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


여러모로 작가의 전작 ‘귀신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한권짜리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서너권 이상 되는 대하소설에서나 나올법하게 수많은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점도 그렇고, 어떠한 지형(귀신의 시대에서는 노령산맥, 이슬람 정육점에서는 한남동)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역사, 지리적인 삶을 짚어 나가는 것 또한 그러하다.

시점을 알 수 없는 훗날의 내가 ‘어린날의 나’가 되어, 1인칭 작가시점도 전지적 작가시점도 아닌 묘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묘사해 나가는 것도 그러하다.

묘사력과 익살, 사안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나다.

‘사람의 신화’에서 ‘귀신의 시대’를 거쳐, ‘봉섭이 가라사대’까지 오는 동안 마술적인 차용은 줄어들고, 어두운 묘사는 줄어들며, 유머는 점점 증폭되어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되는데, 이 작품또한 그 연장선 상에 서 있다고 본다. 거의 모든 작품의 무대였던 ‘노령산맥’에서 ‘한남동’으로 옮겨왔기 때문일가. 약간 아쉬운 것은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좀 더 철학적이 되었고, 좀 더 인위적이 되었고, 좀 더 설명적인 듯하다는 느낌이다.

주인공 소년의 사유가 너무 깊은 나머지 소설과 철학적 사유가 따로 읽히는 듯한 느낌이 조금 있다.

인물의 얼굴을 스크랩하고, 그 스크랩으로 세계지도를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illustrative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고, 안나 아주머니를 필두로 한 그 사람들이 돼지도축 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너무 상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나중에 ‘총상’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는, 그것을 읽으면서 상상되는 ‘그 사건’을 ‘직접 언급’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며 적잖이 걱정마저 되었다. (다행이 추측만 할 수 있게 하지, 언급을 직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소설에서’아쉽다’는 ‘완벽을 기대했던 작품’에서 약간의 트집잡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데서 오는 감정이지, 영 아닌 작품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 여타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기와, 기질과 생명력이 있다.

손홍규는 정말 보석같은 작가다.

문단에서만 보석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세대에 있어서의 보석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에서 경계세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경험을 그 어느 쪽이든 다 풍부하게 직접해보고, 역사와 생활을 씨실과 날줄로 엮어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재주 때문에 그를 보석같다고 생각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세대에 이런 철학과 이런 문제의식과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예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훨씬 우리 세대에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쉽게 용서하게 만드는 세월 속에서 나는 얼마나 경주마 같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일천한 상상력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징징거리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는 손홍규.

개그콘서트 식으로 말하자면, ‘손홍규 포레버’다.

영진공 라이

 

어느 가족 이야기

1.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 가족은 대대로 데릴사위를 들여서 집안 살림을 맡기곤 했는데, 언제인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다.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이전에 들였던 이들과는 많이 다른 데릴사위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학력이 그다지 좋지 않고 집안내력이 휘황찬란하지도 않은데다가 언행마저 세련되지 않은 사내였던 것이다.


 


이 친구,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뭔 놈의 자존심은 그리 센지 집안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면 그냥 , 하는 게 아니라 꼭 토를 달고 나서질 않나,


 


가족 중에 누가 집안일을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버럭 소리지르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 들지를 않나,


 


지가 뭐 그리 깨끗하다고 가족 중 누가 뒷돈을 챙기거나 동네 사람 중 누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하면 그냥 봐 넘기질 않고 냅다 따지고 들면서 법대로 하자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사내였는데,


 


이 친구가 그래도 성실하기는 해서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저녁 때면 시간 맞춰 퇴근하고, 월급봉투 꼬박꼬박 챙겨오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밤 늦게 술자리나 도박 같은 건 잘 안하고 그렇게 가정을 돌보긴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가 가끔 가욋돈 좀 달라고 하면, 사람은 생긴 대로, 있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실컷 훈계를 늘어놓았고,


 


자식들이 학원 좀 보내달라면, 그런데 쓸 돈 없으니 학교 공부나 충실히 하라고 면박주기 일수였고,


 


집안 어른들이 땅도 사고 팔고 집도 사고 팔고 해서 돈 좀 챙겨보자 하면, 그건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우리만 잘 살아보겠다는 못된 심보라며 면박을 주었고,


 


심지어는 멀쩡히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집을 팔아서 지방으로 가자고, 거기 가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살자며 복덕방에 집을 내놓기까지 하였다 한다.


 


그러니 가족들에게는 자꾸 불만이 쌓여갈 수 밖에.


 


 


2.


그래서 어느 날엔가는, 가족회의가 소집되어 집안 어른들과 아내와 자식들이 모여 그 친구에게 따졌다 한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


다른 집 가족들은 좋은 옷에 외식도 자주 하는데 우린 이게 뭐냐,


유명 학원에 최고 선생과 공부해도 명문대 가기 힘든데 만날 교과서만 보면 우리보고 뭐가 되라는 말이냐,


남들은 다 부동산에, 주식에 투자해서 좋은 차도 사고 비싼 술도 마시고 그런다는데 우린 아예 사는 재미가 없지 않느냐


가족 중에 힘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살펴야지. 그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만 힘든 지금 집안 꼴이지 않느냐.”


어떻게 된 사람이 집 안에만 쳐박혀있냐, 숨 막혀서 못 살겠다, 우리도 꾀 좀 피우며 살자.


등등,


 


이런 불만을 소리를 묵묵히 듣고 앉았던 이 친구,


역시나 늘 하듯이 가족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한다.


 


지금 우리 집안이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병들어 있다.


좀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요행수 바라지말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미래의 풍요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 말들이 많은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그건 실정을 제대로 모르고 지들 맘대로 꾸며서 하는 말이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불만이 있더라도 조금씩 참고 대화를 하면서 풀어보자.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그의 말들을 하도 듣던 터라 오히려 지겨워할 따름이었는데, 그때 마침 집안의 친척 어른 한 분이 갑자기 그 친구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다.


 


, 이 자식아!  네가 아무리 깨끗한 척 도도한 척 해도 나는 네 놈의 정체를 다 알고 있다.  네 친구하고 후배 녀석들이 우리 집안 소작농 몇 놈한테 좋은 땅을 맡기기로 하고 뒷돈 받아서 매일같이 룸싸롱에 들락거리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놈아!!


 


그러자 그때까지 딱히 뭐라 말을 않던 다른 가족들도 일제히 목청을 높여 그 친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다.


 


해명을 해 보시오!


당신도 같이 어울렸지!


근본이 그런 놈인데 어련하겠어.


뒤로 챙긴 돈 다 내놔라.


우리 집에서 나가 버려!


 


그런데 이 친구는 가족들의 그런 원성을 묵묵히 받아 넘기면서 달래기는커녕, 두 눈 동그랗게 뜨고 같이 맞받아쳐대기만 했단다.


 


막 가자는 겁니까!


정말 못해 먹겠네요.


전 제 친구와 후배들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가족들을 더욱 자극하기만 할 따름이어서, 설전은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 되었다.


 


마침내 이 친구, 갑자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가족들 앞에서 던져 보여주었다 한다.


 


 


3.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여러 개의 적금과 펀드통장, 보험증권, 그리고 각종 단체에 내는 후원금 계좌이었다고 한다.


 


여러분.  이게 바로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번 돈을 가지고 이렇게 내일을 대비해 왔습니다.


여러분들 말도 맞습니다.  알아 봤더니 제 주변사람 중 일부가 돈을 착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투자한 것 중 일부는 깡통을 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번 게 더 많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고요.  여기 있는 이 돈을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나눠드리지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가족들은 그 친구가 바닥에 펼쳐 보여준 통장들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다가는 하나씩 둘씩 자리를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들이 소리 없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며 그 친구는 이제야 자신의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하면서 방바닥에 놓여있는 통장들을 주섬주섬 주어서 다시 품 안으로 챙겨 넣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생각과는 달리, 가족들은 다른 이유로 그 자리를 피한 것이라고 한다.


 


이젠 지겹다, 지겨워.  자화자찬도 유분수지.


지가 그렇게 잘났어?  뭐야, 재수 없게시리.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서 돈이라도 좀 나눠주면 얼마나 좋아.


저 친구, 사람이 저렇게 요령이 없어서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꼬.  우리 집 재산이 왜 저런 놈 손 안에서 거덜나야 하냐고.


그나마 깨끗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무 실망이야.  우리 가족 중에 일은 죽도록 하고도 소외 당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좀 더 챙겨주길 바랐는데, 저런 놈을 믿은 내가 바보지.


그래,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목청 높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미래를 대비한다고?  웃기고 있네.  세상은 무한경쟁이야.  지금 잘 살아야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거라고.


잘 난 놈은 잘 살아야 하는 거고 못난 놈은 그냥 그렇게 살도록 돼있는 거란 말이지.  그리고 내 손에 돈이 있어야 못난 놈한테 밥이라도 한끼 더 사 주고 그러는 거란 말이야.  지가 뭔데 내 돈으로 생색을 내고 지랄이야.


 


 


4.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 집안에선 몇 차례 비슷한 언쟁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그 친구는 가족을 챙겨나갔다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 친구도 어느덧 늙고 쇠약해지자 가족들은 새로 데릴사위를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세를 살리겠습니다.  오빠만 믿어!


여러 명의 후보자 중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한 사내가 새로운 데릴사위로 결정되었다.


 


결정과정 내내 가족 일부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친구에 대해 사기꾼이다 거짓말쟁이다라는 평판이 난무했고, 실제 그런 일들이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이 가족은, 가세를 살릴 적임자이고 검증된 사위감 이라는 이유로 그를 새 데릴사위로 들이겠다고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해 불만을 가진 막내아들이 하루는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한다.


 


도대체 왜 저렇게 문제 많은 사기꾼 같은 사람을 들이시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세를 살리겠다면서 기껏 잘 모아놓은 적금 깨고 펀드 해약하자고, 그 돈을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자고, 그러면 걔들이 일자리도 주고 월급도 주니까 가세가 좋아진다고 하는 걸 믿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돈 잘 버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공부 잘 할 놈만 가려서 가르치고, 아프고 힘들어도 가진 것만큼만 치료해주면 집안의 기초질서가 확립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할아버지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다.


손자야.  네가 아직 어려서 그러는가 본데, 세상이 그렇게 순수하지가 않단다.  큰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때로는 모르는 사이에 불가피하게 남을 속일 수도 있단다.  네가 피해본 것도 아니면서 웬 호들갑이냐?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다.


얘야, 저 사람이 정말 그러겠니.  예전에 큰 일을 많이 했다던데 요번에도 다 잘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좀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 잘 하면 되지 않겠니.  일단은 밀어줘 보자꾸나.


 


이런 대답에 답답함을 느낀 막내 아들이 뭐라고 대꾸를 하려 하자, 그 자리에 있던 형과 동생들이 만류하였다 한다.


 


, 야, 그만해, 그런 소리 이제 지겨워.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오든 뭔 상관이야.  어차피 우린 그냥 우리 식대로 살면 되잖아.  한 대 때리면 맞아주고 뭐라 그러면 고개 숙여주면 되잖아.  그러고 나면 용돈 좀 더 주겠지, 뭐.  다 그러고 사는 건데 넌 왜 그래.


 


 


5.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동생들이 말은 그렇게들 하였지만, 사실 그들의 생각은 말과는 달랐다 한다.


 


거짓말이야 다 하는 건데 뭘.  아무튼 지난 번에 보니까 적금통장에 돈이 아주 많더구먼.  일단 그걸 깨게 하고 내가 좀 챙겨야지.  내가 이 집안의 어른인데 왜 대접을 안 해주는 거야.  내가 품위 있게 놀아야 우리 집안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거거든, 암.  그러려면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그 사람이 사기꾼일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적금이랑 펀드랑 깨고 나면 나도 좀 달라 그래야지.  그걸로 작은 집을 하나 사는 거야.  옆집 순이네가 사 논 집이 세 배로 뛰었다고 그러던데.  나도 해 보는 거야.  잘 되면 평생 못 해본 사치도 한 번 해 봐야지.  이게 다 우리 가족 잘 되자고 하는 일인데 뭘.


 


뭔 놈의 보험을 그렇게 무식하게 많이 들었는지.  게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왜 후원하는데.  직장 잡기도 힘들고 집 값은 자꾸 오르는데, 난 언제 벌어 차 사고 결혼하겠냐고.  보험이랑 후원금 좀 줄이면 그걸로 장사밑천이나 대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 가족은 새로 데릴사위를 들였다고 하는데,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진공 이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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