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대 관객들과의 소통을 포기한 명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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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말이 통한다’라고 하는 건 사용하는 언어가 같을 뿐만 아니라 전달하려는 내용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부합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거나 전문 용어를 많이 사용해서 전달하려는 뜻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간에 말이 통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전혀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눈빛과 표정을 통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손짓 발짓을 동원하다보면 왠만한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이 의사소통에 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입니다. 서로의 뜻이 맞고 대화에 임하는 태도가 적절하다면 언어가 다를지라도 말이 통할 수가 있는 반면 똑같은 서울말을 쓰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화법을 구사한다면 소통이 전혀 안될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말이 잘 통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언어의 구사 능력 보다, 사실은 내 말을 듣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우선입니다. 기왕이면 상대방이 알아듣기 쉬운 표현으로 고쳐서 말하는 것이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출발점이고 설득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내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듣는 사람도 앉았던 자세를 고쳐잡고 조금이라도 정확히 그 뜻을 이해하려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법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듣는 이의 입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나치게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며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중요한 내용을 얘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알아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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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의 새 영화 <M>의 첫 인상은 지나치게 현란하다는 겁니다. 비주얼 뿐만 아니라 배경음악과 음향효과, 배우들의 연기에 이르기까지 너무 수다스럽다 못해 스크린 밖으로 침이 튀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게 혹시나 ‘나태한 관객들의 의식을 각성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슬슬 부아가 치밀어오르기까지 합니다. 한 컷 한 컷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M>의 비주얼입니다만 문제는 그것을 쓸 때와 자제할 때를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이 쏟아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각 장면은 최고일지 모르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세련되지 못한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촌스럽습니다. <M>의 외연에서 촌티가 흐른다는 건 음향 효과와 배경 음악의 사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훈희 씨의 옛 노래가 촌스럽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비주얼과 마찬가지로 그 사용에 있어서 너무 지나치다는 얘기입니다.

<M>이 관객들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외연 뿐만이 아닙니다. 이명세 감독이 <M>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얘기는 영화과 전공 학생들에게나 들려줄만한 이야기입니다. 아니면 영화 창작론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남겼어야 할 얘기입니다. 관객들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는 그 과정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입니다. 결과물만 남겼어야 할 영화의 내용을 고민의 과정으로 대체해버리니 관객 입장에서는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데? 라며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디 워>가 에필로그 부분에서 심형래 감독이 나레이션으로 제작 동기와 과정을 부연 설명한 것 만큼이나 <M>을 통해 이명세 감독이 피력한 영화 예술가의 고민과 그 과정은 저와 같은 관객 입장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생뚱맞은 얘기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낯익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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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영화 자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고 그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천상의 피조물’이라는 점입니다. 후대의 영화 작가들에게는, 특히 촬영과 조명 부분에 일익을 담당하실 분들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작품이 <M>입니다. 하지만 <M>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반 관객들이 알고 싶어하는 내용이 아니고 그 화법 또한 지나치게 일방적이어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형사 Duelist>도 ‘모자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오로지 과하기만 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그나마 내러티브라도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M>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 창작론 강의가 되어버렸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소리지르고 있으니 광장 한복판에서 하루종일 떠드는 광인의 소리에 다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경험이 많은 정신분석학자나 의사들이야 그의 말을 받아줄 수 있겠지만 지나가던 행인들에게는 그 많은 말들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명세 감독은 혹시 영화계의 제임스 조이스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겁니까? 하지만 영화는 문학이 아닙니다. M은 모짜르트이기도 하고 모딜리아니이기도 하며, 미스테리인 동시에 메모리이기도 하겠지만, <M>에서 말하고 있는 M이란 결국 ‘명세’의 M일 뿐이니 이거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에 남는 의미있는 작업을 해냈다고 평가 받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완전히 포기한 영화가 이명세 감독의 2007년 영화 <M>입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