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에서 완성된 사랑, <프렌치 키스. 1995>

       

잘자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키스해주세요
나를 꼭 껴안고 날 그리워할 거라고 말해주세요
내가 외롭고 우울하게 될 때 말이에요
나를 꿈꾸세요 나의 작은 꿈을



프렌치 키스 OST ‘Dream a little dream of me’ 중에서..

파리의 에펠탑과 불빛에 출렁이는 까만 밤의 세느강.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퐁네프의 연인들과 몽마르트 언덕의 가난하지만 행복한 예술가. 프로방스의 태양 아래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그곳을 고향으로 둔 달콤쌉싸름한 수천 가지의 와인. ‘프랑스’란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로맨틱한것들이다.

영화 <프렌치 키스>를 보노라면 무작정 닿고 싶은 환상, ‘프랑스’를 만끽할 수 있다. 영화는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샹제리제거리와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삼아 위의 노래 가사처럼 프랑스 남자와 미국여자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달콤하게 담았다. 뿐만 아니라 프로방스와 깐느 등 프랑스의 아름다운 남부 도시의 풍경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고, 프랑스 남자 ‘뤽’의 매혹적인 불어식 영어발음과 프랑스식 유머를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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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블라우스 단추를 목까지 채워 잠그는 ‘케이트'(맥 라이언)는 현실에 구속된 채 안정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고지식한 미국 여자다. 케이트는 어느 날 갑자기 프랑스에서 새 애인이 생겼다며 이별을 고하는 약혼자를 좇으러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 ‘뤽’(케빈 클라인)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에서 좀도둑으로 위험한 하루하루를 사는 뤽과 케이트는 프랑스,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며 개와 고양이처럼 티격태격한다. 그러나 우연과 필연을 거듭한 계속된 마주침 끝에 그들은 서로를 향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드넓은 포도밭을 보며 연신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케이트처럼, 나 역시 영화 속 풍경에 흠뻑 매료되고 말았다. 비록 영화를 통해서지만 전 세계인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대단한 와인이 시작되는 곳에서 짙은 보라빛 와인을 맛볼 수 있기에 행복하기도 했다. 청록의 푸르른 포도밭 한 가운데서 자유를 꿈꾸는 보헤미안의 감수성을 발견한 케이트와, 새로운 시작을 눈앞에 둔 뤽이 날아오를 듯한 가벼운 포옹과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엔딩 장면은 지금까지도 가슴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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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이 말했다.
“와인도 사람과 같죠. 포도나무도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고 그것을 흡수해요.”

언제든 볼을 비비고 입을 맞추는 일상 속 따뜻한 스킨쉽이 누구도 따라잡지 못하는 깊은 빛과 향의 프랑스산 와인을 탄생시키는 비법이 아닐까. 섹시한 빛깔의 와인이 입술을 검붉게 물들일 무렵, 진한 프렌치 키스를 나눌 당신과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영진공 애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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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는 78년에 라디오 방송용 대본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는데 처음 영화화가 기획된 것은 82년이었다. 원작자인 더글라스 아담스는 시나리오 작업 도중인 2001년에 사망했고 감독으로 물망에 오른 이는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제이 로치와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즈 등이 있었지만 결국엔 영국의 젊은 뮤직비디오 감독 가스 제닝스의 장편 데뷔작으로 탄생하게 됐다… 라지만 뭐 이런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다.

영화 속 풍자와 농담의 내용이나 미묘한 뉘앙스로 빚어내는 의미들을 100% 이해하는 것은 영미권에서 태어나 그쪽 문화와 언어에 친숙하지 않은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재미있는 영화를 포기하는 건 지구가 철거되기 직전에 히치하이킹하여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포기하고 종이 봉지를 뒤집어 쓴 채 뒤로 자빠지는 일과 같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먹을 수 있는 것들만 따라 웃어도 “히치하이커”는 올해 가장 웃을 일이 많은 코미디물인데다가 <스타워즈>가 부럽지 않은 제법 스펙타클한 비주얼까지 선사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Don’t Pan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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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만과 관료주의를 꼬집거나 지구와 인간의 운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은 <히치하이커>가 처음인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그리 예리한 편도 아니다. <히치하이커>는 그런 주제를 너무 심각하게 다루기 보다는 최대한 가볍게, 때로는 터무니 없는 농담처럼 다루면서 오히려 광대한 우주 속에 그리 흔하지 않은 작은 별, 지구의 아름다움들을 찬미하는 경향이 좀 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하게 ‘지구를 지켜라’식 결말이나 뻔한 계몽적 메시지로 고리타분하게 끝맺지 않는 것 또한 <히치하이커>의 미덕이다.

<히치하이커>는 영국의 워킹타이틀과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공동 제작한 필름팩토리(The Filmfactory)가 제작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 같은 솥단지에서 만들어진 그 밥이란 걸 알게 된다. 약간 얼빵한 중산층 영국 남자를 주인공으로 놓고 영국인 스스로에 대한 농담걸기에 스스럼이 없고 약간의 로맨스 또한 빼놓지 않고 곁들이는 모양새가 그렇다. <러브 액츄얼리> 이후 이제는 친숙한 얼굴이 되어 버린 빌 나이와 목소리만 들어도 특유의 나른한 표정이 떠오르는 앨런 릭먼을 비롯해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낯익은 많은 영국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을 하고 있고, 특히 샘 록웰의 닝글닝글한 원맨쇼와 오랜만에 보는 존 말코비치의 그로테스크한 등장 또한 <히치하이커>만이 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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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한나라당의 영문 논평을 한글로 번역해 보니 …


얼마 전에 한나라당에서 한국의 경제 위기에 대한 외국 언론의 일부 보도에 대해서 반박을 하는 논평을 영어로 냈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 … 뭐,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고재열의 독설닷컴>에 포스팅 된 “한나라당 영문 논평, 알고 보니 오류투성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그 영문 논평이 발표된 사실(fact)의 실체(truth)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포스팅에서 제안한 내용도 있고 하여,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그 영문 논평을 한글로 번역해 보았다.

참고로, 번역문은 원문의 단어와 어휘, 어조, 주어의 선택 등을 최대한 살려보고자 노력하였음을 밝힌다. ^^

 


원문


  The majority of foreign press are very friendly to Korea.  They are very helpful in letting the international community know about the good aspects of Korea.

  I feel thankful to them.  But then there are the exceedingly few foreign press which are not like that.  They sometimes do malicious or irresponsible reporting that distorts the facts completely.

  As the financial crisis is engulfing the world so fast and so strong, we cannot say Korea is the only country which remains safe.  But our situation is not critical enough to be the target of irresponsible ridicule.

  Compared to other countries, Korea has a relatively solid financial system and sufficient foreign reserves.  The nation’s leader and the people are standing together to overcome these obstacles.  Criticism based on facts we can accept and think of them as constructive.

  But I hope that you will refrain from reporting baseless allegations.  Those kind of reports will not make the Korean economy collapse, and I rather am worried that one or two of those irresponsible reports may create mistrust of the entire foreign press.

You know the saying that one rotten apple can spoil the whole barrel.


외국 언론의 다수는 한국에 대해 무척이나 친근하다.  그들은 국제 사회가 한국의 좋은 면을 알도록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게다가 그 수가 너무나 적어 세기도 힘든 그런 언론들이 있다.  그들은 가끔씩 사실들을 완전히 왜곡하는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보도를 할 때도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가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세게 세계를 뒤덮고 있는데, 우리는 한국만이 무사하게 남아있는 나라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책임한 조롱의 표적이 될만큼 우리의 상황이 아직 충분히 위태롭지는 않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자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견고한 금융시스템과 충분한 외국 저장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해 이 나라의 지도자와 백성들은 함께 굳건히 서있는 것이다.  사실에 기반한 비판, 그거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건설적인 뭐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근거 없는 주장을 보도하는 것을 삼가길 희망한다.  저런 류의 보도는 한국식 경제를 몰락시키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나는 저러한 무책임한 보도들 중 한 두 개가 전체 외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되고 있다.

너 그거 알지, 썩은 사과 한 알이 전체 바구니를 망칠 수 있다는 속담말이야.

이상이다.
감상평이나 첨삭 요구사항이 있다면 가열차게 댓글 쏘아주시기 바란다.

영진공 이규훈


 

[PIFF]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다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경로를 좀 다르게 잡아 봤습니다. 남해 2번 국도를 따라서 진주까지 갔다가 거기서 ‘전라도’로 넘어가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겠다는 계획이었지요. 구라청의 비 소식도 있었기 때문에 언제 비가 떨어질지 몰라서 오전에 출발했습니다.


일요일이라서 동기 녀석들을 보러 진해에 들렀는데 한 녀석도 없더군요 ㅡ.ㅡ 아무리 급 번개지만 이런 배신감이! ㅋㅋㅋ 그나저나 진해는 변한 게 없더군요 – _-)a 외곽 도로 새로 놓은 거 외에는 – _-)a

마산 시내는 정말 최악이에요. 가는 길마다 도로 번호 이정표가 끊어져 있어서 마산 시내 벗어나는 데만 30분 정도 쓴 것 같아요. 외박 나오면 고속버스만 타고 다니던 옛길을 더듬다 보니 저도 참 많이 늙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진주 시가지를 벗어나기 직전이었습니다. 진주남강유등축제 기간이어서 시내는 시끌벅적하더군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올라오면서 들리는 시마다 하나씩 축제를 하고 있더군요. 아니 대체 축제를 이렇게 같은 날에 몰아서 하면 대한민국 국민들 어디 가야할지 모를 것 아닙니까?!?!


진주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함양에서 26번 국도로 꺾어 탔습니다. 줄기차게 산길을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육십령 고개에 도달했더군요. 여기서부터 ‘전라도’ 땅입니다. 아 이 얼마나 감격입니까?!!?

육십령 고개 내려오는 길은 참으로 험하더군요. 제가 모터사이클 타면서 코너에서 발가락이 닿은 건 여기가 처음입니다. 물론 부츠를 신었으니 보호대가 긁히는 소리만 ‘다그라라락~’

오히려 봄철에 ‘전주영화제’를 하는 전주 시내는 아무런 축제 없는 듯 조용하더군요. 꼭 휴일의 지방 도시 시가지처럼 마냥 조용하고 제 고향 같은 느낌의 지방 도시라 벗어나면서 아쉬움까지 느껴지더군요.

전주에서 익산 방면으로 쭉 직진하다가 23번 국도를 타고 ‘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부터 고민이 됐지요.


충남으로 넘어온 김에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밋밋하게 그대로 올라가느냐.

역시 모터사이클 하면 서해안의 석양을 받아가며 한 번 달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로 또 다시 ‘축제’를 하고 있는 부여 시내를 지나 40번 국도로 갈아타고 ‘보령’까지 진행했습니다. 아쉽게도 보령 머드 축제는 여름에 하지요.

보령부터 횡성까지 서해를 벗삼아 질주한 후에 ‘아산’으로 꺾어져 들어가니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져버렸습니다.


해가 지면 엄청나게 추워지기 때문에 쟈켓에 속피를 끼고 따뜻한 두유 한 잔을 위해 휴게소에 들렀지요. 역시 차가운 바람에 뜨뜻한 물이 들어가면 몸이 찌르르 떨게 되는 겁니다.

지 도 상에서 본 대로라면 아산에서 39번 국도만 타고 올라가면 제 집인 고양시까지 직선으로 올라오게 됩니다만….. 이 39번 국도가 엉망이더군요. 시흥시가지 진입한 뒤로는 마산처럼 도로 번호 표지판이 엉망으로 되어 있어서 시내 주행을 얼마나 돌아가면서 했는지 도로 관계자들 욕을 수도 없이 했을 겁니다. 뭐 어쨌든 덕분에 밤 9시 전에 집에 도착하긴 했지만요.


이번 PIFF 여행에서 모터사이클로 주행한 길입니다. 강원도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국토의 절반을 다녀온 셈이네요. 어쨌거나 피곤하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꽤 나름 즐거운 추억이 된 셈이니 기쁩니다.


PIFF에서 이 많은 감독들의 영화 중 한 편 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틀 동안 분위기를 만끽했으니 좋습니다.


프레스 배지도 발급받아 프레스 센터에 앉아 노닥거리기도 하고, 우에노 주리도 실물로 만나보고,


게스트 하우스에 앉아서 공짜 커피도 마시고, 임순례 감독을 비롯, 류승완 감독 같은 좋아하는 감독들도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보너스 영상은 부산MBC에서 취재해 간 뉴스데스크 방송 영상. 1분 31초 쯤 제가 잠시 등장 합니다 – _-)v 목소리도 얼핏 나온다능 – _-)v

영진공 함장

‘여성 감독’이 아닌 그냥 동일한 ‘사람’일 뿐 –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



PIFF 빌리지 오픈카페 – 도대체 아무리 국제 행사라지만 ‘한글’로 된 장소명은 없냐능 – 에서 벌어진 ‘아주담담’ – 어차피 행사명은 한글이면서 말이죠 – 중 제 관심사와는 별개로 시간이 남는 바람에 관람하게 된 것이 <한국의 여성 감독들>이란 주제의 대담이었습니다.


오픈 카페 행사치고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경우인데요. 아마 대부분의 PIFF 행사 관객이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5인 감독인데 이 중 임순례 감독을 제외하곤 전부 최근 ‘잇뽕’을 한 감독들입니다. – ‘잇뽕’도 이라는 일본어죠. 뭐 어차피 데뷔도 우리말 아니고. –



사실 진행자의 질문부터 시작해서 좀 뻔한 이야기였어요. 다들 ‘연출부’의 일을 겪었느니, 스크립터 일을 했을 때 경험이 도움됐다. 이런 식인데…. 이건 너무 상투적이잖아요. 도대체 대한민국 사회에서 ‘씨다’ 생활 안 하는 사람은 엄친아나 엄친딸 밖에 없지 않나요? – 물론 제 주위의 엄친아들은 다들 씨다 생활 합니다 ㅡ.ㅡ –

관객들이 그나마 궁금할 수 있던 ‘여자라서 힘든 점’을 묻는 이 뻔한 레퍼토리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어요. 그만큼 이 나라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사실 제가 ‘여성 감독’의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아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미국 드라마 <ER>의 감독 ‘미미 레더’가 <딥 임팩트>라는 영화를 감독할 때 ‘여성 감독’과 ‘남성 감독’의 시선 차이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당시에 <딥 임팩트>는 똑같이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소재로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이 되어버렸어요. 결론은 <아마겟돈>의 승리일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저는 <딥 임팩트>가 훨씬 섬세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점이에요.

더군다나 <딥 임팩트> 이전에, ‘미미 레더’가 감독했던 <피스 메이커>는 액션 영화의 감각 또한 ‘여성 감독의 시선’을 씌우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그런데 전 거기에서 하나 더 의문이 들었죠.

시장 논리와 비슷한 것인데, 제가 미미 레더 감독의 이런 ‘시선’을 통한 영화들에 신선한 감각을 느끼면서 즐거워할 수 있지만 과연 ‘다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거죠. 심지어 여성 관객층이 엄청나다 하더라도 흥행성을 비롯하여 영화의 선택에서 이 ‘여성’ 들이 과연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여성 감독의 영화라서 ‘여성 다수’가 공감한다는 건 억측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무모한 주장? 또 다른 편견?

사실 PIFF 행사에서 ‘여성감독들’이란 주제로 아주담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여성의 시선’이라는 것이 하나의 독립적일 수 있는 인간의 관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전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죠.

남성 감독도 여성만큼 섬세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여성 감독의 이야기가 남성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퍼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고 ‘아~ 여성 감독이라서…’ 라고 잣대를 댄 이야기를 충분히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럼 뭔가요?

장애우 감독이 등장해야만 장애우의 시각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나오나요? 레즈비언 혹은 게이 감독의 영화가 등장해야 ‘제대로 된 시각’을 반영할까요?

또 다시.

결국 소통 이야기로 흘러가는 <은하해방전선> 같은 뻔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우리는 ‘남성중심의 사회’이자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쥐면서 ‘군대의 상하 계급 문화’를 적용시킨 일종의 ‘병영국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시각’이 새롭게 비치는 것은 그만큼 ‘볼 수 없었던 시선’이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비주류’였기 때문이죠.

영화도 똑같은 거예요. 우리 모두 할리우드 키드이자 홍콩 키드죠. 한국 액션 영화가 60년대에 어떤 영광을 누렸든 간에 – 제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팔도사나이나 손가락 7개? 8개만 가지고 액션을 펼쳤던 영웅도 남아있지만 결국 영웅본색과 같은 느와르나 무협영화, 강시영화 아니면 전부 할리우드 영화니까요 – 머릿속에 그동안 보아온 영화가 그런 ‘엄청난 영화들’이었으니 여성 감독들이 뱉어내는 이야기들이 ‘신선’하다고 보이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뜬금없이 여성 감독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도 아니죠. 그들의 시각이 ‘신선’하다구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관련 주 소비층은 이미 여성이 다수입니다. 20~30대의 여성층이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죠.

덕분에 여성 감독의 잇뽕도 늘었죠. 이뿐인가요? TV를 비롯해 드라마작가, 구성작가 다수가 여성이에요. 이 여성들이 내뱉어내는 이야기에 남성상이 그려지고 여성상이 그려지고 있어요. 보수적인 – 나쁜 의미의 보수가 아닌 – 남성들은 그런 TV 시스템에 숨막혀 갈 곳을 잃어가고 있지요.

아마 어떤 페미니스트가 보면 기가 찰 겁니다. 아니 아직도 이 사회의 양성 평등은 갈 길이 먼데 무슨 헛 소리냐고.

관객과의 질문대답 시간의 가장 마지막에 제가 물었던 질문의 요지는 딴 게 아니었어요. ‘여성 감독’이라는 주변 시각 때문에 영화감독으로써 이야기를 매만질 때 ‘자체 검열’을 하게 되는 경험이 있는지가 궁금했죠.

임순례 감독의 대답은 참으로 ‘당연하고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어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영화감독이라면 제작자의 압박이고 나발이고 ‘하고픈 이야기’를 해내야죠.

이건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어요.

내가 우파인데 자신 있게 우파라고 얘기 못 하는 사람들 – 좌파도 마찬가지 -.

주변 시각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믿는 바를 꺾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까발려 놓고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만드는 영화가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포장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거예요.

사람은 ‘합리적’이려고 노력하는 동물입니다. 이때의 ‘합리’라는 것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성에 합치하려는’ 것을 말해요. 여성 감독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성 중심의 시각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적’인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라면 그건 억지스런 주장일 수밖에 없어요. 이미 대다수의 여성 감독을 노려야 하는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씨다’를 거쳐 입뽕을 향해 나가는 겁니다.

물론 감독들의 말마따나 ‘영화판’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다고 믿는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내고 이야기 해야 하는 이 사회는 안 그렇다는 거죠. 동떨어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순 없잖아요? 그리고 임순례 감독의 그 섬세한 이야기 밀도를 보세요. 그게 ‘차별’을 안 겪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던가요?

결국 ‘깨어 있는 사람’이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감독’이 되어야 – 아니 개인적으로 이 나라에서는 ‘제작자’가 되어야 라고 쓰고 싶습니다만 – 하겠지만. 역시나 어려운 일이죠.

그냥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성 감독이라서 달라’가 아니라 사회의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 그 감독의 성별이 여성이 되었든 남성이 되었든 결국엔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여성 감독의 영화’로 분류하면 할수록 그건 ‘우리 이야기’로 100% 동화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