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 당신들을 위한 보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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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게 어디 미국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자본이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고 세속 종교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준다며 시커먼 탐욕의 불기둥을 쌍으로 뿜어 올리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기도 하지 않던가요.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없는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처럼 광기에 가까운 승부욕으로 성공을 일궈낸 수많은 인물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정권과 내각이 바뀌고 때마침 많은 회사들이 주주총회를 여는 시기에 영화를 본 탓도 있었겠고요. 미국이라는 국가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들을 통해, 그리고 실존 인물들을 통해 보아온 캐릭터의 기시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런 면모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나 자신에게도 잠재되어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란 생각도 듭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한 속죄양이 되어 흘리셨다는 보혈(Blood)이 아니고서는 그 굴레를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천상 죄인인 것이죠.

정치가 아닌 종교가 자본과의 대립각을 세운다는 점 외에는 전체적으로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조율이 참 잘된 영화더군요. 엔딩 크리딧에서 영화를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게 헌정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시종일관 팍팍 느껴진다고 할까요. 미국 대자본의 탄생을 상징하는 유전탑의 모습과 굴착기의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참 무시무시했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더군요. 영화를 몇 년에 한 편씩 밖에 찍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에 그의 연기를 새 영화에서 본다는 건 그 자체로 진기명기를 감상하는 일과 다름이 없지 싶습니다. <미스 리틀 선샤인>(2006) 에서 처음 봤을 때 저런 외모로 인기 배우가 되기는 어렵겠다 싶었던 폴 다노는 배우란 외모가 아니라 연기를 보여주는 직업이란 평범한 사실을 재삼 확인시키며 저를 부끄럽게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키애런 하인즈의 비중이 너무 적었전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플롯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마는 안타까움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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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아닌 죽음으로서의 피는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 이미지가 됩니다. 은광에서, 그리고 유전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허락된 그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에서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메시지입니다. 미국이 피의 대가를 치르며 세워진 나라이고 부를 축적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과감히 결탁하고 자신을 건드린 자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하는 무자비함 역시 미국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9.11 테러를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 내 신매카시즘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상의 이유와 달리 석유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이라크 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광기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던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이들의 피가 뿌려진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대운하를 파는 과정에서도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할테지요. “I’m finished.”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나지만 피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그들을 위한 보혈이란 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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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