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멘토와 멘티들

1.
멘토: 인생의 등대

멘토(Mentor)는 원래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커스의 교육을 맡긴 친구의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2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장성한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자, 오디세우스의 수호신 아데나(그리스 신화에서는 미네르바)가 이 멘토의 모습을 하고 텔레마코스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앞에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Mentor라는 이름을 친구, 선생, 상담자, 조언자, (진짜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에 맞춰 멘토의 지도를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라고도 한다.

멘토와 멘티 관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당신에게도 아마 멘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당신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지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면 그는 당신의 멘토이다. 당신의 멘토가 잘 되면 당신이 행복하고 그가 실망하면 당신도 우울해진다. 당신과 당신의 멘토는 심리적으로 거의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멘토는 꿈이기도 하다. 어떤 멘토를 가진다는 것은 그 멘토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는 거다. 꿈 정도는 아무런 경험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가질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꾸는 꿈은 애매모호하고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멘토가 없으면 구체적인 꿈도 갖기 힘들다. 당신의 꿈을 대표하는 당신의 멘토를 통해서 당신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슨 노력이 필요한지, 그 꿈을 실현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을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멘토는 한번에 보통 하나씩만 갖는다. 멘토가 여럿이라고 해도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멘토는 결국 하나다. 그 이유는 추구하는 꿈이 두 개일 수는 없는 이유와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로 갖는 멘토는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다. 그 이후에 손윗 형제나 자매가 멘토가 되기도 하고, 유명한 연예인이 멘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선생님이나 선배, 혹은 성공한 사람들이 멘토가 된다. 인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부모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꿈을 찾고 자기만의 삶의 목표와 방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국 부모라는 멘토를 벗어나 새로운 멘토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발달사는 멘토와의 만남과 결별인 셈이다.

멘토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 놀랍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는 당신이 꿈꾸어 왔던 삶을 살고 있고 그와 함께라면 당신도 그 꿈을 실현할 것처럼 보인다. 당신에게 멘토가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당신과 당신 멘토와의 간격이 너무 멀고 당신이 멘토의 세계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멘토로부터 감화를 많이 받고 많은 것을 배워서 점점 성장해갈수록, 당신 멘토와의 간격은 줄어든다. 그리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혹은 봤지만 그냥 넘어갔던 멘토의 어두운 부분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된다. 그리?어느 시점이 지나면, 당신은 더 이상 그 멘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에까지 도달한다. 즉, 당신이 성장할수록 당신의 멘토는 당신에게 덜 중요해진다. 삶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리고 언젠가 결별이 일어난다.

물론 모든 멘토와 멘티(Mentee: 멘토의 지도를 받는 사람)간의 관계가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떤 멘토는 알면 알수록 더더욱 대단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어떤 멘토는 처음부터 불완전함을 보이지만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힘이 그의 매력이기 때문에 계속 그 가치가 유지된다. 하지만, 멘토와 멘티간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는 그 멘토가 얼마냐 훌륭하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멘티가 어디까지 성장할 것이냐에 달려있다. 멘티가 추구하는 삶이 바로 멘토의 삶 그 자체라면 그는 그 멘토와 결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상이 눈에 보일 때 그는 결국 어떻게든 멘토를 떠나서 새로운 멘토를 찾게 된다.

2.
영화 속의 멘토와 멘티들

멘토와 멘티 관계가 워낙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 멘토 결별과 만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도 종종 나온다.

우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 대부분은 멘토와 멘티 관계를 이야기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멘토가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존재일 때도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필립 느와레”)는 어린 소년 토토에게 영화의 세계를 알려주는 멘토의 역할을 한다. 토토가 영화에 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알프레도 덕분이었다.

친구가 멘토인 경우도 있다. 영화 『친구』에서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이의 관계가 그렇다.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받는 장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에게서는 도저히 꿈을 발견할 수 없었던 동수는 자기를 위해서 싸워준 준석이를 멘토로 삼았다. 그래서 준석이가 가는 곳에 같이 가고 준석이가 하는 일을 언제나 같이 한다.

멘토는 연인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더티댄싱』에서 주어진 규칙을 따르는 법 밖에 모르던, 하지만 그 규칙 속에서는 삶의 재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상태에 있던 소녀 베이비(“제니퍼 그레이”)에게 댄서 조니 캐슬(“패트릭 스웨이지”)은 멘토가 된다. 조니를 통해서 베이비는 자기에게 주어진 틀을 깰 용기와 기회를 얻는다.

『타이타닉』의 주인공 로즈(“케이트 윈슬렛”)에게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멘토다. 단 며칠 간의 만남뿐이었지만 그녀의 향후 인생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덤덤했던 나도 할머니가 된 로즈가 잠을 자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사진들(말도 타고, 여자 비행사도 되고, 결혼도 하고…)을 천천히 보여주던 마지막 장면에서만은 좀 찡 했다. 그 사진들은 도슨이 죽어가며 당부한 당신은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해야 한다던 유언을 그녀가 실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변화가 비록 아주 얄팍한 연출이었다고 해도,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삶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하던 소녀가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자체가 그냥 감동스러웠던 거다.

멘토는 그냥 좋은 사람만은 아니다. 영화 『플래툰』에서 주인공 크리스(“챨리 쉰”)에게는 두 멘토가 있다. 하나는 선을 상징하는 엘리아스(“윌리엄 데포”), 다른 하나는 악을 상징하는 반즈(“톰 베린져”)다. 둘다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죽는다. 반즈의 꼼수로 엘리아스가 죽어가는 장면은 베트남 전쟁에서 선의가 죽어버리고 악의만 남았다는 감독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멘토와의 결별 방법중 하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멘토와의 결별을 가장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바로 죽음이니까.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버드 콕스라는 배역으로 또 등장한 “찰리 쉰”은 아버지라는 멘토를 버리고 증권가의 거물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를 멘토로 삼는다. 하지만 결국 이 새 멘토에게서 자기 꿈의 어두운 면을 깨달은 버드는 게코를 버리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반복된다. 자신만만한 변호사 케빈(“키애누 리브스”)는 자기의 꿈을 이루어줄 것 같던 거물변호사 존 밀튼(“알 파치노”)를 찾지만, 결국 그가 악마라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어쩌랴 그 악마를 선택한 것은 자기 내면의 욕망이었던 것을… 이렇게 멘토와의 만남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 자체가 선과 악을 모두 가진 경우도 있다.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의 대부 돈 비토 꼴레오네(“말론 브랜도”)를 아버지로 둔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동시에 범죄조직 두목인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택한 건 아버지의 어두운 면이었다.

3.
근데 스타워즈, 너 너무 심하지 않니?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영화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워낙에 그런 영화가 많기 때문에 이 주제를 다루려면 최소한 멘토-멘티 관계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보고 남들이 하지 못했던 변주를 만들어야 이게 제대로 먹인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스타워즈』시리즈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다.

스타워즈의 멘토계보를 함 보자.

1977년작 『스타워즈 ep4 : 새로운 희망』에서 멘토는 오비완 케노비 이고 멘티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인데 이때만 해도 스페이스 판타지라는 장르에 어울리는 이 관계는 참신하기까지 했다. “포스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라는 오비완의 가르침은 꽤나 그럴듯한 메시지였다.

1980년작 『스타워즈 ep5 : 제국의 역습』에서 멘토는 요다 선생이고 멘티는 루크 스카이워커.  뭐니뭐니해도 “내가 니 애비다” 라는 다쓰베이더의 커밍아웃이 화제였다, 여기서부터 조짐이 불길해진다. 아버지는 최초의 멘토여야 하고 그 멘토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생애 최대의 원수가 자기 아버지라는 건 그 이후 『데블스 애드버킷』에서도 등장하는 구조지만, 여기선 정말 대단한 스캔들이었다.

1983년작 『스타워즈 ep6 : 제다이의 귀환』은 뭐 이전까지 나온 멘토 전부 등장, 아버지와의 화해. 좋다. 마지막 편이니 다 정리해야 한다고 쳐주자.


그리고 나서 한참 뒤인 1999년에 등장한 『스타워즈 ep1 : 보이지 않는 위협』은 완전히 멘토와 멘티 판이다.

여기서는 이전에 나왔던 멘토들의 멘토까지 등장하는데, 콰이곤 진은 오비완 케노비의 멘토, 요다는 콰이곤 진의 멘토고, 오비완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멘토다. 근데 아나킨은 다쓰베이더가 되어 오비완을 죽이게 되고, 같은 오비완의 제자인 루크는 다시 아버지와 대결 한다. 요다는 이후 아나킨의 사형 뻘 되는 카운트 두쿠(“크리스토퍼 리”)와 대결하고… 여기쯤 되면서 영화는 얽히고 설킨 멘토와 멘티 관계와 그 와중에 서로 원수가 된 멘토와 멘티간 싸움들로 점철된 영화로 변신한다. 한 두개의 관계 정도면 뭐 이해도 되고 그런 운명의 장난이!!! 라는 감흥이라도 주겠지만. 이렇게 떼거지로 나오면 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여기쯤에서 이 전체 시리즈는 별들의 전쟁인 『스타워즈』(Star Wars)가 아니라 멘토끼리의 전쟁, “멘토워즈”(Mentor Wars)로 변신한다.

4.
멘토와 진짜 결별한다는 것은?

다 좋다. 멘토와 멘티는 언젠간 결별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멘토를 가지고 있고 그 멘토와 멘티 관계가 얽히고 설키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다. 내가 생활하던 동네에서도 그렇게 얽힌 관계들, 사형과 사제 관계들을 어디가나 마주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의 형성과 결별은 그 하나 하나가 드라마다. 멘토관계의 형성은 사람이 꿈을 찾고 그 꿈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걸 뚫고 나갈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에 첫 발을 내딛는 짜릿함과 설레임의 드라마다. 결별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도 맘먹고 자기 멘토와 결별하지 못한다.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커지는 틈새와 메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임계치에 이르면 당사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장면에서 서로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결별이 일어난다. 이건 한번에 하나씩만 얘기해도 충분할만큼 큰 드라마란 말이다.

근데 그걸 이렇게 한 판에 다 벌려놓아 버리면, 각각의 드라마는 의미를 잃고 그냥 돌고도는 세상 이야기 쯤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 멘토 이야기에 기초해 세워졌던 캐릭터의 무게도 사라지고 말이다.

과유불급. 이 멘토워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영진공 짱가