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기억






1984년,
아버지가 이상한 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금성 칼라티브이에 이놈을 꼽더니 말씀하셨다.

“니가 말한 게 이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MSX라니까 아빠.”

애플2와의 첫 만남이었다.

MSX는 카세트테이프로 게임을 로딩시킬 수 있었던 반면 애플은 팩이 있어야 했다.
기껏 국민소득 1000불(이건 명확치 않다.)을 갓넘긴 대한민국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게임팩 가격은 어린이가 지불할만한, 혹은 어린이를 위해 지불할만할 금액이 아니었다.

산 걸 무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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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책을 한권 더불어 사주셨다.

한달 가까이 실수와 실수의 반복을 계속하면서 만든건 무슨 양궁게임 같은 거였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그래밍이었다.
명절 때 모은 돈으로 한 두어개 팩을 산 뒤 그 놈이 어디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사갔을 때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MSX도 애플도 사라져갔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건 IBM이었다.
XT에서 AT로 그리고 대망의 386 시대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렸다.

1992년 16mhz 클럭속도의 AT, 50메가 하드, 8비트 스테레오 애드립, 2400bps mnp모뎀, 메가VGA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80칼럼 삼성 도트프린터와 함께 구매했을 때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아래한글 1.2, 경북대에서 만든 이야기 4.0, 도스 5.0, 그리고 M이 나오기 전까지 활개를 쳤던 L과 함께 신세상이 열렸다.

케텔은 1200bps, 피씨서브는 2400bps속도로 통신서비스를 했다. 통신인구는 94년 군대 입대할 때까지 2만명이 되지 않았다. 피씨서브 유머동에서 나는 웹상 최초로 방망이 깍던 노인, 허생전을 패러디 해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별사랑 동호회에서 로마 신화를 외웠다. 게오르규만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여자를 꼬시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은 또 없었다.

케텔은 코텔에서 하이텔로, 피씨서브는 천리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리안은 국내선 전화요금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모자이크. VGA급 사진 한 장을 받는 데 8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전화요금은 끊임없이 올라갔으며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에 엄마에게 맞는 일이 잦아졌다.



군대를 가고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GUI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니, 도스는?’


애플을 만들던 회사에서 제안한 GUI는 윈도우에서 꽃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샀던 컴퓨터와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펜티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133클럭의 씨피유와 16메가 부두 3D, 그리고 250메가에 이르는 하드디스크는 운동장이었다. 모터레이스2, 울프3D, 그리고 툼레이더는 과거 인디아나존스, 킹스퀘스트, 울티마에 받았던 충격 이상을 주었다.

56k  속도로 동작하는 모뎀은 과거 통신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그리고 엘지(이름이 기억 안남.)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우누리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수도 없는 벙개를 나가 끊임없는 내상을 입으며 내린 결론은 ‘이쁜 여자는 만날 놈도 많은데 왜 채팅을 하겠냐?”였다. 미련이란게 쉽게 떨어지면 미련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불쌍해서 천당에 보내줄만큼 폭탄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는 여인네를 부축하면서 누가 볼까봐 고개를 못든 적도 많았다.

1999년. 1년을 작정하고 모은 돈으로 산건 씽크패드 버터플
라이 키보드가 달린 70* 모델이었다. 350만원짜리 중고. 발표수업 때 빔프로젝트로 연결된 노트북을 본 순간 120명의 학우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봤던 건 잊지 못하겠다. 당연히 A+일줄 알았던 학점은 D였다. 출석미달. ㅅㅂ.

졸업을 하고 입사 첫해까지 썼던 그 노트북과의 인연으로 X30, X31, T40까지 아이비엠 빠돌이 역할에 충실 했던 삶이 바뀐건 2005년이었다.

SD에서 HD로 넘어가는 방송환경에서 과거의 편집장비는 방송사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프리미어는 턱없이 부족했고 에딧박스는 기존 장비와 가격차가 없었고 아비드는 방송용 편집과 어울리지 못했다. 파이널컷프로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요구를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페이드 아웃시 한 프레임이 빠지는 문제가 디졸브 시 한 프레임이 비는 몇몇의 문제가 있었지만 장비 가격은 0이 하나 두개 빠지면서도 동급의 효과를 낼 수 있게 구현되었다.

애플은 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범 빠돌이에서 최초로 조우했던 애플과 다시 만났다.

2006년,
20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다시 애플과 만났다. 맥북.


6개월만에 키보드 하단이 뭉개지는 취약점이 있던 망할놈이었지만 키노트와 파이널컷프로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는 놈이었다.

키노트는 PT계에서 절대강자였다. PT 승률의 50%는 키노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나왔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데이터 요금이 거짓말처럼 무제한 요금제로 바뀌었다. 피쳐폰은 유물이 되었다. 불쌍한 내 전지현폰 미니스커트는 6개월만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니스커트를 사면 전지현이 혹여나 한번 나타나 주지나 않을까 하는 속된 욕망이 부끄러워졌다.

어디서나 이메일을 요금걱정 안하고 보게 되었고 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지 않았다. 한게임 고스톱을 치건, 헬키드를 하건 팔라독을 하건 엠파이어워를 하건 할 건 넘쳐났다.

사이즈의 차이가 효용의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아이패드를 통해 배웠다.

맥북프로로 업무를 보고 파이널컷프로로 편집을 하고 키노트로 PT를 진행하고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패드로 시간을 때우는 나는 완벽한 앱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른 아홉해 중에 20년을 컴퓨터와 함께 살았고 그중 7년을 애플과 함께 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이룬 저변 위에서 애플이 바꾼 건 환경이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진공 그럴껄

구글은 왜 양다리를 걸치려 하는가?

구글 안드로이드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구세주처럼 반겼다. 대형 휴대폰 업체들은 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MP4/PMP 등의 모바일 디바이스를 만들며 윈도우 CE에 묶여 있던 중소 기업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안드로이드는 1) 공짜고 2) 구글이란 브랜드를 등에 업었고 3) 많은 개발자들이 익숙한 JAVA 개발환경으로 어플리케이션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1)번과 2)번만으로도 안드로이드를 선택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윈도우 CE는 골동품 구닥다리나 다름없는 주제에 더럽게 비쌌고, 윈도우 모바일은 그보다 아주 약간 나은 주제에 터무니없이 비쌌으니까.
그리고 안드로이드에 기반한 제품을 내놓겠다는 발표가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거의 대부분은 휴대폰이었지만, 개중에는 타블렛도 있었고, MP4나 PMP도 있었고, 극히 드물게 넷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안드로이드 OS는 넷북 시장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헌데 왠걸, 구글에선 크롬 OS라는 넷북 전용 OS를 따로 발표했다. 더군다나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OS하곤 한참 거리가 먼, 웹 OS였다!
도대체 이거 무슨 일이야? 구글, 이 놈들 대체 무슨 꿍꿍이지?
구글에선 안드로이드를 아파치 라이센스로 공개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이나 회사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소스를 뜯어고칠 수 있다. 하지만 소스를 공개할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런 이유로, 처음 안드로이드가 발표됐을 당시 몇몇 사람들은 구글의 수입 전략이 어디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사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돈벌이 방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직접 안드로이드 디바이스를 제작, 판매한다.
2) 충분히 저변이 확대됐을 때 안드로이드 자체를 유료화한다.
3) 구글 서비스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모바일 광고로 돈을 번다.

1)
번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실제로 이번에 HTC에서 만든 넥서스 원이라는 안드로이드 폰은 구글에서 직접 판매할 예정이란 루머가
파다하다. 하지만 하드웨어 장사는 인터넷 서비스 장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장사다. 성공하면 높은 수익이 보장되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는 장사다.

2)번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구글 입장에서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이런 짓을 했다가는 안드로이드를 선택한
업체나 개발자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 테니까. 하지만 수중에 돈이 떨어지는 신호가 울리면 언제든 이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돈이 없으면 누구나 사악해지는 법이니까(no money, be evil).

마지막으로 3)번, 이게 구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돈벌이 방식이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바일에서 이용할만한
구글 서비스가 뭐가 있을까? 검색? 지메일? 다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을 써 보면 알겠지만, 모바일 환경에선
그런 서비스를 이용할 일이 많지 않다. 날씨 위젯 아니면 게임 같은 독립 애플리케이션을 주로 쓰게 된다. 게다가 휴대폰 화면엔
광고를 노출시킬 공간조차 부족하다.또한 안드로이드는 완전히 오픈된 환경이다. 구글 앱을 죄다 들어내고 MS BING을 기본 검색 엔진으로 집어넣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인해 구글은 넷북 OS 전략을 완전히 새로 세운 게 아닐까 싶다.
2인치에서 4인치 정도 스크린의 한계를 가진 모바일 기기와는 달리, 9인치 이상의 스크린을 가진 넷북에선 웹브라우징에 제약이 거의
없다. 광고를 노출시킬 공간도 충분하다. 게다가 웹 서비스에서 구글과 경쟁할만한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 (고 생각할
것이다 …)


흠,
좋았어. 그럼 아예 웹브라우저만 실행되게 하자고. 엄청나게 빠르고 멋진 웹브라우저를 넣고 구글 서비스 북마크만 넣는 거야.
이러면 인텔 CPU를 쓸 필요도 없잖아? ARM CPU를 쓰고, 다른 거추장스러운 것들도 죄다 없애 버리면 가격을 지금 넷북의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지. 어때? 괜찮지? 불티나게 팔릴 거 같지? 그리고 이걸 산 사람들은 다들 구글  검색과 구글 닥스와
구글 지메일을 쓰면서 하악하악, 항가항가 할 거란 말이지! 어쩌면 붕가붕가까지 할 지도 몰라!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안드로이드와 크롬의 최대 문제점은 이게 완전히 개방된 환경이라는 거다. 개방? 그거 좋은 거잖아? 무협지에서도 개방은 항상 정의로운 조직이었단 말이지 … 아, 그거하곤 좀 다른가? 아무튼 개방이 최고야!

하지만 개방이 곧 개혁은 아니다.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도 아니다.

구글은 내부적으로 몇 가지 하드웨어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스펙에 부합되는 기기만 구글 앱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 스펙에서 벗어나는 기기는 꽝 되는 거 아냐?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현재 구글에선 제조업체나 통신사들이 독자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걸 굳이 막지 않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해당 기기를 지원하는 독자적인 앱스토어를 만들어서 운영하면 되죠!

오, 그거 좋네! 잠깐만……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그거 정말 좋은 거 맞아? (긁적)

실제로 국내 통신사들은 전용 안드로이드 폰과 전용 앱스토어를 동시에 런칭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아마 조만간에 ‘한국형’
안드로이드 폰과 ‘한국형’ 앱스토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즉, 오만 가지 사양과 터무니없이 다양한 판매 경로 때문에 허우적대야 했던 윈도우 모바일 개발자들의 악몽이 안드로이드에서 재현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크롬 OS는 BSD 라이센스로 개방된 OS다. 아파치 라이센스와 마찬가지로 소스를 뜯어고쳐도 되고, 고친 소스를 공개할 의무 따윈 전혀 없다.요컨대 웹 서비스를 죄다 다른 걸로 바꿔치기해서 얹어도 되는 것이다. 뭐? 감히 구글을 대신할만한 웹 서비스가 있냐고?

있다. 그거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네이버와 다음이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네이버에서 새로운 전략 디바이스를 만들 수도 있다. 크롬 OS를 좀 조물딱거려서 기본 검색 엔진으로 네이버를 넣고, 기본
웹 메일로 역시 네이버를 넣고, 기본 블로그로 또 네이버를 넣고, 기본 오피스로 네이버 웹 오피스를 개발해 넣는 것이다. 그리고
ARM CPU를 사용해 제품 가격을 30만원 안쪽에 맞추고, [네이버 넷북]이란 이름으로 팔면 어떨까? 흠, 적어도 국내에선
구글 넷북보단 이쪽이 더 잘 먹히겠는데?


이렇게 되면 모바일 서비스를 장악해 모바일 광고 시장까지 한 손에 틀어쥐겠다는 구글의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IBM이 PC 아키텍쳐를 공개했다가 시장 지배력을 잃어버린 전철을 똑 같이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드로이드와 크롬 OS를 보면서 구글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꿈을 꾸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구글의
본의가 무엇인건간에, 그 의도대로 시장이 움직일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기에.

분명한 사실은, 안드로이드와 크롬 OS의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는 것이다. 윈도우 모바일이 살기 좋은 시궁창이고 아이폰이
평범한 천국이라면, 안드로이드는 이제 겨우 노숙자 수용소 정도의 단계로 올라선 데 불과하니까. 그리고 크롬 OS는 …
글쎄, 뚜껑도 덮지 않은 하수구라고 해야 되려나?

영진공 DJ Han

초난감 기업의 조건, “폭소 속에도 교훈은 있다.”

주변의 서평이 하도 좋아서 사본 책이다.

이 책, 확실히 재미있다. 잘 나가던 기업들이 멋지게 몰락한 사례를 열거하며 후련하게 까는 맛은 일품이다. 하지만 재미와 사실은 좀 별개의 문제다. 이를테면 여기서 언급한 ‘오즈본 효과 (주 1)‘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게리 킬달에 관한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주 2).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선 되도록 좋은 얘기만 쓰고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 협력사였던 Canyon Company에서 제공받은 애플 퀵타임 코드를 이용해 Video for Windows를 개발했다는 얘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이건 MS의 반독점 재판의 이슈 중 하나였다). 인터넷 거품기업 중 하나로 언급된 아마존에 관해선, 글쎄, 지금 아마존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를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아무튼간에 이거, 첫장부터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 데이터를 조작했다면서 신랄하게 까댄 사람이 할 짓은 아니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류의 책을 쓰다 보면 어떨 때는 주관이 개입할수도 있고, 어떨 때는 잘 다듬어진 데이터를 인용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읽는 사람 입장에선 상관없는 일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사 보는 주된 목적은 잘 나가던 애덜이 보기좋게 망해 자빠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열광하기 위해서다! 한 기업의 몰락을 보면서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자극적인 폭소를 터뜨리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구라도 좀 치고, 과장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요컨대 여기 언급한 사례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지, 그리고 저자가 과연 기업들의 실패 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에 가깝다. 덤으로 책 말미의 결론도 무척이나 밋밋하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소니 침몰]처럼 진지하게 회사를 걱정하며 써내린 것도 아니고, 뭔가 교훈을 줘야 하는 도덕책도 아니고, 지식을 선사해 줘야 하는 경제학 서적도 아니니까.

그러니 이 책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법을 배울 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편이 좋다. 그건 과도한 기대다. 그보다는 갑갑하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낄낄대며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읽을거리로써의 가치를 추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18,000원이란 값어치는 하고도 남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진공 DJ Han

[주 1] 80년대 오즈본 컴퓨터는 세계 최초로 본격적인 휴대용 컴퓨터를 개발해 엄청난 급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업그레이드된 제품이 나올 거란 사실을 너무 일찍 발표하는 바람에 현재 제품이 팔리지 않게 되어 매출이 극적으로 급감, 결국 회사가 도산하게 됐다는 데서 ‘오즈본 효과’란 말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2005년, 80년대 당시 오즈본에서 근무했던 마이크 맥카시는 오즈본 컴퓨터의 몰락 원인이 경쟁사인 케이프로의 신제품에게 가격 및 성능에서 철저하게 밀렸기 때문이란 사실을 밝혔다. 여기 대해선 영문 위키피디아의 글 (http://en.wikipedia.org/wiki/Osborne_effect )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물론 오즈본 효과란 말은 일반명사화되었기 때문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주 2] 게리 킬달이 비행기를 타러 가느라 IBM협상단을 화나게 해서 협상이 파토났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오후에 돌아와 게리 킬달이 직접 협상을 진행했지만 이런저런이유로 결렬됐을 뿐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IBM에게 제공한 MS-DOS는 CP/M의 특허권을 침해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게리 킬달의 고문변호사가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 침해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조언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사실은 이거야말로 정말 엄청난 실수였다!


[문화와 총] – 2장: 울증형의 일본, 조증형의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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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라는 일본 정신과의사가 쓴 <튀는 신세대 숨는 신세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1995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구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사람들을 조증형과 울증형으로 구분합니다. 조증과 울증은 원래 정신질환의 진단명이지만, 히데키가 사용했을 때는 정신과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구분하는 틀입니다. 즉,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울증형으로 해결하고, 어떤 사람은 조증 형으로 대한다는 거죠. 사실 이런 구분방식의 기원을 따지자면 칼 구스타프 융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 아저씨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원형(archetype)에 집착한 사람인데, 그 원형 이론이 MBTI 같은 검사의 기초가 됩니다. 그렇다면, 울증형과 조증형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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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신세대 숨는 신세대의 도서정보. 이미 품절..

숨는 신세대에 해당하는 울증형 인간은 타인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깊이 파고듭니다. 얼핏 보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성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성격은 외향적인데 라이프스타일은 울증형인 사람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현대적인 사람들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든요(이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자기 것이랄 것이 분명치 않음에도 그 자기에게 의지하려다 보니 규칙에 의존합니다. 한번 어떤 것을 배우면 절대로 그것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큽니다. 이렇게 스스로만 주어진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소극적이나마 단죄하려는 스타일로 나갑니다.

그렇다면 조증형 인간은요? 네, 이들이 튀는 신세대에 해당합니다. 이 사람들은 울증형 사람들과는 정 반대로 자기가 아니라 남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들에 맞춰 자기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매우 쉽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유행에 따라가는 변화. 바로 이 유형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변화를 통해 발전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얼핏 보면 계속 변화하는 것 같지만, 유행이 돌고 돌듯이 결국 그 변화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순환됩니다. 발전이라기보다는 그냥 변화 자체일 뿐이죠. 게다가 언제나 남들에 맞춰간다는 기본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유형은 또한 외향성과도 다릅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표현을 잘 하는데, 이 조증형 사람들은 그저 따라할 뿐입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에서도 조증이나 울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울증과 조증의 특성을 쉽게 보여주는 이야기로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들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들은 울증형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직면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필요한 것을 모아 내부에 축적하고는 외부와 자기들을 차단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부의 자원만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죠. 이렇게 “외부와의 교류는 최소화 하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가 울증형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특히 베짱이처럼 지금 현재 순간을 즐기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베짱이는 반면에 조증형입니다. 이 친구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충실합니다. 그저 지금은 놀 때니까 놀 뿐이고, 미래는 나중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다가 겨울이 닥칩니다. 갈 곳 없어 개미네 집으로 찾아온 베짱이에게 개미는 냉정하게 문을 닫아겁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거죠. 역시 전형적인 울증형 선택입니다.

히데키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울증형 인간들의 문화라고 정의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문화는 기본적으로 스탠드 얼론 플레이어(Stand Alone Player)의 문화입니다. 전통적인 일본 밥상은 모두 1인용입니다. 식탁에서 누구와 같이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각자의 테이블에 각자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각자 먹을 뿐이죠. 스탠드 얼론 플레이 게임이 가장 발달한 곳도 일본이고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죠. 혼자 놀기는 울증형의 특성입니다. 이런 혼자 문화에 대해서는 윤서인님의 조이라이드 블로그에서도 묘사한 바 있습니다.
내용 보시려면 여기로 http://kr.blog.yahoo.com/siyoon00/1365571

울증형의 또 다른 특성은 쉽게 변치 않는다는 겁니다. 즉, 신뢰성과 지속성이 보장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번 배운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한번 맛있는 집은 수십 년이 지나도 계속 그 맛을 유지합니다. 공산품들도 마찬가지죠. 일본의 제품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요. 몇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유지하는 장인의 전통은 바로 울증형 문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본은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남들보다 더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혁신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개선의 결과죠. 이렇듯 끊임없는 개선을 통한 기술적 성취는 산업사회 시대의 일본을 최강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호환성에 대한 의식이 매우 약하다는 점입니다. 울증형 문화는 자체완결성을 중시합니다. 내가 배운 원칙에 따라 완벽하게 돌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뭐 하러 남에게 맞추냐는 거죠. 그 결과 일본은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통신혁명이 가장 늦게 일어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일단 일본자체가 20세기 동안 지나치게 성공한 산업사회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호환성에 대한 개념의 부족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휴대전화 기술은 그 자체로는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로 나가질 못하고 일본 안에서만 통용됩니다. 최근 <뉴스위크>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했더군요. 아래는 그 기사가 담긴 2007년 12월 12일자 뉴스위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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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산업화 과정에서는 가장 성공한 국가였는데, 어째서 정보화 과정에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결국은 호환성의 문제입니다. 카메라나 기타 정보통신기기에 사용하는 플래시 메모리 분야만 예를 들어보죠. 이 분야는 일본이 주도한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그 결과, 10개가 넘는 메모리 표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SD카드, MMC, 메모리스틱, 컴팩트 플래시… 기능이 많이 다르냐? 천만에요. 모두 그냥 메모리일 뿐입니다. 내부 부품도 결국 같아요. 그런데 그 똑같은 기능을 하는 부품 하나를 통일하지 못해서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마다 다른 메모리를 사게 만들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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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짓?

이 메모리 규격들을 보자면 저는 앞서 보여드린 2차 대전당시 일본 제식탄약들이 떠오릅니다. 결국 그때와 똑같은 짓을 반복한 거죠. 2차 대전 때와는 달리 이제는 기술적인 제약도 없는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건 미국이나 유럽에서 USB 같은 단일표준을 먼저 만들어놓는 것과는 정반대 패턴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각자 자기네 카메라에는 이런 모양의 메모리가 더 적절하다고 우기거든요. (물론 메모리 표준을 자꾸바꾸면 메모리 장사도 해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만…) 결국 자체완결성의 집착입니다. 소니가 자기들 제품에서만 통용되는 커넥터 규격을 만들거나, 자기네 제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파일압축 포맷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자체완결성, 제품 자체의 품질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자체완결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남들의 것과 얼마나 잘 호환되느냐도 무지무지 중요합니다. 애플이 시장주도권을 놓친 가장 큰 이유는 자체완결성이 높은 매킨토시를 만들고 벽을 둘러쳤기 때문이죠. 그동안 IBM이 PC 표준을 만들어놓고 그 틀 안에서 모든 업체를 포괄하며 기술적으로 훨씬 우월한 애플을 이겨버렸습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호환성을 무시하고 자체완결성에 집착하는 건 결국 스스로를 왕따 시켜버리는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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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 신뢰성, 나머지 모든 성능은 우수한 맥이 IBM의 호환성 동맹에 포위되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어차피 2차 대전 이전에 일본 식민지가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미국의 표준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총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한일합방 이전에 고종 황제께서 삽질을 하느라 온갖 표준의 총기를 사들인 것에 대해서야 워낙 기술도 개념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치고요.

그 이후의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조증형 문화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적어도 표준 문제는 일본보다 우월합니다. 정보화시대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의 보급속도는 아마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을 겁니다. 어디서도 쓰지 않던 CDMA를 냉큼 들여와 표준으로 삼아서 나름 국제 표준화에 성공한 나라가 우리나라죠. 인터넷에서만 사용하던 MP3를 들여와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만든 것도 우리나라이고, 지금도 뭐든 유행이다 싶으면 정말 전 국민이 그 유행을 따르는 나라가 우리나라죠. 호환성의 극대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어요. 일단 수십 년간 같은 모습으로 같은 품질을 보장하는 장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신촌거리도 매년 새 식당이 생깁니다. 한때는 찜닭이 유행이다가, 어느 순간 불닭으로, 뭐 이런 식으로 계속 바뀌어대죠. 그러다 보니 전통이란건 정말 박물관에나 있게 됩니다. 어떤 한 분야에 천착하는 사람들이 적으니까 전문적인 컨텐츠의 생산도 적습니다. 컨텐츠 유통은 활발한데, 정작 그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적으니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60-80%가 전부 카피본이라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모두 같은 유행에 휩쓸리니 다양성도 부족합니다. 유행 상품만 많고, 유행에서 벗어난 물건은 없죠.

물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적절한 조증과 적절한 울증의 혼합이겠죠.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울증형 문화가 존재하고, 일본에도 조증형 문화가 존재합니다. 괜히 히데키가 튀는 신세대 이야기를 한 게 아니거든요. 일본의 미래를 그 조증형 문화에서 찾은 셈이죠. 어쨌거나, 결론은 이겁니다. 어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나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에 맞춰서 변형하고(혹은 타협하고) 유통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너무 당연한 결론이라고나 할까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