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종자기업들이 부른 미래 참극(2), “와인드업 걸” (The Windup Girl, 2009)



이 단칸방 같은 지구에서 지금의 인류가 먹고 살기 위해선 유전자 조작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GMO는 좁은 땅에서 보다 많은 생산을 가능케 하며 농약의 사용도 줄일 수 있어 환경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GMO를 옹호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도 기아를 퇴치하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GMO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종자기업들은 인류애의 화신들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SF소설에나 나올 법한 어처구니 없는 특허법을 비롯하여 교묘하고 치졸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세계대전 당시 화학무기를 생산하던 기업에서 출발한 거대 종자기업들은 농화학 기업, 즉 농약을 생산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종자와 농약을 세트로 판다.

몬산토에서는 대표적인 GMO종자인 라운드업 레디 Roundup Ready(콩 종자)를 라운드업 Roundup(제초제)과 세트로 판다. 라운드업 제초제를 뿌리면 잡초들은 죽지만 라운드업 레디 종자는 살아남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편리함으로 농민들을 끌어들인다. GMO종을 사지 않더라도 농약 사용에 대한 문제 때문에 결국 농부들은 이들 종자회사의 종자를 구매할 수 밖에 없고, 구매시 동의해야 하는 계약서와 특허법을 이용해 결국 농민을 자사에 종속시켜 버린다.




마치 자동차를 살 때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처럼,
GMO종자에 특성을 더할 때 마다 돈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농민의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종자 회사들은 곡물 유통회사와도 결탁하여 농민들을 압박하였다
. 곡물 유통가공 회사인 카길 cargill은 특정 회사의 종자만 수확할 것을 요구하였다. 거대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이런 거대 회사의 요구를 농민은 무시할 수가 없다.

종자회사는 특허법 역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농민들이 GMO종자를 구매할 때는 그 회사의 특허권에 대해 동의를 해야 하는데 미국의 판례는 식물체 전체를 특허대상으로 하고 있다. 식물의 개별 구성요소, 즉 종자, 세포, DNA배열, 조직배양체 등도 특허대상에 포함된다. 그로 인해 농부는 구매 종자를 단 1회만 재배해야 하고 수확한 종자의 어떠한 재파종도 불허하고 있다. 농부는 매년 농사를 지을 때 마다 종자회사에서 종자를 사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런 특허법이 얼마나 악랄하게 이용되는지는 캐나다에서 벌어졌던 몬산토와 한 농부의 법정싸움에서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몬산토의 GMO종자가 날아와 농부의 밭에서 자라났고 몬산토는 이를 특허권 침해라고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10년을 끌었던 이 소송에서 결국 법원은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농부는 수십 년 간 재배해온 씨앗을 모두 폐기해야 했고 그 해 소득까지 몬산토에 배상해야만 했다.

수십 년 간 종자를 개량해온 농부의 권리보다 종자기업의 이익을 우선해준 판결이었다
. 이 재판이 말해준 것은 고작 전체 밭의 2%만 오염되도 농부는 자신의 종자와 식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식물을 창조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DNA 몇 개를 조작했을 뿐인데,
식물체에
사적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

이로인해 종자기업에 종속되어버린 농부는 힘들게 농사를 지어 종자회사에 고스란히 갔다 받치는 21세기판 노예가 되었다. 면화 생산지의 인도의 경우 몬산토의 GMO면화 종자인 BT면화가 들어오면서 10년새 20만명의 농민이 자살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광고와 달리 수확량은 떨어졌고 BT면화로 인해 새로운 병충해가 생겨 농약의 사용은 오히려 더 증가하였다. 게다가 BT면화의 가격은 매년 인상되어 1kg5루피였던 것이 kg3,200루피로 인상되었다. 생산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채에 시달리던 농부들이 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죽음 뿐이었다.




이렇게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ㅆㅂ스런 법을 만들어 양아치처럼 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국가 권력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장관 도날드 럼스펠트-> 몬산토 자회사인 [SERAL]사의 대표
미 무역대표부 대표 미키 켄터-> 몬산토 이사회장
미 법무장관 존 애쉬크로프트-> 2000년 몬산토 최대 기부금 수혜자
미 대법관 클라렌스 토마스-> 몬산토 수석변호사
미 농무부장관 앤 베네만-> 몬산토가 인수한 [칼진]사의 이사회장
미 환경보호청장 윌리엄 럭켈샤우스-> 몬산토 이사
미 환경보호청 보좌관 린다 피셔-> 몬산토 이사
몬산토 수석변호사 마이클 테일러-> 미 식약청 정책보좌관

이 외에도 정치가 뿐만 아니라 돈에 기생하고 있는 과학자들 역시 종자회사의 GMO식품을 옹호하는 그릇된 논문들을 학술지에 발표하며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자유무역을 내세워
GMO농산물에 대한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 종자기업의 이익이자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특히 유럽과 한국은 현재까지 GMO농산물의 재배 불허 국가였기 때문에 이들 종자기업에겐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종자기업이 다음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 현재 대부분의 종자기업들은 시장성이 큰 벼의 GMO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FTA가 발효되고 종자기업이 GMO벼종자를 들고 국내로 쳐들어오면 우리 농업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자기업이 세계식량을 독점함으로서 펼쳐질 위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 현재 종자기업들은 농부들을 종속시키고 그들이 선택한 몇 개의 종자만을 기르게 압박함으로서 세계적으로 점점 종의 다양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생물다양성의 상실은 인류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와인드업 걸]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도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사라지고 종자기업에 의해 만들어진 몇 종의 유전자 조작 식물에 전염병이 퍼져 인류가 식량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 곡창지대인 미 북부의 대평원에는 전세계 콩과 옥수수 소비량의 절반이 생산되지만 여기에 뿌려진 종자는
2~3종 밖에는 되지 않는다. 만약 이 곳에 이들 종에만 걸리는 전염병이 퍼진다면 전세계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옥수수는 의외로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다.)


몬산토의 BT면화가 정복해버린 인도는 BT면화가 들어오면서
밀리버그라는 왜래종 진딧물이 창궐하게 되었다
. 이 진딧물은 농약에도
잘 죽지 않고 이제는 다른 농작물에까지 번지면서 큰 피해를 주고있다
.
밀리버그는 BT면화가 들어오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해충이다
.




종의 다양성이 파괴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 1847년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감자 대기근은 당시 남미에서 도입한 감자 1종 만을 재배함으로서 감자 잎마름병이 번저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이로인해 100만명이 굶어죽었고 300만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만 했다.

국내에서도
1960년대 일본 콩과 교잡하여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강한 광교라는 콩 종자를 개발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이 종자를 보급하였지만 3년 뒤 괴저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광교종자의 콩이 괴멸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광교종자는 의외로 괴저 바이러스에 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국이 단일종이었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아무런 저항없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는 콩 부족 사태를 겪어야만 했다.

이처럼 현재 종자기업들의 행태는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 보다 신중히 접근했다면 식량자원 문제의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었던 GMO는 종자기업들의 탐욕과 만나면서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재앙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인류의 탐욕이 문제다. 자원의 고갈, 지구 온난화, 핵무기도 결국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소비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와인드업 걸]에서 종자기업에 맞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태국을 무너뜨린 것도 다름아닌 권력을 향한 탐욕이 부른 내분이었다.

제목
[와인드업 걸]은 작품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몬산토의 GMO종인 라운드업 레디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와인드업 걸들은 라운드업 레디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다. GMO가 그러하듯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와인드업 걸은 그러나 인간들에게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그릇된 방향으로만 쓰이게 된다. 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탐욕을 품고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갈등하는 사이에서 와인드업 걸만은 아무런 탐욕 없이 순수한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신인류로서 와인드업 걸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어쩌면 유전자 조작이 필요한 것은 콩이나 돼지가 아니라 인류일 지도 모른다
. 우리는 탐욕의 DNA를 제거하지 않는 한 신인류로 나아갈 수 없다. 탐욕 앞에 기다리는 것은 자멸뿐이다.




◎  종자기업에 관한 내용은 2011년 2월 27일에 방영된,  KBS 1TV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를 정리한 것입니다.


영진공 self_fish

희망을 구걸하는 시대



희망은 근원적인 거였다.

국민학교 입학 전 내 희망은 산타의 흰수염을 잡아채면서 실재하는 신화를 구경하는 것이었고 입학후 내 희망은 5층짜리 건물에 1층 만화가게를 세 주어 공짜로 실컷 만화를 보는 것이었고 중학교부터는 온통 프리섹스의 희망이 마음 가득 했었다.

고등학교 들어 대학생만 되면 중학교의 그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지. 사실 희망은 될 턱이 없는 거잖아. 근데 왠걸? 그게 반쯤은 되더라고. 고마워 오렌지족. 주는 게 쿨하다고 생각한 20세기 마지막 유흥의 끝을 붙잡고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어.

그리고 사회에 버려져서는 조금 더 많은 돈,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안락한 일, 조금 더 재밌는 삶이 희망인 거 같았어.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나니 이제 30대가 몇일 뒤면 끝나는 나이가 되었네.

나이를, 먹으니 희망은 나에게서 자식에게로 넘어가더라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희망이 내 의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서 웅크리고 있더란 거지.

아이의 학업 아이의 행복 아이의 재능 아이의 가치관 아이의 능력 그리고 미래.

문제는 미래,

공부야 팔자고, 행복이야 내가 열심히 살면 되고 배울 것이고, 재능이야 타고난 것이니 지 알아서 할 것이고, 가치관이야 부모인성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안심되고, 능력이야 내가 뒷바라지는 할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미래는 내가 담보가 안된다.

이명박, FTA 이런 거 아니더라도 세상이 이젠 20세기만큼 기회가 안주어질 것 같아.

자본이 이념을 삼키고, 정의를 묵살하고, 주권을 통제하고, 권리를 목조르며 오직 더 큰 자본에게만 종속되는 세상.

독재의 시대만 해도,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20세기만해도,

정권을 바꾸면, 군부를 타도하면, 21세기가 되면 바뀔줄 알았는데

이젠 희망이 없어 보인다.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자본에 종속되는 보니 희망 같은 게 보일턱이 있나.

살아남아 악착같이 기득권이 되려고 누구 못베고 살듯한데

내 애한테 잔인한 자본의 속성과 비굴함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제 40줄에 들어서면 애비 이빨빠진 늙은이 눈치 챌텐데

뭐라 희망을 말할 게 없다.



영진공 그럴껄



망나니 종자기업들이 부른 미래 참극(1), “와인드업 걸” (The Windup Girl, 2009)


* 저자: 파올로 바치갈루피
* 역자: 이원경
* 펴냄: 다른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노라면 미래는 응당 암울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SF계의 우등상을 줄줄이 수상하며 영미권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렸던 [와인드업 걸]역시 현재의 골치덩어리들을 모아 가카의 얼굴짝 만큼이나 암울하게 변해버린 세계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여타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SF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소재가 눈에 띤다. 작가는 우선 개연성 있는 세계상을 묘사하기 위해 현재 문제가 되는 화석연료의 고갈, 자원전쟁, 지구온난화, 신종 전염병 등으로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런 것들이야 다른 SF작품들에서도 흔히 차용하는 소재들이다. [와인드업 걸]은 여기에 세계 식량을 독점하고 있는 다국적 종자기업을 우리 미래를 똥칠할 요소의 하나로 추가하고 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미래세계는 재앙의 종합선물세트로 인해 넝마가 되고 인류는 제한된 지역 안에서 안주하는 수축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절대적으로 희소해진 화석연료로 인해 인류문명은 근대 이전의 기술사회로 되돌아가 다시 운동 에너지에 의존한다. 동물을 이용해 스프링을 감아 운동에너지를 저장해 새로운 동력원으로 사용하고 컴퓨터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그러기 위해선 칼로리가 필요하다. 즉 음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수축시대를 지나 다시 팽창 시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 속에서 이전 시대에 이미 세계 식량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 종자기업들은 자사의 GMO종자에 전염병이 퍼져 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원인 중 하나였지만 이렇게 칼로리가 중요해진 시대 분위기로 인해 계속해서 그 권력을 잃지 않고 다시 세계 위에 군림한다.

이야기는 이런 다국적 기업에 맞서 쇄국정책을 취하며 철저하게 자국의 종자를 지켜내려는 태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다국적 기업들은 산업 스파이를 사업가로 위장시켜 종자를 수집하고, 한편으론 태국 내 권력다툼을 배후조정하며 어떻게든 태국을 집어삼키려 한다. 태국정부와 종자기업 간의 암투, 태국 내 권력 다툼, 인종문제와 유전자 조작으로 발생한 이름모를 전염병들 속에서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연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다국적 종자기업은 무슨 헛짓꺼리를 하고 다니길래 이렇게 당당히 세계를 망치는 주인공으로 SF작품에 출연하게 된 것일까?

[와인드업 걸]에서 칼로리 회사라고 일컫는 다국적 기업들은 유전자 조작 식물로 식량을 독점하며 거대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태국정부를 압박한다. 이는 지금 세계를 무대로 양아치 짓을 일삼고 있는 다국적 종자기업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세계를 망치는 주인공으로 이 작품에 낙점된 것은 너무나도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현재 몬산토를 위시한 이런 거대 다국적 종자기업들은 그들이 개발한 GMO종자를 앞세워 세계의 종자시장을 집어삼키고 있다. 대부분 미국기업인 이들 종자기업들이 빠르게 GMO종자를 개발해 세계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전세계 GMO종자의 87%를 몬산토에서 개발하였다.

애초부터 토착종이 부족했던 미국은 미래의 식량 확보를 위해 20세기 초부터 세계 각지의 종자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동아시아 지역에도 1929년에 식물학자를 파견하여 4500여종의 종자를 수집해 가기도 하였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이 보유한 식물종자원은 65만종, 세계 1위의 식물종자원 보유국이 되었다. 이렇게 수집한 종자를 미국은 민간 종자회사의 연구에 지원하였고 풍부한 종자 샘플을 이용하여 미국의 종자회사들은 현재의 GMO종자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식량확보를 위해
세계각지의 종자를 수집하도록 지시하였다
.









영진공 self_fish

미국이라는 동화는 이제 없다


아, 미국.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던 그 나라.
그 나라엔 초콜릿이 산처럼 쌓여있고, 코카콜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으며, 석유가 화산처럼 분출하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겐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고 언제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팝송이 있고 마음 내키면 아무데서나 뽀뽀할 수 있다 했다. 오죽하면 포르노까지 세계 최고라 하지 않았던가.

그랬었다.
그렇게 그 나라는 낙원이었다.
그 나라에선 흑인, 백인, 아시아인, 중남미인, 러시아인 할 것 없이 다 어울려 잘 산다 했다. 차별 없이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Land of Opportunity라 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난 아사 직전의 어느 소녀는 미국에 와서 엄청난 돈과 명성을 얻었다. 러시아 벽촌에서 살던 어느 아이도 미국에 와서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과 명성을 얻었다. 아시아에서 온 어느 소년도 미국에서 큰 돈을 벌고 상상할 수 없이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단다.

그런데 그 동화는 이제 없다.
젖과 꿀이 끊이지 않고 흐를 것 같던 그 땅이 이젠 더 이상 낙원이 아닌 것이다.

그 곳에 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은 한 끼 밥을 벌기 위해 고달피 땀을 빼야 하고 하루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부유한 이들도,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자기들끼리 고고하고 우아하게 살아지질 않는다.

글쎄, 저 위 아주 까마득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수들의 삶은 어떨지 몰라도.

그런데 도대체 왜 언제부터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던 미국이 이렇게 돼 버렸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거기도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다.

다만 화려한 앞 모습 뒤에 애초부터 함께 있던 어두운 부분이 가리워지기도 하고 또 보는 이들이 애써 보려 하지도 않았기에 그 곳이 마치 낙원처럼 또 동화의 나라처럼 보였던 것뿐이다.

그 나라와 그리고 거기에서 유복하게 사는 이들이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내어 그걸 가지고 부와 행복을 누렸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의 것을, 혹은 스스로 제공케 하고 혹은 뺏어오고 혹은 더 많이 가지고 하여 그렇게 멋져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멋져 보이는 꺼풀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니 거기도 별 다를 것 없이 사람끼리 부대끼고 부딪치고 그러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냥 그런 세상이다.

오랫동안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꺼풀 속의 그 모습이 이제 더 이상 숨겨지지 못하고 있는 대로 내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동화 속의 나라는 저 멀리 별 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다고 애써 믿고 살던 그들이 더는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동화 속의 나라는 저 혼자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걸 떠받치는 다른 쪽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동화 속의 나라에서는 각 개인의 범위를 침범치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내가 잘 나서 나를 챙기면 되고 다른 이들은 스스로 자기를 챙기면 된다고, 그러다 보면 모든 게 다 잘 되는 거라 하였다.

그런데 결국 내가 잘 나서 더 많이 챙기고 더 행복한 이면에는 잘 나지 못해서 덜 가져가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남 보다 더 많은 걸 가져가려면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 하고 부딪혀야 한다. 우아하고 품위있는 선자(善者)에게 남이 스스로 부(富)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우악스럽거나 교활하게 부나 명성을 추구하는 이에게 비슷한 부류가 아니라면 스스로 존경과 사랑을 보내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면 저 멀리 구름 위에 있으면 안 되고 원하는 게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남들도 원하기에 그걸 더 가지려면 서로 부딪혀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나누기도 해야 한다.

다 가질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가지려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에게 뭔가 주어야 한다.
한 동네에서 왕자인 사람이 다른 동네에서는 조직폭력배 수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다.
그게 자본주의 미국이 사는 모습이다.

이제 미국에 더 이상 동화 속 해피엔딩은 없다. 자신들에게 없는 해피엔딩을 남과 함께 나눌 여유나 의도는 더더구나 없다. 있다고 해도 그건 해피엔딩이라기 보단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사건들일 뿐이다.

영화 “21그램”에서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분)는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달갑지않은 현실을 꼼짝 없이 받아들이며 오늘 하루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저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아간다.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