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썰 웨폰”, 권총 소품으로 표현하는 세대 차이



영화에서 주인공들 간의 차이를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는 그 영화의 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영화 『친구』 의 네 친구들은 모두 친하지만 서로 다릅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란 게 따로 있지요.

그것은 그들의 어릴 적 에피소드들에서부터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일관적으로 유지되고, 그래서 우리는 그 친구들을 실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느낍니다.


외모 만큼이나 성격도 서로 달랐던 네 친구

『엑스파일』은 또 어떤가요. 사실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소재인 UFO와 외계인, 음모이론 등은 예전부터 여기저기서 써먹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엑스파일에는 이전 선배들이 갖지 못했던 것을 하나 더 가지고 있지요. 바로 등장인물들 간의 사고방식의 명백한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입니다.

멀더는 지나치게 직관적이고 귀납적인 사고를 하는 반면에, 스컬리는 경험과 과학적 원칙을 중시하는 연역적인 사고를 하지요. 이 시리즈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대사가 “스컬리 나예요” 라는 멀더의 대사와, “멀더 지금 어디 있어요?”라는 스컬리의 대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멀더는 자기의 직관대로 좌충우돌하는 반면, 스컬리는 멀더가 흘리고 간 단서들을 주워 모으며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는 얘기겠지요. 주로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두 등장인물을 데리고 줄거리를 끌어가는 형식의 영화를 ‘버디영화’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위에 말한 것처럼 아주 세련된 성격묘사도 있지만, 단순하게 선호하는 소품들이나 방식을 다르게 보여주는 것으로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숀 할아버지와 캐서린 양이 등장하는 영화 『엔트랩먼트』를 보면 이 두 도둑이 도둑질을 준비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우선 숀 영감은 구세대답게 레이저 광선을 빨간 털실로 재현해 놓고서는 캐서린양을 뺑이 돌리죠. 물론 그 덕분에 우리는 그녀가 아름다운 몸을 이리 뒤틀고 저리 뒤트는 광경을 감상하긴 하지만 … 쩝 …

… 정작 캐서린양은 감이 안 온다고 불만입니다. 그러던 그녀는 마침내 컴퓨터 3D그래픽으로 레이져 광선의 위치를 재현하고 나서야 ‘야! 이제 어떻게 하면 될지 알겠다!“ 라고 외치죠.

바로 이 장면

그렇습니다. 한 명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사용한 반면, 다른 한 명은 컴퓨터를 통해 묘사되는 3D 시뮬레이션을 선호했던 거죠. 도둑질에도 세대차이는 있어서 아날로그 세대인 숀 영감과 디지털 세대인 캐서린양은 이렇게 서로 달랐던 겁니다.

포스터에서부터 강조되는 베레타. 하지만 좌우가 바뀐데다 지금 막 오발직전 ... -_-;;;

그리고 영화 『리썰웨폰』(1987)에서는 그 세대차이가 바로 총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이 둘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선 한 명(로저 머터프 반장역의 “대니 글로버”)이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다정한 아내와 자녀들에게 둘러싸여 생일케이크를 뒤집어쓰며 나이 들었다는 걸 자랑합니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한 명(마틴 릭스 경사 역의 “멜 깁슨”)은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캠핑카에서 강아지랑 단 둘이 살며 벌거벗고 자다가 부스스 일어나서는 곧장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먹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 덕분에 한동안 멜깁슨은 헐리웃에서 가장 섹시한 엉덩이로 불렸습니다. 1991년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가 그 명칭을 Get 하기 전까지는 …)

이 영화에서 로저 머터프(“대니 글로버”)는 은퇴를 눈앞에 둔 노땅 경관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노장이고, 그만큼 안정되고 차분합니다. 반면에 마틴 릭스(“멜 깁슨”)는 특수부대 출신에 이제 막 경찰 일을 시작한 젊고 불안한 경찰입니다. 정서적으로는 불안하고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지만, 열의와 에너지는 펄펄 넘치죠.

빙글빙글 웃으며 노친네 기 죽이는 릭스

그리고 이 둘의 차이는 서로가 선호하는 총기의 차이로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영화 초반부에 두 주인공이 주차장에서 서로 자기가 가진 총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머터프는 릭스의 총을 보며 이렇게 말하죠.
“흠, 베레타군, 자동발사에 15발이 장전되고, 탄피배출구가 넓어 잼이 걸릴 가능성이 낮다지?”


그러자 릭스 역시 머터프에게 선배님 총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이런 식으로 말하죠.
“스미스 웨슨 리볼버군요. 여섯 발 장전이죠. 근데 이 총, 나가기는 하나요?”

그리고 얼마 후에 사격장에서 둘이 자기 실력을 뽐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우선 머터프 아저씨가 사거리 7m쯤에서 자신의 리볼버로 표적의 정 가운데를 맞추고는 의기양양해 합니다. 그러자 릭스는 그 표적을 사거리 30m 정도로 밀어놓은 다음 자신의 권총으로 멋진 스마일마크로 장식해 줍니다. 이죽거리며 자리를 뜨는 멜과 순식간에 똥씹은 표정이 되어버리는 대니 영감의 대조 …


영화에서 머터프의 총으로 사용된 스미스웨슨 리볼버

로저 머터프 반장이 사용하는 총은 스미스 웨슨사의 전형적이고 미국적인 38구경, 혹은 .357 매그넘의 리볼버입니다. 리볼버들이 모두 그렇듯, 여섯 발 밖에 장전이 안되고 재장전도 오래 걸리고 귀찮습니다. 실제로 경찰용 총기로서 리볼버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이라는 소릴 들을 만큼 구세대적인 물건이죠.

요즘 관점에서 심하게 말하자면 이건 그냥 총이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있는 물건이지, 실제로 누구와 총싸움을 하기 위해서 들고 다니는 물건은 좀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물론 .357 매그넘의 위력이나 실용성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탄약의 힘만 따진다면 같은 9mm라도 357 매그넘은 9미리 파라블럼 보다 훨씬 강력하고, 반동도 실용성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니까요)

영화에서 릭스의 총으로 사용된 바로 그 베레타. 일반형보다 슬라이드 멈치가 연장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마틴 릭스가 사용하는 베레타는 그야말로 (당시로서는)최첨단의 신세대 전투용 권총이죠.

미군에서 제식으로 채용한지 얼마 되지 않는 최신형 자동장전식 권총인데다, (그리고 당시에 막 LAPD의 제식권총이 되었다죠) 디자인도 신세대답게 말끔하고, 사용하는 탄환도 당시 신형권총의 상징인 9mm 파라블럼 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열장전식 탄창(더블컬럼 이라 불리는)은 15발을 장전하고, 재장전도 아주 쉽습니다. 그야말로 쏘기 위해 들고 다니는, 총싸움에는 제격인 물건이죠.

결국 이 두 총은 등장인물의 서로 다른 성격을 부각시키는 소품으로서도 아주 적절한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 외에 이 영화에 등장한 총들을 한번 살펴보자면, 릭스가 사막에서 악당들을 저격할 때 사용한 게 독일 HK사의 저격전용 소총 PSG-1입니다. 1만 불 쯤 되는 고급저격총이지만 한계도 많은 총입니다.

정밀도는 높은데 스코프가 고정장착되어 있어서 600미터 이내에서의 저격에만 최적화되어 있고, 야시경도 못쓴다는 점. 총이 섬세해서 손질을 잘 해줘야 제대로 성능을 발휘한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무겁다는 점. 8kg 이 넘죠.

그리고 악당들은 대개가 역시 MP 시리즈와 M16 계열의 단축형 소총(흔히들 CAR이라 불리는), 그리고 우지 등등을 사용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다이하드』 만큼이나 이 영화에서도 베레타는 주인공 대접을 받습니다.
처음에 서로 가진 총을 소개할 때 10초 넘게 베레타가 보여지고 제원까지 소개 된데다
릭스가 혼자 앉아서 자살 쇼를 벌일 때의 장면은 거의 이 총의 조작 매뉴얼이죠. 어떻게 하면 베레타의 약실에 한 발을 안전하게 장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먼저 탄창을 뽑고,
슬라이드를 뒤로 땡긴 다음,
안전장치를 안전상태로 내리고,
약실에 한발을 넣은 다음,
슬라이드 멈치를 누릅니다.
그러면 슬라이드는 앞으로 가면서 해머는 저절로 디코킹이 됩니다 …

여담 한 가지 더하자면, 베레타는 비교적 독특한 구조와 분해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이 영화 연작의 마지막편인 『리쎌웨폰 4』에서 인용되기도 합니다. 98년작 4편에서는 천하의 마틴 릭스도 더 이상 펄펄 나는 젊은이가 아니죠. 그래서 중국의 갱인 와싱쿠(“이연걸”)에게 졸라 두들겨 맞습니다. 그것도 그로서는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황당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릭스가 와싱쿠에게 베레타를 겨누자 우리의 손 빠른 연걸이는 순식간에 멜의 권총 슬라이드를 붙잡습니다. 붙잡으면서 슬라이드를 살짝 뒤로 밀었을 거고 이렇게 되면 방아쇠를 아무리 당겨도 헛놀게 되지요.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베레타의 분해래치를 내려버립니다. 그러자 어이없이 슬라이드와 프레임으로 나뉘어 버리는 베레타 … 황당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던 릭스는 그 다음부터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

붉은 원 안의 부품(분해 래치)을 화살표 방향으로 돌리면 즉시 슬라이드를 본체로부터 뽑아 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재주를 “성룡” 아저씨도 영화 『러시아워』 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죠. 상대방이 겨눈 총을 순식간에 분해하기는 중국 무술가의 전매특허인 듯 합니다.

참고로, 이런 방식으로 분해되는 건 베레타 뿐이 아닙니다. SIG 계열도 마찬가지입니다. SIG는 오히려 더 쉽죠. 반면에 글록을 이런 식으로 분해하려 했다가는 오발이 나서 사망하기 딱 좋고, 콜트나 스미스웨슨 계열은 분해하려면 아예 슬라이드를 뒤로 잔뜩 밀어야 하기 때문에 역시 불가능 합니다.



SIG 사의 자동권총인 P229. 역시 베레타와 비슷한 분해래치가 보이죠.

스미스 웨슨 사의 전형적인 자동권총. 분해래치가 따로 없죠. 이런 총은 슬라이드 멈치가 분해핀 역할도 겸합니다.


영진공 짱가

 

“더 락(The Rock)”, 소품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




영화에는 여러 가지 소품이 등장합니다. 소품은 영화 전체의 맥락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눈 좋은 관객들도 그걸 알아차립니다. 사실 소품으로 분위기를 내는 건 영화만의 일은 아닙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이 양반은 주인공이 뭘 입고 뭘 신고 뭘 만들어먹는지를 꼼꼼히 서술해 놓고 있죠. 입는 옷이나 가방의 브랜드까지도 써놓습니다. 저 같이 그런 거에 무딘 사람도 그걸 읽으면 이 사람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기술방식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뉴욕이나 LA도 하나의 거대한 소품이죠.(다이하드3 에서)

그러니까 영화에 뭐가 등장하는지, 주인공이 뭘 입고 어디서 뭘 먹고 무슨 차를 타는지는 매우 중요한 연출 요소입니다. 액션 영화에서는 총도 바로 그런 중요한 소품 중에 하나죠.

『미션임파서블3』에서도 총이 한 시퀀스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간신히 오웬 데비언을 붙잡아서 호송하던 이단 헌트 일행은 체서피크만의 긴 다리 위에서 데비언 일파가 조종하는 무인기(UAV)의 습격을 받습니다. 무인기에서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차는 뒤집어지고 아수라장이 벌어진 와중에 오웬데비언은 호송차에서 빠져나와 유유히 헬기에 올라타려 하지요.

그걸 본 이단 헌트는 뒤집어진 자동차에서 총(독일군 제식소총인 G36이죠)이 담긴 가방을 간신히 꺼내는데 열어보니 이 총이 분해된 상태네요 …

이런 무인기 '글로벌 호크' 쯤 되면 그 정도 공습도 가능하겠죠 ...

사실 정밀 저격총도 아니고 G36같은 일반적인 소총을 분해해서 넣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PSG1 같은 2만불 짜리 저격총도 전용 가방에 통짜 그대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이 G36 소총은 개머리판까지 접어지기 때문에 공간절약을 위해서라는 핑계도 안먹히죠.

근데 뭐하러 IMF 애들은 총을 분해해서 넣고 다닌 걸까요? 오로지 아찔아찔함을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도 일 초가 급박한 상황에 총까지 세 토막 나 있으니 관객들은 더 조마조마합니다. 빨리 조립해야 하는 주인공의 입장에 감정이입 하는 거죠.

갈길이 바쁜데 별게 다 걸리적 거리네 ...

조립 다 했다!!!


영화 『더 록』(The Rock)을 살펴보자면,
저는 이 영화의 매력은 거의 소품 덕이라고 봅니다. 광고감독 출신인 “마이클 베이”의 현란하고 속도감있는 연출도 나쁘진 않았지만, “숀 코너리”와 “에드 해리스”라는 두 중량급 배우가 만드는 무게감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참 어설픈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을 겁니다.

이 영화, 스토리도 빈틈이 많고, 중간에 액션도 적고(의외로 이 영화에 액션장면이 적어요), 감옥 내부 묘사도 상당히 엉성하거든요.


숀 코네리와 에드 해리스, 이 둘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소품 입니다.마이클 베이는 이런 배우 소품이 없으면 참 얄팍해지더라는....

여튼 이 영화에서 허멜 장군 역의 “에드 해리스”는 미국을 위해 죽어간 자기 부하들이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군상층부의 반성을 요구하기 위해 신경가스를 탈취해서 미국에 테러위협을 가합니다. 그는 알카트래즈 섬을 점령하고 관광객들을 인질로 삼은 뒤, 전사한 부하들의 명예회복과 응분의 보상금을 주지 않으면 인구밀집지역에 신경가스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협박하죠.

그래서 감옥에서 수십년 썩은 노친네 “숀 코너리”와 화학자 FBI요원 “니콜라스 케이지”가 특파되고 …… 결국 이들의 활약으로 미사일은 하나하나 제거되는 와중에 허멜은 자신의 협박 앞에 묵묵부답인 미국방성의 반응에 당황하지만, 미사일을 정말 쏴야 한다는 부하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결국 부하들은 하극상을 일으키는데, 부하들의 반란을 예감한 허멜은 미리 Colt .45를 허리춤 뒤에 감춥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먼 부하들이 허멜에게 신경가스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베레타 M92FS 를 겨눌 때, 그들의 미간에다 콜트 .45를 겨누죠.

니들이 감히 하극상을 일으켜?

왜 해리스는 남들이 다 새 권총으로 바꿀 때 여전히 구닥다리 콜트를 계속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냥 구닥다리도 아닙니다. 빤질빤질한게 예전 지급품을 계속 쓴다기 보다는 새로 하나 따로 장만한 모양새죠.

그 당시에는 이미 군의 제식권총은 베레타 M92F 로 바뀐 다음입니다. 그럼 그는 신형제식 권총이 지급된 다음에 일부러 예전에 쓰던 콜트45를 다시 구입해서 들고다녔다는 얘깁니다. 총알보급도 받기 귀찮은(베레타는 9mm 탄을 쓰고 콜트는 .45 구경탄을 씁니다. 권총이 바뀐 이후 군대 내에서 45구경탄은 사실상 쓸데가 없어졌으니 그만큼 보급도 희귀해지겠죠) 총을 계속 쓰고 있다는 거죠. 뭐 총알보급이야 부관이 좀 고생하면 되고, 하니까 그저 장군의 사치심이 발현된걸까요? 왜 그랬을까요?

이 장면은 총기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냥 “어, 둘이 쓰는 권총이 다르네?” 혹은 “역시 멋진 주인공은 권총도 뭔가 다르군~” 정도로 넘어갔을 문제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장면은 총기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스토리와 이미지를 결정짓는 역할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에 등장하는 사소한 총기류에 대해서도 “많이 알수록 많이 보게 된다”는 경험의 규칙은 예외 없이 들어맞는 것이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많이 앎으로서 영화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고, 엉터리와 진짜를 구분함으로써 뭐가 진품인지 감별할 수 있는 기준을 하나 더 제공하고 싶거든요. 관객들의 눈이 높아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영화의 총기 고증은 맨날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베레타 ...



베레타는 15연발 탄창과, 각종 안전장치를 장비한데다, 우아한 곡선미까지 가지고 있어 멋과 기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칭찬받던 총입니다. 적어도 80년대 당시에는 이 총 참 멋졌습니다. 하지만, 이 총은 미국제가 아닙니다. 이탈리아제죠. 더구나 베레타가 사용하는 9mm탄이 뭡니까. 바로 미국의 적이었던 독일군이 루거 권총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파라블럼탄이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콜트 .45는 비록 7발밖에 장전할 수 없고, 안전장치도 부실해서 잘못 다루면 위험한 구닥다리죠. 그러나 이 콜트는 1911년부터 미군제식 권총으로 채용된 이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터에서 변함없이 60여년간 미군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미군의 역사와 전통을 의미하는 총이죠.

콜트 45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해리스가 든 콜트와 부하들이 든 베레타는 단순한 권총이 아니라 두 집단이 가진 철학을 반영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멜 장군은 비록 인질범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미군 본연의 정신에서 벗어나버린 미군에게 반성을 촉구하려는 충성심이 있었다는 거죠. 즉, 허멜은 여전히 미국 군인입니다.

반면에 그의 부하들은 허멜이 내세운 막대한 보상금 때문에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미군의 정신 따위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단지 돈을 벌수 있으니까 뭐든 하는 것이죠.

장군님 돈 줘여 ....


이런 배치를 하려면 소품 담당자가 총기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총기와 군장 관련 고증 수준이 이전의 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면 초반부에는 주인공들의 군복 색이 제각각입니다. 누런 옷, 국방색 옷 … 철모도 없는 자가 부지기수고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군인들의 복장이 통일되고 제대로 갖추어집니다. 이건 전쟁 초반에 보급품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미군과 유엔의 지원을 받아 제모습을 갖춰가던 남한군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소품 배치죠. 물론 총들도 거의 무리없이 사용되었구요.


군복 뿐만 아니라 자세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숙련도 차이가 보입니다

이렇게 소품활용의 수준이 높아진 배후에는 “김세랑”이라는 군장전문가가 영화의 고증을 담당했던 덕이 큽니다. 처음에는 ‘6.25때 군복이 다 거기서 거기지 …’ 라는 태도를 보이던 영화스탭들에게 당시의 군복이 시기별로 어떻게 달랐는지를 직접 보여주며(그는 온갖 진품 군복을 소장하고 있죠) 설득해서 그런 차이를 만들어냈던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에 제작비 투입할때, 스크립트 닥터와 고증 전문가에게 돈 좀 더 쓰시라는 겁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먹히는 영화가 만들어지니까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