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론”에 카메오로 등장한 두 과학계 인사




과학과 SF 너드(nerd)를 위한 쌀나라 시트콤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은 지금까지 시즌을 거듭하면서 그러한 컨셉에 맞는 깜짝 게스트들이 등장해 큰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난 SF너드들의 전공필수 과목 중 하나인 스타트랙 시리즈를 이수하지 못했을 뿐더러 쌀나라 TV 배우들의 얼굴 역시 모르니 그런 카메오들의 등장에도 큰 감흥을 느낄 수는 없는 따로국밥 애청자였다. 그러나 시즌 4에선 모처럼 내 관심영역인 과학계 쪽에서 거물급 인사 두 분이 카메오로 등장해 내 배꼽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 Neil deGrasse Tyson & Sheldon (동영상 링크)

시즌 4의 7편에서는 쉘든이 명왕성의 지위를 박탈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박사님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분이 바로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다. 이 분은 천체 물리학자이자 미국 자연사박물관 부설 헤이든 천문관(Hayden Planetarium)의 관장님으로 있으며 컬럼리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다.

많은 과학 교양서를 집필하였으며 과학 다큐의 단골 손님이자 미국의 우주 정책 수립에도 많은 역할을 맡고 있는 잘나가시는 타이슨 박사님은 천문학에서의 그의 공헌을 높이 평가하여 국제천문연맹에서는 한 소행성에 그의 이름을 따서 13123 Tyson(1994KA)이라고 명명하였다.




2006년에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은,
명왕성의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박탈하고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분류한다.
그 이유는 명왕성의 궤도가 다른 행성들의
궤도와는 너무 벗어나 있으며,
명왕성 궤도 밖에서도 그와 비슷한 크기와 구성물질의 소행성들이

속속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분의 책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어렵고 문체도 딱딱하다.

국내에는 그의 책이 두 권 출판되었다. 먼저 2005년도에 출판된 [오리진Origins].
도널드 골드스미스와의 공저인 이 책은 빅뱅부터 시작하여 외계 생명체의 유무까지 천체 물리학의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출판사의 말과는 달리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이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다.

2008년에 출판된 [우주교향곡Death by Black hole]은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컬럼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주와 천체 물리학에 관해 세세히 다루진 않지만 대신 다양한 부분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 Brian Greene & Sheldon (동영상 링크)

시즌 4의 20편에서는 물리학자이자 끈이론학자인 브라이언 그린 Brian Greene이 첫 화면부터 이번에 출간한 그의 저서 The Hidden Reality의 출판 기념회에서 강연하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실제 브라이언 그린은 매우 어렵고 난해한 물리학 이론들을 적절한 비유를 곁들여 일반인들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는 능력이 뛰어난데 쉘던은 이러한 브라이언 그린을 비웃고 있는 장면이다.




이 박사님은 머리가 좋으면서 얼굴도 훈남이다!




[우주의 구조]는 일반인에게도 강추~

그는 우리에겐 학자보다는 작가로서 더 유명한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과학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필독서로 꼽는 [앨러건트 유니버스The Elegant Universe]와 [우주의 구조 The Fabric Of The Cosmos]를 집필하였다. 아직 [앨러건트 유니버스]는 읽지 못했지만 [우주의 구조]는 정말 강추다.

정말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도 추천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의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난이도가 상승하기는 한다. [앨러건트 유니버스The Elegant Universe]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는데 국내에는 예전에 EBS에서 3부작으로 방영해 준 적이 있어 재미있게 보았다.


올해 초 출간한 [The Hidden Reality]. 브라이언 그린의 책은
과학교양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꽤 많이 팔렸으니까 이 책도 출판해 주겠지!

시즌 5 혹은 이후 시즌에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나올 듯한 과학계 인사를 꼽아보자면 아직까지도 개구쟁이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미치오 카쿠 박사님을 예상해 본다. 이 박사님 성향이라면 나왔어도 열 댓 번은 나왔어야 하는데 어디서 뭐하고 계시는 거지?!


뉴욕 시립대 이론물리학과 석좌 교수이자 과학저술가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정말 동분서주하시는 대단한 분이다.
이 분 역시 브라이언 그린 못지 않게
글을 참 쉽고 재미있게 쓴다.
 


국내에는 미치오 카쿠 박사님의 책이 4권 출간되었는데,
이 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우주]를 강추한다.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2]과 같이 읽는다면 더욱 좋다.

영진공 self_fish

애플의 기억






1984년,
아버지가 이상한 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금성 칼라티브이에 이놈을 꼽더니 말씀하셨다.

“니가 말한 게 이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MSX라니까 아빠.”

애플2와의 첫 만남이었다.

MSX는 카세트테이프로 게임을 로딩시킬 수 있었던 반면 애플은 팩이 있어야 했다.
기껏 국민소득 1000불(이건 명확치 않다.)을 갓넘긴 대한민국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게임팩 가격은 어린이가 지불할만한, 혹은 어린이를 위해 지불할만할 금액이 아니었다.

산 걸 무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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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책을 한권 더불어 사주셨다.

한달 가까이 실수와 실수의 반복을 계속하면서 만든건 무슨 양궁게임 같은 거였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그래밍이었다.
명절 때 모은 돈으로 한 두어개 팩을 산 뒤 그 놈이 어디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사갔을 때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MSX도 애플도 사라져갔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건 IBM이었다.
XT에서 AT로 그리고 대망의 386 시대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렸다.

1992년 16mhz 클럭속도의 AT, 50메가 하드, 8비트 스테레오 애드립, 2400bps mnp모뎀, 메가VGA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80칼럼 삼성 도트프린터와 함께 구매했을 때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아래한글 1.2, 경북대에서 만든 이야기 4.0, 도스 5.0, 그리고 M이 나오기 전까지 활개를 쳤던 L과 함께 신세상이 열렸다.

케텔은 1200bps, 피씨서브는 2400bps속도로 통신서비스를 했다. 통신인구는 94년 군대 입대할 때까지 2만명이 되지 않았다. 피씨서브 유머동에서 나는 웹상 최초로 방망이 깍던 노인, 허생전을 패러디 해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별사랑 동호회에서 로마 신화를 외웠다. 게오르규만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여자를 꼬시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은 또 없었다.

케텔은 코텔에서 하이텔로, 피씨서브는 천리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리안은 국내선 전화요금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모자이크. VGA급 사진 한 장을 받는 데 8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전화요금은 끊임없이 올라갔으며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에 엄마에게 맞는 일이 잦아졌다.



군대를 가고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GUI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니, 도스는?’


애플을 만들던 회사에서 제안한 GUI는 윈도우에서 꽃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샀던 컴퓨터와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펜티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133클럭의 씨피유와 16메가 부두 3D, 그리고 250메가에 이르는 하드디스크는 운동장이었다. 모터레이스2, 울프3D, 그리고 툼레이더는 과거 인디아나존스, 킹스퀘스트, 울티마에 받았던 충격 이상을 주었다.

56k  속도로 동작하는 모뎀은 과거 통신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그리고 엘지(이름이 기억 안남.)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우누리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수도 없는 벙개를 나가 끊임없는 내상을 입으며 내린 결론은 ‘이쁜 여자는 만날 놈도 많은데 왜 채팅을 하겠냐?”였다. 미련이란게 쉽게 떨어지면 미련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불쌍해서 천당에 보내줄만큼 폭탄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는 여인네를 부축하면서 누가 볼까봐 고개를 못든 적도 많았다.

1999년. 1년을 작정하고 모은 돈으로 산건 씽크패드 버터플
라이 키보드가 달린 70* 모델이었다. 350만원짜리 중고. 발표수업 때 빔프로젝트로 연결된 노트북을 본 순간 120명의 학우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봤던 건 잊지 못하겠다. 당연히 A+일줄 알았던 학점은 D였다. 출석미달. ㅅㅂ.

졸업을 하고 입사 첫해까지 썼던 그 노트북과의 인연으로 X30, X31, T40까지 아이비엠 빠돌이 역할에 충실 했던 삶이 바뀐건 2005년이었다.

SD에서 HD로 넘어가는 방송환경에서 과거의 편집장비는 방송사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프리미어는 턱없이 부족했고 에딧박스는 기존 장비와 가격차가 없었고 아비드는 방송용 편집과 어울리지 못했다. 파이널컷프로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요구를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페이드 아웃시 한 프레임이 빠지는 문제가 디졸브 시 한 프레임이 비는 몇몇의 문제가 있었지만 장비 가격은 0이 하나 두개 빠지면서도 동급의 효과를 낼 수 있게 구현되었다.

애플은 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범 빠돌이에서 최초로 조우했던 애플과 다시 만났다.

2006년,
20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다시 애플과 만났다. 맥북.


6개월만에 키보드 하단이 뭉개지는 취약점이 있던 망할놈이었지만 키노트와 파이널컷프로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는 놈이었다.

키노트는 PT계에서 절대강자였다. PT 승률의 50%는 키노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나왔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데이터 요금이 거짓말처럼 무제한 요금제로 바뀌었다. 피쳐폰은 유물이 되었다. 불쌍한 내 전지현폰 미니스커트는 6개월만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니스커트를 사면 전지현이 혹여나 한번 나타나 주지나 않을까 하는 속된 욕망이 부끄러워졌다.

어디서나 이메일을 요금걱정 안하고 보게 되었고 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지 않았다. 한게임 고스톱을 치건, 헬키드를 하건 팔라독을 하건 엠파이어워를 하건 할 건 넘쳐났다.

사이즈의 차이가 효용의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아이패드를 통해 배웠다.

맥북프로로 업무를 보고 파이널컷프로로 편집을 하고 키노트로 PT를 진행하고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패드로 시간을 때우는 나는 완벽한 앱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른 아홉해 중에 20년을 컴퓨터와 함께 살았고 그중 7년을 애플과 함께 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이룬 저변 위에서 애플이 바꾼 건 환경이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진공 그럴껄

“그들만의 월드컵”, 인간 병기랑 역사랑 뭔 관계여?


영화를 보았다. 『Mean Machine』. 모야? ‘비열한 기계’?
이런, 그게 아니었다. 겉 뚜껑엔 다음과 같이 써있었던 것이었다.


[ 그들만의 월드컵 ]

글쿤, 그게 그런 뜻이었군.
어쨌든,

‘대애~~한 민국’도 아닌 그들만의 월드컵이라길래 나는 그저 창 밖에 비치는 동네 애들 쌈질 구경하듯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별 감흥 없이 무덤덤하게 경기를 관전하던 도중 문득, 아니 불현듯, 어쨌든 갑작스럽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 함의와 촌철살인의 역사인식에 너무도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 … 아니, 아니다… 손뼉, 그래 손뼉을 치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도 나를 놀라게 하였는가라고 묻는가, 그대?
후후, 그래 그 얘기해 줌세.

”]


그 친구의 이름은 ‘Danny Meehan’이라고 하네, 영국 녀석이지.
우리말로 ‘인간병기’라더군. ‘인’이 성이고 ‘간병기’가 이름인지 아님 ‘인간’이 성이고 ‘병기’가 이름인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직접 물어 보지는 않았네.
그냥 편의 상 ‘병기’라고 부름세.


편의상 성은 '인간'이요, 이름은 '병기'라 ...

어쨌든 이 친구, 전에 꽤나 유명한 축구선수여서 국가대표팀 주장까지 했었다더군.
그러다 말일세, 어느 날 굉장히 중요한 국가 대항전을 치르다가 그만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곤 승부조작이라는 비난과 함께 팀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네.

그 후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매일 소주에 절어 살다가 실수로 홧김에 경찰을 폭행하는 바람에 빵에 들어온 것이지.

병기, 이 친구가 빵에 들어오자 신이 난 것은 주지사였어. 그간 져온 도박 빚이 눈덩이처럼 커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이 꼰대가 병기를 보자마자 축구시합을 생각해 냈던 거야. 간수 팀의 코치를 맡겨 시합에 돈을 걸려 했었던 거지.

그러다 그게 잘 안 되자 다시 재소자와 간수 팀을 만들어 병기보고 재소자 팀의 주장을 맡게 했던 거야. 그런 다음 두 팀간의 시합을 주선하여 자기는 간수 팀에 돈을 거는 거지. 물론 병기 녀석을 윽박질러 일부러 지게 만드는 승부조작을 노렸던 거고, 그래서 완빵에 도박 빚을 갚을 요량이었던 게야.





이 친구, 그 사정은 모르고 뽈 안 차겠다고 개기다가 고생 좀 하더니 결국 나중엔 팀을 맡겠다고 하드만. 어쨌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팀을 구성하는 동안, 녀석은 재소자 대빵 성님을 비롯하여 여러 아그들과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네. 그 날 병기와 성님, 그리고 절친한 아그들 몇은 함께 모여 작전을 짜고 있었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더군.

“병기, 그 날 시합에서 왜 그랬었나? 자네”

아, 모두 알고 싶었지만 누구도 차마 물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질문이 던져지고 말았던 것이었다네. 그러자 병기는 잠깐 생각에 잠겨 들더군. 그리고 녀석은 아주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그 날의 일을 털어놓았던 게야. 승부조작이라는 비난 속에 결국 자신이 타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고야 말았던 그 시합의 진상을.



.
.
.
.
.


후~우, 역시 그랬더군. 녀석은 그 힘든 사실을 다 얘기하고 말았던 것이네. 그런데 말일세, 녀석의 얘기가 끝나고 모두가 침묵에 잠겨있기를 얼마, 언 놈이 이런 말을 던지고야 말았던 것이었다네.

“야, 병기야, 너무 걱정말그라. 그 날 넌 영국에선 죽일 놈이었는지 몰라도 스코틀랜드에선 영웅이 되었쟈나, 그쟈, 안 그냐”

그랬다. 바로 그 대목이었다. 내가 오줌을 지리고 … 아니, 손뼉을 치고 말았던 장면이.

아,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영국에선 죽일 놈이 스코틀랜드에선 영웅이라니.
분명 그 둘은 같은 나라임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하나의 현상에 대해 이리도 상반되고 극단적인 평가가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여기에서 나는 당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함의와 관객에게 외치고자 했던 촌철살인의 역사인식을 보았던 거시다.

다음의 글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고자 하니 함께 따라와 보심이 어떠한지.



자,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영국의 공식 명칭을 영어로 표기해 보시요.


* England? …… 흐음, 사물의 일면 만을 보지 말라 했거늘.


* Great Britain? …… 저런, 애썼다.


* The United Kingdom? …… 오호라, 젤 비슷하지만 아니다.

그렇다면 정답은?

그러니까 영국의 공식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아래에 Yahoo에서 제공하는 영어사전의 내용을 인용하였으니 확인하시기 바란다.


영국 [英國] Britain; England; Great Britain(영국 본토, 즉 England / Wales / Scotland); the United Kingdom; (공식명)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略 U.K.); the British Empire; Greater Britain(식민지를 포함한 「대영제국」); the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영연방).

ㆍ ∼의 English / British / Britannic / Anglican.
ㆍ ∼제의 English-made / of English make / made in England.


그럼 왜 이렇게 한 나라의 이름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로 뒤섞여 통용되는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역사에 나타나는 영국 땅의 원주민은 켈트族이다. 이들은 기원전 55년 로마의 침략(?)을  받아 두 지역으로 나뉘어 거주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처칠 같은 이는 로마의 진입을 영국문명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후 로마가 물러가고 북쪽 켈트族의 일파인 스코트族이 남쪽을 침공하자 남쪽의 켈트族은 색슨族에게 구원을 청하였는데, 색슨族은 오히려 앵글族과 힘을 합쳐 남쪽 지방을 정복해 버리고 만다.

이들 앵글로 색슨족들은 원주민들을 전부 쫓아내고 영국 남부 지방을 ‘앵글로족의 땅(The Land of Angles)’이라 이름지었는데, 이것이 현재 쓰이는 England의 어원이 되었다.

그렇게 중세를 거쳐 절대왕정의 시대를 지나던 영국은 1600년대 초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스코틀랜드 출신인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추대되는 것을 계기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합을 진행하여 국명도 ‘Great Britain’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는 켈트계 중 남부에 거주하던 ‘브리튼(Britain) 인’의 이름을 딴 로마 속주 명 ‘브리타니아(Britannia)’에서 유래한 거시다.

그럼 ‘The United Kingdom’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1169년 아일랜드를 정복한 잉글랜드는 1801년 아일랜드 의회를 통합하면서 국명을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라 칭하고 약칭으로 ‘The United Kingdom’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1919년 아일랜드의 독립파들이 총선 승리 후 독립의회를 구성하자 내전이 발발, 3년간의 전쟁 끝에 주민투표를 거쳐 아일랜드 6개 주가 ‘북 아일랜드 (Northern Ireland)’라는 이름으로 영국에 잔류하고 나머지 남부는 ‘아일랜드 공화국(The Republic of Ireland)’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통해 1928년 영국의 공식명칭은 ‘브리튼과 북부 아일랜드의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 된 거다.

이러한 과정은 영국의 국기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아래를 참고하시라.




















+
+
잉글랜드
(St. George’s Cross)
스코틀랜드
(St. Andrew’s Cross)

아일랜드
(St. Patriok’s Cross)

=
영국
(Union Jack)

‘웨일즈 (Wales)’는 초기에 영국에 합병된 탓에 국기에도 그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그 이후로 아무 일 없었으면 별로 할 말이 없겠지만, 과연 얘네는 합쳐진 이후로 지들끼리 서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았을까나?

그럼 왜 월드컵에 나오는 영국 팀 유니폼에 아래쪽 국기가 아니라 위 맨 왼쪽 국기가 달려있었던 것일까?

우선 이런 사정과 상호간에 대한 감정을 잘 알아볼 수 있는 영화와 노래를 소개하니 시간이 있으면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 Sunday Bloody Sunday (1983, 노래: U2)

아일랜드 출신 Rock 그룹 U2의 곡으로, 1972년 1월 북아일랜드계 시위대에게 영국군이 발포하여 13명이 사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노래하였다.

* 『Crying Game』 (1992, 감독: “닐 조던”, 주연: “포레스트 휘태커”)

IRA 자원 활동가 퍼거스와 그에게 납치 된 영국 군인 조디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싹트는 우정.

* 『In the Name of Father』 (1993, 감독: “짐 쉐리단”, 주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좀도둑 생활을 하는 아일랜드 청년 게리 콘론(실존 인물)은 런던에 놀러 갔다가 IRA 폭탄 테러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 『Blown Away』 (1994, 감독: “스테픈 홉킨스”, 주연: “제프 브릿지스”, “토미 리 존스”)

보스톤의 폭탄 처리반에 근무하는 지미 도브는 퇴직을 결심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IRA 활동가 친구로 인해 곤경에 빠진다.

* 『Brave Heart』 (1995, 감독 및 주연: “멜 깁슨”)

윌리엄 월레스는 스코틀랜드의 왕권을 되찾기 위해 영국의 폭군 에드워드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킨다.

* 『Some Mother’s Son』 (1996, 감독: “테리 죠지”, 주연: “캐슬린 퀴글리”)

1981년 영국감옥에서 실제 일어났던 IRA 죄수들의 단식 투쟁을 영화화 한 것으로, 그들은 단순범죄자가 아니라 전쟁포로의 대우를 요구하였다.

* 『Devil’s Own』 (1997, 감독: “알란 J. 파큘라”, 주연: “해리슨 포드”, “브래드 피트”)

IRA 최고 테러리스트 중 하나인 프랭키 맥과이어는 뉴욕으로 탈출하여 아일랜드계 경찰 로리 오메이라의 집에 숨어든다.

위 노래와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아일랜드와 잉글랜드간의 관계는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반목과 충돌, 분쟁과 테러의 나날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먼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민족의 배경과 문화가 다르고 반목을 거듭하던 쪽이 통합을 이루게 된 데에는 경제적 이유가 큰 몫을 차지했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잉글랜드의 경제가 많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스코틀랜드는 무역을 통한 수익증대 등 경제적인 이해를 좇아 스스로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정치적으로만 결합을 결정했을 뿐 법률, 종교, 행정제도는 그대로 존속시켰다.

양 쪽 왕가의 합병 이후 의회의 합병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둘 사이의 개신교와 구교로 나뉘어진 종교갈등은 극단을 치달았었고,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일대에 불어닥친 심각한 공황의 영향으로 스코틀랜드 국가당이 결성되기도 했다.

또한 1970년에 발견 된 유전 덕분에 발언권이 커진 국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라 1979년에는 스코틀랜드 독립의회 설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적도 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아일랜드는 12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잉글랜드의 잦은 침략과 종교강요에 저항하여 줄기차게 싸워왔고, 17세기 청교도혁명 이후 더욱 심화 된 예속관계의 결과로 19세기이래 아일랜드 구교도의 잉글랜드에 대한 저항은 갈수록 폭력적이 되었다.

1949년 우여곡절 끝에 아일랜드는 독립하였지만, 잉글랜드의 신교도 이주정책에 따라 잉글랜드 이주민이 다수인 북부 6개 주의 주민투표 결과가 영국잔류로 결정 됨에 따라 1969년에는 아일랜드 공화군 (IRA: Ireland Republican Army)이 조직되어 치열한 무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신교도 측도 얼스터 민병대를 조직하여 대립하는 가운데 터진 ‘피의 일요일(1972년 1월 30일에 영국정부군이 북아일랜드 시위대에 발포하여 13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시점으로 폭발한 양측의 테러행위는, 29년 간 약 3,200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기록하였다.

1997년 IRA의 휴전 선언 이후 1998년 잉글랜드,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신구교도 대표 정당의 다자회담을 통해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극적으로 타결되었으나 IRA의 무장해제 거부와 2000년 발생한 폭발사건으로 인해 북아일랜드의 자치체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보았는가, 그대. 바로 이것이 신사의 나라, 의회민주주의의 나라라는 영국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네. 이런 상황이니 어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영국 팀의 패배에 열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날 바로 그 자리에서, 병기 녀석의 진솔한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지금까지 말한 영국의 또 다른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네.

……

 



후우~ 내 잠시 쉬었다 다시 얘기하면 안 되겠나, 친구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