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속의 한국계 배우들

최근의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를 보다보면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를 느낄 정도로 꽤나 많은 한국계 배우나 한국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계가 연기력이 더 뛰어나서인 건지,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지도(?)가 미국 내에서 이전보다 많이 높아져서인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암튼 몇 년 전까지에 비하면 인기 시리즈의 메인 캐릭터 중에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재미삼아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 대략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조연급 이상 고정출연자 위주로 정리를 하였는데, 혹시 여기에 거론되지 않은 한국계나 한국계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이 더 있다면 댓글로 제보하여 주시기 바란다.

먼저 Usual Suspects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 산드라 오 (Sandra Oh)

1971년 7월 20일생 / 캐나다 온타리오 /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남.
現 출연작: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인턴 크리스티나 양 役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에서의 분노의 화이바질이 지금도 인상 깊은 그녀는 아마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중에 가장 성공한 이일 것이다.

캐나다에서 연극과 TV 그리고 영화로 다채로운 배우활동을 펼친 그녀는 캐나다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Genie Awards에서 두 차례 (1994년과 1999년)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였고, 1996년에는 미국의 TV 시리즈 “Arli$$”에 출연하며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2005년에 영화 “사이드웨이”의 성공으로 미국 관객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그녀는 그 해에 방영을 시작한 TV 시리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 캐스팅된다.

이후 현재까지 6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이 드라마의 성공가도 질주에 톡톡히 일조를 한 그녀의 연기는 미국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으며 2005년부터 5회 연속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2006년에는 골든글로브 TV 시리즈 부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다.

* 원래는 레지던트 베일리 역을 제안 받았다는데, 본인이 크리스티나 역할을 강력히 요구하였다나 어쨌다나~

** “사이드웨이”의 감독인 알렉산더 페인과 2003년 결혼하였으나 2006년에 이별.

  

[미국의 토크쇼 “지미 키멀쇼”에 출연한 산드라 오.  영상 중간에 부모님들 모습도 보임.]

2. 마가렛 조 (Margaret Cho, 한국이름 조 모란)

1968년 7월 20일생 /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남.
現 출연작: “드롭 데드 디바 (Drop Dead Diva)”, 비서 테리 리 役

그녀의 경력과 삶이 조금만 덜 굴곡졌더라면 아마도 마가렛 조는 미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배우겸 코미디언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무대에 홀로 서서 신랄한 풍자와 독설로 주로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모든 사회현상을 조롱하는 걸 장기로 삼는다.)으로 경력을 시작한 그녀는 1994년에 American Comedy Awards에서 최고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상을 수상하는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그녀가 주인공인 TV 시리즈 “All American Girl”이 1994년에 ABC를 통해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리즈로 인해 그녀의 삶과 경력은 굴곡지게 되었다.  아시아인을 지나치게 비하한다는 비난과 너무 미국적이라는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고, 제작사는 그녀가 너무 뚱뚱하고 얼굴이 지나치게 펑퍼짐하다고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 여파로 다이어트에 중독된 그녀는 시리즈가 1시즌으로 종결돼버리는 수난을 겪으며 약물과 알콜중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에 재기한 그녀는 본업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다시 나섰고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그녀의 독설은 더욱 날카롭게 톤을 높였다.  그리고 최근까지 “데일리 쇼” “섹스 앤드 시티” “더 뷰” 등 다수의 인기 TV 프로그램과 “페이스 오프”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2009년에 13편으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현재 시즌 2가 제작 중인 “드롭 데드 디바 (Drop Dead Diva)”를 통해 안방극장의 메인 캐릭터로 컴백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 어머니의 한국 액센트를 흉내내며 웃음의 소재로 삼기도 하고 게이의 권리쟁취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모습에 재미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그녀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이 꽤 많이 존재한다.

**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매우 적극적인 反 부시 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토크쇼 “더 뷰 (The View)”에 출연한 마가렛 조.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은 여기에서도 여전하다.

3. 존 조 (John Cho, 한국이름 조 요한)

1972년 6월 16일생 / 서울 /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現 출연작: “플래시포워드 (Flashforward)”, FBI 요원 드미트리 노 役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LA로 이민을 온 존 조는 1996년에 UC버클리를 졸업하고 잠깐 영어 선생님을 하기도 했다 한다.

광고전단의 모델로 연기경력을 시작한 그는 1999년 영화 “아메리칸 파이 (American Pie)”에 출연하여 MILF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연기자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저 단어의 뜻은 각자 알아서 파악해 보시라 …)

이어 “아메리칸 뷰티” “아메리칸 파이 2” 등에 출연하던 그는 2004년의 영화 “해롤드와 쿠마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다.

그 후 TV쪽으로도 활동영역이 대폭 넓어진 그는 “키친 컨피덴셜” “어글리 베티” 등의 TV 시리즈와 2009년 영화 “스타트렉 (Star Trek)”에도 출연하였다.

그리고 현재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TV 시리즈 “플래시포워드”에서 한국계 FBI 요원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 “해롤드와 쿠마” 3편은 당분간 보기 힘들듯 하다.  왜냐하면 쿠마(Kal Penn)가 오바마 행정부의 관직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라능~

** 역시 배우인 케리 히구치와 결혼하여 1남을 둔 그는 캘리포니아 주의 동성결혼금지법에 대한 반대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코미디쇼 “매드 TV”에 출연한 존 조.  함께 나오는 이는 레귤러 멤버인 바비 리.]

여기서 잠깐,
위 동영상에 등장하는 바비 리(Bobby Lee)에 대해서 알아보자.

4. 바비 리 (Bobby Lee)

이 친구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972년 9월 17일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생하였고 한국계이며 본명이 Robert Lee Jr. 라는 정도.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 경력을 시작한 바비 리가 미국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Fox방송을 통해 14년 동안 방영되다 2009년에 종영한 “매드 TV(MADtv)”에 진출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여기에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고정출연진으로 맹활약하였는데, 초기에는 아시아인을 희화하는 보조역할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주요 멤버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매드 TV”는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Saturday Night Live, SNL)”와 유사한 형식의 코미디 쇼인데, 내용은 SNL보다 파격적이고 직설적이어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즈질’이라고 맹비난받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바비 리가 MADtv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패로디한 코너를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그걸 한 번 보도록 하자.

봐서 알겠지만 이게 말하자면 “막장”드라마의 원조라해도 좋을만큼 막 나가는 코너이다.
뭐 어쨌든 이 코너가 은근 인기가 있어서 현재 유툽에는 4부작이 올라와있으니 위 동영상이 재밌다고 느낀 분은 직접 찾아서 감상하시면 되겠다.

참, 혹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웃겨만 주면 장땡인 영화를 즐기는 분이라면 바비 리가 단역으로 출연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Pineapple Express)” 강추다.  이 영화에 한국인 갱단이 나오는데 “다 죽여버려, 씨*놈들 …” 따위의 한국말 대사가 슝슝 날라댕긴다.


자, 그럼 이제부턴 그냥 무순으로 정리해보도록 하자.

5. 제임스 카이슨 리 (James Kyson Lee, 한국이름 이 재혁)

1975년 12월 13일생 / 서울 / 열 살 때 미국으로 이민
現 출연작: “히어로즈 (Heroes)”, 안도 마사하시 役

처음에 히로의 충실한 동료로 시작하여 이제는 능력자의 반열에 올라 선 그.

“히어로즈”가 일본에서도 꽤나 인기인지라 일부 일본 친구들이 왜 굳이 일본인 역에 한국계를 캐스팅했냐고 툴툴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뭐 어쨌든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여 이제는 고정출연자의 자리를 확보한 그는 이전에도 “CSI LV” “West Wing” 등 인기 시리즈에 잠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 이 친구 짬짬이 패션모델로도 뛰고 있다능~

6. C.S. 리 (C. S. Lee, Charlie Lee)

1972년 12월 30일생 / 청주 /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現 출연작: “덱스터 (Dexter)”, 플로리다 경찰 CSI 빈스 마수카 役

살인범을 연쇄살인하는 경찰요원 덱스터의 밉지않은 변태(?) 동료인 청주 출신 챨리 리.

“Sopranos” “Law & Order”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Chuck”에서 나름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덱스터”를 통해 고정출연자로 자리를 잡은 그의 향후 활약을 기대해 보자.

7. 팀 강 (Tim Kang, 한국이름: 강일아)

1973년 3월 16일생 / 샌프란시스코
現 출연작: “멘탈리스트 (Mentalist)”, CBI 요원 킴벌 조 役

UC버클리 학사에다가 하바드 석사 출신인 그.

“Shell” “AT&T” 등 굴지의 기업 광고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2002년부터 “Sopranos” “Law & Order” “Monk” “The Unit” 등의 TV 시리즈와 “Two Weeks Notice” “Forgotten” “Rambo 4”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2008년에 인기 시리즈 “멘탈리스트”에서 과묵하고 진지한 한국계 형사역으로 고정배역을 확보하였다.

8. 다니엘 헤니 (Daniel Phillip Henney)

1979년 11월 28일생 / 카슨 시티
現 출연작: “쓰리 리버즈 (Three Rivers)”, 닥터 데이비드 리 役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능~ ^^

9. 그레이스 박 (Grace Park)

1974년 3월 14일생 / LA 출생, 캐나다에서 성장
現 출연작: “배틀스타 갈락티카 (Battlestar Galactica)”, 중위 샤론 발레리 役

개인적으로 아무 주저 없이 최고의 미드 중 하나로 꼽는 “배틀스타 갈락티카”.
보통의 시리즈와 비교하면 극의 전개가 좀 늘어지는 편이지만, 미드를 좋아하는 분에게 항상 권하는 시리즈이다.

바로 이 시리즈의 2004년 1시즌부터 2009년의 4시즌 종영까지 극의 중심에서 Key 역할을 한 해군 비행사 중위 샤론 “부머” 발레리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그레이스 박이다.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한 이 시리즈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맥심지에도 등장한 그녀는 몇 차례 그 잡지 Hot 100 리스트에 오르기도 하였다.
아래는 인증샷 …


사실 2009년에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무수한 매니아들의 탄식을 뒤로 하고 종영이 되었기에, 그녀를 어떻게 소개해야하나 초큼 고민을 했었는데 …

음화홧!!! 10월에 새로이 시즌 5가 시작하였으므로 고민 끝.

* CSI 라스베가스 9시즌 에피소드 20에서 그레이스 박이 살짝 카메오로 나왔는데, 관심있는 분은 함 찾아보셈 ^.^

** 아래 동영상은 시즌 5의 예고편.

10. 김윤진 (Yunjin Kim)
11. 다니엘 김 (Daniel Dae Kim)

現 출연작: “로스트 (Lost)”, 선권(윤진) 진권(다니엘)

이 두 사람도 역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능~ ^^

12. 로렌스 피쉬번 (Lawrence Fishburne)

1961년 7월 30일생
現 출연작: “CSI 라스베가스 (CSI)”, 요원 레이몬드 랭스턴 役

오잉??? 이 사람이 한국계라고???

놀라실 것 없다.
사실인즉슨, 로렌스 피쉬번이 아니라 그 뭐냐 거시기 최근에 레이몬드 랭스턴의 출생지가 한국의 서울로 밝혀진 것이다.

에, 말하자면, 유머다 …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될까, 응???

영진공 이규훈

이순신의 리더쉽과 한국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것이 인간 일반에 해당되는 것이든, 아니면 민족주의적 사고든 간에 한국인 혹은 한국문화 고유의 특성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국인의 장단점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한 인물, 이순신 장군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을 움직여서 불멸의 업적을 남긴 최고의 리더라 할 수 있다. 그는 17번의 주요 해전에서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그 해전 중에는 12척 대 300여척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명랑대첩도 포함된다. 그가 이끄는 조선 수군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적이었고, 동시대의 그 어떤 해군조직보다도 강력했다. 그런 그가 한국인을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한국인의 전통적 특성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인은 원거리 대면을 선호한다.

이순신은 절대로 부하들이 직접 적과 마주치치 않게 했다. 실제로 당시 전투기록을 보면 조선군은 성안에서 활을 쏠때는 강했으나 직접 적과 마주치는 전투에서는 거의 언제나 졌다. 조선군의 무기체제에는 활만 있을뿐 창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 즉, 조선군은 먼거리에서 쏘기에 능했고, 적과 마주보고 육박전을 펼칠 각오는 절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순신 역시 거의 모든 해전을 원거리 포격전으로 해결했다. 일본의 해전은 육박전을 지향하는데, 그들의 장기인 육박전을 할 기회를 아예 주지 않은 것이다.

둘째, 한국인은 카리스마에 약하다.

임진왜란때 전사를 보면 앞서 말했듯 전면 격투전을 벌이면 조선군은 대부분 졌으나, 신기하게도 사상자는 별로 없다. 말 그대로 그저 사라져버렸다. 즉, 조선군은 직접 적과 대면하면 싸우기 보다는 그냥 도망쳤다. 예외는 곽재우나 권율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휘관이 있을때 뿐이다. 이런 명장의 지휘하에서 조선군은 그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싸워 이겼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만약 지휘관이 죽으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모두 도망쳤다. 원균이 죽었다는 칠천량 전투에서도 사실 주요 장수들은 모두 죽지 않고 도망쳤다가 이순신이 부임하자 다시 기어나왔다. 이순신은 이런 사실을 알았기에 노량해전에서도 자신의 전사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천하무적 조선수군이 순식간에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사라진 한국축구의 무기력 처럼 말이다.

셋째, 한국인은 이기적이고 실리적이다.

앞서 조선군이 질 것 같으면 다 도망가버리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은 어쩌면 전쟁의 목적 같은 것을 공유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처럼) 그들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깃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체면은 중시했으나 명분은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명분이고 명예고 내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이것이 그들의 모토였다. 한국인은 애초부터 이기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자기 부하들이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가족의 안전을 자기 군의 안전이나 승리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부하를 믿지 않았다. 대신 그는 부하들을 늘 닦달했다. 그는 부하를 엄하게 처벌하고, 확실하게 포상했다. 훈련만큼이나 이 상벌체계의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 이기적이고 실리적인 부하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덧붙여, 이 시스템을 거꾸로 이용한 이들도 많다. 선조가 대표적인 인물. 그가 임진왜란 내내 저지른 일이라고는 몰래 도망가기와 전공을 세운 이들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 뿐이었다. 그 덕분에 단 한번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는 원균이 수군통제사까지 되는 말도 안되는 일도 벌어지고, 그 원균이 당대 최강 조선수군을 단 한큐에 말아먹어버리는 블랙코미디가 벌어졌다. 어쩌면 이런 인간들이 위에서 오래 오래 군림한 탓에 한국인이 더 실리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당시 유성룡이 선조의 미친 짓을 어느 정도라도 제어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그때 끝장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한국인의 성격이 디지털 매체로 인해서 변화했을까?
그렇지 않은 듯 하다.

1. 한국인은 원거리 대면을 선호한다:
디지털 매체는 원거리/간접 대면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걸 매우 좋아한다.

한국문화는 직면해서는 대화나 토론을 하는 일과 잘 맞지 않는다. 누군가는 조선시대의 활발한 당쟁이나 상소들을 예로 들면서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때의 논쟁도 서로 자신의 입장을 견고히하는 논쟁이었지, 관심사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토론은 아니었다. 성에 들어가서 원거리 전투를 해야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나,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서 간접적인 논쟁에 실력이 발휘되는 것이나 어쩌면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보다 확실한 원거리 활동을 보장하는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서 더 잘 발휘되었을수도 있다. 한국인은 애초부터 대면 만남보다는 원거리 만남을 선호하는 것이다.

2. 한국인은 대세와 카리스마에 약하다:
한국인은 주류를 매우 중시한다. 디지털매체에서도 결국 주류만 남기를 바란다.
멱함수의 법칙은 한국에서 더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한국의 3대일간지 점유율이 외국에 비해서 독과점수준임에도 아무도 그것을 문제시 하지 않는 이유, 이동통신이 결국 4자에서 3자로 조만간 2자 체제로 변화해가는 현상, 어떤 분야에서든 2개 이상의 강자가 남지 못하는 현상도 아마 이런 특성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은 하나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한다. 그리고 이렇게 확실한 강자와 그 라이벌 체제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오히려 불안해 한다. 한국인은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선택을 해야 하면 대부분 그냥 도망치고 만다.

3. 한국인은 이기적이다:
한국인의 유일한 신념은 자기 자신이다.
대부분의 매체는 결국 사적인 연결을 위해 사용된다.
공적인 의사소통은 매체 사용의 주류가 아니다.

한국인은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한다. 개인이 조금 확산된 가족 이상을 원치 않는다.
또한 한국인은 명분을 내세울지는 몰라도 절대로 그 명분을 믿지는 않는다.
집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수 있을만큼 신념이 강한 사람은 한국문화에서 결코 정상이 아니다. 노사모가 완전히 수용되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런 지점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핵심은 결코 공적인 메시지나 학술적인 진리가 아니다. 그 배후에 깔린, 혹은 그 메시지의 사적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책이나 어떤 선언이 발표되면, 그 선언의 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 공유자(가족, 친지)와 이를 공유하는 활동이 작동한다. 그것은 80대 20의 비율이상일 것이다.

4. 한국인은 이기적이되, 개인적이지는 않다:
언제나 대세를 따르기를 바라고, 대세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모든 정보기관의 촉각은 거기로 향한다.

개인주의는 신념을 필요로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신념을 믿지 않는다. 고로 이기주의자이지만 개인주의자는 아니다.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 신념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대세이냐이다. 왜 한국 부자들이 한국에서는 돈을 쓰지 못하고 외국에 나가서 돈을 쓸까? 튀고 싶어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제대로 튈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취향이 없다.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취향을 집단의 눈총속에서도 주장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자기의 취향이 소수인 곳에서 자기를 주장하기 보다는, 그것이 대세인 곳을 찾는다. 아니 대부분은 개인취향 자체가 없으므로 그냥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라서 외국으로 갈 뿐이다.

5. 한국인은 실리적이다:
질 보다는 양이 우선이다. 적은 비용은 카리스마 다음으로 중요하다.

명품바람이나 고급소비성향들이 부각되면서 사람들이 착각하게 된 것이 한국인의 소비취향이 고급화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양을 우선시한다. 같은 조건이면 가장 싸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짝퉁을 선호하는 것, 공짜를 선호하는 것, 불법복제가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 한국문화의 기본이다. 명품을 찾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선호하고, 저작권에 예민한 것은 한국문화가 절대로 아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중국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제품의 소구지점은 결국 카리스마와 가격 뿐임을 의미한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