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생 VS 여제자”, 이젠 이런 영화도 못 보게 하려나???

[편집자 주]
일제고사를 체험학습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이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그리 하도록 하였다는 이유로 “전교조” 선생님들 일곱 분이 <성실의 의무>위반과 <명령불복종>의 사유로 해임 또는 파면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보도나 발표를 보면 그냥 선생님이 아니고 꼭 “전교조”를 앞에 붙이는 건 뭐며, 교사는 성직이라던 이들이 <명령불복종>을 운운하는 건 또 뭔가.
전교조의 내부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은 느끼고 있는 바이나, 머리에 띠두르고 투쟁을 외친 것도 아니고 시험시간에 교실 문을 못으로 박은 것도 아닌데 해임 또는 파면이라니. 도대체 누가 정치적인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사회 구성원간 갈등을 조장하는 건지.
권력이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알아서 기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날씨마저 사뭇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당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의 감독은 『선생 김봉두』를 연출했던 장규성.

그런 탓에 당 영화는 『선생 김봉두』의 구성이 그랬던 것처럼 전반부에는 여선생 ‘여미옥'(“염정아” 분)과 여제자 ‘고미남'(“이세영” 분)이 학교에 갓 부임한 꽃미남 ‘권상춘'(“이지훈” 분) 새임을 가운데 두고 펼치는 피 튀기는 쟁탈전에 뽀인트를 맞춰 웃음을 주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연적이자 사제인 둘 간의 화해를 통해 아랫목 같은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생 김봉두』가 오로지 김봉두 개인의 교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당 영화는 제목처럼 여선생과 여제자간의 맞짱 구도로 진행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 영화는 캐릭터 싸움에 집중하는데 그 핵심은 나이 꽉 찬 노처녀지만 하는 짓은 얼라같은 미옥, 그리고 꼬맹이지만 나이에 비해 조숙한 미남, 이 둘의 상식을 뒤집기 한 판 하는 역할 파괴로써 이 지점이 바로 관객의 허파를 간지럼 피는 태풍의 눈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미옥의 경우, 권상춘 동료새임을 보자마자 끓어오르는 기쁨을 참지 못해 ‘앗싸라비아 콜롬비아’를 외치며 오징어 구워 들어가는 거 마냥 별 오도방정을 다 피우는 것에 반해 미남은 다 큰 처녀에게나 볼 수 있는 육탄공세를 펼치며 꽃미남 새임을 유혹하는 등 둘 다 그 연령대에 구사하기 힘든 행동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선생 vs 여제자』가 이렇게 단순히 웃기다가 끝나고 마는 영화는 아니다. 전작 『선생 김봉두』에서 보았듯, “장규성” 감독은 교육계의 부조리한 단면을 소재 삼아 웃음을 주다가 스리슬쩍 그 현실에 똥침을 놓는 것이 장기인데 무엇보다 일품은 그러한 현실 고발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미이다.

당 영화 역시 그렇다. 보기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선생과 제자의 숙명적 치정극 같지만서도 그 맞짱의 이면에는 일개 지방의 초등학교라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새임들이 서울로만 가려는 등 개인의 영달에만 신경 쓰고, 또 부모는 부모대로 먹고 싸기 힘든 빠듯한 현실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까닭에 자라나는 우리의 새싹들이 방치되고 있는 안타까운 교육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감독은 이런 부분들이 잘못되었다고 직접적으로 똥침 놓는 것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던 미옥과 미남이 이런 현실을 깨닫고 결국 화해에 이르는 눈물 콧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본 바대로 당 영화는 『선생 김봉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독특한 소재와 스토리를 무리 없이 소화하면서 많은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끗.

영진공 나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