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물결 (Invisible Wave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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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본 영화를 두번, 세번 다시 보는 일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2005년도에는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와 <이터널 선샤인>을 두번씩 봤었다. (<카페 뤼미에르>도 한번 더 봤어도 좋았을 영화였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아사노 타다노부의 출연작이기 때문에 보러 간 영화였지만 펜엑 라타나루앙이라는 외우기 힘든 이름의 태국 감독의 존재를 각인시킨 영화가 되었다. 프라우다 윤의 각본이나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 후알람퐁 리딤의 음악도 모두 좋았지만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영화의 새로운 감각은 분명 연출자가 창조해낸 것에 틀림이 없었고 나는 그 세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보이지 않는 물결>은 전작에 비해 훨씬 ‘보이지 않는’ 영화다. 정리해보면 비교적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영화는 드라마나 캐릭터에 집중하지 않고 일부러 엉뚱한 주변부로 헤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분명 최종본 보다 훨씬 많은 장면들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 과정에서 다 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지금은 굳이 말하자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라는 펜엑 감독의 인터뷰 정도가 유일한 힌트다. <보이지 않는 물결>에 비하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엄청 친절하고 꼼꼼하고 또한 귀엽기까지 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화 한 편 볼 때마다 매번 명확한 기승전결을 얻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만 아니라면, 아직 변화하는 중인 미래의 거장과 현재 시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큰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입증된 걸작들의 회고전 보다 개봉작을 먼저 찾게 되는 공식적인 변명이기도 하다. 박물학적 영화 감상 보다는 때로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발견의 기쁨을 구하는 일이 내겐 더 즐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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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다크나이트 =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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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크나이트>에 대해 특별히 더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향한 수많은 칭찬들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죠. 특히 이 영화에서 히스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만화 속의 인물을 “실사화” 한다는 말의 의미를 한 수준 높여놓았습니다. 앞으로 만화원작 영화 주인공을 맡는 배우들, 모두 고민 좀 할 겁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히스 레저가 조커로 이루어낸 것은 대단합니다.

여기서는 히스레저의 연기를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조커가 차지하는 의미를 한번 살펴볼 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조커가 지나친 능력자라고 비판을 합니다. 그렇죠. 조커는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이 어떤 수를 내 놓을지 예측하고 거기에 한방 뒤통수를 때리는 멋진 수를 준비해놓습니다. 조커의 예상대로 되지 않은 일은 그 2척의 페리보트 건 정도에 불과하죠. 게다가 조커의 부하들조차 모두 대단해서 조커의 의도를 언제나 100% 실현합니다. 그러니 이거 비판할 만하지 않습니까?


리모콘이 잠깐 작동 안되기도 …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비록 <다크나이트>가 상당한 사실성을 추구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로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조커만 실수가 없나요? 배트맨도 그렇죠. 아무리 돈과 첨단기술로 처발랐다고 해도 매일같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데 무고한 희생자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혼자서 뛰 댕기다가 한번이라도 범죄자나 경찰들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비덴트는 또 어떻습니까? 얼굴반쪽이 그 꼴이 되어서도 돌아다닌다는 건 말이 되나요? 그렇게 피부가 없으면 금새 감염되어 골로 갈텐데 말이죠. 이 영화가 사실적이라는 건 이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 각각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일 뿐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수퍼히어로물 맞습니다.

이 영화에는 애초부터 실수란 없어요. 즉 영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의외성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누군가의 의도와 계획이 깔려 있어요. 원래 모든 게 계획대로 되는 이야기는 그게 현실이든 영화든 재미가 없기 마련입니다. 의외성이 없으면 긴장도 없고, 긴장이 없으면 재미도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미와 긴장으로 가득하죠. 도대체 어떻게? 한 캐릭터가 의외성의 역할을 해주고 있거든요. 그게 바로 조커입니다.


그래, 바로 나!!!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조커야 말로 진정 ‘조커’의 존재의미에 충실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커는 애초부터 의외성의 화신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의외성은 트럼프 게임에서 조커 카드가 맡은 역할이기도 하죠. 조커 카드가 등장하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트럼프 게임의 규칙이 일시적으로 뒤흔들립니다. 즉 조커로 인해 게임의 규칙에 의외성이 추가되는거죠. 게다가 이 의외성은 재미와도 직결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관객의 기대대로만 흘러갈 때 그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가 됩니다만, 관객의 기대와는 다른 의외의 결말일 때 관객들은 놀라고 비로소 재미를 느낄 준비가 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게 조커죠. 그렇게 보면 이 영화의 조커는 <마스크>의 짐캐리가 맡은 역할과 결국 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마스크>에서 악당들에게 마스크를 쓴 짐캐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기들이 공들여 준비한 은행털이를 순식간에 파토 내버리고, 총을 아무리 쏴도 안 죽는 괴물 아닙니까.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마스크>에서는 악당이 당하니까 관객들은 편하게 웃으며 그걸 즐겼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관객들이 감정이입해놓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대상으로 그 짓을 하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기지 못하고 관객들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내가 바로 조커라고 …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일은, 이 영화속 세계관이 현실과는 엄청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이 누군가의 계획이나 의도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에서는 덕분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은 전부 조커 탓이 되어버립니다. 네, 이 영화에서는 이게 다 조커 때문입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배트맨은 마침내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애꿎은 희생자들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하비덴트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조커만 없었더라면 배트맨은 정의의 수호자로 계속 남아있었을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닙니까?

누군가 그러더군요. 순수한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들이 오염시킨다고요. 원래 촛불집회는 순수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서 배후조종하는 좌파 탓에 결국 과격해졌다고요. 지금 이 나라가 이 꼴이 된 것도 결국 10년간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들 탓이고 말이죠.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이 좌파 탓”이라는 주장.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며칠 전에는 심지어 5개 공중파 방송국이 모두 이와 같은 내용을 방송 하던데,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 나라가 정말 빨갱이 나라인 줄 알았을 겁니다. 그 사람들의 논리는 <다크나이트>의 세계관과 딱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조커는 바로 좌파이고 빨갱이들입니다.

이 세계관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런 세계관은 현실을 왜곡하고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배트맨이 진정한 현실세계에서 비슷한 짓을 했다면, 조커가 없었더라도 결국 사고를 쳤을 겁니다. 그 무식한 텀블러로 길거리를 폭주하거나, 심지어는 기관포로 주차된 차들을 박살내며 달리는데 사람이 안 다칠 수 있겠어요? 하비덴트도 그래요. 아무리 청렴 강직한 검사도 고담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권력에 심취하다 보면 언젠가는 타락했을 겁니다. 현실의 ‘모래시계 검사’가 그런 것 처럼요. 꽤나 경력을 쌓은 형사라도 병원에 입원한 자기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의 복지시스템 밖에 없는 동네라면 경찰이 타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요. 무엇보다도 범죄조직이라는 게 그렇게 발본색원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죠. 팔코니 조직을 죽이면 다른 조직이 등장했겠죠. 결국 배트맨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 배트맨은 민폐를 끼치다가 공적이 되는 건 거의 당연한 수순이겠죠. 다시 말해 의외성은 조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의 특성이라고요. 즉, 현실에서는 이 세상 그 자체가 바로 조커입니다.


미안해, 하비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세계관을 믿는 자들에게는 공포와 억압에의 욕구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다크나이트>의 세상에서는 배트맨은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경찰청장(청수?), 자기 형제와도 같은 집사(똥과니? 아니면 상드기?), 그리고 경제와 기술 시스템을 담당하는 또 다른 집사(만수? 이거 써놓고 보니 정말 비슷하다는…) 이렇게 믿을 놈이 적다 보니 배트맨의 일들은 애초에 밀실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요소요소에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어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히 가능하다면 모든 인사는 낙하산 시스템이 되겠죠. 배트맨은 시민을 위해 노력하지만 절대 고독에 빠져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민들 속에 바로 그가 싸워야 하는 조커의 하수인들이 암약하고 있거든요. 온순한 시민들은 믿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 시민이 나에게 반항하는 순간, 배트맨은 의심에 빠집니다. 저 인간이 진정 자기의지로 나를 공격하는 거냐, 아니면 조커의 부하라 나를 공격하는 거냐… 의심스러우면 일단 때려잡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을 보호하고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모두의 뒷조사를 아주 철저하게 해야 하고 사상검증까지 해야겠죠. 이러다 보면 ‘5호 담당제’ 같은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시스템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권력자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와 불신이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마지막 선은 … 차마 .. 그을 수 없었다능 …

그나마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선을 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부르스 웨인 뿐만 아니라 그 동료들도 모두 원칙과 상식의 선이 뚜렷하기 때문에 서로를 규제하고 선을 지키죠. 하지만, 스크린 밖의 세상에서는 그런 이상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다크해지는 것이고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