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2004)에서 두드러졌던 초현실적인 비주얼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이르러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작에 비해 컷의 수도 많고 무엇보다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세트 미술과 보정 작업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 인공미로 시종일관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작의 낙관적인 정서를 따르지 않고 다소 무겁고 진지한 쪽으로 흐르는 편입니다. 중간중간에 화려한 뮤지컬 장면이 삽입되고 터무니 없이 코믹한 요소들마저 들어가긴 하지만 영화 전체는 마츠코가 어떻게 53세의 ‘혐오스런’ 폐인의 모습으로 죽게 되었느냐는 의문을 풀어나가는 미스테리극입니다. 물론 전체적인 형식이 미스테리극일 뿐, 내용은 유년기로부터 시작되는 마츠코와 그녀의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간에 감방 장면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도중에 <친절한 금자씨>(2005) 생각이 났더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송자(松子)씨, 마츠코는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인생을 꼬이게 만든 그 놈과의 재회에서 삶의 희망을 다시 찾더군요. 야쿠자와의 사랑이라는 인생의 벼랑 끝에서 “그래도 외톨이가 되는 것 보다는 낫다”는, 그냥 말로만 들어서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말을 되뇌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던 관객은 같은 말을 하는 마츠코의 표정에서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카타니 미키의 신들린 연기 때문이기도 하고 철 지난 호스티스 신파극을 완벽하게 재구성한 나카지마 테츠야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 영화 짜증만 난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될 여지도 있습니다만, 다른 건 다 접어두고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 영화는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Beatles의 노래들로 가득한 이 영화. 2007년 개봉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 최근에야 적은 개봉관에 잠깐 걸렸다가 내려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던 생각은 … “왜 우리는 서로가 살고 싶어하는 대로 놔두려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었다.
남을 위해서, 고향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라고 떠들어대는 이들 … 결국은 자기를 위해 그러면서 말이다.
오늘의 가사 검열은 이 영화에 나오는 <Let It Be>를 골라보았다.
Let It Be. 참 해석하기 어려운 말이다.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네 할 일을 열심히 하라”, “다 놓아두고 훌훌 털어버리라”,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따르라”, “세월이 흘러 가면 다 좋아지리라”, “거부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
다 맞는 해석이다.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상황에 따라 의미하는 바를 부여하면 된다.
그럼 영화 속 장면을 통해 이 곡을 감상해보자.
<Across The Universe>에서 …
음악만 …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성모 님은 다가오셨지, 그리고 지혜의 말씀을 전해 주셨네, “Let It Be.” 내가 어둠 속에 갇혔을 때, 그 분은 내 앞에 나타나셨지, 그리고 지혜의 말씀을 전해 주셨네, “Let It Be.”
And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이, 체념 속에 살아갈 때, 그 곳에 대답이 있으리니, Let It Be. 원치않는 이별이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터이니, 그 곳에 대답이 있으리라,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그래요, 대답이 있을 거예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실 거예요, Let It Be.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Shine until tomorrow, let it be.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Mother Mary comes to me There will be no sorrow
구름이 잔뜩 낀 밤일지라도, 그 곳에 여전히 나를 비춰주는 빛 한 줄기가 있어요, 그 빛은 밤이 걷힐 때까지 비춰주어요, Let It Be. 그리고 음악 소리에 깨어날 때, 성모 님은 내게 오시죠, 더 이상 슬픔은 없을 거예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let it be. There will be and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그래요, 대답이 있을 거예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실 거예요, Let It Be.
장편 데뷔작 <말아톤>(2004)으로 첫 타석 홈런을 때린 정윤철 감독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다시 한번 “지금 아니면 못해볼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복수는 나의 것>(2001) 의 제작 동기를 밝힌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게 만드는군요. 그러나 박찬욱 감독이 정말 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에 어느 영화감독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을 생각을 미리 하면서 영화를 찍겠습니까. 영화를 만들 때에는 누구나 최소한 ‘예상 밖의 큰 호응’을 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세번째 장편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를 개봉한 정윤철 감독도 <좋지 아니한가>를 만들 때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생각했다”더군요. 데뷔작을 통해 얻은 성공으로 영화 감독으로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천했었고 그리하여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작년 3월에 개봉했던 이 영화를 2007년의 베스트로 꼽으신 분들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는 좋으면 “열라 좋다”는 식으로 해야지 “좋지 아니한가?” 하는 애매한 표현으로 제목을 잡으면 안된다고 어떤 분이 농담삼아 얘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좋지 아니한가>라는 제목은 “이 얼마나 좋으냐”라는 뜻의 질문형 제목인 거죠. <좋지 아니한가>는 제목 만큼이나 두리뭉실하는 간접 화법으로 초지일관하는 작품입니다. 상식적인 의미에서는 전혀 좋지 아니한 가족 구성원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가족이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 아니냐고 묻는 영화입니다. 달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비밀에 관한 은유처럼 진실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숨겨져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수 관객들에겐 이런 은유나 간접 화법이 영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잘된 연출이긴 합니다만 영화 전체적으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천호진)와 하은(정유미) 간의 원조교제 스캔들을 그대로 뭉개버린 채 끝내고 있다는 점과 다른 영화평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유대를 다른 이들과의 패싸움으로 퉁 쳐서 봉합하고 있는 모양새가 그리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매우 기발한 상징과 예상을 깨는 유머 감각이 전편에 깔려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후련하지 않은 관계로 전부 그 빛을 잃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만족스럽지가 않으니 캐스팅과 그에 따른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구성에서도 허술했다는 인상 마저 남기고 마는 작품이 <좋지 아니한가>입니다. 한국영화 중에 이런 영화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아니한가, 맞는 말입니다만 사실 이런 정도의 한국영화는 80, 90년대에도 적지 아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