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2호]<팀 아메리카: 세계경찰>

상벌위원회
2006년 11월 1일

포스트시즌의 야구경기는 휴식시간이 평소보다 길다. 몇 개 안되는 광고를 지겹게 틀어대기에 공수 교대가 이루어질 때마다 다른 채널을 틀다가 만난 게 바로 <팀 아메리카: 세계경찰>이다. 손발에 실이 달린 인형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인데, 김정일이 세계 테러의 지도자로 나오는 것도 특이했다.

내가 본 첫 장면은 이랬다. 파리에 나타난 테러범을 팀 아메리카가 쫓는다. 그 중 한 남자가 미사일을 발사한다. 미사일은 애꿏은 에펠탑에 명중, 탑을 없애 버린다. 그가 말한다. “젠장, 빗나갔어!”
그러자 비행기를 조종하던 여자가 나선다. “내가 할께!”
여자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숨은 테러범에게 미사일을 날린다. 명중하긴 했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절반이 날아간다. 여자의 말, “성공이야!”
그러니 작전이 끝나고 “우리가 또 세계평화를 지켰어!”라고 말하는 팀 아메리카 대원들에게 시민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이 다음부터는 상황이 역전,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에 야구 스코어만 확인했다. 9-6의 스코어가 난 난타전이었는데 말이다 (하긴, 난 투수전을 훨씬 더 좋아한다).

테러방지를 빙자해 사실상 테러를 하는 그들에게 시민들은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피켓을 들고 팀 아메리카 본부가 있는 러시모어 산에 모인 사람들 중엔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도 있었는데, 무어는 폭탄을 몸에 감고 본부로 들어가 자폭을 하고, 대원들도 김정일에 의해 포로가 되거나 폐인이 된다. 좌절한 대원이 술을 먹고 오버이트를 하는 장면은 어찌나 리얼하던지 어제 마신 술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헐리우드 공식답게 조직을 배신하고 떠났던 게리라는 대원의 활약에 의해 세계를 날려 버리려는 김정일의 음모는 분쇄된다는 교훈적인 내용, 하지만 영화 곳곳에 기가 막힌 장면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 중 한 장면. 게리가 같은 대원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죽지 않는다는 맹세만 해주면 난 당신과 사랑을 나눌 거예요”란 말에 게리는 맹세를 하고, 둘은 키스한다. 여기까지야 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은 침대에서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 인형극이라 그리 야하단 생각은 안들었지만, 하는 장면이 3분 가까이, 그것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체위를 다 보여주면서 진행될 때는 정말이지 “깬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인형 머리가 팍팍 잘리는 등 잔인한 장면이 많이 있지만, 이 영화가 19세 관람불가인 이유를 제대로 알아버렸다.

게리가 부르는 노래 가사. “마이클 베이, 난 당신이 필요해요. 밴 애플릭에게 연기수업이 필요하듯 내겐 당신이 필요해요. 마이클 베이, 진주만은 정말 졸작이었어요.”

게리가 다시 조직에 들어갈 때.
남자 대장: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자넨 내가 오럴을 시킬까봐 내 차에 타지도 못하는 겁쟁이 배우였지.
게리: …
대장: 내가 자넬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이러면서 대장은, 세상에, 게리에게 오럴을 시킨다. 흡족한 표정으로 대장이 하는 말, “좋아, 자넨 조직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

영화엔 수많은 배우가 실명으로 등장하며, 감독은 그 배우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이 영화가 상영금지된 이유도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알렉 볼드윈의 팬인 듯, 주인공 게리의 입을 통해 “알렉 볼드윈은 최고예요!”란 대사를 날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게리가 김정일의 사주를 받은 알렉 볼드윈과 연기대결을 펼쳐 승부를 내는 대목. 이런 결말 역시 ‘깬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힘센 놈이 나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미친 놈을 이기는 건 힘센 놈이다” 게리가 관객들에게 한 이 말은 알쏭달쏭했던 이 영화의 주제가 미국의 테러리즘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낙타가 물을 먹는 장면 등등 인형극으로 만든 세트들은 정말 볼만했으며, 간간이 재미도 있었지만,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전형적인 영화인 듯싶다.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