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의 죽음

 

 


 


 


죽었다, 드디어 플래시가 죽었다. DC 코믹스의 플래시 말고 어도비 모바일 플래시 말이다. 이젠 안드로이드 앱스토에서도 플래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모바일 플래시가 왜 죽었는지에 관해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죽은 잡스가 산 어도비를 엿먹였다는 얘기부터 시작해, 어도비가 이미 AIR와 HTML5로 갈아탈 준비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순서였다는 주장도 있고, 그게 죽든 살든 어차피 대한민국이란 나라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거니와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젖은 타올의 곰팡내를 없애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정보라며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음, 글쎄, 일단 젖은 타올은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확실한 건, 스티브 잡스가 모바일 플래시의 죽음에 별로 대단한 공헌을 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미 안드로이드 OS 시장은 iOS 시장보다 커졌다. 어도비가 진작에 터치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모바일 플래시를 내놓고, 구글과의 협상을 통해 아예 안드로이드 OS에 기본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면, 애플도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그러지 않았다. 잡스와 멱살잡이를 하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어도비의 수익 모델은 개발 툴이며 이미 어도비가 드림위버에서 HTML5 지원을 하는 데다가 Edge라는 HTML5 디자인 툴을 내놓았기 때문에 모바일 플래시가 죽는 건 당연한 순서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한쪽만 본 단견에 불과하다. 플래시 역시 엄연한 어도비의 수익 모델 중 하나였다.


 


물론 최종 사용자들은 플래시 런타임이 무료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웹에서 배포되는 플래시 플러그인이 공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사용할 땐 얘기가 다르다. 기업에서 자기네 기기에 플래시 런타임을 프리인스톨해서 출하하려면 어도비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즉, 모바일 플래시의 개발 중단은 장래유망한 (줄 알았던) 돈벌이 하나를 통채로 포기했다는 뜻이다. 어도비 입장에선 입맛 씁쓸한 일일 수밖에 없다.


 


 




 



어도비는 작년에 모바일 플래시를 포기하는 대신 플래시 개발자들이 어도비 AIR로 (주로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주력할 거라고 발표했다. 플래시 개발자들은 귀가 솔깃할 얘기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AIR는 플래시와 웹킷을 중심으로 벼라별 API를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갖다붙인 런타임 엔진이다. AIR앱은 네이티브 개발 툴로 만들어진 앱보다 퍼포먼스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원 API의 한계로 인해 개발 역시 수월하지 않다. 이게 모바일 앱 개발의 중심이 되길 기대하느니 LG 트윈스가 올 시즌 잔여경기를 전승으로 이끌고 4강에 진출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길 바라는 게 낫겠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 플래시는 어째서 미움받는가? 2 ) 어도비는 플래시를 개선하겠다며 공약속을 남발하며 기업 시장에서 불신을 키웠다. AIR 역시 플래시 엔진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한 무거운 퍼포먼스와 빈약한 API가 발목을 붙잡고 있다.


 


모바일 플래시의 개발 중단의 여파는 장기적으로 PC브라우저에까지 미칠 것이다. 플래시 플러그인은 점차 사용 빈도가 떨어질 테고 그 자리를 다른 신기술들이 채울 것이다. 그게 HTML5가 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리고 플래시 개발자가 줄어들게 되면 플래시 엔진을 중추로 하는 AIR 역시 존속을 위협받게 될 게 뻔하다.


 


 





 


어찌 되든간에 어도비에겐 심각한 타격이 아니다. 어도비는 이거 말고도 돈 벌 거리가 많은 회사니까. 하지만 플래시나 AIR에 기대고 있던 개발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탈출하지 않는 사람은 그 배의 선장이거나, 아니면 정신나간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뿐일 테니까 말이다.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