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4호]Hunter S. Thompson,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재외공관소식
2006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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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ter S. Thompson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영화의 한 장면을 표지로 이 책이 국내에 출판될 거란 광고를 분명 어디선가 몇 년 전에 본 것같은데, 아무리 온라인 서점들을
뒤져도 책의 존재는 없다. 영화 개봉이 무산되면서 책도 결국 엎어진 건가. 하여간, 새삼 Thompson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원서로 이 책을 사서 읽었고, 벌써 두어 달이 지났다. 약에 취해 취재를 하고는 나중에 편집자와 방에 틀어박혀 녹음기를 재생시켜
녹취하는 게 커다란 일이었다는 톰슨답게, 이 책은 라스 베가스로 오토바이 경주 취재를 가서는 정작 취재는 뒷전인 채 각종 약에
신나게 취해서 벌이는 소동과 모험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일행의 관심이란 새끈한 차 – 빨간 컨버터블 -, 약, 그리고
여자이다.)

미국의 드럭컬처를 모른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M.군은
이 책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주인공의 ‘사모아인 변호사’ – 영화에선 일부러 18킬로를 찌운 베네치오 델 토로가 맡아
열연했다고 하는 – 가 약에 취해 욕조에 누워서 카세트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White Rabbit”을 반복해서 듣는 장면을
꼽았는데, 그러니까 이 노래란… 약으로 high한 상태에서 들어야 제맛인 그런 노래라는 것이다. 내가 해본 중독성
약물이래봐야 알콜과 담배가 고작인데, 이 노래가 확실히 좀 싸이키델릭하고, 몽롱하긴 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설명을 듣는다고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기도 힘들다.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놓고는 맥주를 두 병 원샷하고 들어앉아
곡을 들으면 좀 감이 오려나. 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영어의 장벽보다, 드럭컬처에 대한 몰이해의 장벽이 훨씬 더 높았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과 음악과 영화로 접한 ‘상상의 정서’에 불과하니. (그런데 나는 왜 미국의 6,
70년대에 그토록 매혹되어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재미에 대해 언급을 해보자면, 그러니까 라울 듀크(이 책의 화자)와 그의 변호사가 라스베가스를
횡단하면서 벌이는 모험이란 게 결국, 당시 풍요와 문화적 절정이라 사람들이 얘기했던 미국의 풍경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자들의
날카롭게 해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굉장히 신랄하고 흥미진진한 톰슨의 문체로 그려지는 라스베가스의 모습은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의
극단적 면을 한눈에 보는 축약도이며, 물질적 풍요 앞에서 정신적 공황을 겪는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자축하며 애써 그
정신적 공황을 잊고자 하는 필사의 몸부림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그가 벌이는 소동을 킬킬거리며 읽으면서도, 그 가운데에
드러나는 톰슨의 날카로운 견해와 이에 대한 매우 절제된 – 그러나 강력한 – 표현들은 서늘한 쾌감을 준다. 또한 어느 순간
찾아오는, 길 잃은 자 특유의 먹먹하고 막막한 무력감까지도.

한국에 출판되기에 분명 애로점이 많은 책임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톰슨이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이 사람이
주는 그 삐딱한 매력은 꽤 강력한 편. 국내엔 톰슨의 책이 소개된 게 거의 없으니, 관심이 있으나 영어원서를 읽는 데에 장벽을
느끼시는 분들은 케이블에서 가끔 방영해 준다는 영화 버전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조니 뎁이 톰슨과 장기간
생활을 같이 하며 그의 행동과 말투를 거의 완벽하게 모사해 낸다고 한다)를 보거나 현재 영화화 소식이 있는 <럼 다이어리>(역시 조니 뎁이 제작총지휘에 나섰고 출연도 할 예정)를 기대해 보시는 게 좋을 듯하다.

재외공관 독서권장위원회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