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 2004), “잘 만들어진 에로틱 스릴러”


변혁 감독의 두번째 장편 <주홍글씨>는 웰메이드 에로틱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고 실제로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이미 주어진 장르의 밑그림 위를 따라가는데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탄탄한 기술적 완성도를 기본으로 장르의 컨벤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말하고자 했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과감히 일탈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수준작이다. 먼저 개봉한 <범죄의 재구성>과 <아는 여자>가 끝내 달성하지 못했던 마지막 2%에 해당하는 지점에 성큼 올라선 영화가 <주홍글씨>다. 비평가들과 관객들이 <주홍글씨>를 놓고 뭐라고 혹평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한석규의 컴백 등 영화에 쏠렸던 대중들의 관심에 비례하는 흔한 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원래 큰 잔치에는 멀리 사는 거지들까지 죄다 몰리곤 하지 않던가.

물론 몇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띄기는 한다. 주인공들이 영위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생활 환경(트랜디 정장만 입어주는 강력반 형사들이나 재즈바에서의 현악 합주, 독신 재즈가수 집의 초호화판 인테리어)이나 몇 군데에서 발견되는 문어체를 벗어나지 못한 대사의 어색함 등은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왠지 아이 캔디를 우선 지향하는 에로틱 스릴러의 전형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뻔한 내용의 불륜 영화를 패턴을 밟아가던 <주홍글씨>는 일순간에 지금까지 쌓아온 럭셔리 맨션 전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험을 감행한다. 허영의 불꽃을 뒤따르는 인과응보식의 전복적인 내러티브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주홍글씨>는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전복을 제시하고 강조하고자 했던 주제를 뒤늦게 드러낸다. <주홍글씨>는 어느 누구도 절대 악인으로 내몰지 않으면서도 이제껏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던 모든 장면들을 새롭게 해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 재해석된 영화의 요점을 관객들은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듯 하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주홍글씨>에서의 ‘형벌의 공간’을 좀 더 지옥 같은 현장으로 남겨두었으면 좋지 않았겠나 하는 점이다. ‘장난 처럼 시작된’ 유혹과 그것에 응답한 인간이 어떤 형벌의 현장으로 인도받게 되는지를 부각시키려고 작정했었다면 두 남여 주인공의 애틋한(?) 과거지사를 밝힘으로써 면죄부를 부여하는 수순은 밟지 말았어야 했을텐데 <주홍글씨>는 마지막에 밝혀지는 감춰졌던 사연을 통해 완전한 희생자로만 보였던 인물 역시 같은 ‘죄와 벌’의 굴레 속의 동일한 존재로 끌어들이는 대신, 순수한 욕망의 화신들로 보였던 인물들에게는 동정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주제의 부각을 약간 희석시켜버린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피칠갑 보다 더욱 잔인한 지옥의 구현이 못내 아쉽다.


영진공 신어지

은주의 이주기, 그래도 우린 걸어야겠지요 <영진공 70호>

산업인력관리공단
2007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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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자신의 목숨이 자기 소유임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는 일.
피조물로써의 경거망동. 생명체로써의 절대비극. 그러나 가장 강렬한 삶에 대한 열망
– 이 외수의 감성 사전 중에서

올해는 유난히도 정다빈씨와 유니씨 때문에 시끄러워진 한 해였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의 자살은 큰 뉴스가 되고 언론에서는 많은 분석들이 나옵니다 연예인들의 인기와 우울증 그리고 구절구절 한 이유 그러면서 장례식 사진이 나오고 방문객들의 소식과 의리를 분석하고 그리고 조용해집니다. 죽음의 소식부터 장례식 마칠 때 까지가 한편의 상업광고처럼 이루어집니다. 마치 몇 년 전에 나왔던 관지림의 소리소문 없던 영화 그러나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던 영화가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관계없는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쇼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요.

거장의 장례식

확실히 연예인들의 죽음은 가십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연예인들도 자살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1995년에 한국인구 통계로 10만 명당 자살 수는 12명이었습니다 2006년 자살자 수는 10만 명당 26명이라고 합니다. 한국 연예인 수 들을 알려지지 않은 분들까지 계산하면 한 만 명쯤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자살률은 특수 직업이나 일반인이나 별반 없어 보입니다. 한국인구를 약 5천만으로 잡으면 약 13000명이 작년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 자살 1등 국가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급속히 증가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세계에 자살률은 특히 선진국에서도 증가 추세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개발되고 사람이 먹는 것 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자살률은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생활의 발전이 우리에게 온난화 등 여러 가지의 족쇄를 채워가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은 옛날에 비해서 점점 심약해지는 것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뚜렷한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문제, 경제문제 등등의 정치나 평등의 문제로 늘어나는 자살자들이야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로 인한 자살은 그것이 건전한 사회건 아니건 간에 존재하니까요. 좀더 무덤덤하게 살아가거나 쳇바퀴 문명의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는 게 해결 방안이겠지만 그런 대책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주홍글씨http://blog.cine21.com/clintmin/6962

은주의 이주기 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은주의 일주기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올해는 그냥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주기에 주홍글씨를 다시 틀어 봅니다. 그녀의 유작에서 우리의 일상을 봅니다.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하고 후회하고 그러다 우울해집니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담배 한대를 물어봅니다. 인간에게는 진정으로 종교가 필요한 듯 합니다. 인생은 대략 허무 합니다. 부자건 가난한자건 사랑에 행복하건 이별에 슬퍼하건 간에 모든 것은 순간에 불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하겠습니까? 그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게 대답이라고 자위합니다. 그리고 바빠지자고 다짐합니다. 바빠지면 생각에 몸이 따라오지 못하니까요.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겠지요.
유혹의 초대에 넘어가지 마시고 은주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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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느껴보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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