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검열] 영화 <프랭키와 쟈니> 중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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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개봉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랭키와 쟈니 (Frankie & Johnny).

알 파치노와 미셸 파이퍼 주연의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http://nowhereman.co.kr/entry/프랭키와-쟈니)에서 자세히 다룬 적이 있으니 시간 많으신 분들은 들러보시라.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중요한 계기는 한 피아노 소품곡인데,
그게 바로 드뷔시의 “달빛(Claire De Lune)”되겠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인 연극의 제목이 “달빛 속의 프랭키와 쟈니 (Frankie and Johnny in the Clair De Lune)”이다.

영화 속에서 쓰여지는 피아노 소품곡은 그저 소품으로 쓰이기 십상인데,
이 영화에서의 “달빛”은 참으로 멋진 하나의 배우가 된다.

그래서 오늘 준비한 가사 검열은 드뷔시(Debussy)의 “달빛”이다.
첫 번째 동영상은 이 곡이 흘러 나오는 영화의 엔딩 장면이고,
두 번째는 이 곡을 배경으로 영화의 장면들을 모아 놓은 동영상이다.

그럼 모두들 즐감~ ^.^

영화 <Frankie And Johnny> 중에서 …
Clair De Lune
By Claude Debussy (1905)  


영진공 이규훈

<화려한 휴가> – <디 워>와 막장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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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와 막장상박이다, ‘화려한 휴가’.

인물은 번데기가 이 영화를 보고는 보톡스 맞고 “난 주름 폈어요”라고 외칠 만큼 뻔하고, 대사는 트랜스 지방 십만 갤론으로 튀겨낸 감자튀김에 마요네즈를 얹은 만큼 느끼하다.

군중씬은 돈이 없었는지 모인 사람 머릿수를 보여주기 싫어 카메라를 가깝게 잡아 컷을 다 쪼개놔 답답하고, 개떡같은 모양새에 붙여 불필요하게 선정적인 장면까지 끼어 있으니, 예를 들면 ‘잘못했다’고 비는 시민을 ‘잘못했으면 매를 맞아야지’라며 패는 악랄한 표정의 진압군 앙각샷 같은 장면들은 ‘간첩 잡는 똘이장군’에서 늑대로 분한 공산당을 보는 불편함을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그것도 2007년에 정치적 입장만 달리한 버전으로 느끼게 만든다.

더욱이 슬픈 건 5.18이라는 훌륭한 영화적 소재를 이렇게 찐따로 만들어 놨다는 사실과 함께 이 영화의 제작자나 감독들보다 더 훌륭한 재원이 다시 5.18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재탕이라는 이유로 근 5년간은 만들기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화려한 휴가’….

‘디워’와 비교해 엉망인 수준으로는 결코 손색없다.

생각해보니 오마이뉴스는 이 영화에 몇날 몇일 여러 지면을 할애했다. 그 관심이 디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이 영화를 본 고등학생 토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봤다는 문자중계까지 상당한 치중이었다. 그런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지금까지 보지 않은 이유는 영화를 보고 슬퍼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 현실, 그걸 위로하려고 할애하는 시간까지 현실의 괴로움에 묻히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그건 오마이뉴스의 호들갑에 따른 착각이었고, 영화는 예상을 3만 킬로미터 벗어난 엉망진창. 오마이뉴스의 정치적 의도가 더 밉살스러워진다.

나는 단연코 오마이뉴스의 애독자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2번 이상 꼬박꼬박 접속하고 그리고 자주 오마이뉴스에 상주해 있다. 여러 시사이슈에서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분명 오마이뉴스에 애증이 있는 오랜 독자다.

그런데 얼마 전 오마이뉴스 마빡에는 ‘문국현’이 걸려 있다. 그것도 일주일 가까이 문국현이 내려온 적이 없다. 문국현이 최근 신문을 장식할 수 있는 팩트는 최근에 대선 출마를 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그런데 그 팩트 하나로 문국현을 이처럼 오래 그리고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매체는 오마이뉴스가 유일하다. 심지어 중앙일보 인터뷰 전문을 중복게재하면서까지 문국현을 다루고 있다.

문국현이 싫고 좋고를 따지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론 오히려 호감이 간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매체가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와 같은 편파보도를 해도 되나 의심스럽다. 사실 오마이뉴스는 지난 대선 때도 노무현 기관지 소리를 들었다. 대선 때가 다가오니 다시 변신을 시도하나 본데, 그리고 그 인물이 이번엔 문국현인가 본데 그 변신이 고약하긴 마찬가지다. 나중에 오마이뉴스 사장이나 편집장이 전두환 아들 전재국으로 바뀌어 대선후보 장세동을 민다면 그땐 대체 무슨 논리로 반대할 것인가?

이야기가 많이 샜다. ‘디워’ ‘광시곡’ ‘비천무’ 따위와 막장상박 ‘화려한 휴가’ 덕분이다.

영진공 철구

플래툰, 한국 기독교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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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툰(Platoon)이라는 잡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마 가장 오래된 밀리터리 취미인(이라고 쓰고 오타쿠라고들 읽는다)들을 위한 잡지일 것이다.
물론 같은 밀리터리 취미인인 나는 이 잡지의 오랜 독자다.

석사과정 시절, 학술지의 논문 글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전문적인 내용의 글을 쉽게 쓰는 것의 미덕을 처음 깨우쳐준 잡지이기도 하다.

여기다 플래툰 이야길 쓰는 이유는, 이 잡지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종군기자가 있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다. 단 한명, 태상호 라는 기자다.

http://jabo.co.kr/sub_read.html?uid=21103§ion=section6
위 기사에서 442ndRCT 라는 닉네임이 아마 태상호 기자일 듯.

작년에는 아프간에서 미군들의 게릴라수색 작전에 동행했고
올해는 이라크에서 급조폭발물(IED) 검색작전에 동행하며 쓴 생생한 기사를 연재 중이다.
(물론 틈틈이 리인액트먼트 행사에도 참가해서 관련 기사를 송고한다.)

내가 알기로 조중동에도 이 정도로 깊이 들어간 기자가 없을걸?
그런 면에서 플래툰은 내가 아는 국내 언론중에 제일 쓸만한 언론사다. ㅎㅎㅎ

여튼, 이번 호 플래툰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에 몇페이지를 할애했고,
그 중에는 이 태상호기자의 2006년 아프간 체험담이 한꼭지를 차지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2006년에 우리나라 기독교 단체인 인터콥 이라는 곳에서 아프간에 평화축전이라는 행사를 기획했다.
천명이 넘는 국내 기독교인들이 거기가서 종교행사를 벌이려던 것이었다.

문제는 아프간 정부측에 처음 행사내용을 설명할 때는 단순 문화행사라고 했다가
정작 인원이 전부 아프간에 입국한 다음에야 기독교 종교행사라고 말을 바꿨다는 거.
덕분에 그 행사를 허가한 아프간 정부관료는 직위해제 당했고 아프간사회는 발칵 뒤집혔댄다.
정부 관계자가 어떻게 무마해서 행사는 안하는 것으로 하고 마무리되었지만 그 여파는 상당히 컸다.

사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 아프간에서 종교문제로 한번 발칵 뒤집혀진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압둘라만 이라는 41세의 아프간 남자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던 것.
단 한명이었지만, 아프간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압둘라만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정부에 압박을 넣었고
미국은 반대하고 해서 정부도 고민고민 하다가 그를 정신병자로 간주해 추방하는 것으로 해결봤다.

그리고 나서 이 한국 기독교단체의 평화축전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동의부대 등의 활동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평화축전 사건하나로 한국인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급작스럽게 커졌다는 거다.
아프간 사람들이 특별히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란다. 단지 종교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피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기독교도들이 계속 그런 사고를 치면 중립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건 후에 아프간에 들어갔던 태상호기자는 중국인 행세를 하고 다녀야 했단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취재불가는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주문을 안받아주더라는 거…-_-;;;
아예 아프간 정부당국자가 충고하더란다. 절대로 어디가서 한국사람이라고 말하지 말고 여권은 깊숙히 숨겨두라고..
그 평화축전 때문에 이전부터 활동하던 의료봉사단이나 (장기활동중이던) 선교자들 마저 곤경에 처했다.
한동안은 입국 자체가 금지되었고, 그 이후에도 태상호 기자와 비슷한 수난을 겪어야 했다는 거.

단 한명이 개종해도 그 난리인 나라에서 감히 기독교 종교행사를 벌이고
대규모 선교를 하겠다는 발상은 좀 무시무시한 거 아닌가?

엊그제 어떤 행사장에 갔다가, 여전히 사람 죽어도 선교하러 가겠다고 외치는 어떤 목사의
그 행사의 취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교(거기서 왜 설교를?) 들으며
한국 기독교도들의 이 맹목적 선교정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지하드(성전)나 기독교계의 맹목적 선교나 비슷하다.
둘 다 주변의 피해나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죽음이 내세에서의 영원한 보상을 보장하는 열쇠라 믿는 점에서,
그리고 지도자들은 뒤에서 조종하고 정작 가서 죽는 건 하부조직원들이라는 점에서….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