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도술의 정신을 살리다

최동훈 감독이 새로 내놓은 영화 <전우치>에 대해 실망이라거나 혼란스럽다는 평이 많던데 … 물론 영화가 좀 늘어지는 부분이 있고 방향을 잃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 지점도 있다.

감독의 전작인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의 대사빨과 치밀한 구성을 기대한 이들이
그래서 실망을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실은 <전우치>도 대사빨 좀 살리는 영화다.
이번에는 시대극 대사빨을 시도한 건데 … 일단 관객들이 적응하는데 버퍼링이 필요하지만 뭐 그럭저럭 먹히는 농담들 있다.
그 중 몇 개는 관객들이 자지러지기도 하던데 … 특히 유해진의 역할이 컸다.

“턱주가리”, “장사치들에게 나라를 맡긴다니, 우환이…” 등등의 대사는 어긋나는 두 시대를 관통하는 대사빨이 아니던가. 물론 그것이 대사빨로 끝난 것이 좀 아쉽지만.

그러나!
이 영화에는 대사빨이나 구성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도술의 기본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비교되는  <아라한 장풍대작전>보다 낫다. <아라한>은 도의 한 부분인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수련한 자의 경지를 슬쩍 보여주긴 했지만, 도의 나머지 부분은 아쉽게도 놓쳤다.

그것이 뭐냐하면 … “세상 뭐 있어?” 정신이다.
도술은 기본적으로 해킹이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한 것도 바로 도술이다.
세상에 대한 고정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 세상을 주어진 대로 보지 않고 관점을 바꾸는 것.

그렇기에 그림 속으로 도망칠 수도 있고,
그림 속에 암자를 지어놓고 살 수도 있으며,
그림 속에 갇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술은 진지함 보다는 경쾌함의 미학이다.
<전우치>는 휘적휘적 액션을 펼치는 강동원을 내세워 이 경쾌한 도술의 분위기를 살려냈다.

그리고 하나 더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복선이다.
역시 이 영화와 비교되는 <화산고>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바로 이거다.
화산고에는 액션만 있고 이해가 없었다. 관객들은 그냥 끝없이 커져가는 액션의 자가폭주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전우치>에는 미친 무당의 예언과 스승님(백윤식)의 예언 같은
몇가지 복선이 이야기의 맥을 잡아준다.

그 결과, 관객들이 “아하! 그렇구나” 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배우들은 물론 좋다.
영화에 대해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배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오히려 배우들이 낭비되었다고 투덜거리는 경우는 있지만.

강동원은 무엇보다도 “기럭지!”의 힘이 좋다.(미안하다. 대사는 좀 약했다.)
그 기럭지만으로도 꽤 그럴듯한 화면빨을 발휘하는 배우는 정우성 이후 첨봤다.

임수정은 예쁘고 엉뚱하면서도 생생하고 … 도사들, 특히 김윤석의 카리스마가 좋다.

그래도 아쉬운 것 하나는 조금 더 동시대성을 살렸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동시대성이 사라지다보니, 요괴들이 불쌍하더라. 걔네들 그냥 내비뒀으면 환자들 치료하며 잘 지냈을 애들 아닌가.

게다가 “쥐 요괴” !!!
걔는 사실 그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거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 않던가?
만약 그렇게만 만들었다면 진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을 터인데 …
그게 가장 아쉽다.

물론 그랬다면 아예 개봉을 못했을 것이고 영화사와 감독은 세무조사 받았으리란 상상을 해보면 지금 이거라도 어디냐 싶다.

하 수상한 시절에 이 정도면 감동이지 뭘 더 바라느냔 생각이다.

영진공 짱가

강동원 흥행의 법칙과 영화 “전우치”


무조건 예쁘게 나오면 흥행 성공한다 …

… 라고 강동원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는 그래도 컬트팬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반면<M>이 그러지 못한 것은 강동원의 모습에서 대머리 기가 보였기 때문 …
이라고들 하죠.

물론 정말로 그에게서 대머리 기가 보인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 짧은 M자 머리가 보기에 살짝 부담스러웠던
거겠죠. 아직 꽃다운 ‘소년'(잘해봤자 ‘청년’)을 ‘어른 남자’로 그리는 것에 대한 반발감이라 해야 할까. 이 면에 대해선
이명세 감독님이 조금 “성격이 급하셨다”는 게 저의 해석입니다. 몇 년만 참으셔도 됐을 것을, 얜 아직 군대도 안 갔다왔다고요.

군대 갔다오기 전에 되도록 샤방하고 예쁜 모습을 많이, 라는 게 누나팬들의 공통된 심정이랄까. 그것도 이제 거의 끝난 듯,
어쨌든 공익 가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전우치>에선 강동원이 아주 예쁘게 나올 듯하니 다행입니다만.

전우치

아이고 저 표정 봐라, 우째 저래 이쁘노.

강동원이 예뻐서 <늑대의 유혹>도 앉은 자리에서 DVD 코멘터리로 보는 것 포함 두 번 정주행하고 장면
발췌보기로 또 돌려본 저라고는 하지만, 최동훈 감독이 처음에 강동원 데리고 <전우치> 찍겠다고 그랬을 땐 아니
감독님하 뭐 잘못 드셨나요, 라는 게 솔직한 제 심정이었습니다.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한 또래들 중에선 그래도 강동원이 의외로
연기자로서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같은 영화에선 굉장히 잘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대작의
주연으로서는 아직 검증 안 된 것도 사실이죠. 거기에, 사실 최동훈 감독의 이전 두 작품도 보면 매우 능숙한 배우들에게 기댄
면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나, 모두 제자리에서 제 몫 알아서 똑소리나게
해먹는 배우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지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박신양도 그랬고, 조승우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백윤식 선생이나
김윤석, 이문식, 천호진, 주진모 …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에선 너무 잘하시는 백윤식의 연기를 오히려 살짝
눌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오히려 살짝 삑사리가 났다고 생각할 정도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촬영이 끝난지 한참 지나서도 좀처럼 개봉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자들 사이에서 영화가 영 안 나왔단 소문이
파다하기 돌았습니다. 물론 CG를 잔뜩 사용하는 영화들은 원래 후반작업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긴 합니다만, 대체로 후반작업이
길어지고 개봉이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본 촬영분이 나빠서 배급사에서 개봉을 미루며 덧손질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십상입니다. 이건 많은 영화들의 케이스에서 일정부분 사실이라고 증명되기도 했었으니, 100억이 넘게 들어갔다는
<전우치>에 대해 무성한 뒷말이 많았던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제가 기대를 갖게 된 건 지난 번 제작발표회에 다녀와서(새 창으로 열기)
니다. 맛뵈기 동영상 속에서 강동원의 전우치는 매우 이쁠 뿐 아니라 발랄하고 유쾌했고, 임수정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예뻤으며,
염정아는 얄팍해서 웃기지만 밉지는 않은, 오히려 귀여운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김윤석의 카리스마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감독이나 배우들의 자신감도 꽤 있어보였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자신감은 봉준호 감독과는 또 다른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게 사실이에요. 봉오빠가 등장할 때 제가 같이 들떴던 게 “드디어 한국에서도 ‘영화를 갖고 노는’ 감독이 나타났다”는
거였는데, 최오빠 역시 그렇습니다. 상영된 메이킹 장면들에서, 물론 힘들고 고민하거나 심지어 험악한 때도 많았겠고 그건 모두
잘라냈겠습니다만, 그래도 영화 만들면서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의 표정이 많이 보였습니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건
CG인데요. 맛뵈기 동영상에선 얼마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얼핏 보이는 CG의 수준이 약간 조잡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본편에서
색보정과 기타 다른 보정을 거치면 달라지겠으나, 예고편에서 드러나는 밤의 추격씬 화질도 다소 조악했고요. 물론 그런 거 보정하는
것도 후반작업 중 일부이고 제작발표 할 때에도 한참 CG 작업중이라고 했었으니, 본편에선 보다 나은 화면을 볼 수 있겠지요.

영화 <전우치>의 촬영현장

기사를 쓰기 위해 찾아본 전우치와 서화담의 기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우치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정사실인 것
같군요. 생몰연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대 여러 기록에서 전우치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고, 장난기와 유머가 가득한 선행의 기록도
있지만 치기와 악동의 기록도 꽤 됩니다. 남 골려주고 소소하게 복수해주고 상사병 걸린 친구 돕겠다며 정절 지키고 있던 과부
보쌈하는 행태까지 …

전우치가 “발라버리겠다”고 자신만만 찾아갔으나 오히려 된통 깨지고 스승으로 모셨다는 서화담이, 우리가
황진이와의 에피소드로 알고 있는 그 화담 서경덕 선생이 맞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지요. ‘리’는 개무시하고 철저한 주기론을
펼쳤다는 이 양반이 한편으론 노장사상에도 관심이 많았고 토정 이지함의 스승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신비술이나 동양적인 은비학,
도술에 관심이 컸다는 얘기가 그럴싸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양반이 영화 <전우치>에선 악당으로 나온다니 기분이
좀 묘하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전우치>가, <타짜>때 쩍 벌렸던 제 입을 두 배로 더 쩍 벌리게 해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최동훈 화이팅!

영진공 노바리

[영진공 60호]<타짜>, 뛰어난 각색에 감탄하다

상벌위원회
2006년 10월 13일

<타짜>를 다시 봤다. 이번엔 전반적으로 블루지한 분위기, 그 와중 긴박감을 더하기 위해 타악기(특히 봉고와 심벌즈)와 퍼커션을 많이 쓴 음악효과들이 유난히 더 귀에 들어왔다. 마지막을 한대수의 곡으로 마무리한 것도 좋았지만, 고니(조승우)가 고광렬(유해진)과 단속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에 나온, 심벌즈 위주의 재즈곡이 참 좋더라. <타짜>의 영화음악은 전체적으로 영화와 잘 어우러지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놓고 과시하지 않는 좋은 음악이었다는 생각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리쌍의 ‘야바위’라는 곡이 타짜의 OST 수록곡으로 도는 모양인데, 영화 중 들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조심스러운 추측으로는 원래 엔딩 뮤직으로 쓰려다 막판에 한대수의 곡으로 대체한 거 아닌가 싶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탁월한 선택. 리쌍의 현대적이고 경박한 싸운드는 의도적으로 복고적인 – 공식 시대배경은 90년대 중반이지만 평경장의 자전거에서도 드러나듯 오히려 7, 80년대 정서가 기묘하게 섞여있다 – 영화 분위기와 절대로 안 어울린다.

바로 요 장면의 시퀀스에서 흐르는 심벌즈로 시작하는 재즈곡, OST에 과연 수록되려나.

이번엔 시퀀스와 시퀀스의 연결, 숏들을 살펴봐야지, 했건만, 영화를 보다보니 어느새 휙 빨려들어가 정신을 놓고 내러티브를 따라가고 있다. 내용 다 알고 심지어 원작도 읽고 갔건만, 두번째 봐도 마치 처음 보는 것마냥 어찌나 재미있던지. 이 영화가 얼마나 촘촘한 밀도를 자랑하며 꽉 짜여져있는지만 새삼 다시 느끼며 또 감탄. 플래시 백 앤 포스(Flash Back and Forth)의 구성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다시 보니까 더욱 확실히 알겠더라. 고니의 도박 입문 계기에서 곧바로 곽철용의 하우스로 뛰는 이 영화, 다시 과거로 돌아와 평경장의 제자로 받아들여지고 훈련받고, 다시 곽철용의 하우스로 돌아온다. 정마담의 내레이션은 나중에 가서야 경찰에게 진술을 하는 이야기로 밝혀지는데, 이는 고니라는 인물을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게 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인물을 객관화 시키는 역할뿐 아니라, 이러한 플래시 백 앤 포스를 더욱 매끄럽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시간적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매우 친절한 배려였던 것이다… 이러한 백 앤 포스를 통해 생기는 긴장감과 스릴이 상당하다.

이 장면은 곽철용과의 첫대면 후에야 플래시 백으로 나온다.

원작을 보고 영화를 다시 보니, 스토리의 반과 대사의 반이 새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었다. 새삼 ‘뛰어난 각색자 최동훈’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한국영화씬에서 정말 보기 드문 귀한 존재다. 전체적인 구조를 짜는 것에서부터 라인 한 줄 쓰는 것까지, 대박 센스쟁이!! 최동훈이 시나리오 강의 같은 걸 한다면 만사 다 제끼고 수강생이 될 용의가 있다.

상벌위 선도부 위원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영진공 60호]최동훈, <타짜>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0월 13일

영화에 원작이 있는 경우, 비슷한 캐릭터와 줄거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매체가 완전히 다름에도 부당하게 비교를 당하기 마련이다. 원작을 이미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보는 영화 또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허영만 선생과 그 팬들에게 대단히 실례될지 모르겠지만, 원작을 보지 않고서 접한 영화 <타짜>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졌기에 굳이 아쉬움 때문에 원작을 찾게 만들지는 않더라. 이후에 본 원작 [타짜]는, 솔직히 말해 – 그리고 당연할 수 있지만 – 지루했다. 원작을 보면서 느낀 것은, 영화 <타짜>의 각색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리고 최동훈이 얼마나 훌륭한 감독인지이다.

내레이터로서 정마담을 전면 배치하고, 아귀 및 짝귀와 고니의 인연을 더욱 단단하게 얽은 영화 <타짜>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원작을 영화라는 매체에 알맞게 성공적으로 스토리를 압축하고 캐릭터를 통폐합하며 촘촘하게 밀도를 더한다. 원작에서 내레이션으로 서술된 부분을 단 한 컷의 그림으로 설명하면서, 원작에 없던 내레이션은 충분히 영화적으로 삽입돼 들어간다. 게다가 원작의 5, 60년대 배경이 IMF 직전인 90년대 중반으로 바뀐 것은 탁월하고 영리하다. 젊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현대적 감각을 주면서도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으며, 하루에 몇 천만원씩 도박에 꼴아박는 호구의 존재가 설득력있게 제시된다. 나라 전체가 ‘한탕’을 간절히 바라며 흥청망청하면서도 희망보다는 절망과 불안감이 깔린 채 침몰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는 위기의 그 시대 분위기가 영화의 스토리와 정확히 맞아떨어 들어간다.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이후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아버지상’을 획득한 백윤식은 이 영화에서도 예의 정신적 지주로서, 이미 도인의 경지에 이른 ‘아버지’이자 ‘멘토’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니를 받아들이고 트레이닝시키는 장면은 영락없이 루크 스카이워커를 훈련시키는 요다, 혹은 영웅신화의 멘토이자 현자의 모습이다. 우아하고 품위 넘치며 올곧은. 원작과 달리 그는 ‘딴 돈의 반만 가져가는’ 관행을 처음부터 원칙으로 내세우며 고니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배 위에서의 절대승부에서 고니가 ‘난 딴 돈의 반만 가져가!’라 내뱉는 것은 곧 평경장의 원수를 갚는 것뿐 아니라 그의 원칙을 계승함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적자의 정통성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그저 욕심많은 촌뜨기 아줌마였던 정마담은 김혜수에 의해 완벽하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훨씬 도도하고 우아하며, 훨씬 명민하고 위험한 그녀는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 <범죄의 재구성>에서 한 단계 진화한 팜므파탈을 보여준다. 주목받기 좋아하며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고수하지만 절대로 천박해 보이지 않는 그녀, 여자조차 반하게 만드는 그녀, 영화 초반에 주인공을 객관화시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고니에 대한 내레이션을 도맡은 그녀는 말투와 몸짓, 심지어 누드에서조차 압도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타는 돈 앞에서 패닉이 되었다가 급기야 고니에게 총질을 하는, ‘무너질 대로 무너지는’ 정마담의 씬은 고니가 열차에 매달려있는 장면과 함께 클래이맥스라 할 만한데, 아무래도 ‘폭발’이 약한 느낌이다.

조승우는… 더 할 말이 있을까? 가늘고 곱상하긴 해도 성깔있게 생긴 얼굴과 굵은 목소리에서 애초에 임권택이 거친 “싸나이” 캐릭터를 맡긴 바 있고, 이 영화에서도 악과 깡과 빠른 머리회전을 자랑하는 고니, 한편으로 여려 보이나 그것이 오히려 독한 칼날로 전화하곤 하는 고니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유해진의 고광렬도 아주 좋다. 아이고참, 뿔테안경에 “양복쟁이” 고광렬이 어찌나 그리 잘 어울리는지. 이밖에 짝귀, 아귀도 아주 좋다.

아우, 이 장면에서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각색자 최동훈’이다. 영화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감독들도 종종 원작의 아우라에 눌려 줄거리를 쫓아가기에만도 허덕대거나, 어쩔 수 없는 ‘구멍’들을 노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아쉬움에 원작을 찾아읽게 만든다. (심지어 피터 잭슨도 그랬다.) 하지만 최동훈의 각색엔 그런 게 없다. 고니가 도박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부터 (원작과 달리) 외국으로 튀어 잘 살아가고 있는 에필로그까지, 마치 원작을 통째로 씹어먹어 잘 소화시킨 뒤 같은 재료로 형태도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요리를 내놓은 느낌? 캐릭터도 줄거리도 원작에 충실하다고 느껴지지만, 원작과 꼼꼼이 비교해보면 사실 많은 부분이 바뀌거나 새로 창조되어 최동훈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분명 살아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은 원작의 원래 재료와 기분좋은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 원작에서의 도포 두른 고광렬과 영화에서의 양복쟁이 고광렬, 자기 과시욕이 보이는 평경장과 도인에 다다른 평경장은 완전히 다르면서도 같다. 원작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힘으로 덮치는 고니, 다소 순박하지만 말주변은 딱히 좋아보이지 않는 고니와 영화에서 능글거리고 주먹과 작두질 이전에 적절한 템포와 박자의 ‘말발’을 자랑하는 고니 역시 완전히 다르면서도 같다. 정마담의 캐릭터와 평경장의 죽음이 완전히 새로 쓰여지면서, 영화는 원작보다 더한 긴장과 스릴을 덧입는다. 영화적 반전 장치로서 훌륭한 이 설정은 이 영화에서 자랑할 만한 ‘열차 대롱대롱, 돈 화라락’ 씬과 연결되면서 “인생무상”의 정조까지 획득한다. 그럼에도 서투른 스토리텔러들이 집어넣기 좋아하는 고루한 권선징악의 설교를 피해가며 해피엔딩으로 맺기까지. 아아아아 씨발 너무 좋다.

‘감독 최동훈’의 능력은 ‘각색 최동훈’의 능력을 한껏 돋보이게 해준다. 그는 훌륭한 각색자이자 감독이다. 연출의 전체적인 톤도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연기 연출 역시 뛰어나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적인 화면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솜씨가 아주 훌륭하다. (데뷔작으로서는 훌륭하긴 했지만) <범죄의 재구성> 때 뭔가 아슬아슬하게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몇 단계는 한번에 진화해버린 듯. (최동훈에겐 ‘서퍼모어 컴플렉스’란 말이 아예 해당사항 없음, 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예의 그 ‘교본’ 같은 구성, 그리고 영화 곳곳에 퍼져있던 에너지가 마침내 한곳으로 응집돼 강력하게 폭발하는 게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는 애초에 원작의 굵은 뼈대를 그대로 가져가기 위한 욕심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혜수가 총질씬에서 에너지가 좀 부족했으며, ‘열차 대롱대롱’씬에서 인생무상의 비애와 허무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기에는 조승우가 (그 나이 또래에선 매우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젊다는 느낌, 그리고 감독 역시, 그 정서를 보다 깊이있게 전달하기엔 아직은 젊구나, 하는 느낌. <타짜> 속편 얘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한 15년 후쯤에 최동훈 감독이 다시, 속편을 찍었으면 한다. 아마도 그때엔, 최동훈 식의 탄탄한 스토리 구조가 조금은 느슨해진 대신 그 깊이가 확보될 거 같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