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The Happening (2008)”, M. 나이트 샤말란식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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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버전 포스터. 미국 버전보다 세련되다.
브루스 윌리스같은 스타 배우가 나온다곤 해도 저예산인 데다 심지어 가끔 붐마이크까지 화면에 출연할 정도로 기술적인 미숙함이 드러나는 영화 <식스 센스>는 왜 그토록 매혹적이고 재미있는 영화였는가. 많은 이들이 ‘반전’을 얘기하지만, 반전 그 자체를 말하기보다는 그 반전이 왜 그토록 충격적이고 놀라우며 스릴을 안겨주는가 하는 부분이 진정 <식스 센스>의 매혹을 설명해주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 이미 스포일링을 당해버린 사람들이 실제로 영화를 보며 발견한 것은, 반전을 알고봐도 이 영화는 여전히 충격적이고 놀라우며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슬프고 애잔하기까지. 나 역시 스포일링을 당한 후 이 영화를 봤고,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너무 안쓰러워 영화 보며 퍽 많이도 울었더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끔찍했을까. 매일 매순간 뒷통수와 가슴에 총구멍이 나서 피범벅이 된 이들, 팔이나 다리 하나가 피투성이로 날아간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이는 삶은. 이미 개봉한지 10년이 다 돼가는 영화인 만큼 이에 대해 그간 많은 설왕설래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언제나 모든 글들은 아하, 싶으면서도 언제나 2%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최근에 네오이마주에서 <해프닝>이 왜 공포영화로서 퀄리티가 떨어지는가를 분석하며 <식스 센스>를 라캉식 용어로 풀어내는 글을 봤다. <식스 센스>에 대한 좋은 분석이라 생각한다. <식스 센스>에서 느꼈던 것들 중 일부 막연한 것들, 지금까지도 언어로 제대로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마침내 적절한 언어를 만나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다만 그 밑에 달았던 리플에서도 보이듯, <해프닝>에 대한 분석에는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실은 다른 영화에 대한 짧은 코멘트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은 그 글에 대한 반박은 아니고, 그저 그 분의 글에서 힌트를 얻어 <해프닝>에 대한 내 감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해프닝>은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R등급을 받았다. 아무래도 영화 초반에 자해를 하는 모습에서 샤말란 영화로는 좀 낯선 고어 장면이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기억하고 있다)에서 어느 날 햇볕도 좋은 공원과 인근에서 갑자기 멍한 표정으로 자해를 해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정부에서는 테러리스트의 화학공격을 의심하며 대피령을 내리고,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엘리엇(마크 월버그)은 최근 사이가 급속히 나빠진 아내 엘마(주이 디샤넬)를 데리고 동료교사인 줄리언(존 레귀자모), 줄리언의 어린 딸 제스(애쉴린 산체스)와 함께 줄리언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중간에 기차가 서고, 승객 중 일부가 함께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일행의 숫자는 서서히 줄어들고, 남는 것은 엘리엇과 엘마, 그리고 제스뿐. 엘리엇과 엘마는 제스를 마치 딸처럼 목숨걸고 보호하며 도망치지만, 결국 포기와 절망의 순간에 엘리엇과 엘마는 함께 죽음을 맞기 위해 죽음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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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계 안에 공존하지만 둘은 각자 다른 세계로 단절돼 있다. 그나저나 주이양 너무 이쁘삼.

이들에게 덮친 끔찍한 사건들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엘리엇의 가설은 식물이 특수 화학성분을 내뿜고 바람이 그것을 옮긴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영화는 그의 가설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구름, 풀 등을 유심하게 비춰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들이 찾아간 외딴 노파의 집에 이르면 그 가설에도 오류가 있는 듯하다. 물론 거기까지 화학물질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을 수 있지만, 밖에 혼자 있던 노파는 결국 집벽을 향해 계속 머리를 부딪혀 자해를 하면서 죽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죽기 위해 그 바람부는 바깥에 섰을 때, 예상과 달리 그들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TV에서 과학자들이 떠들며 논쟁하는 장면들을 보다보면, 그래도 엘리엇의 가설에 부분적으로만 오류가 있엇을 것이라는 믿음도 불확실해지게 된다. 워낙에 음모론과 정부 불신에 익숙한 우리로서야 이 기현상-이자 비극-이 군의 극비리 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도 퍽 그럴 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해프닝>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공격하도록 하는 원인은 저 바깥의 세계 혹은 타자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 안이 아닌가. 엘리엇의 가설처럼 꼭 식물의 화학물질과 바람이 정확한 원인은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환경오염에 따른 자연의 자체 정화작용의 일환이라고 보는 건 여러 모로 타당성이 있다. 사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하고 해로운 존재는 인간이니까.

<해프닝>이 유발하는 공포는, 아무래도 우리가 좀비영화, 혹은 뱀파이어영화에서 느끼는 공포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어느 순간 멍한 표정으로 제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내는 인간들의 모습은 좀비를 꽤 닮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내가 뱀파이어영화를 그토록 무서워했던 건 일단 내가 저 존재가 되고 나면 나 역시 다른 존재들을 공격하는, 그러면서 아무런 의식이 없는 존재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뱀파이어가 되면 에미애비도 몰라보게 되는 그것이. 좀더 ‘있어보이는’ 말들로 표현하자면, 겉모습은 여전히 인간과 닮았을지 몰라도 그 안의 정신과 이성은 더이상 인간일 수 없는, 인간으로서 기존의 윤리와 생활양식과 그 모두를 불시에 버린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 내 존재가 인간으로 가정된 주체에게 있어 스스로 타자의 세계에 속한 타인이 되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 나는 <해프닝>에 깔려있는 공포도 실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아가 이것이 표현되는 양식은, ‘신체 훼손’이 주는 불쾌감을, 더욱이 제 신체를 제가 훼손하는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더욱 불쾌감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 영화에게 R등급 및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선사하게 만든 고어 장면들이 실은 이 영화의 핵심인 셈이다. “나는 저 꼴을 나에게/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식. 그런데 이 의식이 좀 기만적인 건, 실제로 그 존재가 되고 나면 그 꼴을 내가 스스로 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고, 남에게 보이는 것이 더이상 중요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 종류의 호러영화들이 드러내는 공포는,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혹은 인간에게 ‘요구하는’ 시선을 폭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내가 유독 인상깊게 봤던 씬은, 엘리엇 일행이 저 외딴 노파의 집에 고립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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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에 갇힌 일행. 이들은 원치않게 ‘결과적으로’ 도움을 준 집의 탈취자가 돼버린다.



일단 모든 호러영화들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안온한 우리 세계를 침범하는 타인 혹은 우리 세계와 타인의 세계의 폭력적인 충돌을 다루기 마련이다. 다른 계급의 인간이든 이 계급의 일반적인 –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 윤리를 수용하고 있지 않은 인간이든, 귀신 혹은 좀비, 야생동물 혹은 외계인과 같은 비-인간 생명체든. 샤말란의 영화들 역시 그렇게 또렷이 구분되는 우리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 사이에서의 틈입(<식스센스>), 혹은 폭력적인 충돌(<언브레이커블>, <싸인>) 등을 다루었고 때로는 타인의 폭력적인 침입(<싸인>, <빌리지>)을 얘기하거나 좀더 후반으로 가서는 한 영화 안에 (서로 단절된) 두 세계의 병존(<빌리지>)을 동시에 얘기하기도 했다.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안 봤으므로 건너뛴다.) 그런데 <해프닝>에서는, 만약 인간을 공격한 것이 ‘환경’이 맞다면, 이것은 인간에게 타자의 존재이면서도 인간이 함께 병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온, 혹은 인간을 자기 안으로 포함하고 있는 그런 세계가 인간을 공격한 것이 된다. 그렇기에 그 공격이 ‘드러나는’ 방식은 타인이 인간의 몸을 취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형태가 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환경을 해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라는 환경론자들의 경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논외로 하고) 이제까지의 샤말란의 영화가 다루었던 이야기와는 방향이 다소 다르다. 말하자면, 외부의 공격을 주로 다루었던 샤말란의 눈이 내부를 향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이것 역시 포스트-9.11의 여파이거나, 갈수록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있는 현 대통령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외딴 집 장면은, 엘리엇이 노파를 내쫓았다거나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것이 아님에도, 마치 밖으로 쫓겨난 노파가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엘리엇이 막기라도 하듯 노파가 집 사방의 외벽을 돌아가면서 머리를 찍어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노파의 입장에서 보면 친절을 베풀어줬더니 그들은 집에서 살고 나는 죽는구나, 의 입장이 되는 것인데, 주인공인 피해자들이 도시인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영위해온 다른 인간들에게 일종의 침입자이자 가해가 되는, 일종의 관계 역전, 혹은 ‘우리 세계’ 안의 분열을 그리는 듯하여 매우 흥미롭다. 나는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싸인>의 한 장면, 그러니까 외계인의 공격에 맞서 집의 문을 모두 봉하고 지하실에 숨어있던 멜 깁슨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싸인>에서 외계인의 끔찍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곳’인 집,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석에 숨으면서 밖으로의 공격을 철저히 차단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동시에 흡사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해프닝>에서 이 장면은 고립된 삶을 살고있던 노파가 집밖에서 변을 당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이 변을 피하기 위해 집에 들어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바람을 피하면서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을 닫고 잠그는 정도였을 뿐. 게다가 이 외딴 집은 집과 헛간의 두 공간으로 분열되어 있고 엘리엇은 엘마 및 제스와 서로 분리된 공간에서 ‘관’을 두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가까이 있으나 서로 단절돼 있으며, 같은 세계를 살아가나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두 사람의 입장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요 공포와도 닮아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음을 함께 맞기로 한 순간, 그러니까 한 세계 안에 서로 분리된 채 존재했던 두 세계가 서로 만나고 겹쳐지는 순간 죽음의 행렬이 멈췄던 것이 아닐까. 결국 <해프닝>은 서로 단절돼 있던 두 세계가 신뢰와 소통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붕괴될 뻔한 가정이 하나의 단단한 가정으로 뭉치는 것(이것은 샤말란 영화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다)에 대한 멜러드라마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샤말란의 영화는 언제나 외향상 공포의 틀을 취한다 한들 언제나 강한 드라마, 특히 멜로드라마였다. 심지어 <언브레이커블>도 그렇다. 처절하게 자신의 반쪽을 찾아헤매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가 결국 엘리엇과 엘마가 화해하고 사랑과 신뢰를 되찾으며 제스를 수양딸 삼아,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까지 해서 다시 단단한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엔딩을 맺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기현상의 원인이 정확히 뭐였건 간에.


영진공 노바리

ps. 엘마 역을 맡은 주이 디샤넬은 알다시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출연한 배우. 그의 부모가 워낙 J.D. 샐린저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 [프래니와 주이]에서 이름을 따와 붙여줬다고 한다. (나도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는 저 글라스 가에 대한 장단편 쪽을 더 좋아한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타입으로 생긴 아가씨. 그런데… 80년생이라면서 갑자기 웬 주름살이 그리 늘었단 말이냐!!! 넌 아직 새파란 20대란 말이다!!!

홍키의 시선으로 보는 “다찌마와리”와 “놈놈놈”


여름철 극장가를 열어제끼는 두 편의 우리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두 편 다 코믹을 가미한 액션작품이지만 서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두 편을 억지로 연관지을 생각은 없으나 개인적으로 본인의 영화편력에 의미있는 부분이 있어 함께 언급해 본다.

1. 다찌마와리 그리고 류승완

류승완 이 친구, 참 공부 안한다.  예전부터 그의 영화를 볼때마다 들었던 생각이지만 참 아쉽다.  이건 애정어린 아쉬움이다.  어린시절 홍키(홍콩영화 키드)의 삶을 살아왔던 본인의 입장에서 류감독은 홍콩액션 무비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좋은 친구같은 존재다.  하지만 조금 노력하면 훨씬 잘 해 낼수 있는 친군데 발전이 더디어 아쉽다는 것이다.  얼마전 그는, 자기 마눌과의 의리때문이라며 테레비젼 쇼프로까지 나왔다.  그 자리에서 곧 상영될 영화 ‘다찌마와리’홍보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정통코스로 영화공부를 한 것이 아니기에 많이 본다고.  하지만 영화에,예술에 정통, 정규 코스가 따로 있나?  단연코 없다.  억지로 이야기한다면 영화공부는 많이 보고 많이 찍어보는 게 정통이고 진짜 정규코스다.  류야 말로 정통코스를 밣고 있는 정통영화인이다. 그런데… 본인이 보기에 류감독은 자기영화만 본다.  자기장르의 영화만 공부한다.  국영수 중심으로 암기과목도 소홀히 하지 않는 공부와 학습의 덕목에서 한 30%가 부족하다.  게다가 자기만의 특장 분야에서조차 얼마나 정체되어가고 있나.  아주 많이 정체되고 있다. 영화 ‘짝패’. 아주 좋다.  80년대 홍금보,성룡의 복성시리즈에 못지 않다.  그냥 못지 않을뿐 전반적으로 내외가 약하다.  배우들 시간날 때마다 그냥 놀듯이 모여 찍던 복성시리즈에 비해, 가령 내 친구가 전력을 기울여 애써 만든 영화가 고만고만하다면, 난 기분이 안 좋을 밖에.  영화는 경직되어 있고, 액션은 천편일률로 이전 다 보아왔던 동작이다.

그러나 …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모든게 척박한 이땅에서 류승완만큼 자기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잘 할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는 드물다.  아이덴티티? 이거 중요하다. 난 그런 아이덴티티를 우리영화계 주류중에선 봉준호에게서만 본다.  박찬욱을 많이 거명하겠지만, 그의 특징이 뚜렷하다고 아직 말 할 수없다.  송강호로 페르소나 되는 봉준호의 특징은 진정으로 싱싱하고,절묘하고, 재밌고,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박찬욱에게서는 거장의 냄새는 나지만, 거장으로 불리워질 뚜렷한 내용이나 구체적인 무언가가 없다. (아마도 좀더 다작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칸느도 다녀온 분에게 너무 건방진가? …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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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강타"했던" 서울 인근 지역 올 로케 작품되겠다 -.-;;; ... 임원희, 류승범, 이윤성 등이 출연한다.

그래서 수 년 전 당시 딴지일보 한동원님의 글로 전해 읽었던, 류감독의 데뷔작 인터뷰는, 참으로 담백솔직막가는 멘트로 (그 말 그대로는 기억이 다 안나지만) 충분히 듣는이를 기쁘게 하고, 그와 한국영화계의 미래를 기대케 했다.  이렇게 난 그를 좋아 할 수 밖에 없다. 크게 실망시키는 졸작도 없었고, 자기 심지는 멋지게 지키고 있다. (좀 시건방진건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리고 ‘오아시스’에서의 그의 연기는 내 눈물을 뺐다. (오아시스에서 눈물나는 게 그의 연기뿐이 아니지만 서두…)  정말 내 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  배운 건 모자라도 혼신을 다해 세상의 풍파와 싸우며 사는 어린동생, 그래서 못난 형이 너무 미운 우리 동생.  정말 지금도 뭉클하다.  하여간 이렇게 좋은 친구가 더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조금 아쉽다는 거다.

다찌마와리 (이전 모처에서 스크린 걸어놓고 보았던, 그 따끈하고 짜릿한 b급의 정서는 이젠 포기해야겠지만) 극장판에 대해서, 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찌마와리 첫 이야기의 즐거움을 전혀 모를 젊은 관객들에겐 확실히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고, 류감독 스스로에게도 또 한번의 자극과 충천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지금 보다 다음 작품에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이번 다찌마와리가 되었음 한다.

2. 놈놈놈 그리고 김지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제목 참…거시기 어디서 많이 들었다.  한때 세상은 서부영화 전성시대였다.  그 비장하고 우울하면서도 통쾌한 정서는, 삼사십년전, 아니 아니 훨씬 더 이전부터 세상의 정의를 갈구하던 서민의 애환을 잠시나마 위로해주었다.  물론 미국의 원 주인을 짖이기던 외래총잡이와 군발이들의 악행을 미화한 작품도 적지 않았지만, 난 그런 개잡것들까지 다 이야기하는 건 아니구, 좀 덜 떨어지게 혼자 폼잡는 귀여운 총잡이들을 이야기하는 거다.  존웨인은 별로지만 세인이나 하이눈의 케인보안관과 장고와 우리 튜니티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지운씨가 서부영화를 만든단다.  김지운감독, 내 생각에, 한국의 주류영화감독중 김현석감독 다음으로 깔끔하게(너무 깔끔해서 탈) 영화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이건 칭찬이기도 하고 비난이기도 하다.  더욱이 김지운감독 작품에서는 어느 다른 영화의 어딘지 모를 장면들이 자꾸 중첩이 된다.  표절도 패러디도 오마쥬도 차용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겹침이 이 감독의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놈놈놈은 한국식 웨스턴, 또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변주, 또는 만주웨스턴이라고들 한다.  조금은 황당하고 족보없는 이야기가 아니랄 수 없다.  이 작품은 근자에 영화를 접하기 시작했던 젊은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장르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우리영화사에 코리안 웨스턴은 무척 심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60년대를 풍미한 코리안 웨스턴은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나 ‘6인의 난폭자’로 기억되는 정통극식의 서부극뿐아니라 ‘당나귀 무법자’같은 코미디 영화도 있었다.  한마디로 유구한 전통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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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무법자 OST? -.-

게다가, 웨스턴무비 또는 서부영화로 통칭하는 장르는 세계 어느지역에서나 나름대로 그 문화와 융합해서 자생한 시절이 있었다.  바로 오늘 본인이 놈놈놈 티져를 보자마자 기억이 떠오른 게 홍콩영화 ‘부귀열차’다.  서부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함빡담고 열차를 통해 펼쳐지는 온갖 이전투구와 황당무계가 놈놈놈과 상당히 겹친다.  솔직하게 말하면, 홍키로 자부하는 본인은 놈놈놈의 기대보단, 예전에 너무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부귀열차’를 다시 보고 싶은 (홍콩배우들과 서부영화라…이 기기묘묘하고 희한한 조합) 충동에 사로잡혀, 며칠전에는 시간을 내서 비디오디비디 판매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물론 못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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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열차는 홍금보(놈놈놈에서 송강호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캐릭터라 하겠다. 좀 더 무게감이 있긴 하지만), 원표, 관지림을 비롯한 당시 홍콩을 주름잡던 대배우와 액션배우들이 총출동했던 당대 대작이었다.  이런 작품의 흥취야 각양각색의 배우들뿐 아니라, 그들의 다재다능 액션(배우들마다 가지고 있는 액션의 특징, 이걸 골고루 섞어 보는 그 재미란,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 ㅜ.ㅜ) 집단무를 보는 것이다.  위대한(이 단어를 어찌 쓰지 않을 수 있나, 서양의 기계적 액션에 비하면 이들의 동작은 예술이라 하겠다. 감히 …) 액션배우들의 종합선물세트로서 부귀열차는, 비슷한 흥취의 또 다른 무족보전투액션무비 ‘동방독응’과 더불어 본인의 기억속에 참으로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다.

놈놈놈은 흥취가 과연 얼마일지 모르겠으나, 난 … 그냥 ‘부귀열차’와 ‘동방독응’을 다시 보고싶다. (그나마 동방독응은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보아 더더욱 화려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부귀열차는 그냥 쪼마난 TV화면에 화질 구린 비디오로 봤는데도 그러하니, 극장에서 봤다면 얼마나 화려했을까 …)


그럼 20000


영진공 버디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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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슐로서, 찰스 윌슨 지음, 출판사: 모멘토

이번에 광우병 문제로 인해서 미국산소고기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국가는 그런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자기들이 안하고 미국 쇠고기 판매업자들에게 맡기면서 미국을 믿자고(덧붙여 안 믿으면 빨갱이라고) 주장하니 사람들이 뒤집어지는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먹거리의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산 쇠고기에도 있고 우리나라 쇠고기에도 있고…
그걸 떠나서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위해서 기본적인 생태조건에서 안드로메다만큼 멀어져버린 현대의 축산시스템 자체가 문제죠.

이 책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다룹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바로 그 패스트푸드점을 통해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가죠.
이 책은 패스트푸드점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라는 마지막 수도꼭지에 모든 것을 공급하는, 그 배후에 깔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절감을 내세워 전통적인 농장들을 흡수한 거대축산기업들,
그 와중에 가업을 잃고 일용노동자로 전락한 농장주들…

그 기업들이 운영하는 소 “공장”의 실태, 우유가 아니라 도축장에서 나온 소의 피로 만들어진 우유대체제를 먹고 자라서는 그놈의 “마블링”을 위해서 거의 푸아그라를 만들듯 억지로 성인병에 걸리는 소들, 그 소를 더 빨리 분해하기 위해서 무리하다가 다치고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 비슷한 일들이 감자와 옥수수에 대해서도 일어납니다.

거대축산기업이 공급하는 재료로 다시 거대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은 진짜 감자튀김이나 치킨너겟보다 더 진짜 같은 맛과 향기를 뿜어내는 패스트푸드를 개발해서 제공하지요. 물론 그 와중에 기존의 지역 먹거리 시스템은 대기업에 흡수되고, 원래 개인사업자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저 단순 일용직원으로 전락하고요.

이런 이야기는 원래 <패스트푸드의 제국>이라는 책에서 이미 처절하게 까발린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책은 너무 두껍고 무거운 내용이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도 꽤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책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가 나온 셈이죠.


패스트푸드의 제국, 참 잘 쓴 책이라는…


이 책은 최근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조만간 국내개봉 한다죠.

이 책은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쓴 저자가 조금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핵심정보만 모아놓은 일종의 다이제스트입니다.
책도 얇고, 일러스트도 있고, 내용도 적지만 전작에서 다룬 중요한 것들은 다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진짜 침착하고 진지하게 현실을 깊숙이 파고드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할 그런 책을 원하신다면,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보세요. 하지만 짧은 시간에 현대 식육산업의 문제점이 뭔지를 핵심만 쉽게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를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보자면 이 책은 패스트푸드 산업의 역사를 짚어가면서 이 산업이 어디서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이 분야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사람들도 꼭 봐야 할 책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최근에 김민선이라는 배우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부위를 수입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미국 가서 햄버거를 맛있게 먹었다고 비난받고 있던데, 패스트푸드 체인점 햄버거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닙니다.


문제의 그 장면.

김민선이 좋다구나 하며 찾아간 햄버거집은 <인 앤 아웃>이라는 곳인데, 기존의 마구 만들어서 인공향료와 착색제로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체인점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체인이죠. 고기도 좋은 것으로만 쓰고, 감자도 진짜로 튀겨내는(그래도 맛있는), 게다가 종업원들은 일용직이 아니라 사회보장까지 되는 정규직으로만 고용하는 곳입니다. <맛있는..>에서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한 패스트푸드 시스템이기도 하지요. (첨부하자면 이 책의 저자도 햄버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햄버거를 먹지 말자고는 못하고 어떻게든 대안을 찾으려고 한거죠. 저도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여기서 파는 햄버거는 SRM이니 뭐니 하는 문제로부터 아마도 햄버거중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셈입니다.

이 체인점에 대한 궁금하시면 건다운 님의 아래 소개글을 보시길.
언제나 몸에 좋은 것은 별로 맛이 없는 경우가 많죠… 패스트푸드 조차도…
http://kr.blog.yahoo.com/igundown/8625

아래는 이 책에 나오는 몇가지 정보의 요약을 인용한 겁니다. 요약의 요약이라는..


패스트푸드를 먹기 전에 기억해야 할 사실 몇 가지

◆ O-157균에 감염된 한 마리의 소가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 15톤을 오염시킬 수 있다. ◆ 패스트푸드 햄버거 고기 한 덩어리에는 여러 지방에서 온 수백 마리 소의 고기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 다.
◆ 감자튀김, 프라이드 치킨, 치킨 너깃이나 도넛, 쿠키엔 지방 중에서도 가장 나쁜 트랜스지방이 듬뿍 들어 있다.
◆ 청량음료 캔 하나에는 설탕 10 티스푼에 해당하는 당분이 들어 있다.
◆ 패스트푸드에 쓰는 닭의 사료에는 도축장에서 나온 쇠고기 찌꺼기, 심지어 다른 닭의 살 부스러기나 지방, 피와 뼈가 섞이기도 한다.
◆ 양계장의 닭들은 움직이기조차 어렵다. 마리당 공간이 A4 용지만 하다.
◆ 패스트푸드점의 딸기 셰이크에는 딸기가 없다. ‘예쁘고 맛있는’ 화학약품들이 딸기의 색과 맛과 향 을 대신한다.
◆ 향료 첨가제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조금씩 섞어서 만든다. 수많은 첨가제가 혼합되어 있는 음식을 끼니 마다 먹을 경우의 안전성은 알려지지 않았다.
◆ 13살에 비만 상태라면 30대 중반에 과체중일 확률이 90%나 된다.
◆ 10살 아이가 비만해서 당뇨병이 생기면 건강한 아이보다 평균 17년에서 26년 수명이 짧아진다.
—본문 내용 요약 중에서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