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백일몽을 꾸는가? (1/2)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열린 CES는 대성황이었던 모양이다. 삼성, LG, 소니, MS 등등 어지간한 IT 기업은 다 참가했으니까. 아, 애플 빼고.

직접 CES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기자는 물론, 멀리서 기사를 보며 입맛만 다시는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기업들이 내놓는 신제품에 집중되어 있다. 매끈하고, 상큼하고, 유려하고, 섹시한 S라인을 가진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의 사진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침을 질질 흘린다. 이야, 저거 죽여주는데? 매장에 나오기만 하면 당장 질러 주마!

그런데 CES에 전시된 쭉쭉빵빵 하드웨어에 넋이 나간 사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뉴스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아마존에서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시장에 뛰어든다는 발표였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아마존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구글 앱스토어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심사 과정이 있으며,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PC에서도 앱을 구매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초기 등록비는 99달러라지만 첫 해에는 면제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발자에겐 애플리케이션 판매가의 70% 또는 정가의 20% 중 큰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애플 앱스토어와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형태야 어쨌건간에 통신사는 물론 제조사들도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운영에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SKT, KT가 경쟁적으로 앱스토어를 열었고, 삼성전자도 영국에서 앱스토어를 런칭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아마존이 발 담근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야?

음, 글쎄, 하지만 달라질 게 있을 것이다. 분명히.

현재 구글 앱스토어의 초기 등록비는 25달러로 애플의 연간 등록비 99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앱을 등록할 때도 번거로운 심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자유 방임주의,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카오스가 도래했다. 쓰레기 같은 앱들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장이 열린 것이다. 못 믿겠다고? 그렇다면 구글 앱스토어를 열고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Hello World]와 [Test] 앱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건 뭐, 아타리 쇼크 ( http://mirror.enha.kr/wiki/아타리%20쇼크 ) 직전의 게임 시장과 비견해도 좋을 정도로 개판이다. 작년 말에 구글 앱스토어의 앱 숫자가 비공식적으로 10만 개를 넘었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실속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아, 물론 애플 앱스토어에도 쓰레기는 많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엔 [Hello World]나 [Test]는 없다. 애플에서 앱을 등록하기 전에 최소한의 품질 검토 과정을 거쳐서, 자격이 안 되는 앱은 등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지만, 거기 대해선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너무 복잡해지니까).

문제는 또 있다. 아이폰은 번거로운 탈옥 과정을 거쳐야만 크랙 앱을 설치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런 거 필요 없다. 크랙 앱을 다운받아 집어넣기만 하면 끝이다. 이 때문에 크랙 앱만 유통시키는 블랙 마켓 앱스토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물론 개발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구글 측에 공식 앱스토어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앱 정보를 충실하게 꾸밀 수 있게 해야 한다, 크랙 앱 설치를 어렵게 해야 한다, 쓰레기같은 앱들을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우리들의 구글은 그 모든 목소리를 상콤하게 무시하고 있다. 왜? 어째서? 뭣 때문에?

여기서 잠깐 구글의 정체성을 알아 보자. 음, 구글이 뭐 하는 회사지? 세계 제일의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가진 인터넷 회사?
아니, 천만의 말씀. 구글은 광고 플랫폼 회사다.

구글의 주요 수익원은 검색 엔진에 기반한 검색 광고를 대형 포탈 사이트에 납품하는 것이다. 이뿐이라면 오버츄어와 별 다를 것도 없겠지만, 구글에게 애드센스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애드센스의 등장은 전세계 블로거와 소규모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붙이기만 하면 딸라가 쏟아진다고? 이거야말로 빛이요, 소금이요, 진리일지어니 소리 높여 외쳐라, 할렐루야! 반야바라밀! 아리가또, 땡스!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 덕분에 애드센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애드센스가 안 붙어 있는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TV나 신문, 잡지가 가지고 있던 광고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구글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현재 구글이 올리고 있는 천문학적인 수익 대부분은 광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MS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먹고 사는 것과는 대조된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구글의 모바일 광고 시장 개척을 위한 첨병이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쓸 수 있게 공개한 건, 구글 경영진이 12월 말에 빨간 옷을 입고 남의 집 굴뚝이나 넘나드는 변태 영감탱이처럼 자비롭고 선량해서가 아니다.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하면,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 앱 개발에 달려들 테고 – 그리하여 자신들이 인수한 애드몹을 비롯한 각종 모바일 광고로 도배된 앱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구글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구도에서 구글이 원하는 앱은 유료 앱이 아니다. 광고를 붙인 – 그것도 구글의 광고를 붙인 무료 앱이다. 그래서 구글은 앱스토어의 품질 관리를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개발자들에게 공짜 전략을 채택할 것을 은연중에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요? 애플은 앱 판매비의 30%를 뜯어간다고요? 뭐 그런 도둑놈들이 다 있어! 걱정 마세요. 우리 구글 앱스토어는 개발자 분들에게 수익을 100% 그대로 되돌려 드린답니다. 에…… 근데 버는 게 없어서 품질 검토 같은 건 해 드릴 수 없네요. 개발자 지원도 기대하진 마세요. 예? 그래선 제대로 된 앱을 만들 수 없다고요? 에이, 왜 그러세요, 아마추어 같이 …… 대충 만들어서 공짜로 뿌리면 되죠. 공짜면 다들 미친듯이 달라붙는 거 아시잖아요? 뭐라고요? 그럼 돈은 어떻게 버냐고요? 그야 물론 우리 구글 광고를 붙이면 되죠! (오, 예!)

공짜 앞에 장사 없다. 인터넷 업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금언, 구글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이 믿음에 무게를 실어 주는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아이폰에서 대히트를 친 게임, 앵그리 버드가 안드로이드에선 광고를 탑재한 무료판으로 배포된 것이다. 앵그리버드는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 등장하기 무섭게 5백만 번 이상 다운로드되었고, 제작사인 로비오에게 월 100만 달러씩 수익을 안겨다 줄 거란 전망이 나왔다. 1년이면 1,200만 달러로 아이폰에서의 판매수익 800만 달러를 능가한다는 계산이다. 이거 죽이는데?

그런데 …… 잘 나갈락말락할까 하는 이 판국에 갑자기 아마존이 끼어든 것이다.

아마존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수익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품질의 유료 앱이 등장해서 팔리지 않으면 아마존은 땡전 한 푼 벌지 못한다. 즉, 아마존은 유료 앱을 활성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전략은, 모바일 광고로 돈을 벌려는 구글의 공짜 전략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SKT나 KT, 삼성전자 등 여러 통신사나 제조사들이 운영하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도 구글 앱스토어와 충돌하는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굉장히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구글은 당연히 이것들을 한데 묶어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경쟁이나 위협이 되기엔 너무 보잘 것 없는 상대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마존은 다르다. 컨텐츠 유통 쪽에선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삭한 노하우를 쌓아올린 데다가,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에선 구글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만찮은 기업이다.

더군다나 구글의 공짜 전략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 않다. 광고로 돈을 버는 건 앵그리버드 제작사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 절대 다수의 개발자들은 구글 앱스토어 운영 정책에 크든 적든 불만을 품은 게 현실이다. 만일 아마존 앱스토어가 성공리에 자리잡는다면, 그리고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들리면, 이들은 즉시 구글 앱스토어를 떠나 아마존에 합류할 것이다.

이럴 경우 구글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되지 않는다.
1) 앱스토어 운영 정책을 애플이나 아마존처럼 바꾸던가,
2) 안드로이드의 개방성을 포기하고 다른 앱스토어를 모두 쫓아내 버리던가,
3) 아니면 팔짱 끼고 방관하며 도도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하다가 쪼그라드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애초에 구상했던 그림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구글 애드몹 광고를 덕지덕지 붙인 공짜 앱의 쓰나미가 세상을 덮치고, 아마존 앱스토어는 비실대다가 죽어버리고, 애플 아이폰은 일체형 배터리를 추앙하고 유료 앱을 돈 주고 사서 쓰는 한 줌 변태들이나 좋아하는 스마트폰으로 전락해버리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마존이 실패하더라도 안드로이드의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끝판왕’이라 부르는 존재, MS가 칼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칼이 아니라 다마스쿠스 강으로 정련된 반월도처럼 날카로운 칼을 말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