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TV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CES 2012에서는 다양한 신제품이 발표되었다. TV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OLED TV 였고 그 다음은 스마트 TV였다. 특히 전세계 TV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TV 플랫폼은 관심의 촛점이었다.


당장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국내외 평가를 종합해 보면 호의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상과는 달리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반응속도나 사용자 UI는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siri 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음성인식 기능에 동작인식까지 덤으로 갖췄고, 스마트폰과의 콘텐츠 공유 기능인 Allshare는 애플의 airplay보다 훨씬 더 쓸만해 보였다. 그리고 앵그리버드가 아무 문제 없이 휭휭 돌아가는 모습을 선보이는 장면에선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WoW!

하지만 궁금한 건 이거다. 내가 이걸 왜 사야 하는 거지? 50인치 대화면 TV에서 앵그리버드를 하려고?

아무래도 대부분의 스마트TV 기획자나 개발자들은 스마트폰(이라기보다는 아이폰)의 성공 공식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즉,

1) 뛰어난 사용자 UX,
2) 오만가지 앱이 득시글거리는 앱스토어,
3) 인터넷과의 연동

이 스마트 TV를 성공시킬 열쇠라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스마트”란 단어를 공유한다 할지라도 폰은 폰, TV는 TV다. 둘의 성공 공식이 동일할 리 없다.

핸드폰은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주목적으로 하는, 그 태생부터 굉장히 능동적인 기기다. 데이터 통신망을 이용해 웹브라우징을 하고, 짧은 문자 메시지를 긴 이메일로 확장시킨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게임은 이미 피쳐폰 시대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런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편리한 UI를 갖춰야 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거실 TV는 굉장히 수동적인 기기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무식한 게으름뱅이를 위한 바보상자이다. 쇼파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귤을 까먹으며 아무 생각없이 드라마를 보다 말고 갑자기 TV 화면에 이메일을 띄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거라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편이 훨씬 빠를 텐데.

하지만 TV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VOD(Video on Demand)다.

여기서 잠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자. 미국은 TV소유 세대수의 약 8할이 케이블TV나 위성방송, IPTV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부터 이들 대형 케이블 TV업체들은 iPAD를 비롯한 타블렛 대상의 방송 서비스에 일제히 힘을 쏟기 시작했다.

타임워너 사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 당시 정시방송의 주당 시청 시간은 31.7시간이었지만 VOD(video on demand) 시청 시간은 주당 0.4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에는 VOD의 시청 시간이 주당 2.5시간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2.5시간이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건 고연령층까지 포함한 평균치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세대만을 계산에 넣는다면 이 수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요즘은 내 주변에서도 셋탑 박스나 IPTV에서 필요할 때마다 영화를 사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꿋꿋하게 토렌트나 웹하드를 뒤지는 인간들의 숫자가 훨씬 많긴 하지만.

MP3 플레이어의 킬러 콘텐츠가 음악이고, 스마트폰의 킬러 콘텐츠가 앱이라면, 거실 TV의 킬러 콘텐츠는 영상일 수밖에 없다. 아이팟은 음악을 유통하는 뮤직 스토어를 통해 MP3 플레이어 시장을 평정하고, 아이폰은 앱을 유통하는 앱스토어를 선보이며 핸드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그렇다면 거실 TV가 스마트 TV로 진화하기 위한 열쇠는 자명하다. 그것은 영상물 유통의 혁신에 있다.

어느 나라든  TV 콘텐츠 시장에서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주파수를 독점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국이다. 그 다음은 지역별로 난립한 케이블 TV 회사들이다. 이들 방송에 비하면 DVD, 블루레이, VOD 등 홈비디오 시장의 비중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방송 시장의 총 매출 규모는 10조를 넘어가는 반면, 홈비디오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3, 4백억 정도에 그칠 뿐이다.

지난 수십년간 TV는 브라운관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HD 해상도로 바뀌고, 아예 브라운관이 사라지고 PDP와 LCD로 바뀌는 등, 재탄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바뀐 건 물리적인 부분일 따름이었다. 실질적으로 콘텐츠를 틀어쥔 게 방송국이란 사실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가전회사는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했고, TV는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드라마나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위한 깡통에 불과했다!




그런데 … 지금 가전회사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이다. 방송국 눈치를 보지 않고, 직접 방송국에 맞먹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말이다. 그것도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전세계 TV 시장에서 탑을 달리는 삼성전자의 작년 한 해 평판 TV 판매량은 대략 4300만대, 올해 목표는 5천만대라고 한다. 만일 삼성이 자사 TV 물량을 고스란히 스마트 TV로 전환한다면, 그리고 공중파 방송국에 준하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개발해 탑재시킨다면, 매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필적하는 5천만명의 시청자를 기본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만한 숫자라면 VOD는 뒤로 미뤄놓고 광고만 팔아도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저작권자들과 지리한 협상을 통해 컨텐츠를 확보하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국가에선 어떤 식으로 컨텐츠를 공급할지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숙제는, 공중파나 케이블보다 더 쉽고 간단하고 편리하게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중파 방송은 안테나만 세우면 볼 수 있다. 케이블 TV에 전화 한 통만 넣으면 채널이 순식간에 백여 개로 늘어난다. 그렇다면 스마트 TV는 전원선만 꽂으면 즉각 수백 개의 채널을 저렴하게(또는 공짜로), 그리고 손쉽게 볼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워야 한다. 대체 어떤 식으로?

글쎄, 그걸 잘 모르겠다.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궁리해야 하는 건 삼성이나 LG같은 제조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스마트 TV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우겨넣는데 급급한 것 같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TV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국가의 방송국을 능가할 수도 있는 절대적인 방송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기껏 내놓은 스마트 TV라는 건 스마트폰의 화면을 가로세로로 뻥튀기한 물건에 불과하다.

하긴 뭐, 아이패드도 처음엔 아이폰의 뻥튀기판에 불과하단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패드는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서 만지작거릴 수도 있고, 후장을 자극하는 치질의 고통과 맞서 싸우기 위해 화장실에 가져갈 수도 있다.
 

반면에 거실 TV는 …… 흠, 더 이상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당신은 그 리모컨조차도 맘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건 당신 게 아니라 사모님 거니까!


영진공 DJ Han



 

“백룡 레전드”, 일본 원전의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 원자력 마피아 편


먼저 일본 동북 대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한다. 국적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 같은 인류이니까.

당면의 문제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후쿠시마의 원전이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 발전기가 박살나는 바람에 폭주하기 시작한 원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쿠시마 인근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뿌리고 있다.

도쿄 전력, 원전 공급업체, 일본 자위대, 소방청 등등에서 많은 인력이 파견되어 방사능을 뒤집어 써 가면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끝에 사건은 다행히 어느 정도 수습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정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책임을 거의 독박으로 뒤집어 쓴 것은 후쿠시마 원전의 경영 주체인 도쿄 전력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망할 놈들이 초기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전혀 엉뚱한 데 불똥을 튀겼으니, 그건 일본의 [주간 만화 고라쿠]에 연재되던 만화 [백룡 레전드(Legend)]다.

[백룡 레전드]는 일종의 야쿠자 만화로, 최근 새로운 에피소드 [원자력 마피아] 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 온갖 비리를 일삼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을 상대로 하는 에피소드 같은데 – 여기 나오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이 도쿄전력(東京電力)이란 건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이 에피소드는 3월 18일 잡지에 실린 것을 끝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실제로 일어난 원전 사고에 편승한다는 부담을 뒤집어 쓸까봐 겁이 났던 건지, 아니면 도쿄 전력에서 압력이 들어온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연재중단이 발표된 직후, 일본의 투채널 등에선 이 만화의 최신 에피소드가 퍼지면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만화일지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 과연 여러 가지 의미로 오싹해지는 만화였다.

일본에서 출간되는 잡지인지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성을 고려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의미에서 대충 발번역을 붙여 일부를 올려본다. 작가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바란다.

[백룡 레전드 – 원자력 마피아 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너희들은 원전의 현실을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주인공 (?) : “원전의 현실….?”
안경 : “원전의 내부에선…. 매스컴에 발표되지 않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단 말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그런 걸 전부 다….. 돈과 권력으로 덮어버리는 게 동도전력의 습성이다!”
숨어보는 자 : “미츠모토(아마도 안경) 녀석, 뭘 말할 셈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히칸 : “원전이란 게 그렇게 사고가 많은 거야?”
안경 : “원전이란 건, 원자로나 터빈은 두말할 것도 없고 – 그걸 작동시키기 위해 수십만개의 파이프가 사용되고 있어. 말하자면….. 원전은 배관으로 이뤄진 발전 시스템이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만일 주요 배관이 날아가 버리면….. 체르노빌 급의 원전사고가 일어나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그 중요한 배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고 있어?”
모히칸 : “그, 그야 당연히 중요한 배관이니까 최고 기술자를 써서 만들겠지.”
안경 :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모히칸 : “아, 아니란 말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뽀글머리 : “심하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공사가 되겠어?”
안경 : “될 리가 없지!”
안경 : “이를테면 용접 도중에서 파이프에 작은 구멍이 뚫릴 때가 있어. 그런 구멍은 배관이 깨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파괴검사를 해서 구멍의 유무를 체크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검사는 주로 컬러 검사 방법을 써. 먼저 빨간 침투액을 파이프에 칠하고…. 그 위에 하얀 스프레이를 뿌리지. 깨진 데가 있으면 그 흔적이…. 떠오르게 돼!”
안경 : “하지만 구멍이 나거나 깨진 파이프를 몇 번이나 수리해도 컬러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그래선 공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 현장에선 먼저 하얀 스프레이를 칠하지. 그러면 침투액을 칠해도 깨진 부분이 떠오르지 않아서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거야.”
뽀글머리 : “말도 안 돼! 그건 눈속임이잖아!”
안경 : “그건 그나마 나은 편이야….. 겨우 2미터의 파이프를 연결하는데 5센티미터나 벌어지는 바람에 연결할 수 없을 때도 있지. 그럴 때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3톤 급의 체인 블록을 몇 개나 파이프에 걸어서 잡아당겨 억지로 연결시키지!”
뽀글머리 : “그,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어떻게 되는 거지….?”
안경 : “파이프에는 항상 원래대로 돌아오려고 하는 압력이 걸리게 되겠지…..”
안경 :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파열할 수도 있어! 혹시 그게 주요 배관이었다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 : “체르노빌의 재연이 된다!”
모히칸 : “그, 그런…..”






아마 다음 편에는 동도전력의 거대한 어둠과 맞서 싸우는 야쿠자들의 활약이 그려질 예정이었을 것이다. 에피소드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는 바람에 이 뒤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어쨌든 여기 나오는 원전 이야기는 굉장히 설득력이 높다. 어느 정도 과장은 섞여 있겠지만 실제로 취재한 사실에 입각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읽다 보면 오싹해질 지경이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 해서 그 오싹함의 강도가 덜하거나 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을 주고, 눈속임을 일삼는 건 –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니까!


영진공 DJ Han

 

안드로이드는 백일몽을 꾸는가? (1/2)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열린 CES는 대성황이었던 모양이다. 삼성, LG, 소니, MS 등등 어지간한 IT 기업은 다 참가했으니까. 아, 애플 빼고.

직접 CES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기자는 물론, 멀리서 기사를 보며 입맛만 다시는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기업들이 내놓는 신제품에 집중되어 있다. 매끈하고, 상큼하고, 유려하고, 섹시한 S라인을 가진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의 사진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침을 질질 흘린다. 이야, 저거 죽여주는데? 매장에 나오기만 하면 당장 질러 주마!

그런데 CES에 전시된 쭉쭉빵빵 하드웨어에 넋이 나간 사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뉴스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아마존에서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시장에 뛰어든다는 발표였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아마존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구글 앱스토어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심사 과정이 있으며,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PC에서도 앱을 구매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초기 등록비는 99달러라지만 첫 해에는 면제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발자에겐 애플리케이션 판매가의 70% 또는 정가의 20% 중 큰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애플 앱스토어와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형태야 어쨌건간에 통신사는 물론 제조사들도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운영에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SKT, KT가 경쟁적으로 앱스토어를 열었고, 삼성전자도 영국에서 앱스토어를 런칭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아마존이 발 담근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야?

음, 글쎄, 하지만 달라질 게 있을 것이다. 분명히.

현재 구글 앱스토어의 초기 등록비는 25달러로 애플의 연간 등록비 99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앱을 등록할 때도 번거로운 심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자유 방임주의,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카오스가 도래했다. 쓰레기 같은 앱들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장이 열린 것이다. 못 믿겠다고? 그렇다면 구글 앱스토어를 열고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Hello World]와 [Test] 앱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건 뭐, 아타리 쇼크 ( http://mirror.enha.kr/wiki/아타리%20쇼크 ) 직전의 게임 시장과 비견해도 좋을 정도로 개판이다. 작년 말에 구글 앱스토어의 앱 숫자가 비공식적으로 10만 개를 넘었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실속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아, 물론 애플 앱스토어에도 쓰레기는 많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엔 [Hello World]나 [Test]는 없다. 애플에서 앱을 등록하기 전에 최소한의 품질 검토 과정을 거쳐서, 자격이 안 되는 앱은 등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지만, 거기 대해선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너무 복잡해지니까).

문제는 또 있다. 아이폰은 번거로운 탈옥 과정을 거쳐야만 크랙 앱을 설치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런 거 필요 없다. 크랙 앱을 다운받아 집어넣기만 하면 끝이다. 이 때문에 크랙 앱만 유통시키는 블랙 마켓 앱스토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물론 개발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구글 측에 공식 앱스토어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앱 정보를 충실하게 꾸밀 수 있게 해야 한다, 크랙 앱 설치를 어렵게 해야 한다, 쓰레기같은 앱들을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우리들의 구글은 그 모든 목소리를 상콤하게 무시하고 있다. 왜? 어째서? 뭣 때문에?

여기서 잠깐 구글의 정체성을 알아 보자. 음, 구글이 뭐 하는 회사지? 세계 제일의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가진 인터넷 회사?
아니, 천만의 말씀. 구글은 광고 플랫폼 회사다.

구글의 주요 수익원은 검색 엔진에 기반한 검색 광고를 대형 포탈 사이트에 납품하는 것이다. 이뿐이라면 오버츄어와 별 다를 것도 없겠지만, 구글에게 애드센스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애드센스의 등장은 전세계 블로거와 소규모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붙이기만 하면 딸라가 쏟아진다고? 이거야말로 빛이요, 소금이요, 진리일지어니 소리 높여 외쳐라, 할렐루야! 반야바라밀! 아리가또, 땡스!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 덕분에 애드센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애드센스가 안 붙어 있는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TV나 신문, 잡지가 가지고 있던 광고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구글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현재 구글이 올리고 있는 천문학적인 수익 대부분은 광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MS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먹고 사는 것과는 대조된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구글의 모바일 광고 시장 개척을 위한 첨병이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쓸 수 있게 공개한 건, 구글 경영진이 12월 말에 빨간 옷을 입고 남의 집 굴뚝이나 넘나드는 변태 영감탱이처럼 자비롭고 선량해서가 아니다.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하면,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 앱 개발에 달려들 테고 – 그리하여 자신들이 인수한 애드몹을 비롯한 각종 모바일 광고로 도배된 앱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구글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구도에서 구글이 원하는 앱은 유료 앱이 아니다. 광고를 붙인 – 그것도 구글의 광고를 붙인 무료 앱이다. 그래서 구글은 앱스토어의 품질 관리를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개발자들에게 공짜 전략을 채택할 것을 은연중에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요? 애플은 앱 판매비의 30%를 뜯어간다고요? 뭐 그런 도둑놈들이 다 있어! 걱정 마세요. 우리 구글 앱스토어는 개발자 분들에게 수익을 100% 그대로 되돌려 드린답니다. 에…… 근데 버는 게 없어서 품질 검토 같은 건 해 드릴 수 없네요. 개발자 지원도 기대하진 마세요. 예? 그래선 제대로 된 앱을 만들 수 없다고요? 에이, 왜 그러세요, 아마추어 같이 …… 대충 만들어서 공짜로 뿌리면 되죠. 공짜면 다들 미친듯이 달라붙는 거 아시잖아요? 뭐라고요? 그럼 돈은 어떻게 버냐고요? 그야 물론 우리 구글 광고를 붙이면 되죠! (오, 예!)

공짜 앞에 장사 없다. 인터넷 업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금언, 구글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이 믿음에 무게를 실어 주는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아이폰에서 대히트를 친 게임, 앵그리 버드가 안드로이드에선 광고를 탑재한 무료판으로 배포된 것이다. 앵그리버드는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 등장하기 무섭게 5백만 번 이상 다운로드되었고, 제작사인 로비오에게 월 100만 달러씩 수익을 안겨다 줄 거란 전망이 나왔다. 1년이면 1,200만 달러로 아이폰에서의 판매수익 800만 달러를 능가한다는 계산이다. 이거 죽이는데?

그런데 …… 잘 나갈락말락할까 하는 이 판국에 갑자기 아마존이 끼어든 것이다.

아마존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수익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품질의 유료 앱이 등장해서 팔리지 않으면 아마존은 땡전 한 푼 벌지 못한다. 즉, 아마존은 유료 앱을 활성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전략은, 모바일 광고로 돈을 벌려는 구글의 공짜 전략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SKT나 KT, 삼성전자 등 여러 통신사나 제조사들이 운영하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도 구글 앱스토어와 충돌하는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굉장히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구글은 당연히 이것들을 한데 묶어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경쟁이나 위협이 되기엔 너무 보잘 것 없는 상대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마존은 다르다. 컨텐츠 유통 쪽에선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삭한 노하우를 쌓아올린 데다가,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에선 구글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만찮은 기업이다.

더군다나 구글의 공짜 전략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 않다. 광고로 돈을 버는 건 앵그리버드 제작사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 절대 다수의 개발자들은 구글 앱스토어 운영 정책에 크든 적든 불만을 품은 게 현실이다. 만일 아마존 앱스토어가 성공리에 자리잡는다면, 그리고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들리면, 이들은 즉시 구글 앱스토어를 떠나 아마존에 합류할 것이다.

이럴 경우 구글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되지 않는다.
1) 앱스토어 운영 정책을 애플이나 아마존처럼 바꾸던가,
2) 안드로이드의 개방성을 포기하고 다른 앱스토어를 모두 쫓아내 버리던가,
3) 아니면 팔짱 끼고 방관하며 도도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하다가 쪼그라드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애초에 구상했던 그림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구글 애드몹 광고를 덕지덕지 붙인 공짜 앱의 쓰나미가 세상을 덮치고, 아마존 앱스토어는 비실대다가 죽어버리고, 애플 아이폰은 일체형 배터리를 추앙하고 유료 앱을 돈 주고 사서 쓰는 한 줌 변태들이나 좋아하는 스마트폰으로 전락해버리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마존이 실패하더라도 안드로이드의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끝판왕’이라 부르는 존재, MS가 칼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칼이 아니라 다마스쿠스 강으로 정련된 반월도처럼 날카로운 칼을 말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영진공 DJ Han

 

TV 방송은 몰락할 것인가?



1월 3일, 일본 라이브도어 뉴스에 일본 경제학자 이케다 씨가 쓴 [TV 종말의 시작]이란 컬럼이 올라왔다(원문링크 : http://news.livedoor.com/article/detail/5246269/ ). 내용을 대충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연말연시는 전혀 TV를 보지 않았다. 간간히 몇 분인가 눈을 돌렸지만, 어느 방송에서나 화려하게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노래하고 떠들어대는 프로만 나왔다. 이 극단적인 백치화의 원인은 광고수입의 감소 때문이다. 며칠 전, 모 방송업계 심포지움에서 민간방송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다들 제작비를 절감하라는 강력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절감 폭을 늘리는 건 간단합니다” 라고 어느 PD가 말했다. “자존심을 버리면 되거든요.”

TV 시청자는 천만 명 단위로, 뭐가 팔릴 지 방송국 측에서 알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가능한 수준이 낮은 시청자를 노리는 게 요령이다. NHK의 경우에는 이케가미 씨처럼 엄청나게 초보적인 것부터 해설한다. 민간방송도 그걸 알아차리고, 요번 연말 연시에는 이케가미씨 출연을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케가미 씨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TV의 평균시청자는 [어린이 뉴스] 정도의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민간방송의 경우, 일본 TV의 츠치야 씨가 말한 것처럼 “바보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늘상 생각하고 있다. 제작비를 절감하려면 만드는 쪽도 자존심을 버리고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드는 쪽이 시청자를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니만큼, 제대로 된 사람이 TV를 볼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점점 TV를 보는 사람은 노인이나 전업주부 같은 정보약자 정도로 축소된다….. 라는 마이너스의 루프에 TV가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금년 7월의 아날로그 방송 정지는 TV 업계의 종말의 시작이다. 정부의 선전대로라면 이미 디지털 TV는 80% 보급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건 세대 기준의 숫자일 뿐이다. 댓수 기준으로는 반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즉, 거실 TV는 디지털 TV로 바뀌었지만 개인 방의 TV는 대부분 아날로그다. (그리고 아날로그 방송 정지와 동시에) 개인 방의 TV는 불연성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타블렛 단말기로 유튜브나 니코니코 동화를 볼 테니까.

이것은 일본의 회사가 처한 상황의 전형이기도 하다. 과거의 성공체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은 채 품질 관리를 게을리하고, 인건비를 삭감하고, 하청을 늘리기만 한다. 모두 다 같이 천천히 가라앉기 때문에 경영자가 문책당하는 일은 없지만, 이 “삶은 개구리” 같은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끝>


이 글을 보고 나는 문득 10년 전 일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모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때 이미 방송국 PD들은 공공연하게 “우리나라 방송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정도의 눈높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황당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의 눈높이에 맞춘 방송 프로그램이라니! 내가 그런 걸 보고 있었다니!

그 이후, 나는 급속도로 방송에 흥미를 잃었다. 일단 내가 초등학교 4, 5, 6학년 학생들과 지적 수준이 비슷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거니와 – 인터넷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연예인들이 나와서 말장난이나 하는 프로, 또는 정권에 비비발발 붙어서 한 자리 해먹으려는 앵커들이 떠벌이는 뉴스, 아니면 신데렐라 얘기 내지는 백설공주 얘기의 변주에 불과한 드라마 따위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옳겠는가? 아니다! 차라리 웹질을 하면서 야동을 받아보는 게 훨씬 더 보람차고 즐겁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멍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웹질을 하거나 타블렛을 들고 페북질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제는 내 주변에서도 TV를 안 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스마트폰이 미친듯이 보급되면서, 여가 생활의 중심축이 거실 TV에서 개인화된 인터넷으로 옮겨지는 현상은 점차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방송 광고 수익은 국내에서도 분명하게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2010년에 발표된 자료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공중파 방송 3사의 광고 수익은 2007년에서 2009년까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아마 2010년 역시 마찬가지로 줄었을 것이다.

[ 참고기사 : 지상파 2년째 매출 하락…광고수익도 감소 ]


국내에서도 제작비 절감의 압박이 상당한 모양이다. 이미 공중파 드라마는 거개가 외주 제작으로 돌려졌고, 돈 많이 드는 다큐멘터리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은 줄어들고, 연예인들이 입담으로 시간을 때우는 예능 프로그램 숫자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하니 위의 컬럼에서 언급했듯이 – 제대로 정신이 박혀먹은 사람이 이런 걸 보느라 시간을 낭비할 리가 없다!


광고 수익이 줄어든만큼, 컨텐츠 2차 판매로 손실을 보전한다는 것도 쉬운 얘기는 아니다. 일단 국내에선 DVD 시장은 거의 죽다시피 했다. 흠, DVD 판매로 돈 벌긴 틀렸군. 케이블이나 IPTV는 공중파보다도 매출이 더 안 나온다. 흠, 여기도 텄군. 한류 붐을 등에 업고 해외 시장에 나간다? 지금 당장은 괜찮겠지. 하지만 외주 제작으로 대충대충 만든 드라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팔아먹을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 그나마 드라마를 제외한 나머지는 더 암울하다. 예능? 그런 걸 어디다 돈 받고 팔겠냐. 다큐멘터리? KBS, MBC, SBS에서 볼만한 다큐멘터리 만든 게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디지털 TV니, 3D TV니, 스마트 TV니, 지금도 TV 시장을 둘러싼 격전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송국들이 활력을 잃고 시들거리면, 그 콘텐츠를 재생하는 플랫폼인 TV의 매력과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방송국들의 수익성 악화는 TV 시장 – 특히 현재 주류라 할 수 있는 거실용 대형 TV 시장의 쇠퇴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  온가족이 모여앉아 TV를 보는 광경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사라지고,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에서 연령별, 성별로 분화된 TV 프로그램을 선택해 보는 것이 일반화될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거실 TV가 가족간의 교류를 돈독히 하는 수단이었노라고 주장하는 문화 평론가가 나올 것이고, 거실 TV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막장 드라마를 보며 분노와 기쁨과 지루함을 공유하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물론 세상 일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2, 3년 내로 TV 방송국이 기적 같은 매출 신장을 일으키고, 케이블 방송과 IPTV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KBS건, MBC건, SBS건, 어디가 됐건, 지금처럼 저질 드라마나 시시껍절한 예능 프로나 틀어주는 한, 내가 TV를 보는 데 시간을 투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 그나저나, “과거의 성공체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은 채 품질 관리를 게을리하고, 인건비를 삭감하고, 하청을 늘리기만 한다.”라는 거, 도저히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런 된장, 띠바!

영진공 DJ Han

 

애플 TV의 현재, 스마트 TV의 미래


지금, 스마트폰의 뒤를 이은 화두는 스마트 TV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구글이다. 크롬 OS를 기반으로 한 구글 TV 플랫폼을 앞세워 많은 제조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특히 소니는 필사적이다. 삼성이나 LG에게 두들겨맞아서 만신창이가 된 TV 사업의 부활을 구글 스마트 TV에 걸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은 자사의 바다 OS를 내세워 스마트 TV 플랫폼을 구축하겠노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때 노키아의 심비안이 그랬듯이,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다른 데서 당해낼 도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 애플의 행보는 어떠한가.
애플은 이미 3년 전에 애플 TV라는 제품을 발표해 스마트 TV 사업에서도 앞서나갈 거란 관측이 유력했다. 더군다나 올해 초부터 신형 애플 TV가 나올 거란 소문이 떠도는 바람에 많은 TV 제조사들이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에 발표된 신형 애플 TV는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제품이었다.

기존 제품은 인텔 CPU에 MacOS 플랫폼이었지만, 신형은 ARM CPU에 iOS 플랫폼으로 바뀌었다. 가격은99달러로 떨어지고, 동영상을 구매하는 대신 99센트에 빌려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도입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딜 어떻게 뜯어봐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케이블 TV 셋톱박스보다 나은 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건 애플이 아니라 하이얼도 만들 수 있겠네!

하다못해 자사 제품이라면 당장 혀로 쪽쪽 핥아먹을 것처럼 칭찬 일색으로 도배하는 잡스조차도 신형 애플 TV는 “취미(Hobby)”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는 듯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뭐야, 이거?

요컨대, 현재 애플 TV는 대단히 비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쓴 맛을 본 제조사들이 또다시 애플에게 당하지 않을 거란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예약 판매 실적도 별 기대가 안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툭 까놓고 말해 “넌 이미 망해있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스마트 TV의 정의는 비교적 간결하다. 스마트폰처럼 똑똑한 TV, 그게 스마트 TV다. OS는 iOS가 될 수도 있고 바다 OS가 될 수도 있고 크롬 OS가 될 수도 있다. 핵심 부분만 따로 셋톱 박스로 팔 수도 있고, TV에 내장시킬 수도 있다. 웹브라우징도 할 수 있고 날씨도 확인할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거저거 다 되는 꿈의 TV다.

하지만 내가 문제시삼고 싶은 건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물리적인 형태다.

스마트 TV에 관한 대부분의 예상과 전망은, 그 모양새나 생김새가 기존 TV와 대동소이할 거란 전제 하에 이뤄지고 있다. 화면? 크면 클수록 좋겠지. 그래야 거실에 갖다놨을 때 뽀대나니까. 두께? 당연히 얇으면 얇을수록 아름답겠지. 리모콘? 멀리 떨어져서 조작해야 하니까 혁신적이면서 편리한 UI를 탑재한 리모콘은 필수겠지!

실제로 LG나 소니를 비롯한 제조사들이 각종 전시회에서 내놓은 스마트 TV의 프로토타입은 대화면 TV와 셋톱 박스, 무지막지한 키보드가 달린 리모콘이 결합된 형태로 이뤄져 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러나 조금 삐딱하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실에 모셔놓는 대화면의 스마트 TV는 얼핏 생각하기엔 이상적인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TV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웹브라우징을 할 수도 있고, VOD를 받아볼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서 TV를 볼 때나 가능하다. ‘온가족’이 봐야 하는 거실 TV에서 느긋하게 웹브라우징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막장 드라마 방영 시간이 다가오면 마누라가 당장 리모콘을 뺏아들고 채널을 돌릴 테니까.

그렇다면 방마다 스마트 TV를 놔 두면 어떨까? 아니 …… 요즘은 방마다 컴퓨터가 있는데 그게 무슨 필요야? 차라리 컴퓨터에서 웹브라우징하면서 실시간 TV를 보는 게 낫지. 아예 이번 기회에 노트북으로 바꿀까? 침대에 누워서 갖고 놀게.

여기서 스마트 TV의 물리적인 진화 형태가 쉽게 떠오를 것이다. 그건 바로 타블렛이다.
온가족이 집적대는 40인치대 거실 TV는 아무리 스마트해진들 개인화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보다는 7인치나 9인치의 화면에서 언제 어디서든 TV를 비롯한 각종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다른 사람에게 시청권을 빼앗기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강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역으로 혼자만 즐길 수 있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TV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웃고 떠들며 보는 게 중요하잖아? 안 그래?

그래서 애플에서 airplay 를 만든 거 아니겠냐. 필요할 땐 타블렛의 콘텐츠를 거실 TV에서도 볼 수 있도록.

아마 애플 TV 하드웨어 자체는 잡스의 말마따나 ‘취미’일 것이다. 진짜배기는 거기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서비스다. 만일 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아이패드와 결합하게 된다면, 그 순간 아이패드는 휴대성과 앱, 콘텐츠를 두루 갖춘 스마트 TV 플랫폼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또는 지하철에서, 또는 버스 안에서 맹렬하게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리라.

스마트 TV 플랫폼의 개념을 흡수한 타블렛,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스마트 TV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애플TV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패드와 사실상 동일한 하드웨어와 OS를 갖췄다는 것은, 애플 TV용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언제든지 아이패드용으로 옮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음만 먹으면 몇 달은커녕 몇 주 걸리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지금 당장 형편없다고 애플 TV를 비웃고만 있을 게 아니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분석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크게 한 방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아이폰으로 당한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허나 어쩌랴, 우리나라 제조업체는 비웃느라 바쁜 것을. 천하에 둘도 없는 멍텅구리들 같으니라고, 된장!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