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 ‘우에노 주리’를 만나다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

 

요즘 한창 <베토벤 바이러스>가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클래식과 ‘천재’라는 요소로 이미 드라마에 성공한 것이 일본의 <노다메 칸타빌레> 시리즈이죠. 물론 원작은 만화이지만.

어쨌거나 이 <노다메 칸타빌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다메’ 역의 ‘우에노 주리’양을 보려고 기자 회견장을 찾았습니다.


그랜드 호텔 22층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왠지 여기를 보면 ‘영화제’에 온 기분이 제대로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22층에 올라가니 뒤에 모여 있는 모텔 집성촌과 해운대 해변도 한눈에 들어와 경치도 좋지요.


구구 크러스터(…)가 생각나는 영화 영어 제목이지요…


이누도 잇신 감독은 아예 기자회견 하기 전부터 밖에 나와서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원래 기자회견 시작할 때쯤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만 봐오던 저로서는 꽤 친근한 느낌을 주는 감독이었어요.


그러나 이누도 잇신 감독보다 사진 세례는 이 고양이 녀석이 다 받고 있었습니다. 깜찍하죠?!?!?!


포토 타임 때 고양이 녀석은 아주 우에노 주리 어깨 위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재롱을 피웠습니다. 우에노 주리는 강아지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운다 하더군요. 기자 회견 중에 ‘고양이’를 촬영하느라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누도 잇신 감독이 대답하길 ‘강아지는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라 말을 안 들으면 스트레스받는 데 고양이는 아예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촬영 시간은 4배 정도 많이 소요됐지만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촬영을 하면서 스태프들이 도리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역시 고양이가 가진 매력이란 대단한가 봅니다.


기자 회견 도중에도 이누도 잇신 감독과 우에노 주리는 계속 귀엣말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했는데요 우에노 주리가 참으로 격식 없이 소탈한 것을 볼 수 있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한국 여배우들보다 수수하다.’라고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다가 통역이 벌어지는 도중에 멀뚱멀뚱 기자들 눈치 보지 않고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대화하는 것을 보니 자연스레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대다수가 ‘노다메’의 그 멍청한 듯 발랄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에노 주리는 참으로 ‘연기 폭’이 어린 나이에 다양한 배우입니다. <라스트 프렌즈> 시리즈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같은 영화에서 드러난 연기가 그것을 증명하죠. 어쨌거나 저 두 가지 표정에서도 그걸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나리오’를 고르지 않는다더군요. 주어지는 대로 연기에 임할 뿐이랍니다. 우리 배우들은 ‘시나리오 고르고 있어요.’를 밥 먹듯이 얘기하는 데 참으로 수줍어하고 여린 여배우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물론 대한민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이나 일본의 영화 제작 시스템 및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낫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런 배우라면 이런 기자회견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일 텐데 전혀 그런 티 하나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는 것 또한 대단한 ‘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우에노 주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오게 하는 그 아우라에 충분히 끌림을 느낄 만 합니다. 더군다나 레드 카펫을 걸을 때 ‘노다메~’, ‘아이시떼루~’, ‘스키데쓰~’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전부 ‘여성’뿐이라 섭섭했다는 데 남자들이 전부 부산에 와서 ‘부산 남자’가 되어버린 걸까요? 저런 사랑스러운 여배우에게 ‘아이시떼루~’ 한 마디 안 던지다말입니다.



기자회견 도중에 개그맨 유세윤 氏와 유상무 氏가 나타났는데요. MBC everyone에서 하는 무언가를 촬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좌중이 약간 술렁이게 되자 행사 진행 요원들이 좀 험악하게 구는 상황도 연출되었는데요. 뭐 어쨌거나 기자회견 마지막에는 유세윤 氏가 ‘우에노 주리 아이시떼루~’ 하면서 일어 몇 마디 던져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유상무 氏는 키도 저보다 훨씬 크더군요 180 가볍게 넘겠던데요? (입구에서는 장동민 氏도 봤답니다.) (아 그리고 유세윤 氏 개인적으로 오신 거라 해 놓고선… 거짓말 하시다니 ㅠㅠ)


어쨌거나 수수하고 소탈하면서도 매력적인 우에노 주리를 만나서 꽤 재미난 시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에 대한 예매가 45초 만에 끝났다는 얘기를 하면서 일본에서도 그런 흥행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는데, 그 바램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

우에노 주리 너무 예뻐요.

영진공 함장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 – 부산의 밤

 …  …  …  …  …

부산하면 주로 먹을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바닷가 근처다 보니 회나 해산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그 외 타지방에서 먹는 해산물보다 훨씬 싱싱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저처럼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 – 물론 회라면 꺼벅 죽습니다만 – 은 먹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동래파전도 해물 한가득, 그나마 밀면은 덜하려나요? 그러나 밀면은 맛있게 하는 집이 아니면 참 곤욕스럽기도 합니다. 밀가루 면이다 보니 까칠하죠.

PIFF 에서 영화와 야외 행사를 쫓아다니다 보면 맛집을 찾아다니긴 더욱 어렵습니다. 시간 맞춰 무엇을 먹기도 힘들거니와 유명 맛집의 경우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영화 예매 시간을 가볍게 넘기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부산의 밤’은 언제나 PIFF의 뜨거운 열기로 활발합니다. 그러나 당장 해운대 앞 재래시장의 경우엔 밤 10시면 상당수의 가게가 문을 닫아겁니다. 기나긴 영화제의 밤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아쉬움도 일지요.

그래서 소개합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5~6시까지 영업을 하는 ‘석쇠 화로구이 전문점’!


가마솥이 이 위치에 생긴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옮기기 전부터 장장 20년 동안 부산에서 ‘석쇠구이’를 취급해 온 곳이지요. 가게 주인이 직접 고기를 골라서 사 오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데다가 양념에 버무린 갈비 맛은 정말 웬만한 갈빗집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달콤함까지도 묻어납니다.


가격도 멋집니다. 돼지갈비 맛이 일품이지요.


함께 나오는 밑반찬들 또한 맛에 넘칩니다. 물김치도 한 대접이 나오고 도라지 무침도 나와서 함께 구워 먹는 맛 또한 최고입지요. 간장게장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공깃밥을 시킬 때 함께 나오는 된장국 또한 커다란 뚝배기에 나오며 된장국뿐만 아니라 시래깃국도 나옵니다. 시래깃국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 입니다.


더군다나 식후에 건네 주는 이 커피 한 잔! 아 멜라민 걱정되는 크림 없습니다! 달착지근 투명한 설탕커피! 거기에 얼음 동동 이면 매운 마늘에 얼얼한 혓바닥도 금세 사르르 녹는다는!!!



이리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위치가 대로변이 아님에도 역시 소문만 듣고 찾아온 유명인사들이 대거 있습니다. 특이하게 사인을 받아서 붙여두는 게 아니라 아예 선팅지에 커다랗게 사인을 해두었더군요.

PIFF에 오셔서 해운대 근처의 해산물 먹을거리에 지치신 분들. 이곳 한 번 찾아보세요. 굳이 PIFF 기간 아니더라도 부산에서 맛난 고기를 찾으신다면 들러볼 만 합니다.


걸어서 가기에 조금 빠듯하다고 느끼신다면 해운대 PIFF 빌리지에서 택시를 타셔도 2,500원이면 충분히 다다를 거리입니다.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 오늘은 배부른 밤입니다.


영진공 함장

안녕, 최진실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재수할 때였다. 학원 종합반에서 한동안 내 옆에 앉았던 여자아이는 외모도 성격도 참하고 단아한 아이였다. 그때 난 그 비싼 종합반을 등록한 주제에 수업 시간엔 주로 공상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했다. 그리고 쓰는 시를 족족 그 아이에게 읽어봐달라며 내밀곤 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손바닥만한 노란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주었다.

“이게 뭐야? 시?”
“노래.”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날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읽고 있는데 마음이 막 아팠다. 이런 노래가 있었구나.

“좋지?”
“응.”

멜로디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찾아듣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노랫말에 어떤 멜로디가 붙었을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걸 노래로 듣게 되면 무척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노래는 내게 멜로디 없는 노랫말이었다. 그냥, 시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날 나는 결국 우연히 노래를 듣게 되었다. 어떤 멜로디가 붙었든 분명 실망할 거라 생각해온 것과 달리, 그때부터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에겐 길고 긴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남은 이들에겐 갑자기, 문득, 홀연히, 그들이 떠나는 것. 어제까지 노래하던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이, 웃으며 얘기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하고, 그럴 리 없다고 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부디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고 있길 바란다.


– 그리고, 최진실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영진공 도대체

모터사이클 다이러리 – PIFF(부산국제영화제) 가는 길 [1]

 …  …  …  …  …

우여곡절 끝에 PIFF에 Press ID를 얻게 되어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뭐 계획한 것도 없거니와 Press ID로 얻을 수 있는 표는 결국 ‘복불복’이기 때문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보다 부산 유람이나 하자는 요량으로 자가용(?)을 끌고 내려갈 생각을 했지요.


장장 500km에 이르는 머나먼 길이라 센터에 들러 타이어 공기압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점검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뒤에 실린 짐에는 노트북과 몇 가지 옷만 넣었지요.


출발 전 셀카질을 합니다. 저 얼굴이 얼마나 초췌해질지 비교용이지요.

이것저것 챙겨 준 화전오토바이 조경식 기사님 감사합니다. (경식아 네 애인보다 더 적게 사랑해줄껭 ㅋㅋ) 먼 거리 간다고 킥 스텝을 조절하느라 삽질해 주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ㅡ.ㅡ

화전 항공대 앞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하여 연대 앞 -> 광화문 -> 동대문을 거쳐 천호대로를 타고 잠실로 빠져나와 3번 국도에 올랐습니다.

성남으로 빠져서 장호원까지 쭉 이어지는 3번 국도는 평일 낮이라 그런지 그리 막히지 않았습니다. 들판에 벼는 추석 때 비해 훨씬 노랗게 익었고 시원한 가을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볕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게 만들지요.



가는 동안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허리도 펴주고 팔과 손도 주물러 주고 그렇게 잘 내려갔습니다.

충주에서 25번 국도로 갈아타고 수안보를 향했습니다. 수안보를 지나 문경새재는 이륜차로는 처음 지나갔습니다만 역시 이화령 고개를 넘는 게 아니라 터널을 빠져나가다 보니 딱히 코너 도는 재미는 없었지요. 어쨌거나 경상도 땅에 넘어오면서 이제 금방 ‘대구’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대구까지 76km 정도 남은 상황.

출발지로부터 240km 부근에서 그만 출력이 떨어졌습니다. 쓰로틀 – 자동차로 치면 액셀 – 을 최대한 열고 달리고 있었음에도 시속이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보통 연료가 완전 Empty 상태가 되면 나타납니다. 제 스포츠 바이크의 경우 보조 연료를 위한 통이 없어서 이 상태가 되면 방법이 없지요. 그러나 계기판에 분명히 연료 게이지는 ‘한 칸’ 남은 상태로 나와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료 게이지가 Empty가 되어도 연료는 3.5L 남기 때문에 최소 100km는 더 갈 수 있거든요!

어쨌든. 곧 시동이 꺼졌습니다. 클러치를 쥔 채 달려오던 관성을 이용해 옆으로 빠져 갓길에 세웠습니다.

막막하죠.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잘 정비된 국도….. 에서 이런 상황이! 어디에 정비소가 있단 말인가!!!

시동을 걸려 열쇠를 돌리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가 납니다. 우왕 이를 어째!


배터리 문제인가 싶어 열어봤는데 배터리 나사는 괜찮고….. 여기 저기 둘러보니 역시 연료 펌프가 주입되는 연료가 없으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를 냅니다… 밥달라는 소리 ㅠㅠ

연료가 충분히 있으니까 배터리와 연료 펌프 사이 배전에 문제가 생겼으리라 생각했는데 연료 게이지 부레가 고장이 난 것으로 판단. – 아무래도 이전 급유해 준 데서 꽉꽉 채워 안 넣어준 것으로 생각되어용. 그 주유소 가지 말아야지 –

한 10분 정도 연료가 조금이라도 고이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곤 이륜자동차의 최대 장점인 최고속으로 달려 놓고 ‘시동 끄고 클러치 잡고 관성으로 주행 신공’을 펼쳤지요. 일반 공도에선 위험천만이지만 다행히 1km 안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가르쳐 주셔서 과감히 결행했습죠.

100km/h 까지 올려 놓고 클러치를 쥐고 시동을 껐습니다. 이륜자동차는 시동이 꺼져도 브레이크가 작동합니다. 국도에서 내려 마을로 꺾어 들면서 정확히 주유소까지 도착하는 ‘기적적인 행운’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제 신용카드 할인이 안 되는 타 정유사 주유소 ㅠㅠ

아 그래도 역시 난 운도 좋아.


연료 때문에 시간을 허비해서 원래 계획인 ’17시 대구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대인 18시에 대구에 진입하게 되었지요.

대구 시가지는 8년 만에 들어갔습니다. 생도 때 외박 나오면 마산까지 나와서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들어와 다시 안동까지 가는 고속버스로 갈아타고 또 안동에서 영주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갈아타면서 고향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그에 비하면 모터싸이클로 부산 가는 건 정말 식은 죽 먹기죠.

어쨌든 퇴근길의 혼란인 대구 중심부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대구 약령시를 지나 경산 경계까지 오고 나서야 한 시름 놓고 편의점에 들러 쉴 수 있었지요. 그때 벌써 위 사진처럼 해가 뉘엿뉘엿 지더군요….. 아직 경산도 못 들어갔는데!!!! orz

25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지나 영화 ‘밀양’의 배경인 ‘밀양’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올라가는 길엔 ‘밀양’을 낮에 와보고 싶어요. 도무지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ㅡ.ㅡ 고갯길도 캄캄해서 꼭 늑대라도 나올 분위기!

해도 지고 배도 고프고 하던 차에 눈에 띄는 간판!


찐빵 보다는 ‘만두’!!!! 넵, 저는 만두 킬러입니다.

만두집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누님의 경상도 사투리의 정겨움이란 캬~

서울에서 왔다니까 바로 ‘해운대 가시나봐요?’하면서 알아채시는 센스!

정말 맛나게 먹어치우고 나왔습니다.

배도 든든하겠다. 밀양은 부산에서 지척 거리!

25 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게 되면 ‘창원’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25번을 이어나가면 ‘마산’으로 넘어가고, ‘진해’를 거쳐 ‘부산’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전 14번 국도를 선택해 김해 쪽으로 시도했습니다. 창원-마산-진해 (보통 ‘창마진’으로 불리는 연계 도시) 라인은 과거에 많이 간 길이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지요.

그러나 이게 웬일? 14번 국도 접어들자마자 눈에 확 띄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2.8km랍니다.

우왓! 밤 8시 반인데도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꺾어 듭니다. 전 도로변에서 그렇게 가까울지 몰랐거든요. 매번 ‘봉하마을’ 사진을 보면 완전 시골로 보여서 어디 산속 깊숙이 있는 마을인 줄 알았습니다.

꺾어 들어보니 2km에 달하는 구간이 전부 ‘공단’입니다. 공단을 벗어나자 작은 마을이 하나 시작되더이다.

우와 완전히 속았다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 온다는데 주차장 규모 – 물론 가장 먼저 보이는 주차장만 들렸지만 – 는 기껏해야 승용차 30대 정도 주차하는 공간이고 주차장 옆에는 봉하마을회관이 있더군요. 밤에도 ‘아이들’ 목소리가 회관 안에서 두런두런 새어 나올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고작 150m밖에 안 됩니다. 호화 저택은커녕 그냥 조금 큰 양옥집이더이다. 야간인데다가 입구에 공사 중이라 의경이 경비를 서고 있더군요. 묻는 말에 친절히 웃으며 답해 주는 의경에게 수고하라고 전하고 내려와 주차장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습니다.

언론에 비치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늘 잔칫집일 것 같은 데 이건 뭐 제 어릴 적 산골 외가보다 더 조용합니다. 딱 고향에서 야간에 교외 공설운동장 같은 시설의 자판기 커피 마시러 드라이브 나올 것 같은 그런 주차장 풍경에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더군요.

다시 헬멧을 쓰고 부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4번 국도는 부산 찾으시는 분께 아직 권하고 싶지 않더군요. 부산까지 완전히 이어지지 않아서 북부산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김해에서 꺾어져 들어가더라도 계속 고가도로 아래로 달리면서 그리 좋지 않은 노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서면사거리’ 이정표를 계속 쫓아 서거나 가거나를 반복하면서 눈요기를 즐겼습니다. 광안대교를 야간에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도 잠시. 생도 때 외출할 때마다 나와 놀던 서면에 들어서니까 만사가 다 귀찮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부산에 도착했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면에서 해운대로 넘어와서 요트경기장 앞을 지나자 ‘PIFF’ 관련 깃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현재 부산에서 ‘비엔날레’를 포함해 국제 행사가 3가지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분주해 보입니다. 밤 11시였는데 말이죠.


해운대 모텔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접어들어 몇 군데 들러봤습니다. 2인 일반실 비용이 6만 원에 1인 증원할 때마다 1만 원 추가더군요. 더 재미난 건 아예 간판에 ‘25,000원’ 적어둔 집이 그럽니다.

더 재미난 건 연휴기간이자 PIFF 개막일, 황금 주말은 이미 ‘예약’이 다 된 상태이며 2인 일반실이 10만 원이랍니다.

이건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어요. 이건 시장 논리도 아니고 수요 공급 이론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바가지’죠.

부산시는 뭐 하는 건지. 혀를 찰 수밖에 없네요.

일단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자고 일어나고 나서 내일부터는 송정이나 좀 더 멀리 나가서 방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어쨌거나 무려 삽질한 1시간을 제외하더라고 장장 8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7시간 예상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다가 사진 기록 남기느라 자주 쉬어 줬더니 1시간이 늘어났네요.

이 정도 모터사이클 체력이면 일본 스즈카 8시간 내구 레이스 출전해도 되지 않을까요? ㅋㅋ

그럼 내일부터 아니군요 벌써 오늘이군요. 사흘간 PIFF에 빠져보도록 합지요.

영진공 함장

“멋진 하루”, 인생의 두가지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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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스위스의 아마추어 심리학자 모녀 마이어스Meyers와 브릭스Briggs가 칼 구스타프 융의 성격이론을 기초로 개발한 성격검사도구인 MBTI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심리검사 중의 하나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도 이 MBTI를 해보신 분이 꽤나 많을 겁니다. 이 검사에서는 인간의 성격을 내향성(I)과 외향성(E), 감각형(S)과 직관형(N), 사고형(T)과 감정형(F), 그리고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나눕니다. 이 검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kr.blog.yahoo.com/id_solution2006/2.html?p=1&pm=l&tc=4&tt=1222787717
http://www.mbti.co.kr/


마이어스와 브릭스여사, 그리고 융

그런데 제가 이 검사 도구에 대해서 배울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의 3가지 축의 검사결과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마지막 축인 판단형과 인식형의 점수는 꽤나 쉽게 바뀐다는 겁니다. 똑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아 여가시간이 많거나 여러 가지로 삶에 여유가 있을 때는 인식형인 P점수가 높아지는 반면에, 바쁘게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빠듯하게 시간과 돈을 쪼개어가며 살 때는 판단형인 J점수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이 점수는 일종의 스트레스 지수라고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J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에 몰려있다는 뜻이란 거죠.

왜 그럴까요? 이 검사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대충 답이 나옵니다.
인식형P과 판단형J 검사축은 그 자체가 생활방식 혹은 실천하는 방식을 의미하거든요.
그 중에서도 ‘인식형’의 모토는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해보자”입니다. 즉, 유연하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모든 가능성을 다 찔러보고 그 결과를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태도죠. 인식형은 꼭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습니다. 처음에 목표가 있을지는 몰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내 경험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유유자적 느릿느릿 제멋대로입니다. 일을 미적미적 미루다가 마감일 직전에야 불이 붙어서 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획대로 해야 하는 일은 답답해하고 오히려 아무 계획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더 실력발휘를 하는 경향이 있죠.

반면에 ‘판단형’의 모토는 “계획대로 하자” 입니다. 판단형은 모든 것을 단계별로, 계획에 맞춰서 해나가기를 원합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상황을 정리하고 계획부터 세워야 합니다. 물론 맹목적으로 한가지 계획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1차 계획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나 차차선책까지 치밀하게 세우니까요. 일단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모든 것이 그 계획대로 돌아가야 마음이 놓이죠. 정해진 계획이라는 뚜렷한 기준이 있으니 되는 일과 안되는 일이 분명히 나뉩니다. 이 유형에게 이것저것 찔러보는 일 따위는 낭비죠. 인식형이 막판에 몰려서 갑자기 일을 끝내는 반면에 판단형은 시간에 맞춰서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일을 해결해나갑니다.
어떤 성격심리학자는 이 둘의 차이가 불안감에 대한 내성의 차이라고도 합니다. 판단형인 사람들은 목표만 있고 달성이 안 된 상태가 주는 불안감에 매우 약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감으로써 불안감을 줄여나간다는 거죠. 하지만 인식형인 사람들은 불안감에 대한 내성이 매우 강합니다. 그들은 단지 내성이 강한 정도가 아니라 불안감이 어느 게이지 이상 높아지지 않으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불안감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기 보다는 그냥 영화 <멋진하루>를 보시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병운(하정우)과 희수(전도연)이 인식형과 판단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이 화상…

병운이는 인식형의 화신입니다. 뼈 속까지 지독한 인식형이죠. 이 인간은 사업하다가 부모재산 날려먹고 집도 날리고 마누라도 떠나보낸 와중에도 여유롭게 경마장에서 남의 훈수를 두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희수의 빌려간 돈 내놓으라는 독촉에도 느릿느릿 여유를 잃지 않네요. 영화는 병운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대충 설명을 해줍니다만, 아마 병운이는 원래부터 인식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돈을 받자!!

반면에 희수는 판단형의 화신이죠. 영화에서는 비록 희수가 갑자기 나타나 빌려간 돈을 찾아야겠다고 우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희수의 주장은 바로 그날 정해진 것이 아닐 겁니다. 희수 입장에서는 벌써 며칠 혹은 몇주전부터 결정된 일이겠죠. 그 동안 희수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병운이의 거처를 수소문해서 최종 위치를 확인해 D-day를 정했을 것이고, 그 날이 바로 D-day였던 것이죠. 희수는 불안합니다. 주차할 때마다 네비게이션을 글로브박스에 집어넣는 희수의 행동도 바로 그 불안감의 결과죠. 희수가 병운이를 찾아온 것도 사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받아낼 돈을 받아놓자는 불안감의 결과물일 겁니다. 희수의 입장에서 이 세상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곳이거든요. 희수가 결혼을 하지 못한 것도 결국은 그 불안감 때문이었죠.

처음에 희수의 눈에 보이는 병운이는 한심무인지경의 인간입니다.(아, 대부분의 관객들이 보기에도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서서히 의외의 모습들이 나타나며 영화는 흥미로워집니다. 어쨌든 이 영화 <멋진하루>는 인식형과 판단형의 화신이 만나 한쪽은 으르렁대고 한쪽은 능청맞게 얼러대며 벌이는 화학작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던 희수가


이러더니…


이렇게 변해가는…

왜 이 둘의 만남이 ‘끔찍한 하루’가 아니라 ‘멋진 하루’일 수 있냐면, 우리는 인식형의 태도로만 세상을 살 수도 없고(만약 그렇다면 병운이처럼 빵꾸 인생이 되겠죠), 그렇다고 판단형의 태도로만 세상을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식형은 판단형을, 판단형은 인식형을 필요로 하지요. 그래서 인생이 오묘하고 멋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스포일러..(읽고 싶으시면 긁어내리삼)

결론을 살짝 말씀드리자면, 시간이 흐르면서 희수는 병운이의 여유를 조금 얻습니다.
아마 희수가 마지막에 남긴 돈 20만원은 그 여유의 댓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혹시 이 영화에 관해서 Film2.0에 쓴 글과 전혀 분위기가 다르지 않느냐고 질책하신다면,
이번에는 병운이 입장으로 모드를 바꿔서 써봤다고 변명을 해보렵니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