졸한 질투의 불길은 잠재울 수 있었으나 욕망을 배출하지 못하는 사랑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개구리들이 사라졌다.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청개구리 아롬이도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4.
탈출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8월 5일은 음력 유월 보름이었다. 이만칠천 마리 개구리 중 살아남은 놈은 쉰두 마리 뿐이었다.
학살은 왕복 8차선 도로에서 주로 일어났고, 이백여 마리는 과천시 막계동 샛말 순이슈퍼에서 키우는 잡종개 또순이의 호기심에
걸렸고, 백여 마리는 하굣길의 초등학생들에게 당했는데, 그중 한 놈인 왕눈이는 똥구녕에 빨대가 끼워졌다. 아롬이는 개골개골
절규하며 퐁퐁퐁퐁 도망쳤다. 엑소더스에서 살아남은 쉰두 마리 개구리는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주변 풀가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해는 이미 어둠을 토해내며 꺼졌고 지천으로 땅거미를 덮은 백운들 뒤로 허연 달빛이 스물거리고 있었다.


음력 유월 보름인 8월 5일 저물녘, 고철구도 백운호수 주변 풀가에 있었다. 안절부절 시간을 보내다가 아롬이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출근길 아스팔트에 눌러붙은 수천의 개구리 시체가 떠올랐다. 조금 더 헤매자 교외 슈퍼 개밥그릇 속에 나뒹굴고 있는
개구리들을 찾을 수 있었고, 며칠 후에는 초등학교 담벼락 뒤에 널부러진 개구리들 역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어떤 놈은 항문에
빨대가 꽂힌 채 배가 터져 있었다. 개구리들의 사체는 띄엄띄엄 그를 이곳까지 인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에 흐릿하게
남은 잔광을 통해서 아롬이를 볼 수 있었다. 수척했지만 푸른 등의 고독함은 여전했고, 풀잎에 앞다리를 붙인 채 치켜올린 턱은
요염했다. 반들거리는 피부 속에서 그녀의 감성은 바람소리를 냈으며 무엇인가를 섧게 갈구하고 있었다. 고철구도 섧게 눈물을 흘렸다.



5.
보름달이 중천에 떴다. 개구리들은 암놈 숫놈을 가리지 않고 올라 타 난교를 퍼부었다. 어떤 놈은 개골 울었고, 어떤 놈은 엉엉
울었으며, 어떤 놈은 뒤에서 했고, 어떤 놈은 배를 맞대고 했다. 잔잔한 달빛은 충분히 서늘해서 놈들이 아무리 불타더라도 양껏
식혀줄 만했다. 놈들은 그치지 않고 하고 하고 또 했다. 보름달이 빛을 거두며 식어갈 무렵까지 놈들은 멈추지 않았으며,
달이 지고 빛이 완전히 사윈 후에는 어둠에 잠겨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 녀석들이 그때까지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동트기 전 가장 두꺼운 어둠 속에 후렛쉬 불빛이 여러 개 서성였다. 커다란 뜰채를 둘러멘 이들은 개구리 증식장 이민수 박사와
연구원들이었다. 개구리들은 모두 돈을 들여 사육하던 것들이었으니 이 놈들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시예산이었다. 박사와 연구원들은
만 원짜리를 줍듯 도망친 개구리들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참개구리와 청개구리가 모두 합해 쉰세 마리였다.


8월 6일 날이 밝았을 때 고철구는 출근하지 않았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